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기존 체제와 기성 질서에 대한 학생들의 복종과 적응을 목표로 삼아 진행된다. 그러므로 교사는 본질적으로 권위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직업이기 마련이다. 21세기는 권위주의적이고 보수적인 교직사회가 변화와 혁신의 선두에 설 것을 요구한다. 현재의 교사들에게 요구되는 변화와 혁신은 기업에서 행해지는 변화와 혁신에 가까운 성격을 띠고 있다. 비용은 낮추면서 생산성은 높이라는 주문이다.
보수와 변화가 공존하기를, 권위와 혁신이 병진하기를 중층적으로 요청받고 있는 한국 교육의 착잡한 현실을 전대원 선생의 눈을 빌려 들여다봤다.
전교조에도 젊은 피 수혈이 필요하다
전대원 (이하 전) : 일반 국민들께서는 학교 현장에 대해 자세히 아시지 못하는 것만큼이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현황에 관해서도 상세하게 알고 계시지 않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학교의 경우에 전교조 소속 교사가 몇 명쯤 있을 것 같은가요?
공희준 (이하 공) : 국민의 인식에서는 거의 모든 선생님들이 전교조 조직원입니다. 왜냐면 전교조가 교사들의 대표조직을 자임해왔기 때문입니다. 교사들이 전교조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자신들의 이해를 대변하고 요구를 관철시키는 광경이 국민들에게는 낯설지가 않습니다.
전 : 저희 학교에 있는 교사가 현재 60명입니다. 원로님은 그중 몇 명을 전교조 소속으로 생각하시나요?
공 : 국민들의 체감으로는 35명 안팎으로 짐작됩니다.
전 : 실제로는 우리나라의 평균 노조조직률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통틀어서 5명뿐인 탓입니다. 다섯 명이서 뭘 할 수가 있겠습니까?
공 : 다른 학교들도 전대원 선생님께서 계신 학교에서처럼 전교조 참여율이 낮나요?
전 : 대부분의 학교들이 저희 학교와 별 차이가 없습니다.
공 : 그럼에도 국민들은 전교조가 학교 현장의 거의 모든 대소사들을 좌지우지하는 걸로 인지하고 있습니다.
전 : 왜 그런지는 원로님께서 벌써 아실 듯합니다.
공 : 586 세대가 한국사회의 담론시장과 공론공간을 전일적으로 장악하고 있는데, 교사 사회도 그로부터 예외가 아니네요.
전 : 전교조 역시 상층부는 586들로 채워져 있기는 다른 부문들과 대동소이합니다. 거기에 더해서 공교육에 대한 불만이 전교조에 투영되다 보니 전교조의 존재감이 실체보다도 더욱더 크게 부풀려질 수가 있습니다.
공 : 환갑이 내일모레인 586 세대가 주력이니 혁신의 동력이 고갈된 게 당연합니다.
전 : 노쇠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활력을 회복하려면 20~30대 젊은 선생님들을 노조원으로 충원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조직 상층부가 현장 감각을 너무 늦기 전에 되찾는 것 또한 급선무입니다. 이와 더불어 현장 교사들과 전교조 활동가들 사이의 선순환도 요구됩니다. 전교조 조직이 적잖이 관료화됐거든요.
공 : 노쇠화와 관료화는 한국병의 전형적 증상입니다. 선생님의 걱정을 들어보니까 전교조가 우리나라의 기성 거대 정당들을 빼닮은 형편인 것으로 보입니다. 정당의 지역위원회들(예전의 지구당)처럼 단위 학교에서도 조직의 막내가 40대 중후반의 나이일 테니까요.
전 : 예. 그런데 전교조의 위기에는 성공으로 촉발된 위기의 측면이 있습니다. 노조의 세력이 언제 제일 강성해질까요?
공 : 회사 조직에 문제가 많을 때입니다.
전 :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1989년에 공식적으로 닻을 올릴 즈음에는 학교에 권위주의 문화가 만연했었습니다.
공 : 군사독재의 잔재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전 : 현재는 학교가 많이 민주화됐습니다. 과거와는 달리 이상한 교장 선생님들도 많이 사라지셨습니다. 학교 현장의 풍토와 분위기가 현저히 바뀌었다는 구체적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20~30대 교사들의 정의로운 피를 끓게 만드는 거대한 불의, 즉 거악이 자취를 대폭 감췄습니다.
