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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이 꼰대가 될 때 비극은 시작된다 - 애국과 우정의 리더십 : 펠로피다스와 에파미논다스 (11)

공희준 편집위원

  • 기사등록 2020-05-29 10:5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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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력의 극강을 시전한 바 있는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의 페이스북 글을 갈무리한 이미지. 홍준표 전 대표는 테베의 영웅인 펠로피다스와는 달리 영웅의 단계를 거치지 못하고 꼰대로 직행하는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각축전은 해외무대에서도 치열하게 펼쳐졌다.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페르시아에 사절단을 보내자 테베 정부는 펠로피다스를 아케메네스 왕조의 수도인 수사로 급히 파견했다.

 

페르시아는 테르모필레 계곡을 막아선 레오니다스 왕 휘하의 300명 결사대의 일당백의 분투가 생생하게 증명하듯이, 스파르타로 말미암아 늘 골머리를 앓아온 터였다. 페르시아 제국의 수십만 대군을 쩔쩔매게 만들었던 극강의 스파르타 군대를 레욱트라 전투에서 일격에 박살낸 펠로피다스의 명성을 페르시아 사람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가 페르시아 영내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제국의 고관대작들이 이 유명한 테베의 장군을 한번 만나보려고 도처에서 장사진을 이뤘다.

 

페르시아의 국왕 아르타크세르크세스는 펠로피다스가 궁전에 도착했다는 소식에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동시대를 대표하는 핫(Hot)한 인물인 펠로피다스가 염치 무릅쓰고서 아쉬운 소리를 하려고 직접 찾아온 점은 페르시아의 국력이 여전히 강성하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펠로피다스는 당당하면서도 예의바른 태도로 대왕과의 접견 자리에 임했다. 테베의 제안은 아테네와 스파르타 측의 그것과 비교해 내용에서는 탄탄했고, 형식에서는 명쾌했다. 펠로피다스를 실제로 대면해본 아르타크세르크세스는 명불허전이라는 찬탄 섞인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테베가 페르시아에게 내건 조건은 정확히 세 개였다.


① 그리스의 독립 보장

② 메세네 주민들의 거주권 인정

③ 테베와의 지속적인 우호관계 증진

 

살라미스 해전에서 단단히 쓴맛을 본 이후로 페르시아는 희랍 전역을 무력으로 정복하려는 야욕을 완전히 포기했다. 더욱이 테베는 과거에 페르시아가 그리스를 침략했을 적에 지원군을 파병해줬을 정도로 테베와는 전통적으로 사이가 좋았다. 따라서 ①번과 ③번은 하나마나한 덕담일 뿐이었고, 관건은 ②번이었다. 메세네에 대한 테베의 실효적 영유권을 인정해달라는 의미였다.

 

메세네는 테베가 스파르타의 군사적 동향을 감시‧제어하는 요새 용도로 요긴하게 활용하는 도시였다. 테베는 메세네에 대한 자국의 기득권을 페르시아가 존중해주는 대가로 제국의 숙적인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견제하는 역할을 지금처럼 계속 충실히 유지해가겠다는 원교근공의 외교원칙을 스파르타에 통보했고, “적의 적은 친구”라는 국제관계의 불변의 대명제에 의거해 페르시아 입장에서는 테베 측이 내민, 결코 나쁘지 않은 거래조건을 굳이 마다할 까닭이 없었다. 전쟁터에서의 펠로피다스는 누구보다 용맹했지만, 외교현장에서의 펠로피다스는 그 누구보다도 교활했다. 펠로피다스의 용기와 노회함은 자신의 출세와 성공을 위한 게 아니었다, 조국인 테베의 국익을 위한 것이었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는 귀국길에 오르는 펠로피다스에게 듬뿍 선물을 안기며 페르시아와 테베 양국 간의 영원한 우의와 친선을 기원했다. 펠로피다스는 대왕의 풍성한 하사품 가운데 나라에 도움이 될 만한 일부 물산만 받고서 나머지 전부는 정중히 사양했다. 모난 놈 옆에 있다가 정 맞는다고, 펠로피다스의 청렴함과 강직함은 엉뚱한 부수적 희생자들을 낳았다. 아테네에서 온 사절인 티마고라스가 페르시아로부터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사형에 처해진 것이다.

