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훈 중앙대학교 명예교수는 우리나라 정치가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 다시금 되도록 이끌어줄 하나의 전략적 제안과 하나의 전술적 방안을 동시에 내놓았다. 그는 87 체제 수립 40주년을 맞아 사회적 대타협을 담보할 역사적 협약을 체결해 제도권 정치가 대한민국의 역동적 변화를 선도적으로 반영·견인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장훈 교수는 여의도 선수들만의 폐쇄적인 룰 싸움터가 돼버린 기성 거대 정당들의 당내 경선 과정을 ‘경선 예고제’를 도입해 광범위한 민심의 경연장으로 복원시키지는 담대한 아이디어를 공개했다.
정치학자 장훈의 고뇌 어린 생각과 구상을 현실 정치에 실천적으로 접목하기로 과감하게 결단하는 유력 정치인의 출현을 장훈 교수의 비공식 제자인 필자는 간절하게 소망하는 바이다.
‘경선 예고제’ 도입해 정치의 예측 가능성 높여야
장훈 중앙대학교 명예교수는 노태우 정부로부터 시작해 노무현 정부에 이르는 20년 동안을 한국 정치가 정치다웠던 시기로 평가하며 그와 같은 정치적 호시절이 머잖아 다시 도래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을 피력했다.
공희준(이하 공) : 윤석열 전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워낙 벼락출세한 인물인 탓에 논외로 치도록 하겠습니다. 정치에 대해서는 일자무식과 매한가지였던 윤석열과 달리 박근혜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치권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따라서 대통령을 탄핵하겠다고 으르렁거리는 야당을 타협적이고 유화적 자세로 상대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왜냐면 두 사람 모두 야당을 불필요하게 자극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노 전 대통령은 아예 한나라당과의 치킨게임을 불사하다시피 했고요. 야당이 장악한 의회가 아무리 미워도 그런 의회와 대화하고 소통하며 국정을 안정적으로 견인하는 게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고도의 정치력인데, 노 전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은 그런 고도의 정치력을 발휘하려는 노력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장훈(이하 장) : 말씀하신 내용은 타당한 지적입니다. 대화와 타협에 기반한 정치를 해야 한다는 건 당연한 상식입니다. 그렇지만 대화와 타협을 회피한다는 사실은 비판을 받을 이유는 될 수 있을지언정 탄핵까지 당해야 할 사유는 되지 못합니다.
공 : 태도가 불량한 것은 욕을 먹을 일이지 쫓겨날 일은 아니라는 말씀이네요. 교수님께 탄핵의 일상화와 관련해 추가적 질문을 하나 더 드리고 싶습니다. 예전에는 탄핵은 제도권 정치인들이 주도하기 마련이었습니다. 지금은 이른바 강성 지지층이 탄핵의 정치에서 기성 정치인들과 동전의 양면 관계를 이루는 중요한 행위자로 부상했습니다. 강성 지지층은 이제 한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정치의 변수가 아닌 상수로까지 확고히 자리 잡았습니다. 문제는 강성 지지층을 만족시키려면 ‘닥치고 탄핵’을 감행할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일례로 국회에서의 의석 숫자가 100석이 약간 웃도는 국민의힘조차 이재명 대통령을 탄핵하겠다며 기염을 토하고 있습니다. 되든 안 되든 탄핵에 나설 것 같은 정치인을 밀어주는 게 강성 지지층의 특징이고, 이 강성 지지층이 현재는 한국의 거대 양당을 쥐락펴락하고 있습니다.
장 : 정당이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니 그 빈틈을 강성 지지층이 파고 들어온 양상입니다. 특정 인물에 맹종하는 팬덤 정치의 확산은 강성 지지층의 힘과 영향력을 키워주는 연료이자 윤활유 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정당정치가 민주화 이후에도 정상적 발전을 하지 못한 것이 강성 지지층의 득세와 팬덤 정치의 기승을 불러왔다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돌풍의 진원지가 되었던 2002년 새천년민주당의 국민경선도 본원적으로는 정당정치의 약화에 따른 결과물이었습니다. 정당정치의 약화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작된 일이 아닙니다. 미국은 한국보다 앞서서 정당정치의 쇠퇴를 경험했습니다.
