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화②, “노동 사건의 승패는 프레임 짜기에서 갈린다”
다른 분야는 AI를 활용한 타협과 조정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노동 사건은 예외입니다. 노동 사건은 사용자와 근로자 간에 다툼이 발생한 상황을 가리킵니다. 만약에 근로자가 사용자를 고발하려고 AI에게 뭔가를 열심히 묻고 있다면 이미 갈등의 골이 깊게 패인 상황입니다. 화해의 가능성이 잔존해 있었다면 인공지능을 켜고 자판을 두드리고 있지는 않았겠지요. 가슴속 깊의 한이 목울대까지 차오른 마당에 살아 있는 인간도 아닌 AI가 화해와 용서를 권유한다고 해서 누가 거기에 쉽사리 응하겠습니까?
이진화②, “노동 사건의 승패는 프레임 짜기에서 갈린다”
다른 분야는 AI를 활용한 타협과 조정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노동 사건은 예외입니다. 노동 사건은 사용자와 근로자 간에 다툼이 발생한 상황을 가리킵니다. 만약에 근로자가 사용자를 고발하려고 AI에게 뭔가를 열심히 묻고 있다면 이미 갈등의 골이 깊게 패인 상황입니다. 화해의 가능성이 잔존해 있었다면 인공지능을 켜고 자판을 두드리고 있지는 않았겠지요. 가슴속 깊의 한이 목울대까지 차오른 마당에 살아 있는 인간도 아닌 AI가 화해와 용서를 권유한다고 해서 누가 거기에 쉽사리 응하겠습니까?
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노동 사건의 프레임은 인간만이 짤 수 있어
이진화 노무사(사진)는 노동 사건에서 비롯된 분쟁과 갈등에서는 실력과 전문성이 검증된 노무사의 섬세한 눈길과 손길이 있어야 노동자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공희준(이하 공) : 노동 사건에서는 법률 지식뿐 아니라 증거 확보와 사실관계 입증이 중요한다고 합니다. 인공지능이 이러한 노동사건에서 근로자에게 필요한 증거를 안내하고 사건을 체계적으로 준비하도록 돕는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을까요?
이진화 서하합동노동법률사무소 대표노무사(이하 이) : 질문하신 부분과 관련해서 근로자들이 일정한 수준까지는 인공지능(AI)의 도움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건을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사실관계를 입증해야 할 경우 AI가 그에 필요한 기초적 증거 확보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공 : 행정 서식 같은 것들을 인공지능이 뽑아주나요?
이 : 어떠한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는 안내 정도는 AI가 해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완벽한 정확성까지는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엄밀함이 담보되려면 인간의 경험과 생각이 보태져야만 합니다. 따라서 AI의 역할은 옆에서 거들어주는 조수 정도로 정의될 수 있습니다. 어떤 자료를 수집해야 하는지 AI를 활용하면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가 있습니다.
공 : 사람이 혹시 빠뜨릴지도 모를 부분을 인공지능이 챙겨준다는 의미겠네요?
이 : 누락된 자료들이 있는지 확인하는 용도로 AI를 돌린다면 어느 정도 도움이 됩니다.
공 : 그 정도만 해도 노동 사건에 완전히 초보일 사람들에게는 쏠쏠한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 : 초보자에게는 적잖은 도움이 되겠죠. 그러나 더 중요한 부분은 사건을 진행하는 데 필요한 ‘요건사실을 확정’하는 일입니다. 이 과정이 실제 겪어보면 엄청 복잡하고 까다롭습니다.
공 : ‘요건사실을 확정한다’는 표현 자체부터가 몹시 생경하게 다가옵니다. 거기서부터 뭔가 커다란 벽과 딱 맞닥뜨리는 기분입니다.
이 : ‘요건사실 확정’이 무엇인지를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예를 들어서 설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직정 내 괴롭힘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세 가지 조건이 우선적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첫 번째로 피해자가 근로자여야 합니다.
