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종’은 학교생활기록부의 약자이다. 우리 세대에도 생활기록부는 존재했다. 그러나 생활기록부로 말미암아 상급학교로 진학하는 과정에서, 좀 더 엄밀히 표현하면 대학입시에서 이익 또는 불이익을 받은 경우와 경험은 거의 없었다. 우리 세대가 입시 제도마저 좌우하게 된 지금, 우리는 학교생활기록부가 학생들의 진로와 운명에 미치는 영향과 파장을 과연 제대로 인식하고 있을까? 전대원 선생의 주장을 경청하며 적절한 판단과 결론을 도출해보자.
입학사정관 전형은 될 성부른 나무 찾아내는 제도
공희준 (이하 공) : 이명박 정부에서 도입했으면 진즉에 적폐로 낙인찍혔을 텐데, 입학사정관 전형만은 용케도 살아남았네요. 역시나 입시에는 좌우와 진보의 구분이 없음을 뼛속깊이 실감합니다.
전대원 (이한 전) : 입학사정관제에 대해 사람들이 잘 알지를 못합니다. 제가 비유를 들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공희준 원로님은 큰 기업을 일구겠다는 꿈을 갖고 계시죠?
공 : 예. 저는 세계적인 미디어 플랫폼 재벌인 루퍼트 머독을 오래전부터 저의 경쟁상대로 간주해왔습니다.
전 : 세계적인 미디어 플랫폼 회사를 목표로 창업에 나섰다면 당연히 직원도 뽑아야 합니다. 어떤 기준으로 직원을 채용하시겠습니까?
공 : 명목상으로야 유능한 직원을 뽑겠다고 공표하겠지만 결국은 직원이야말로 최초의 영업 대상이기 때문에 실상은 구매력 있는 직원을 선발하겠죠.
전 : 구매력 있는 직원이라면 어떤 직원입니까?
공 : 집에 돈 많은 놈이요. (웃음)
전 : 집에 돈 많은 직원이 회사에 무슨 도움을 줄 수가 있나요?
공 : 일단은 직원한테도 우리 제품과 서비스를 팔아야만 하니까요. (웃음)
전 :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런 마인드로 사업해 성공할 수 있으시겠어요? 직원이 팔아주면 얼마나 팔아주겠어요? 이를테면 텔레비전 제조하는 회사면 TV 한 대 팔겠다고 직원한테 월급을 줍니까?
공 : 선생님 말씀 들어보니 자칫하다가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겠습니다. 역시나 재벌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는….
필자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이 대화를 통해 사람을 뽑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재확인했다. 나는 전대원 선생의 조언을 수납해 회사에 돈 많은 사람이 아닌 능력 있는 사람을 직원으로 우선적으로 채용하기로 결심했다. 물론 나는 아직 창업을 하지 않았으므로 이는 훗날의 고민거리이리라.
공 : 원칙적으로 제 말을 잘 듣는 직원을 뽑아야죠. 단, 한 가지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저의 이야기에 순응하되 만약 제가 어리석고 불합리한 결정을 내려면 단호하게 “No!”라고 말하면서 저를 과감하게 들이받을 수 있는 소신 있는 인재를 골라낼 심산입니다.
전 :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말 잘 듣는 소신파‘를 어떤 방법으로 선발할 작정이십니까?
공 : 우선은 필기든 실기든 시험을 치게 해야겠죠.
전 : 시험만으로 옥석을 가려낼 수 있겠습니까?
공 : 시험도 보고, 면접도 보고 볼 수 있는 건 신체의 은밀한 곳 빼고는 다 봐야죠.
전 : 이력서는 받으실 계획인가요?
공 : 이력서는 믿을 게 못 되니 본격적으로 일을 시켜봐야 알곡인지, 쭉정이인지 판별하는 게 가능합니다. 그러자면 인턴으로 근무하는 기간을 오래 잡아야겠죠.
전 : 당장 업무에 필요한 직원이면 외부에 있는 제3자의 의견이 요긴하지 않을까요?
