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의 쓸쓸한 퇴장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음경반전지음」은 진중권이 야설 작가로 전업할지도 모른다는 억측과 풍문을 글의 실제 내용과 상관없이 불러일으킬 정도로 누리꾼들 사회에서는 충격적 사건이었다. 진중권으로서는 딴지일보의 경영난으로 인해 어려움에 빠진 김어준 총수를 도우려고 체면이고, 염치고 전부 때려치우고서 과감하게 팬티 바람으로 나선 격이었다.
한 발만 더 나갔다면 자칫 외설 시비에마저 휩쓸릴 수 있었을 진중권의 ‘X 까는 소리’ 칼럼은 어느 순간 딴지일보에서 조용히 자취를 감췄다. 필자는 진중권 전 교수에게 왜 연재를 중단했는지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허나 타인의 흑역사를 꼬치꼬치 들춰내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 일은 별로 떳떳하지도, 당당하지도 못한 짓이라고 여기는 까닭에 공개적 질문을 자제하고 있다. 나는 만약 진중권과 단둘이 얼굴을 마주할 기회가 생긴다면 음경반전지음이 돌연 힘없이 고개를 숙인 이유를 주변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게끔 소곤소곤 귀엣말로 반드시 탐문해볼 작정이다.
진중권까지 출동해도 회생에 실패한 딴지일보였다. 김어준은 부지런히 사방팔방 급전을 구하러 다녔지만 성과는 별로 없는 모양이었다. 단적으로, 2002년 당시 금액으로 한 달 60만 원인 내 인건비가 통장에 입금될 기미가 도저히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약속된 소정의 원고료를 지급해주지 않는다고 하릴없이 빈둥거리며 손가락만 빨고 있는 건 왠지 구질구질한 느낌이 들어 내가 딴지일보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뭔지를 이리저리 궁리했다. 우선은 원래 계획대로 시사 칼럼을 쓰기로 작정했다.
김어준 총수는 현재는 친문세력의 실질적 맹주이자 친노진영의 사실상의 수장으로 오연하게 군림하고 있다. 2002년의 김어준의 정치적 스탠스(Stance) 즉 좌표는 오늘날과는 천양지차였다. 그는 당연히 반(反) 한나라당 성향이었다. 김어준은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견해를 공ㆍ사석을 불문하고 적극적이면서도 노골적으로 피력해온 터였다.
그런데 새천년민주당의 공식 대선주자인 노무현 후보와 노무현의 대체재로 강력하게 부상하는 중이던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 사이에서 김어준 총수의 입장은 굉장히 어정쩡해 보였다.
김어준의 노선은 무원칙한 승리보다는 원칙 있는 패배가 낫다며 노무현 이외의 선택지는 없다는 소신을 제16대 대통령 선거 투표일 당일까지도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시종일관 견지하고 있던 필자의 태도와는 상당히 결을 달리하고 있었다. 굳이 면밀하게 분류한다면 김어준의 지향점은 노무현으로 지느니 정몽준으로 이기는 게 바람직하다는 발언을 공공연히 일삼고 있던 김민석 전 의원이나 김민석의 친형인 김민웅 목사의 주장에 훨씬 더 근접하였다. 김민웅과 김민석 형제의 목소리는 나중에 저 악명 높은 후단협, 곧 후보단일화협의회의 전략적 목표 및 행동기조와 기본적으로 궤를 같이하게 된다.
김어준, 정몽준에 꽂히다
동일한 수준과 분량의 글도 글쓴이가 온라인 공간에 게재하면 인터넷 정치건달로 괄시당한다. 종이매체에 올리면 번듯한 지식인으로 대접받는다. 그러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나름 글깨나 쓴다는 네티즌들은 거의 예외 없이 기성 출판사와 접촉해 책을 출간한다. 딴지일보에서 활동할 무렵의 필자는 아직 단 한 권의 책도 내지 못한 진선진미한 순수 인터넷 정치건달이었다.
그럼에도 필자는 다른 인터넷 정치건달들과는 확연히 차별화되는 특장점을 한 가지 쟁여두고 있었다. 코스닥 시장 상장이 예정된 유망한 벤처기업에서 정상적 직장인으로서 생활해봤다는 것이었다. 그 덕분에 사장님의 기쁨이 뭔지를 아는 몸이 되어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대부분의 인터넷 정치건달들은 여의도의 정치기획사를 제외한 평범한 일반 기업체에서 근무해본 경험이 전무하다시피 하다.
딴지일보는 정직원만 30명에 달하는 회사였다. 직원 숫자가 서른 명이면 절대 작은 규모의 기업이 아니다. 한데 직원들의 주력이 인터넷 정치건달 출신이었고, 따라서 딴지일보에 들어오기 전에 통상적인 사회생활을 체험하지 못했다. 대다수 임직원들은 김어준 총수를 어엿한 직장 상사가 아닌 만만한 동료 논객쯤으로 인식하는 풍토와 분위기였다.
과거의 딴지일보를 풍미한 민주주의적 기업문화의 8할은 김어준 총수에 대한 임직원들의 수평적 동지애, 한마디로 ‘야자타임 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이후의 김어준 총수가 부하 직원들의 이견과 반대를 철저히 금압하면서, “까라면 까고, 기라면 기는” 유형의 비굴하고 순종적인 고분고분한 아랫사람을 선호하는 지독한 권위주의적 기업인으로 변모한 근본적 원인은 그가 창사 초기의 딴지일보에서 받았던 어설프고 혼란스러운 직장민주주의의 참교육이 남긴 부정적 후유증에 있다.
나는 김어준 총수를 동료 논객이 아니라 항시 심기를 살펴야만 마땅할 기업주로 간주했다. 그러므로 내가 쓰고 싶은 글이 아닌 김어준이 읽고픈 글을 딴지일보 기사로 작성하기로 결심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고 김어준은 딴지일보 사무실에서는 로물루스이자 카이사르였고, 네로이자 시오노 나나미였다. 김어준이 보기에 나머지 구성원들은 죄다 언제라도 그를 배신할 가능성이 농후한 브루투스였을 뿐이다.
김어준은 정몽준의 대권 도전을 은근히 바랐다. 차마 자기 입으로 직접 말은 못해도 김어준 총수가 노풍이 잦아들며 이회창 대세론이 다시금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기존 대선구도에 정몽준이 제3후보로 출마해 지각변동을 일으켜주기를 원한다는 건 딴지일보 안에서는 비밀 아닌 비밀이었다. 김어준은 정몽준을 향해 대놓고 추파를 던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정몽준 쪽으로 서서히, 동시에 확실히 눈길을 돌리고 있었다. (⑮회에서 계속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