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이제는 후보 지위마저 위태로워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을 맞이했다. 대통령 선거 승리는커녕 국민의힘 공식 대선후보 지위를 온전히 유지하는 일조차 섣불리 장담하기 어려울 지경의 심각한 위기이다.
지금부터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윤석열 후보는 과장 약간 보태면 선거운동 일절 하지 않고 집에서 조용히 잠만 자고 있어도 대통령 당선은 무난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워낙 죽을 쑤고 있는 덕분이었다.
이재명 후보는 성남 대장동 게이트의 ‘그분’으로 유력하게 지목되었다. 강경 친문세력의 이재명 비토 분위기는 가라앉을 줄 몰랐다. 심지어 이재명이 부인 김혜경 여사를 부부 싸움 과정에서 폭행했다는 출처 불명의 괴소문마저 온라인공간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가히 사면초가의 총체적 난국이었다.
외부 여건 또한 이재명에게 매우 좋지 않게 작용했다. 문재인 정권의 오락가락하는 코로나 방역 정책은 인민대중의 신뢰와 지지를 잃은 지 오래였고, 부동산 폭등에 더하여 생활물가까지 걷잡을 수 없이 치솟는 양상이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은 물론이고 미국의 바이든 정권까지 한국 정부의 종전선언 제의에 시큰둥한 반응이었고, 게다가 현 집권세력의 주축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기득권 586 세대 정치인들의 위선적인 내로남불 행각과 천박한 막말 행진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선거는 구도 싸움이다.” 내로라하는 정치 전문가들과 이름난 선거 컨설턴트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는 현대 대의민주주의 정치의 철칙이자 불문율이다. 이재명 입장에서는 천시와 지리, 즉 구도가 자기편이 아님을 인정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불리한 구도를 이겨내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불리한 구도를 유리한 구도로 전환시키는 방법이다. 두 번째는, 불리한 구도에 카멜레온처럼 신속하게 변신해 자연스럽게 올라타는 방법이다. 전자가 물길을 거슬러 헤엄치는 행위라면, 후자는 물길을 따라서 흘러내려가는 행동이다.
이재명은 특유의 놀라운 적응력과 동물적 생존본능을 발휘해 후자의 방도를 택했고, 그는 평소의 불손하고 오만방자한 권위주의적 자세를 버리고서 유권자들 앞에 돌연 납작 엎드리는 태도를 취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필사적이고 전광석화 같은 변화였다.
나는 갑자기 양처럼 순해진 이재명의 태도가 전적으로 쇼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내심과는 거리가 먼 행태이다. 허나 이는 필자처럼 정치평론으로 푼돈이나마 벌어오고 있는 특이한 계층의 인간들만이 내린 해석일 뿐, 대부분의 일반 국민들은 이재명의 속내와 본심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겨를이 없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이재명이 국민에게 외견상 고개를 숙였다는 사실 그 자체뿐이다.
“태도가 구도를 이긴다.” 종반전을 향해 치닫고 있는 대한민국 제20대 대선국면을 중간결산할 때 도출 가능한 한국정치의 새로운 대전제이자 한동안 위력을 발휘할 뉴노멀(New Normal)이다. 만약 현재의 판세가 투표일 당일까지 그대로 이어진다면 “태도가 구도를 이긴다”는 필자의 명제는 이번 대선을 총화하는 역사적 교훈으로 자리매김할 게 명약관화하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의 이판사판의 심정으로 절박해진 이재명은 태도로 구도를 이기는 데 나름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그 반대편에는 시종일관 느긋하고 여유로운 태도를 한가하게 고집하다가 구도를 통째로 망쳐버린 윤석열이 당연히 존재한다.