공 : 즉시 업무에 투입하려면 다른 사람이나 기관으로부터 추천받는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신입으로 온 직원이 정확히 얼마 정도 깜냥이 되는지 알아낼 수 있는 방도가 달리는 없는 탓입니다.
전 : 대학교수의 입장이라면 신입생을 어떻게 모집하시겠습니까?
공 : 등록금 밀리지 않을 신입생을 뽑아야죠. (웃음) 그리고 나중에 자격증이라도 하나 취득해서 우리 대학의 위상과 취업률을 동시네 나란히 제고시켜줄 친구를 합격시키겠습니다.
전 : 그걸 모두 종합하면 어떤 인물인가요?
공 : 한마디로 똑똑한 학생입니다. 회사의 기준이 유능함이라면, 학교의 기준은 똑똑함이니까요.
전 : 평가자가 사회학과 교수라면 사회학을 성실히 전공할 학생을 뽑을 거라는 말씀이시네요. 한데 사회학을 잘 배우는 순서와 학력고사 또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석차가 반드시 일치하기만 할까요?
공 : 그거야 알 수 없죠. 제가 교육자가 아닌 까닭에 교육 문제는 저에게는 불가지의 영역에 속합니다. 다만, 제 개인적 경험을 일반화의 오류를 무릅쓰고 실례로 제시할 수는 있습니다. 제가 졸업한 고등학교에게는 제가 비교적 고마운 학생일 겁니다. 왜냐? 고입 연합고사 성적을 고려하면 저는 서울에 소재한 대학에 들어갈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학생이었기 때문입니다. 모교 입장에서는 기대하지도 않았을 제가 예상치 못하게 대학교 합격자수를 늘려주었습니다.
전 : 원로님 다닌 고등학교는 학생 잘 뽑은 셈입니다.
공 : 뺑뺑이 돌려서 입학한 고등학교인데 잘 뽑고, 못 뽑고 할 여지가 뭐가 있겠습니까? (웃음) 추첨으로 간 경우가 아니었으면 잘 뽑은 것일지도 모르겠지만요. 결과적으로는 들어올 때보다는 나갈 때가 해피했으니까요.
전 : 입학사정관 전형은 바로 원로님 같은 사람을 떡잎만 보고도 뽑고 싶어서 개발해낸 제도입니다. 만약 고등학교에서 입학사정관 전형을 실시한다고 가정하면 연합고사 성적만을 염두에 둘 때는 대학입시 결과가 신통치 않을 듯싶지만, 대화하는 모습을 살펴보고 행동거지를 관찰해보니까 이 친구가 될성부른 나무일 때에 해당 학생을 받아들이게끔 하는 제도가 입학사정관 전형입니다.
학교생활기록부 종합전형은 발전적 진화의 산물
전대원 선생의 비유를 듣자니 입학사정관 전형이 왠지 바람직한 입시제도로 느껴졌다. 허나 전대원 선생처럼 쉬운 비유를 들어가며 이 제도의 맹점을 맹공하는 인사가 나타난다면 나의 관점과 견해는 쉽사리 바뀔 개연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대한민국 국민 전부를 “네 말도 옳고, 듣고 보니 네 얘기도 옳다”는 황희 정승으로도 만들 수 있는 괴력의 소유자가 현대 한국의 대학입시이다.
전 : 제가 오래전에 어떤 신문 칼럼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제 뇌리에 뚜렷한 인상을 남긴 그 칼럼의 요지를 잠깐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느 한국 학생이 우리나라의 의대에 상응하는 미국의 메디컬 스쿨(Medical School)에 지원했다가 낙방했답니다. 그 학생의 성적은 도저히 불합격될 점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학교당국에 강력하게 항의를 했더니 어떤 대답이 돌아왔느냐? 한국에서 태평양을 건너 머나먼 미국까지 온 수험생이 여태껏 헌혈한 기록이 없었다고 합니다. 물론 학생이 헌혈이 가능한 건강 상태였음을 확인한 다음이었겠죠.
