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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원③ 죽을 둥 살 둥 공부해도 인서울 대학 들어가기 어렵다 현직 교사가 들려주는 일반인은 알지 못하는 진짜 학교 이야기, 세 번째 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2019-01-20 19:23:45
한국의 현대사는 붕괴의 연속이었다. 대표적으로 한강다리가 끊어지고, 백화점이 무너졌다. 성수대교가 붕괴하고, 삼풍백화점이 붕괴됐을 적에 많은 국민들이 커다란 충격을 받고서 정부에 근본적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게 나라냐?”는 외침의 원조였던 셈이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무너질 때는 미봉책 또는 대증요법일지언정 정부가 나서고 사회가 움직인 결과로 뭔가가 나오긴 나온다. 반면에 눈에 보이지 않는 비가시적 요소들이 무너졌을 경우에는 이것마저 없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들과 달리 소리 없이 서서히 무너져가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무너질 때는 영락없이 끓는 물속의 개구리 같은 반응을 보여 왔다. 문제 해결의 ‘골든 아워’를 끝내는 놓치고 말았다. 그렇게 무너져온 게 공교육 시스템이었다. 어쩌면 이미 회복 불능의 단계로 완전히 무너져 내렸을지도 모를 대한민국 공교육 현장의 적나라한 실상에 관한 전대원 선생의 생생한 육성 증언을 들어봤다. 전대원 선생 앞에서 필자는 무개념의 근본 없는 교알못(교육에 대하 알지 못하는 사람) 신세를 시종일관 좀처럼 벗어날 수가 없었다.

요즘 아이들, 옛날의 당신들과 다르지 않다


전대원 : (이하 전) 공희준 원로께서는 지금이 옛날과 비교해 학생들에 대한 처벌 수위가 낮아졌다고 생각하십니까?


전대원 선생과 나는 필자가 오래전에 정치웹진 서프라이즈의 초대 편집장 노릇을 할 당시부터 서로를 인지해온 관계이다. 그 무렵 내 별명이 ‘원로’였다. 여기에는 30대 중반의 나이에 일찌감치 원로의 반열에 올라선 ‘대한민국 최연소 원로’라는 거창한 의미가 담겨 있었다. 전대원 선생은 원로라는 호칭을 쓰며 나를 향한 친근감을 표시하면서도 그가 생각하는 상대방의 논리적 허점을 결코 허투루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가 대화 과정에서 나의 얘기를 반박하려고 구사한 기법은 전대원 선생이 학생들을 지도할 때 사용하는 방식으로 짐작되었다. 그러므로 필자는 내 스스로가 독자들 앞에서 적잖이 망신살이 뻗치는 사태를 무릅쓰고서 전대원 선생에게 논파당하는 모습을 생중계에 버금가게끔 인터뷰에 거의 그대로 옮겨 싣는 바이다.


전대원 선생이 팍스뉴스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한 전대원과 질문에 답하는 전대원이 다른 것처럼 사회가 알고 있는 학교와 교사들이 실제로 아이들을 가르키는 학교는 달랐다.

공희준 (이하 공) : 저는 잘못을 저지른 아이들이 요즘에는 합당한 제재를 받고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전 : 제대로 된 제재라는 개념이 조금은 막연한 게 그렇다고 아이들을 때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공 : 때리지 못하면 가둬놓기라고 하던가요. 요점은 애든, 어른이든 간에 자신이 남에게 고통을 가한 것만큼 자기 역시 고통을 당해야만 한다는 데 있습니다.


전 : 저도 범죄에 대한 법률적 처벌을 받지 않는 형사 미성년자의 연령을 현재의 만 14세에서 만 13세로 낮추자는 여론이 제기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지금 청소년들의 육체적․정신적 성장 정도가 빠르기 때문에 아마도 그러한 하향조정 요구가 나오는 듯합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예전과 견주어 더욱 흉포해졌다는 진단에는 저는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법이 약해졌다는 주장에도 동의하지는 못하겠습니다.


공 : 저는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전대원 선생님과 의견을 뚜렷이 달리합니다. 저는 잘못을 저지른 비행 청소년들이 지금은 인권이라는 구실에 숨어서 정당한 처벌을 요리조리 피해나가고 있다고 봅니다. 사실은 죄를 지은 비행 청소년들 자신이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 부모들이 남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제 자식만 편하면 된다는 믿음 아래 요리조리 아이들을 빠져나가게끔 이끄는 것이겠지만…. 저는 엄벌주의자입니다. 가난한 사람에 대해서는 온정주의자이지만요. 그러나 가난한 사람이나 돈 많은 사람이나 죄 지으면 다 차별 없이 평등하게 엄벌에 처해져야만 바람직합니다.


전 : 엄벌주의자 입장에서는 말씀하신 기조의 관점을 취할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저는 과거보다 법질서가 문란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버릇없는 아이들이 많아졌다고 개탄하신다면 그건 어쩌면 약간은 타당한 지적일 수도 있습니다. 솔직히, 선뜻 고개가 끄덕여지는 지적은 아니지만요.


