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 우석훈의 새 책 「힘내라 도서관(부제 : 위대한 도서관 서사와 도서관 시민)」은 현대 문명의 숨은 산파였던 공공도서관 시스템에 바치는 진정성 넘치는 헌사로 읽힌다.“도서관의 역사에 대해 전체적으로 한 번 톺아본 뒤 한국의 상황도 살펴보았다. 가정 먼저 알게 된 사실은 조선총독부 초기에 실시한 무無도서관 정책이었다. (중략) 철도와 항만 등 조선에 적극적으로 건설한 시설들과 달리, 총독부는 도서관만큼은 아예 만들지 못하게 했다.”
경제학자 우석훈 박사(이하 우석훈으로 호명)이 내놓은 새 책인 「힘내라 도서관(도서출판 오픈하우스 발행)」에서 인용한 내용이다. 일본 제국주의가 ‘현대 대한민국’의 탄생에 결정으로 공헌했다는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의 주장은 「위대한 도서관 서사와 도서관 시민」이라는 부제가 붙은 우석훈의 새로운 책의 도입부에서 보기 좋게 깨지고 말았다.
오해하시지 말기 바란다. 우석훈의 올가을 신간은 한민족의 처절했던 핏빛 항일투쟁을 비장하게 조명해놓은 책이 절대 아니다. 단지 그가 전 세계 도서관들의 어제와 오늘을 연구하고 내일을 전망하는 과정에서 제국주의 시대의 일본이 평균적인 한국인의 지적 발전과 성장을 가로막으려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는 으스스한 사실이 새삼 재확인됐을 뿐이다.
우석훈은 평범한 일반 시민이 자유롭게 출입하고 이용할 수 있는 근대적 의미의 도서관을 “자본주의가 만든 기발한 제도이고, 미국이 인류에게 행한 가장 큰 기여”라고 서슴없이 극찬하였다. 우석훈은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좌파 경제학자이다. 더욱이 그는 미국에서 학위를 취득하면 남한 사회에서는 출세와 성공이 자동으로 보장되던 시절에 ‘돈 안 되는’ 프랑스로 호기롭게 유학을 떠났다.
골수 좌파에 견결한 반미주의자일 우석훈이 평상시 신념을 비록 잠시나마 접으면서까지 자본주의 체제와 세계제국 미국에 대한 최대한의 긍정적 평가를 아끼지 않은 이유는 도서관이 종이와 화약과 나침반에 버금가게 인간이 낳은 위대한 발명품인 데 있을 터이다.
우석훈은 한 가지 흥미로우면서도 씁쓸한 일을 소개했다. 그의 서술을 그대로 빌리자면 “무식한 걸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인 전두환”도 도서관만큼은 열심히 지었다는 점이다. 반면, 서울대 철학과 출신인 김영삼 전 대통령과 서울대학교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해 검찰총장까지 지냈던 윤석열이 집권했던 시기에 도서관 신축과 기존 도서관에 대한 관리 및 투자가 단연 부실했다고 우석훈은 지적했다. 심지어 윤석열은 대통령이 주재해온 정부기관인 국가도서관 위원회에서 어떻게든 손을 떼려고 했다고 한다. 술은 가까이하고, 독서는 등한시한 집권자의 말로는 헌법에 규정된 5년의 대통령 임기도 채우지 못한 채 구치소에 갇혀 삼시 세끼를 해결하는 거였다.
우석훈은 도서관 숫자와 독서 인구의 급격한 증가를 산업화와 민주화를 가능하도록 이끈 중대한 요인들로 꼽고 있는 듯하다. 내가 왜 ‘듯하다’는 조금은 신중한 표현을 썼느냐? 「힘내라 도서관」을 이제야 비로소 읽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통상적 경우였다면 책을 전부 통독하지 않고 저작물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일은 저자에 대한 엄청난 결례가 됐을 게 분명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러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거의 들지 않았다.
우리가 도서관에 가서 서가에 꽂힌 장서들을 남김없이 읽어야만 도서관을 다녀왔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도서관에 들러 책 한 권만 대출해도 도서관을 나의 영토로 복속시킨 것 같이 가슴이 뿌듯해지기 마련이다. 도서관을 과감하게 주인공으로 발탁한 우석훈의 신간은 왠지 책보다는 도서관 그 자체처럼 느껴진다.
