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와중에 정부에서는 건설경기 진작에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다. 선거를 앞둔 집권세력이 인민들 혈세로 아무 데나 길 내고 마구잡이로 다리 놓는 사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관건은 문재인 정부의 수뇌부에는 야당 정치인이나 시민단체 활동가이던 시절, 대규모 토건사업의 부당성과 망국적 부동산투기의 폐해를 앞장서서 비판한 인물들이 즐비하다는 점에 있다. 오죽하면 “내가 하면 착한 SOC고, 남이 하면 나쁜 SOC냐?”라며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의 또 다른 내로남불을 질타하는 목소리마저 일각에서 일어나고 있겠는가?
빈재익 「동아시아 신경제 이니셔티브」 연구이사는 새롭게 등장한 문재인 정부에 상당한 기대감을 걸었던 인물이다. 문재인 정부가 강력한 부동산 개혁 드라이브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기대감은 실망 반, 환멸 반의 감정으로 바뀐 것으로 짐작된다.
진보 성향의 개혁적 경제학자인 빈재익 이사로부터 문재인 정부가 차츰차츰 변심해간 이유와 함께 불가역적이고 근본적인 부동산 개혁을 이룰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들어보았다. 인터뷰는 2019년 10월 28일 월요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자리한 한 커피 전문점에서 진행되었다. 사진 촬영은 김한주 사진전문 기자가 맡아주었다.
공희준 : 문재인 정부가 ‘생활형 간접자본(SOC)’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겠다면서 사실상의 건설경기 활성화에 나섰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야당 후보 시절은 물론이고 정권 출범 초기에는 부동산 투기꾼들과 토건자본의 배만 불려주는 일이라며 건설산업 전반에 부정적 인식을 보였습니다. 강남아파트 재개발 억제 시책과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 도입은 이러한 사고의 일환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생활형 SOC 확충으로 포장된 대대적인 건설경기 부양조치는 문재인 정부의 주택정책과 건설정책의 근본적 방향 전환을 예고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사님께서는 정부의 이러한 노선변경이 우리나라의 국가경제에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하고 계십니까? 그리고 서민층을 중심으로 한 국민들의 주거복지도 증진하면서 땅값도 안정시킬 수 있는 효과적 방안으로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부동산은 빈부격차 확대의 주범
빈재익 : 생활형 SOC도 본질적으로 SOC이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사회간접자본(Social Overhead Capital) 확충을 통해 경기를 활성화시키겠다는 발상은 문재인 정부의 기존 입장에서 분명 크게 후퇴한 자세입니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종전에 가졌던 부동산 개혁 의지가 뚜렷이 퇴색했음을 의미합니다. 경기가 하강국면에 접어들어 성장률이 낮아지자 건설경기를 자극하는 방식은 과거의 보수 정부들이 이미 채택했던 정책 기조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문재인 정부가 기득권 질서와의 타협적 노선으로 돌아섰다고 판단하는 이유입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저는 문재인 정부의 건설경기 부양 정책이 현재의 집권세력이 최근 공공연하게 걷기 시작한 기성 질서와의 타협 행보의 연장선상에 위치해 있다고 봅니다.
부동산 시장은 우리나라에서 빈부격차를 확대시키는 핵심적 요인으로 작용해왔습니다. 저의 이와 같은 문제의식은 출범 초기의 문재인 정부 역시 확실하게 공유한 인식이었습니다. 빈부격차의 확대는 한국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심각하게 위협해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할 무렵에는 지금 정부 사람들도 이런 견해에 깊이 공감했었습니다.
현재 우리 경제의 거의 모든 부문이 불황 국면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오직 부동산 시장만이 과열된 형편입니다. 이렇게 부조리한 상황에서 어느 누가 어렵게 자금을 조달해 회사를 창업하고, 공장을 돌리며, 직원들을 고용하겠습니까? 부동산이 아니면 돈을 벌 수 없는 구조에서요!