유권자들은 이슈보다는 이슈에 대응하는 자세를 더욱 중시하기 마련이다. 박성민 민컨설팅 대표와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가 기회가 있을 때마가 강조해온 내용이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한다는 건 정치인들이 이 간단한 수칙을 실천에 옮기는 일에 여태껏 실패해왔음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윤석열의 배우자 스펙 부풀리기나 잦은 말실수는 이재명의 대장동 비리 연루 의혹과 형수를 겨냥해 내뱉은 험악한 욕설에 견주면 실상 아무것도 아니다. 그 아무것도 아닌 일을 아무것으로 키운 데에는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이 철저히 장악한 KBS, MBC, YTN, TBS 등의 어용 국영방송사들의 활약과 권력의 충견 노릇에 여전히 여념이 없는 네이버와 다음카카오의 역할이 지대했음을 필자는 굳이 부인하지 않으련다.
그렇지만 적대적 언론 환경은 야당 후보들에게는 일종의 천형이고 숙명이었다. 더욱이 이재명을 정조준해 퍼부어진 다종다양한 보수 성향 유튜브 채널들의 공세와 젊은 남성 누리꾼 위주의 커뮤니티 웹사이들의 화력도 만만치 않았다. 관건은 쟁점과 현안에 대응하는 윤석열과 이재명의 태도 차이에 있었던 셈이다.
윤석열의 3대 자충수
문제에 임하는 태도에서 윤석열로부터는 세 가지 치명적 단점이 노출됐다. 첫째로 늘 한발 늦었다. 둘째로 항상 미온적이었다. 셋째로 언제나 문제의 원인을 자신이 아닌 남들에게서 찾고 있다는 부정적 인상을 국민들에게 꾸준히 심어주었다.
윤석열 부인 김건희 여사의 대국민 사과는 골든타임을 놓친 시점에야 성사됐다. 전두환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에 대한 사과는 이른바 개사과 소동에서 그 마지못함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압권은 당대표 이준석과의 갈등이었다. 윤석열은 이준석에 대한 원망과 불만을 직간접적으로 표출했을 따름이지, 당대표와 대선후보 간의 껄끄러운 불화 관계를 파국의 단계로 몰아간 권성동 사무총장과 장제원 의원 부류의 윤핵관으로 불리는 인사들에게는 그 어떠한 공개적 질책이나 책임추궁도 하지 않았다.
앞으로 이재명에게 엄청난 돌발악재가 터져서 태도로써는 도저히 만회할 수 없는 구도상의 급변사태가 일어날 수는 있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윤석열의 근본적인 태도상의 각성과 혁신 없이는 선거구도가 야당에게 아무리 유리하게 전개되어도 이는 조선왕조 말기 시대에 한반도에 부존된 지하자원들과 같은 무용지물에 지나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산과 들에 철과 석탄이 풍부히 매장되지 않았던 탓에 조선이 산업혁명을 이루지 못한 건 아니었다.
실제로 정권을 잡기 전에는 누가 더 유능한 인물인지 유권자들로서는 정확히 판단할 마땅한 준거와 척도가 없다. 그러므로 인민들은 후보자가 그간 보여준 태도를 종합적으로 참작해 투표장에서 누구를 찍을지를 결심하고 선택한다. 윤석열과 그의 측근 및 참모들은 구도만 철석같이 믿었더랬다. 반면, 후보가 유권자를 대하고 이슈를 다루는 태도에 관해서는 철두철미 무지하고 무신경했다. 그 무겁고 처절한 후과를 당사자인 윤석열과 그의 대선캠프는 과연 효과적이고 성공적으로 수습ㆍ극복할 수 있을까?
필자가 글을 쓰기 시작할 즈음 윤핵관 집단의 핵심으로 손꼽히는 정진석 의원과는 사돈지간인 박덕흠 의원이 이준석 대표 체제가 흔들리는 틈을 타서 얼렁뚱땅 국민의힘에 복당했다는 씁쓸하고 불쾌한 뉴스가 전해졌다.
박덕흠은 국회 상임위원회에서의 지위를 악용해 관공서에서 발주하는 관급공사들을 싹쓸이했다는 지탄을 받고서 탈당했던 인물이다. 지려야 질 수 없는 절대적으로 유리한 선거구도를 기적적으로 말아먹은 윤석열과 윤핵관들의 나태하고 독선적 태도는 필자의 예감에 별다른 개선이 되지 않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