책의 극히 일부만 읽었는데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점심밥도 거르면서 온갖 책들을 섭렵한 것처럼 마음속에 충만함이 밀려온다. 어쩌면 우석훈은 책에 도서관 전체를 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종이책 특유의 냄새에 더해 도서관 고유의 거룩하고 아늑한 분위기마저 아울러 난다는 것이야말로 위대한 도서관 서사와 도서관 시민이 독자들에게 선물하는 남다른 이색적 경험일지 모른다.
책 한 권에 도서관을 전부 담으려 시도한 우석훈의 대담한 기획을 모방해 나도 서평 하나에 작금의 한국 정치의 치명적 맹점마저 덤으로 담아보련다.
2025년 정기국회 국정감사가 최악의 난장판이 되었다는 비판과 개탄이 도처에서 분출하고 있다. 다수의 여야 의원들이 국정감사장을 자신의 명의로 개설돼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올라갈 짧은 길이의 동영상, 즉 ‘쇼츠’를 제작하는 간이 스튜디오쯤으로 비루하고 천박하게 악용한 탓이다.
한데 과연 이게 본업이 유튜버가 되고 부업이 국회의원이 돼버린 요즘 정치인들만의 책임일까? 정치인들만의 책임이 아님은 나도 알고 너도 안다. 정치인이 너절해진 건 유권자들 역시 기성 직업 정치인들만큼이나 너절해진 탓이다. 허구한 날 유튜브 화면만 쳐다보면서 ‘좋아요’나 눌러대는 무식한 유권자들이 선거판의 주역으로 대두했으니 칸트나 헤겔이 현대 한국인으로 태어나 22대 국회에 입성했어도 밥 먹고 매일 유튜브 쇼츠나 만들고 있었을 게 뻔하다.
우리 솔직해지자. 강성 지지층이 아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무식한 지지자들이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뇌가 썩는다”는 불후의 명제를 남겼다. 유시민은 이왕 불편한 진실을 발설하는 김에 하나 더 추가해야만 옳았다. “사람이 책을 읽지 않고 유튜브나 들여다보면 뇌가 썩는다”고.
원인과 결과를 제대로 구분하자. 김어준과 전한길이 발호하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나날이 무식해지는 게 아니다. 한국인들이 나날이 무식해지기 때문에 김어준과 전한길이 발호할 수 있는 것이다. 무식에 대한 확실하고 효과적인 치료법은 과거나 현재나 똑같다. 꾸준한 책읽기가 유일하다.
나는 전국의 수많은 도서관을 향해 진심으로 힘내라고 응원하고 싶다. 청년세대의 게임 중독과 기성세대의 유튜브 중독을 치유하는 중요한 과제에 도서관이 전투적 선봉대로 나서길 바란다. 나라가 전쟁 때문도 아니고, 경제위기 때문도 아니고, 전염병과 기후재앙 때문도 아니고, 국민이 무식해져서 망한다면 이처럼 쪽팔리고 부끄러운 노릇이 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강조하자. 지금은 누가 가장 도서관을 부지런히 짓는 줄 아는가? 다름 아닌 건설업자들이다. 재개발이나 재건축 사업을 추진할 시에 공공도서관을 조성한 다음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기증하는 기부채납이 법률로 의무화된 영향이다.
민주당 계열 정부가 들어설 적마다 재개발과 재건축 사업을 관성적으로 무조건 규제하고 억눌렀다. 그 결과 보수 정부 시기에 오히려 도서관 숫자가 더 늘어나는 황당한 사태가 벌어지곤 했다. 이제는 집이 생겨야 도서관도 생겨나는 시대다. 이재명 정부가 문재인 정부의 어리석은 전철을 답습하지 말길 본 칼럼의 필자가 각별하게 당부하는 까닭이다. 재개발 시행을 하는 내 지인은 벌써 어린이 도서관을 두 곳이나 지자체에 기부채납을 했다.

- TA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