부동산 시장만 호황인, 부동산으로만 돈을 버는, 부동산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확대재생산하는 구조와 상황을 원천적으로 바꾸고 개선하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그 어떠한 경제 문제도 풀어낼 수 없습니다. 그 어떠한 사회적 현안들도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부동산 시장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구조적인 사회경제적 모순들의 근원이자 결절점입니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는 그러한 냉엄한 현실을 외면한 채 사회간접자본 확충을 구실로 건설경기의 인위적 부양에 착수했습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자산 소유의 불평등을 타파하는 데 도움이 되는 관련 세제의 개혁과 같은 근본적 개혁조치들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 와중에서의 SOC 투자 확대는 사회적 갈등을 격화시킬 뿐입니다. 경제적인 빈부의 차이를 더 벌려놓을 따름입니다. 제가 문재인판 토건주의를 찬성하려야 도저히 찬성할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케인스가 한국의 부동산 시장을 봤다면
그렇다면 부동산 시장의 문제와 모순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거시경제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존 메이너드 케인스(영국의 경제학자, 1883~1946)의 이론과 학설의 영향을 깊이 받은 케인시안(케인스주의자)의 한 명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잠깐 케인스의 기본적 입장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경제대공황이 전 세계를 강타했을 당시 피구(Arthur Cecil Pigou, 1877~1959)를 비롯한 대다수 주류 경제학자들은 임금이 탄력적이지 못한 탓으로 노동시장이 자체적인 조절 능력을 상실한 까닭에 실업이 만연했다고 주장하면서, 노동조합에게 대규모 실업 사태의 책임을 돌렸습니다. 주류 경제학계는 실업자들이 넘쳐남에도 불구하고 임금이 내려가지 않는 건 노동조합이 임금 하락을 가로막기 때문이라고 강변했습니다.
케인스의 진단은 주류 경제학자들의 분석과는 아주 판이했습니다. 케인스는 대규모 실업이 발생했다면 단지 노동시장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소비재 시장과 생산재 시장 같은 다른 주요한 시장들의 동향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케인스는 ‘유효 수요’의 부족이 실업을 낳는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꿰뚫어보았기 때문입니다.
케인스의 대표적 업적들 가운데 하나는 시장과 시장 사이에 상호 연관성(Inter-Dependence)이 존재한다는 점을 규명한 데 있습니다. 그는 시장들 사이의 상호 연관성에 입각해 거시경제의 문제를 풀려고 시도했습니다.
만약 케인스가 지금까지도 생존해서 우리나라의 부동산 시장의 추이를 관찰하고 있다면 어떤 결론과 해법을 내놓았을까요? 저는 케인스가 김현미 현 국토교통부 장관을 위시한 문재인 정부의 고위 경제 관료들의 시선이 부동산 시장에만 고착된 부분에 단호히 문제를 제기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당장 금융 부문을 보겠습니다. 당국에서는 부동산 담보대출을 규제하는 중입니다. 재건축을 억제하는 한편으로, 분양가 상한제를 곧 실시할 예정입니다. 물론, 이런 정책들이 효과가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 필요한 정책들이기도 하거니와, 더욱이 다른 나라들에서 이미 시행하는 대책들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제까지의 정책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보다 적극적인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번의 정부 개입은 시장들 간의 상호연관성을 고려하는 개입이어야만 합니다. 왜냐면 부동산 문제의 최종적 해결책은 부동산 시장이 아닌 금융 시장에 있기 때문입니다.
금융시장에 대한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
어째서 금융시장에 대한 적극적 개입만이 부동산 시장의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느냐? 우리는 2008년에 미국에서 촉발된 다음 전 세계적 층위로 퍼져나간 글로벌 금융위기의 사례와 교훈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부동산 시장의 과열이 빚어낸 참사였습니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경기가 폭락한 피해를 누가 가장 많이 직접적으로 봤습니까? 일자리를 잃고 실업자로 내몰린 노동자들이 최대 희생자였습니다. 반대로, 위기의 주범이라고 비판받아야 마땅할 유수의 금융기관들은 위기를 일으킨 책임을 제대로 지지 않았습디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저금리 기조가 장기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결과 주택시장을 필두로 한 부동산 시장은 금융위기 직전의 상태와 비슷한 상황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가 초래한 구조조정으로 말미암아 정리해고를 당한 노동자들은 저금리의 혜택에서도, 양적 완화의 이익으로부터도 여전히 배제돼왔습니다.
저금리와 양적 완화에 기초한 화폐정책은 전 세계적 추세로 자리를 잡아왔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화폐제도와 금융체제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져야만 할 시점입니다. 이건 비단 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폴 크루그먼 등의 유명 경제학자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밝혀온 의견입니다.
화폐와 금융의 사회적 책임성에 관한 진지한 논의는 우리나라에서도 절실하게 요구되는 일입니다. (잠시 말을 멈췄다가)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을 제일 효과적으로 안정시킬 수 있는 방안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 현재 우리나라 경제상황은 대출금리를 인상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를 못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금리 인상을 대신할 다른 수단을 모색해야만 합니다. 저는 기존의 강남 3구인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에 강동구를 추가한 강남 4구에 속하거나, 혹은 이를테면 특정한 시기에 걸쳐 부동산 담보대출을 3회 이상 받았거나, 또는 일정 채수 이상의 집을 소유한 다주택 보유자일 경우에는 거시감독 비용을 분담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나라 거시경제의 불안 요소를 제공해온 가계대출에 대해 제가 방금 말씀드린 범주에 해당하는 계층의 사람들이 분담금을 납부하는 형식으로 책임을 지게 만들자는 뜻입니다. (②편에서 계속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