교사도 사회인이고 직장인이다
공 : 나쁜 교사의 전형이 바뀐 것은 사실입니다. 과거에는 독재자로 군림하는 교사가 나쁜 선생님이었다면, 그 다음에는 학생들을 특정한 이념과 주의와 사상으로 의식화시키는 교사가 나쁜 스승의 표준이었습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생각하는 나쁜 교사의 기본값은 종전과는 매우 다릅니다.
전 : 어떻게 다릅니까?
공 : 교사라는 자신의 직업적 신분을 ‘분필 잡은 공무원’으로 여기는 철밥통 선생님입니다. 방학 때만 돌아오면 부리나케 해외여행 나간 다음 외국의 유명 관광지들에서 찍은 사진들을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웰빙 교사들이요.
이야기의 주도권은 시나브로 필자에게 넘어왔다. 스승으로서의 교사가 아닌 직업으로서의 교사가 바야흐로 논의의 중심에 선 탓이었다.
공 : 오래전에 우리 사회의 구조와 풍조가 바뀐 까닭에 오늘날은 교사가 엄청나게 좋은 직업으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전 : 괜찮은 직업인 사실은 저도 기꺼이 인정합니다.
공 : 저는 은퇴 후 받는 풍족한 연금혜택까지 포함한다면 평생 기대소득이 웬만한 대기업 임원 저리가라고 하는 직업이 교사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 : 대기업 임원 월급 수준에는 미지치 못합니다. 제가 대기업 임원들이 받고 있는 연봉이 얼마인지 파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 : 대기업 임원은 임기 마친 다음에는 집으로 가야 하지만, 교사는 그렇지 않잖아요. 학교가 60세 넘어서까지도 출근할 수 있는 꿈의 직장인데….
전 : 임원 자리에 머무는 동안에 받는 월급이 일반인으로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액수라….
공 : 애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영악한 측면이 많습니다. 특히나 신자유주의 시대로 불리기도 하는 세계화 시대에는 이익과 관련된 부분에 더욱더 빈틈없이 영악해졌습니다. 저는 교권이 실추되는 데 기여한 중요한 원인이 한 가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 : 궁금합니다. 어떤 원인인가요?
공 : 학생들 시선에 선생님은 좋은 직업 찾아서 양지에 찾아든 사람으로 비칠 뿐이기 때문입니다. 교직을 천직으로 간주하는 신성하고 거룩한 소명의식은 한참 후순위에 자리해 있고요.
전 : (조금은 퉁명스러운 어조로) 교사가 가난하게 살면 교권이 다시 바로 설 수가 있습니까?
공 : 저도 교사들의 직업적 안정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원칙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허나 일반 국민들은 현재의 대한민국 교사들이 너무나 과도한 신분보장과 지나치게 과다한 물질적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교사들만이 구조조정의 무풍지대에서 안주하고 있다고 여깁니다. 국민들은 다 찢어지게 가난한데, 선생님 혼자서 등 따시고 배부르면 어떤 학생이 스승을 존경할 수가 있겠습니까? 물론 과거와 같은 터무니없는 박봉을 받아도 탈이긴 하겠지만요.
전 : 저는 그렇다고 해서 교사들을 귀족이나 철밥통으로 도매금으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교사들의 임금 인상률은 일반 공무원의 임금 인상률과 오랫동안 연동돼왔습니다. 제가 예전에 교사들의 월급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조사해본 적이 있습니다. 초봉을 기준으로 산정해보니까 6급 공무원과 7급 공무원의 중간 정도에 해당했습니다. 원로께서는 교사들의 임금 수준이 어디쯤 위치해야 바람직하다고 판단하시나요?
공 : 교사들은 퇴직 후에 모든 국민들이 부러워할만한 수준의 두둑한 연금을 받지 않습니까?
전 : 교원들의 연금은 공무원 연금과 연계돼왔습니다.