공 : 저는 미국에도 버릇없는 아이들은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미국이 한국과의 차이가 있다면 버릇없이 구는 데 따라서 받는 제재가 확실하다는 점입니다


전 : 타인에게 심각한 신체적 위해를 가하는 아이들에게는 그에 합당한 처벌이 주어져야 한다는 데는 저도 크게 반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은 학교에서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사회가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공 : 제가 너무나 오래전에 학교를 다녔던 까닭에 요새 학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뉴스와 인터네 검색 정도를 통해 파악하는 상태입니다. 정말 아이들이 선생님이 칠판 앞에서 수업을 하고 있는 중임에도 불구하고 드러내놓고 잠을 자나요?


전 : 많이들 잡니다.


공 : 선생님들이 수업시간에 잠자는 이이들을 깨울 것 아닙니까? 옛날에는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묘사하는 광경처럼 수업 중에 잠자는 학생이 있으면 선생님이 비오는 날 먼지 나듯이 흠씬 두들겨 팼습니다.


전 : 지금은 당연히 그렇게 때릴 수가 없습니다.


공 : 그럼 계속 자도록 내버려둡니까?


전 : 깨울 때도 있고, 자게 내버려두는 경우도 있고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다릅니다. 자칫하다가는 잠자는 아이들을 깨우다가 수업시간 1시간이 헛되이 흘러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공 : 그런 애들까지 굳이 학교에 등교시킬 필요가 있을까요? 학교가 수면방도 아닌데.


전 : (조금은 어이없다는 듯이 잠시 웃은 후에) 공희준님께서는 자기 아이가 학교에 가서 내내 잠만 잔다면 단호하게 자퇴를 시키시겠습니까?


공 : 그런 경우에는 마땅히 갈 곳이 없으니까 학교에 보내는 것이겠죠. 저는 달리 갈만한 데가 있다면 당장에 공납금 끊습니다.


전 : 다른 학부모님들 입장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아이에게 그래도 고등학교 졸업장은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공 : 제가 그런 측면에서는 굉장히 급진적이고 파격적인데, 저는 학교졸업장 따위는 필요 없다고 확신합니다.


전 : 제가 원로님과 오늘 대화를 나누다가 절감한 부분이 있습니다. 공 원로께서 어떤 문제에서는 개인의 견해를 밝히고, 어떤 문제에서는 사회의 일반적 의견을 소개합니다. 지금 그 두 가지가 혼재돼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지점에서는 일관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죽을 둥 살 둥 공부해도 인서울 못하는 세상


인터넷 공간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이른바 대학서열 그림표. 기성세대보다는 젊은 청년세대와 어린 중고생들이 이와 같은 서열화되고 계급화된 고등교육 시스템에 더욱더 자발적으로 순응한다는 사실이 한국사회의 미래를 암울하게 채색하고 있다. 

전대원 선생은 공교육의 역할은 공부에 더해 보살핌에 있다고 확신하는 기색이었다. 학교는 아이들이 가장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이라고 그는 믿는 표정이었다.


전 : 학교에 잠자러 오는 학생들을 과연 학교에 계속 남아 있게 해야만 하느냐는 것은 정답이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게다가 실제로 그렇게 자퇴한 애들도 있기는 합니다. 다만, 대한민국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설령 자기 아이가 학교에 가서 잠만 자는 한이 있더라도, 아이가 고등학교까지는 무사히 다니기를 기원합니다. 그러니 “너는 매일 잠만 자니까 학교 나오지 마라”라고 단칼에 정리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공 : 저는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기에 앞서 훈련하는 데라고 생각합니다.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공간에 갇혀 있는 훈련이 되어 있어야만 사회에 나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 형태의 노동은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공간에서 이뤄집니다. 자유로운 직업인으로 여겨지는 예술가들도 대개는 작업실에서 일하지, 노상에서 일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속박당하고 제한당하는 훈련을 쌓지 않으면 나중에 굶어죽기 딱 좋습니다.


전 : 저는 공희준 원로를 굉장히 좌파적 성향의 소유자로 알아왔는데, 이럴 때는 몹시 우파적 시각을 보여주시네요. 왜냐면 어떤 분들은 학생들을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공간에 머물게 하는 것을 생체권력의 과도한 남용으로 비판하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은 교사들이 이 생체권력을 교육 현장에서 폭력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며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왔습니다.


공 : 제가 기존의 교육 체계와 관련해 진짜 엄청 잔인한 짓거리로 지목하는 제도화된 관행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단지 태어난 해의 연도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장시간 같은 공간에 같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사회에 나와서 관찰해보니까 동갑내기들과 협력할 일도, 경쟁할 일도 실제로는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나와 제일 상관없는 인간들이 나와 동갑내기들입니다. 정작 내가 싸우든 힘을 합치든 실제로 관계를 맺으매 살아가는 대상은 나이 많은 선배들 아니면, 저보다 어린 후배들입니다. 그럼에도 단지 출생연도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나중에 볼 일도 없는 놈들과 몇 년을 함께 부대껴야 한다니, 이것처럼 부당하고 불합리한 체계와 방식이 또 어디 있습니까? 학교 나온 후로는 경조사 빼놓으면 다시는 만날 일이 좀체 없는 인간들이 대다수인데….