공 : 거창하게 표현하면 문제의 한국 학생에게 생명존중 사상이 결여돼 있다고 학교 측이 판단했네요?
전 : 소중한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가 헌혈 한번 해보지 않고 의대를 지망한 일이 학교당국으로서는 어이없게 여겨졌던 모양입니다. 그와 같은 일화를 전하면서 미국의 시험 시스템을 찬양하는 내용의 기사였던 것으로 저는 기억합니다. 입학사정관 전형은 성적과 적성이 따로국밥으로 노는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을 비판하는 여론에 힘입어 도입된 제도였습니다. 저 같은 일선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동을 떠서 실시한 제도가 아닙니다.
공 : 탱자가 회수를 건너면 귤이 되는 법입니다. 야구만 보아도 메이저리그에서 검증된 외국인 선수가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죽을 쑤다가 중간에 퇴출된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므로 미국식 입학사정관 전형도 한국에서는 거부반응을 유발했을 것 같은데요?
전 : 부작용이 물론 동반됐습니다.
공 : 어떤 유형의 부작용인가요?
전 : 스펙 대결이 펼쳐졌습니다.
공 : 스펙 대결이요? 좀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전 : 대학생들이 취업경쟁을 벌이느라 야기되는 스펙 쌓기 열풍이 고등학교 심급에까지 전이되는 사태가 빚어지고 말았습니다. 이건 저의 직접적인 경험담은 아니고, 주변으로부터 전해들은 사연입니다. 어떤 돈 많은 부모가 아이를 봉사활동에, 그것도 아프리카로의 해외 봉사활동에 보내서 남들은 범접하기 어려운 스펙을 쌓게 했다고 합니다.
공 : 사랑은 아무나 할 수 있어도, 해외봉사는 아무나 갈 수 없습니다. 항공권 가격만 해도 만만치 않습니다.
전 : 그렇죠. 돈이 있어야 해외봉사도 떠날 수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흐르니 학부모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여기에서 보이듯이 초기의 입학사정관 전형은 부잣집 아이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기 쉬운 제도였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바뀌었느냐? 아이들을 학교 내에서의 활동상황만 기준으로 채택해 평가하는 쪽으로 제도가 개편됐습니다.
공 : 기존과 비교해 기울어진 운동장이 약간은 평평해졌네요.
전 : 학교생활기록부 종합전형은 학내에서의 교육활동 중에 파악된 일들만 갖고서 학생을 평가하는 방향으로 입학사정관 전형이 손질돼 변화한 제도입니다. 학교 밖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평가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으로 진화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공 : 대학입시에서 칼자루를 쥐고 있는 갑이라고 할 교수들이 이 제도를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하는지 궁금합니다.
전 : 수능시험 점수는 조금 뒤떨어져도 의대 교수 입장에서는 의술을 훌륭하게 펼치는 실력 있는 의사로 성장할 것 같이 예상되는 수험생을, 법대 교수 입장에서는 인권의식이 투철한 존경받는 변호사로 크게 이름을 날릴 것처럼 기대되는 입시생을 대학당국이 신입생으로 자유롭게 뽑을 수 있는 선택지를 제공하는 게 다름 아닌 ‘학종’입니다. 이게 학종 전형의 대표적 장점입니다. 그렇다고 오해하시는 말아주세요. 저는 학교생활기록부 종합전형이 진선진미한 완전무결한 제도라고 요란하게 만천하에 공개적으로 홍보하고 다닌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학종 반대는 586들의 가족 이기주의의 발로
공 : 그럼에도 부모의 경제력과 정보력이 어느 지점에서인가 분명히 작동하는 탓에 학종에 대해 민심의 아우성이 들끓는 것 아닌가요? 대중이 바보도 아닌데.
전 : (답답하다든 투로) 정보력과 경제력이 당연히 작용하죠. 더욱이 경제력이 작용하지 않는 분야가 자본주의 체제를 받아들인 사회에서 한 군데라도 있나요?