공 : 국민들은 다름 아닌 공무원연금과 교사연금, 덧붙이자면 군인연금 때문에 몹시 분개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부부 교사의 경우에는 은퇴하면 한 가구에 매달 500만 씩이 연금 명목으로 지급된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교사연금의 주요한 재원은 국민들이 고생해서 납부한 피 같은 세금인데, 매달 연금액 500만 원이면 연금 로또 맞은 수준이거든요. 문제는 현재 정년퇴직했거나 은퇴가 예정된 교사들이 한두 명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최소한 수십만 명은 될 텐데, 그분들 모두에게 돌아가는 그날까지 다달이 몇 백만 원씩 손에 쥐어주면 나라가 온전히 성하겠습니까? 국민들 등골이 멀쩡히 버텨나가겠습니까?
전 : 연금 개혁에 대한 제 견해가 궁금하신가요?
공 : 예.
전 : 연금개혁 실현하면 좋지요. 저도 교사이기 이전에 한 명의 국민입니다.
공 : 선생님과는 다르게 나머지 대부분의 교사들은 연금 개혁에 결사적으로 반대합니다.
전 : 자신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결정에 저항하고 반발하는 건 만고불변의 인지상정 아닌가요? 남들이 자기 밥그릇 걷어차는 사태에는 그 누구라도 거세게 반대하기 마련입니다. 교사 집단만을 콕 집어서 손가락질할 일은 아닙니다.
4차 산업혁명은 일선 학교들에 큰 영향 없어
공 : 세상이 엄청난 속도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빛의 속도인 광속으로 세계가 변하고 있다고 설레발을 떨 지경입니다. 따라서 초등학교의 사례에 빗대자면 지금부터 20년 전에 배웠던 지식으로 앞으로 20년 후에 본격적 사회생활을 시작할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과연 합리적이고 보편타당할까요? 실질적으로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교양이나 태도보다는, 정보와 지식을 전달하는 데 좀 더 무게중심이 가 있잖아요.
전 : 제가 이론적으로는 방금 원로님이 지적한 내용에 담긴 의미가 뭔지를 알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진지하게 주목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학교가 첨단학문과 최신기술을 교육하는 장소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저는 원로님의 문제제기는 대학교 같은 고등교육기관을 조준해야 더 적실성을 확보할 수가 있다고 봅니다. 초등학교는 물론이고 중고등학교 과정에 예컨대 전자공학과가 개설된 경우는 대단히 희귀한 사례이니까요.
공 : 국공립학교 기준으로는 교수들이 더 힘이 센 건 진실입니다.
전 :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이 세상을 지배하고, 자율주행차와 빅 데이터의 경쟁력이 경제를 좌우한다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담대한 변화와 혁신이 분명 절실하게 필요하기는 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중등교육의 교과과정과 학습내용이 급진적으로 확 바뀌어야 하느냐와 관련해서는 솔직히 여전히 회의적입이다.
공 : 아주 기초적 항목의 가르침들을 취급하기 때문인가요?
전 : 그렇죠. 중등교육 과정에서는 국영수 교육이 주축을 형성하고 있는데, 국어와 영어와 수학 교육이 많이 바뀐다고 한들 얼마나 많이 바뀔까요? 국영수는 도구과목입니다. 도구과목은 교육 내용이 그다지 크게 변하지 않습니다.
공 : 세계화 시대라고 해서,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하여 가나다 순서마저 바뀌지는 않는다는 설명이네요.
전 : 실력이 지독히 부족한 교사라면 혹시 모를까, 초등교육과 중등교육에서는 대다수 선생님들이 웬만한 변화는 너끈히 감당하고 소화해낼 수가 있습니다.
공 : 선생님께서 너무 쉽게 정답을 실토하셨네요. (웃음) 교사들의 뿌리 깊은 기득권은 철폐되어야 한다고,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들은 기초적 지식과 원리를 가르치는 곳이기 때문에 4차 산업혁명의 직격탄을 피해갈 가능성이 크다고.
