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깡패다
“살았니? 죽었니?”
“살았다!”
최근 몇 주 동안 세상을 시끄럽게 만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망 소동은 그가 북한의 국영매체인 조선중앙TV 방송에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등장함으로써 차마 대놓고 웃을 수도 없는 한바탕의 허망한 소극으로 막을 내렸다.
김정은 위원장(이하 김정은)이 여전히 무탈하게 생존해 있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보수 야당의 공천을 받아 올해 4‧15 총선에서 지역구와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각각 당선된 태영호와 지성호 두 탈북자 출신 정치인은 「이솝 우화」 속 양치기 소년만도 못한 새빨간 거짓말쟁이가 되고 말았다.
김정은의 건강 상태가 만약에 대단히 양호하다면 그게 오히려 기이한 일일 것이다. 필자의 지인들 가운데 김정은과 비슷한 체형을 지닌 인물들의 경우 대부분이 두세 개씩의 만성질환을 달고 생활하는 게 보통이다. 게다가 김정은은 늘 죽음의 위협을 안고 살아왔다. 단적으로, 이라크의 바그다드 공항 근처에서 거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특수부대 사령관을 급습한 미군의 최첨단 무인 공격기가 언제 어디에서 김정은의 머리 위에 나타날지 알 수 없는 탓이다. 고도비만의 체형에 극심한 심리적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위한 폭음과 줄담배까지 더해지니 건강하려야 건강할 수가 없으리라.
허나 인명은 재천이라고 했다. 김정은이 한방에 훅 갈 체질이었으면 갔어도 진즉에 갔을 것이다. 더군다나 북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공화국 최고존엄의 건강을 관리할 것이 분명하다. 김정은의 생사 여부에 모두걸기를 한 것처럼 보이는 국제사회가 북한 지도층의 시각에서는 엄청 한심하고 하릴없는 집단으로 생각될 수밖에 없는 연유다.
젊음은 최고의 보약이다. 백두혈통 김정은의 건강이 아무리 부실해도 그는 이제 겨우 30대 중후반의 창창한 나이다. 당장 오늘내일 하는 불치병에 걸리지 않은 이상, 그는 앞으로 상당 기간 북한 사회 모든 분야의 권력을 전일적으로 장악한 한반도 북쪽의 절대권력자로 군림할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매우 높다고 하겠다.
진짜 개구리 반찬은 누구인가
김정은 사망설의 진위를 둘러싸고 벌어진 소모적 공방의 본질적 핵심은 북한 김정은의 건강에 있지 않다. 한국 정치의 건전함에 달렸다.
정치인 본연의 역할은 예측을 잘하는 데 있지 않다. 이른바 탁월한 정보력에도 있지 않다. 예측을 잘하는 사람은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 기상청장으로 특채되어야만 한다. 탁월한 정보력을 자랑하는 인물이 머물러야 할 곳은 정당이나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아니다. 강남에 성업 중인 내로라하는 각종 흥신소들이다.
한국의 보수세력은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 이후 줄곧 북한 급변설을 주장해왔다. 그렇지만 김일성이 운명한 이후에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세상을 떠난 다음에도 보수진영이 오매불망 기대해온 급변 사태는 북한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특정인 하나 죽었다고 이내 망할 만큼 극도로 허약한 체제였으면 북한은 망해도 벌써 오래전에 망했을 것이다. 심지어 박정희의 유신체제조차 박정희가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가 쏜 총탄에 목숨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두환의 5공독재로 되살아나는 바퀴벌레 같은 놀라운 생명력을 입증한 바가 있었다.
반면에 소련은 고르바초프가 건강했어도 몰락했고, 대우그룹은 김우중 회장이 왕성한 활동력을 과시하고 있음에도 그룹이 통째로 해체되는 비운을 피해가지 못했다.
김일성이 없어도 버티고 있으며, 김정일이 사라져도 쓰러지지 않은 체제가 김정은 개인의 신변에 이상이 생겼다고 해서 급작스럽게 무너질 리는 없다. 그러므로 북한도 한국처럼 이미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단계에 진입했다고 해석해야 올바른 관점이자 합리적 견해일 것이다.
인물이 아닌 체제, 곧 시스템이 관건인 구조에서는 누군가의 유고사태에만 애면글면하는 태영호나 지성호 부류의 부채도사형 정치인들이 들어설 틈이 없다. 미처 예측 못한 돌발적 상황이 전개되어도 책임감과 장기적 안목을 갖고서 기민하고 침착하게 대응해나갈 수 있는 내공과 실력을 갖춘 리더형 정치인들이 필요하다. 북한 김정은이 육체의 건강은 별로여도 그에게서는 북한을 강성대국으로 반드시 이끌겠다는 불요불굴의 정신적 청사진 하나만은 확실하게 발견된다. 남한의 평범한 인민대중의 일원인 필자한테는 다름 아닌 바로 이 지점이 그 무엇보다 뼈아프게 다가온다.
미국의 루스벨트 행정부는 일본의 진주만 기습을 사전에 충분히 예상하지 못했다. 예측력 빵점의 루스벨트 정권을 역사에서 길이 빛나게 해준 원동력은 파시즘의 공포와 압제로부터 전 세계의 인류를 구원하겠다는 분명한 철학과, 그러한 비전을 현실에서의 실제적 정책으로 구현해낼 수 있는 결단력과 책임감에 있었다.
작금의 한반도 정세에서 개구리 반찬 신세가 된 건 북한 김정은이 아니다. 스스로를 점쟁이로 착각하는 무지몽매한 정치인들과, 국회와 흥신소의 차이점을 분간하지 못하는 무능한 여당과 무책임과 야당에게 자신과 가족의 안전과 생명과 재산을 맡기고 있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를 수시로 점검당하는 여우 밥상 위의 개구리 반찬일 뿐이다. 그러니 우리, 여우는 못될지언정 개구리 반찬만은 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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