 

티마고라스가 아테네의 법정에서 극형을 선고받은 진정한 이유는 과도하고 참람하게 외세의 뇌물을 챙겼기 때문이 아니었다. 테베와의 외교전에서 참패한 데 따른 가차 없는 문책 성격이 강했다. 다른 폴리스들의 외교사절들도 본국으로 귀환한 다음 비록 처형만은 면했을지언정 이런저런 구설수와 책임추궁에 휘말려 곤욕을 치렀다. 원인은 역시나 테베와의 외교전에서 완패한 데 있었다.

 

테베는 문무를 겸비한 펠로피다스의 국내외를 종횡무진으로 누비는 맹활약 덕택에 세계 최강 페르시아와의 확고한 동맹관계를 재확인하고, 숙명의 경쟁자들인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놨다. 그럼에도 한 가지 숙제만은 아직도 영구미제로 남아 있었다. 주기적으로 북방의 정세를 귀찮게 어지럽히는 페라이의 참주 알렉산드로스의 존재였다.

 

알렉산드로스는 촉나라의 제갈공명에게 칠종칠금의 신화를 선물해줬을 만큼 단순하고 우직했던 삼국지의 맹획과 달리 기름장어처럼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데에는 도가 튼 인간이었다. 그는 기회 포착에도 일가견을 갖춘지라 테베가 다른 현안들에 정신이 팔린 틈을 골라 테살리아의 도시들을 번번이 손에 넣었다. 테살리아인들은 펠로피다스에게 다시금 구조신호를 타전했고, 테베의 충신 겸 맹장은 이참에 알렉산드로스를 제대로 요절을 내주겠다는 결심을 단단히 굳히고서 병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펠로피다스가 알렉산드로스 부부의 불화를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은 그의 자신감을 한층 더 북돋웠다.

 

고대의 역사 서술은 자연현상에 기대어 사회적 사건들을 은유적으로 설명하곤 한다. 플루타르코스는 펠로피다스가 알렉산드로스 토벌 작전에 착수할 즈음 갑자기 일식이 닥치는 불길한 징조가 나타났다고 한다. 펠로피다스도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는지 애초 계획한 7천 명의 대규모 원정대 대신에 3백 명에 지나지 않는 적은 숫자의 병사만 데리고 출전을 감행했다. 문제는 이 3백 명이 테베의 자랑인 최정예 신성대가 아니라 여기저시서 돈 주고 긁어모은 외국인들로 편성된 근본 없는 용병 기병대였다는 것이다.

 

이는 테베인들이 이즈음 오랜 전쟁에 염증을 느꼈다는 증거였다. 특히 젊은 청년들 사이에 염전사상이 만연했다. 그들은 조국의 영광을 주야장천으로 외치는 펠로피다스를 더 이상은 인기 없는 지루하고 케케묵은 꼰대 아저씨로 여기기 시작했을 가능성이 높다.

 

펠로피다스는 청년들과의 진솔한 소통과 대화에 나서지 않았다. 그가 여태껏 성공해온 방식인 전쟁으로 직진하는 길을 선택했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당대 최고의 영웅에게마저 쉽지 않은 일이었던 셈이다. 그는 북방의 오랑캐인 알렉산드로스를 산 채로든, 또는 죽은 상태로든 잡아오면 개인주의에 점점 깊이 탐닉해가는 테베의 청년들이 공동체의 필요성과 국가의 소중함에 이제라도 눈을 뜨게 될 것이라고 계산했던 듯하다. 이것이 비극의 단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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