전 : 공교육은 개인교육이 아닙니다. 공교육은 대중교육의 형태로 탄생하고 발전해왔습니다. 사람은 보통 나이대별로 성장단계를 밟아나가기 마련이므로 집단적으로 이뤄지는 대중교육인 공교육이 그에 맞춰 연령별로 학생들을 구분해온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도 변수는 개입합니다. 따라서 우수한 아이들은 수월성 있게 조기교육으로 갈 수 있고, 발달속도가 약간 늦어지는 아이들은 학교에 들어오는 입학 시점을 조금 뒤로 미룰 수 있습니다.


공 : 부모들은 속도전을 바라더라고요.


전 : 부모님들은 교육이 빨리 이뤄지는 걸 좋아합니다. 반면에, 아이의 학습 진도가 1년이라도 지체되면 큰일 날 것처럼 걱정합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과거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아이가 학교에 조금 늦게 입학하는 것을 종전처럼은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공 : 공교육 현장이 붕괴된 현상을 당사자인 선생님들께서는 어떻게 받아들이시는지요? 안타깝고 답답할 테지만, 교사 개인 차원에서 특별히 손 쓸 수 있는 방도는 현실적으로 없을 것 같아서요.


전 : 예전이면 어떻게 대처했겠습니까?


공 : 애들을 막 두들겨 팼겠죠.


전 : 아이들은 눈뜨고 수업을 듣는 척만 했고요. 저는 요즘 애들만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다고 딱히 단정하지는 못하겠습니다. 


공 : 실은 옛날에도 집중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들 생각은 다른 데 가 있었으니까요.


전 : 개인적 질문을 해서 죄송합니다만 원로께서는 소위 일류대를 나오셨는지요.


공 : 저는 공부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서울에만 있지, 이른바 주요 대학이라고는 하지 않은 대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전 : 그럼 상위 10프로입니다.


공 : 그런가요? 그냥 서울에만 있을 뿐인데?


전 : 서울 안에 소재한, 사람들이 그저 그렇다고 하는 대학교에 진학하려면 지금은 상위 몇 프로 안에 들어가야만 할까요?


공 : 저는 내신 10등급 기준으로 턱걸이로 5등급이었습니다.


전 : 당시는 내신이 대학입시의 성패를 결정하는 시대는 아니었습니다. 학교생활기록부 종합전형(약칭 학종)이 문제가 되는 건 JTBC 드라마「스카이 캐슬」이 그려내듯이 내신 1등급 차이가 입시에서의 당락을 좌지우지하는 이유에서입니다.


공 : 지금이야 서울에 있는 대학 즉 인서울 대학에 들어가기가 어렵지만, 저희 세대에는 대충 공부하고도 인서울 입성에 성공한 입시생들이 허다했던 걸로 기억납니다. 물론, 최상위권 대학들을 목표로 삼았다면 불가능했겠지만 말입니다.


전 :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의 차이를 이야기해야만 하겠습니다. 재력의 기준이 아니라 지력의 기준으로 상위 10프로의 범위를 한번 설정해보자고요. 그러면 원로님도 상위 10프로 안에 포함됩니다.


공 : 저는 머리가 나쁘면 나빴지, 좋은 사람은 아닙니다.


전 : 그렇게 얘기하시면 안 됩니다. 그 말씀이 뭐와 똑같으냐면 현직 교사인 데다 아내도 직장을 나가는 제가 집이 가난하다고 하소연하는 것과 매한가지입니다. 제가 정말 그렇게 푸념한다면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공 : 겉으로야 이해하는 척해도 속에서는 육두문자 터져 나왔겠죠.


전 : 교정이 서울에 자리한 대학을 가려면 전체 수험생들 가운데 상위 10퍼센트 안에 들어가야만 합니다. 상위 10프로 안에 들어간 사람이 “나는 머리 나빠”라고 자조한다면 제가 더 이상 무슨 대꾸를 할 수가 있겠습니까?


공 : 제가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하면 그건 순전히 뻥이겠고, 허심탄회하게 이실직고하자면 죽을 둥 살 둥 하면서까지 공부하지는 않았습니다. 졸린 눈 비비며 억지로 공부한 기억은 없거든요. 졸리면 자야지. 사람이 잠을 자지 않으면 뇌가 썩으니까. (웃음)


전 : (갑자기 크게 언성을 높이며) 죽을 둥 살 둥 공부해도 인서울을 못하는 애들이 지금 천지사방에 널려 있습니다! 그걸 왜 모르십니까? (④편에서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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