두 번째로 피해자와 가해자가 업무상 상하관계로 연결돼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로 그러한 행위로 말미암아 업무 환경이 악화됐다는 사실이 증명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실관계들을 일일이 따져서 요건이 충족돼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피해자는 당장 필요한 사실관계들부터 전부 취합해야만 합니다.
사실관계를 전부 취합했으면 어떤 사실관계를 확정해야 할지, 어떤 사실관계를 빼야만 할지, 어떤 사실관계를 좀 더 강조해야 할지 하나하나 선별하고 정리해야 합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법률 싸움은 운동경기와 비슷한 요소가 있습니다. 나의 약점은 최대한 감추고, 상대방의 약점은 최대한 효과적으로 공략해야만 승리하기 하기 때문입니다.
공 : 선거전에서의 프레임 싸움과 흡사하네요.
이 : 그렇습니다. 결국은 프레임 싸움입니다. AI가 싸움의 프레임까지 짜주지 않습니다. 프레임을 짜는 일은 아직까지는 순수하게 인간의 영역으로 남아 있습니다.
공 : 걸그룹 뉴진스의 하니를 어쩔 수 없이 또 예로 들어야겠네요. 하니가 방시혁 하이브 엔터테인먼트 회장과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약자입니다. 하니 측은 그 지점을 강조했습니다. 하이브는 여기에 맞서서 하니가 수십 억 원을 정산 받는 굉장한 고소득자임을 최대한 부각하려 시도했습니다.
이 : 하니도, 하이브도 각자 자신에게 유리한 프레임으로 싸움을 끌어가려 했습니다. 그런데 국회 방통위의 과도한 관여와 민희신 사장의 노련한 언론플레이에 방시혁 회장 쪽이 말려들어간 측면이 있습니다. 하니가 국회 국정감사장에 증인으로 출석한 일만 놓고 보면 초동 단계의 프레임 싸움에서는 민희진 사장 측의 완승이었다고 평가해야 합니다. 하니가 방시혁이라는 골리앗에 맞서 싸우는 다윗처럼 일반 대중의 시선에 인식된 탓이었습니다.
저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국정감사장은 국민의 혈세로 마련된 공적 공간입니다. 더욱이 하니는 법률적으로 근로자가 아니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이 성립될 수 있는 요건이 원천적으로 결여돼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맹점들은 전문가들이 아니면 금방 눈치 챌 수가 없었습니다.
공 : 국회의원들에게 디테일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장 쏟아지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관건입니다. 제가 최민희 의원 입장이었어도 뉴진스 사태에 어떻게든 편승했을 겁니다. 워낙 인화성 높은 이슈였거든요.
이 : 전문가들에게는 불합리한 일들을 마주하면 객관적 시각으로 즉각 의문을 제기해야 만 할 직업적 책무가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동원됐다면 이미 화해 불능 단계
공 : 인공지능의 사용이 널리 보편화되면서 이제는 근로자와 사용자 모두 노동 사건에서 AI를 활용해 대응전략을 마련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게 양측 간의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소했을까요? 아니면 정보의 격차를 오히려 더 확대했나요? 왜냐면 AI의 성능도 요금제에 따라 천차만별이라요.
이 : 저는 인공지능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분쟁 당사자 사이의 정보의 비대칭성에는 별다른 변동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AI가 만들어낸 서면에서 특별한 장점이나 우수성을 발견할 수가 없었거든요. 물론 언젠가는 AI가 정보 격차도 해소해주고, 승소로 이끄는 서면도 만들어줄 수가 있겠지요.
그렇지만 현재 시점을 기준으로는 아닙니다. 저는 서면을 쓸 때 문장의 구조와 배치까지 꼼꼼하게 신경을 씁니다. 이는 변호사와 노무사 같은 대부분의 법률 전문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작가들이 시와 소설을 창작할 때 기울이는 열정과 노력 못잖은 시간과 에너지를 변호사와 노무사들도 서면 작성에 쏟아 붓습니다.