전 : 4차 산업혁명을 앞세워 교육의 변화를 다그치는 논리들이 아직까지는 허공에 붕 떠 있는 느낌입니다. 교사연금과 관련해서는 학교 바깥에 계신 분들의 고정관념과는 다르게 지속적 개혁이 꾸준히 실천에 옮겨져 왔습니다. 당장 저만 해도 퇴직한 다음에 한 달에 기백만 원에 달하는 풍부한 연금을 받지는 못하는 처지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연금체계는 상상 이상으로 복잡합니다. 더욱이 연금 문제에서도 교육을 둘러싸고 빚어지는 모순들과 유사한 형태의 자각당착이 수시로 생겨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저도 원로님께 질문 한번 드려볼게요. 공희준님께서는 국민연금 제도를 어떻게 손질하기를 희망하시나요?
공 : 저는 오병이어의 지혜를 추구합니다.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교사연금, 군인연금 전부를 비빔밥 만들 듯 모조리 뒤섞기를 바랍니다. 저는 연금과 연관해서는 철두철미한 통합파이자 견결한 단일화론자인 셈입니다.
전 : 즉시 합치기에는 너무나 막대한 적자액이 누적돼 있습니다. 더군다나 문제 해결의 근거로 작용할 기준도 새롭게 정립해나가야 합니다.
공 : 더 많이 받으려면 응당 더 많이 내야죠. 적게 내고 많이 받으려고 하면 그건 도덕적 해이조차 못 됩니다. 더도 덜도 아닌 그냥 도둑놈 심보에 불과합니다.
전 : 시중 여론은 적게 내고 많이 받기를 원합니다.
공 : 잘못된 민심이나 여론과는 정면으로 싸워야죠. 그래야 명실상부한 지도자입니다. 잘못된 민심과 여론에 주야장천으로 영합만 하면 그게 어떻게 지도자인가요. 무책임한 유명인일 따름이지. 위대한 지도자는 어리석고 이기적이며 변덕스러운 대중을 향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인물입니다. 제 오래된 소신입니다. (웃음)
전 : 국민연금 개편을 주장하는 인사들이 정작 국민들에게는 쓴소리를 못합니다. 학부모들의 단기적 여망에 부응하느라 개혁이 지지부진한 상태인 교육 분야와 판박이 양상입니다. 반드시 긴요한 쓴소리도 못하면서 어떻게 그 어려운 개혁을 이룩할 수 있습니까?
공 : 왜냐? 그때그때의 대세에 동참하지 않은 소신파들의 말로를 잘 알기 때문이겠죠. 당장 저의 말로를 보세요. (웃음)
전 :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면 기득권 세력의 논리와 입장에 동조한다는 비판을 자초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꼭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내년부터 다달이 250만 원을 받을 것을 기대하고서 퇴직을 신청한 사람에게 지급될 예정인 연금액을 갑자기 월 100만 원으로 깎을 수가 있나요?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요?
공 : 혁명적 전환이 아니면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혁명적 변혁을 지지하고 선호합니다. 미적지근하면 그게 무슨 개혁인가요? 화끈해야 개혁이지!
전 : 혁명적으로 바꾸자고 주창하는 분들에게 제가 늘 해온 당부와 주문이 있습니다. 해낸 다음에 저한테 연락주시라는 겁니다. 저한테 하라고 윽박지르지 말고요. 저는 혁명적 변환을 이뤄낸 정권을 타도하겠다고 일어서는 보수반동의 대열에만큼은 합류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그러니 혁명적 전환 제발 빨리 좀 해주세요.
공 : (머쓱한 말투로) 제가 아직 집권을 못해서….
전 : 저를 혁명적 전환에 반대하는 인간으로 곡해하지는 말아주세요. 그러한 전환을 해내면 저도 그분들의 성과와 업적을 흔쾌히 인정하겠습니다. 그렇지만 본인들도 못해내는 혁명적 변화를 저한테 자꾸만 채근하시면 안 되죠. 저는 혁명적 전환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기에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 변화를 꾀해나가자는 생각입니다. 현실을 단박에 뒤바꿀 급진적 변화를 한방에 이뤄낼 수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방해하지도, 만류하지도 않겠습니다만….
공 : 알겠습니다. 질문에 긴 시간 동안 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전 : 원로님께서도 오늘 고생하셨습니다. (끝)
덧붙이는 글
전대원 선생은 1970년에 태어났다. 성공회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현재는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일반사회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나의 권리를 말한다」, 「고등어 사전」, 「함께 사는 지구니까」, 「사회교과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