공 : 평균적인 대한민국 국민들은 나머지 부문은 어떨지 몰라도 배움의 터전이자 교육의 전당인 학교에서만큼은 돈의 힘이 맥을 추지 못하기를 바랍니다.
전 : 그럴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저한테 빨리 알려주세요. 지체 없이 실천에 옮기도록 하겠습니다. 방법만 일러주시라니까요. (흥분을 가라앉히고선) 교사들은 부모의 경제력과 정보력이 학교 현장을 좌지우지 못하게끔 최선을 경주해 그것들의 입김과 영향력을 배제하고 있습니다. 원로님은 100퍼센트 배제하자는 생각이신가요?
공 : 저는 100프로가 아닌 120프로 배제하자는 주의입니다.
전 : (다시금 답답해하며) 그게 가능하냐고요? 저도 그 말씀에는 동의한다니까요! (다소 진정된 후에) 제가 한번 여쭤볼게요? 수능 한 가지만을 잣대로 채택하면 가난한 집 아이들이 부잣집 아이들 못잖게 이른바 명문대에 많이 갈 수가 있나요?
공 : 사람들이 학력고사 형태로의 회귀를 촉구하면서 함께 내거는 구호가 “사교육 전면 금지!”입니다.
전 : 사교육 전면 금지 정책은 저도 선호합니다. 문제는 말처럼 진짜로 금지시킬 수 있느냐는 거예요. 저 역시 일종의 공직자입니다. 가능한 한도 내에서 해법과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부심하고 노력합니다. 실현 불가능한 이상만 저에게 자꾸만 요구하시면 저로서는 내놓을 수 있는 답안이 없습니다. 원로께서 앞장서서 사교육을 전면적으로 금지시킨 연후에 저를 향해 “학종 철폐”와 “학력고사 부활”을 외치신다면 저도 그러한 외침에 기꺼이 동참할 용의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교육이 뻔히 두 눈 뜨고 곳곳에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저 같은 현직교사가 학력고사 부활을 부르짖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전대원 선생은 이 대목에서 열정과 냉소 사이를 바쁘게 오갔다. 최소한 내게는 그렇게 보였다. 당연히, 그의 냉소는 착잡하고 복잡다단한 교육 현실은 외면하면서 “저 놈을 매우 쳐라!”는 식의 화끈하고 유토피아적 개혁안만을 고장 난 독일제 확성기처럼 반복해 읊어대는 학교 바깥의 일반 사회를 겨냥한 지독한 냉소였다.
전 : 사교육을 금지하는 과제는 이미 불가능한 목표로 판명되었습니다. 사교육 금지법안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판결을 받은 사건이 이러한 현실을 실체적으로 웅변합니다. 이런 형편과 바탕 위에서 수능 점수만 갖고 입시를 치르면 가난한 집 아이들이 부잣집 애들을 무슨 수로 당해내겠습니까?
공 : 사교육이 창궐하는 현실에서는 노력과 머리로 돈과 정보를 제압해낼 재간이 없죠.
전 : 상위 10프로의 중추인 586 세대 문제로 다시 돌아가 보죠. 586들이 단지 돈 때문만으로 학종에 적대적일까요?
공 : 그 천하에 잘나신 분들이 돈 문제 아니면 학종을 공격할 이유가 또 있나요?
전 : 학종 전형을 폐지해야 자신들, 곧 자신들의 아이에게 유리하니까요. 586이 무슨 자선사업가들 모여 만든 단체인가요?
공 : 그 사람들이야 자기들 유리한 대로 살아온 인간들이죠. 제가 전경련과 현재의 전대협을 동급으로 치부하는 까닭입니다.
전 : 586들만 그런 게 아니라 이 세상 거의 모든 사람들은 자기에게 유리한 방식대로,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생존을 도모해나기 마련입니다. 그 영악한 586들이 다만 돈이 아까워서 자기 아들딸들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를 반대하겠습니까? 586들은 자기 아이들에게 유리한 입시 틀로 판단하고 계산하기 때문에 학력고사 시스템을 부활하라고 일제히 한목소리로 목청을 높이는 것입니다. (⑥편에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