만약에 AI를 사용하면 일반인들도 그런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법률 사건은 성격이 모두 제각기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서면 작성은 작업은 전체 과정에서 일부분일 뿐입니다. 핵심은 초기의 전략 수립에 달려 있습니다. 서면 작성은 이와 같은 거시적 구상과 전체적 프레임 안에서 이뤄지기 마련입니다. 당연히 인간의 섬세한 눈길과 손길을 탈 수밖에 없습니다. AI가 세상을 공정하고 평등하게 만들어준다고 기대하기에는 아직은 무리인 이유입니다.
공 : 노동 분쟁은 법률적 판단뿐만 아니라 당사자 간 합의와 이해관계의 조정도 중요합니다. AI가 법적으로 가능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을 넘어 노사 간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까지 담당할 수 있을까요?
이 : 다른 분야는 AI를 활용한 타협과 조정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노동 사건은 예외입니다. 노동 사건은 사용자와 근로자 간에 다툼이 발생한 상황을 가리킵니다. 만약에 근로자가 사용자를 고발하려고 AI에게 뭔가를 열심히 묻고 있다면 이미 갈등의 골이 깊게 패인 상황입니다. 화해의 가능성이 잔존해 있었다면 인공지능을 켜고 자판을 두드리고 있지는 않았겠지요. 가슴속 깊의 한이 목울대까지 차오른 마당에 살아 있는 인간도 아닌 AI가 화해와 용서를 권유한다고 해서 누가 거기에 쉽사리 응하겠습니까?
공 : 눈가가 촉촉해진 상태에서 AI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면 진즉에 파국에 도달했다고 봐야만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인공지능에 매달리고 있을 테니까요.
이 : 낭떠러지 앞에 서 있는 심경으로 AI에게 질문을 던지는 상황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고용관계, 곧 근로관계는 짧게 끝나는 경우도 많지만 길게 이어지는 경우도 빈번합니다. 따라서 몇 년 동안 곪았던 게 마침내 터져서 노동 사건으로 비화되곤 합니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그동안 참을 만큼 참은 셈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관계가 좋았을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고용자와 피고용자 간에 불화가 누적되면서 사태가 인간적 배신감의 문제로까지 악화되기도 합니다. 이는 감정의 골이 어마어마하게 깊게 패였음을 의미합니다.
공 : 조정이 불가능한 사건들의 대부분이 노동자의 근무연수가 긴 경우에 발생하나요?
이 :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화해 불능의 노동 사건들 중에는 노동자가 일터에서 오랫동안 일한 경우가 많은 건 분명합니다.
공 : 서로가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혔다고 생각할 수가 있겠네요.
이 : 신뢰가 배신감으로 변할 때가 조정과 타협을 도출하기가 제일 어렵습니다.
공 : 이별하면 원수 되는 건 남녀간계인데 근속기간이 긴 일터에서 발생한 노동 사건도 인상 붉히고 헤어지면 원수로 돌변하네요.
이 : 사람들이 처음부터 크게 사업을 시작하지는 않습니다. 대다수는 작은 규모로 출발합니다. 일례로 사장 한 명과 직원 한 명으로 출발한 회사가 하는 사업들마다 성공해 임직원 100명의 회사로 성장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성장 과정에서 창업 멤버인 사장과 직원은 매일 같이 밥 먹고 아이디어 공유하면서 동고동락했겠죠. 그렇게 긴 세월을 함께하다가 관계가 틀어지면 상대방을 향한 증오심이 위험한 수위까지 치솟을 수도 있습니다.
공 :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힐 때 느끼는 극심한 배신의 고통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인지상정 같습니다. 오죽하면 천하의 카이사르조차 최후의 순간에 “브루투스 너마저!”라는 이야기를 유언처럼 남겼다는 후일담이 지금까지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왔겠습니까?
이 : 최영 장군도 이성계에게 동일한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엄밀히 보면 이성계는 최영의 부하 직원이었습니다.
공 : 정치인들이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될 경우 전직이나 현직 보좌진이 해당 정치인의 비리를 폭로한 게 사태의 시발점이 되는 경우가 잦습니다.
이 :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도 보좌진의 제보가 결정적 낙마 사유로 작용했다고 보도가 됐습니다. (③회에서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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