정당의 경선 무대를 일반 유권자에게 개방하면 정당의 약화를 필연적으로 불러오기 마련입니다.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은 경선의 마당을 개방하는 방식을 활용해 수십 년 동안 정치적 활력을 연장해왔습니다. 우리도 미국을 따라 국민경선 형식으로 정당을 일반 유권자들에게 개방했습니다. 그런데 개방의 본디 취지는 점점 희미해지고, 경선의 세부적 시행 규칙을 둘러싼 싸움에 다들 목숨을 걸고 있다시피 합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물론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당들은 세세한 경선 규칙에 따라 당권이 오가고, 후보가 달라지는 지경에 급기야 이르렀습니다. 경선 규칙을 둘러싼 싸움에서는 일반 유권자는 물론이고 당원들조차 철저하게 배제돼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조직적인 강성 팬덤을 동원할 수 있는 정치인들만 이득을 봐왔습니다.
‘국민 없는 국민경선’으로 변질되어온 흐름에 제동을 걸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합니다. 대학 입시 요강을 최소한 1년 전에는 사전에 예고하듯이 경선에 관련된 제반 규정을 미리 공표하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헌법과 법률로 공직 선거에 관련된 시기와 방법을 국민들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정당들도 이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이 어떠한 방법과 절차를 거쳐서 공직 후보자를 선출하는지를 일찌감치 공개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홍희경(이하 홍) : 현실에서는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는 경선 규칙조차 그때그때 급하게 확정하고 있습니다.
공 : 이젠 정당의 경선에 더해 대선이나 총선마저 언제 할지 불투명합니다. 더불어민주당은 개헌을 만지작거리고 있고, 국민의힘은 자당에 소속된 대통령이 벌써 두 차례나 임기 중에 탄핵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홍 : 여의도 정치권의 시계는 여름이 와도 여름 같지 않고, 겨울이 되어도 겨울 같지가 않습니다.
장 : 주요한 입시의 전형 원칙은 정당의 경선 규칙처럼 시험일 몇 달 앞두고 뚝딱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경선 예고제가 시행돼 함부로 경선 규칙을 바꾸지 못하도록 하면 정치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이 크게 높아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경선 예고제 도입이 최종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는 단지 하나의 기착지일 뿐입니다. 선거관리위원회가 그 사명을 제대로 실천하도록 이끄는 일이 더 근본적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선관위는 올해 치러진 대선의 국고보조금만으로도 500억 억이 넘는 돈을 정당들에 지급했습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025년 5월 13일 더불어민주당에 265억 3,100만 원, 국민의힘에 242억 8,600만 원, 개혁신당에 15억 6,500만 원을 선거 보조금으로 각각 지급했다. 이는 지난번 20대 대선과 비교해 총액 기준으로 60억 원 가까이 증가한 금액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8조 ②항은 “정당은 그 목적·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하며,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에 참여하는 데 필요한 조직을 가져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정당의 민주적 운영은 헌법적 책무라는 이야기입니다. 민주적으로 운영되지 않는 정당은 국민의 세금으로 자금을 보조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따라서 선관위는 민주적으로 운영되지 않는 정당에는 국고보조금을 지급하지 않거나 혹은 지급된 보조금을 환수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당이 국민의 혈세로 조성된 막대한 액수의 국고보조금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조차 투명하지가 않습니다. 더구나 선관위는 정당의 민주적 운영을 보장하려는 능력도, 국고보조금 집행의 투명성을 높이려는 의지도 보이지가 않습니다.
홍 : 그렇다고 검찰이나 경찰, 또는 특검이 나서서 정당의 민주적 운영을 강제하고 국고보조금의 사용처를 추적할 수도 없으니 답답한 노릇입니다.
공 : 정당은 비민주적이고 불투명합니다. 선관위는 무능하고 무책임합니다. 국민들이 믿고 의지할 만한 데가 없습니다.
장 : 정당과 선관위가 불신을 받는 상황에서는 시민사회가 나서야 하는데 그러기도 어렵습니다. 왜냐면 이제는 내로라하는 시민단체들마저 극렬 팬덤의 입김에 휘둘리기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정당들이 권위적으로 운영되고, 경선 규칙이 죽 끓듯 변해도 이를 효과적으로 견제하고 감시할 수 있는 장치가 부재합니다.
홍 : 경선 룰도 고무줄 잣대이지만, 정당 경선에 참여하는 선거인단을 선출하는 일에서도 원칙이 없습니다.
공 : 심지어 경선이 한참 치러지는 도중에 골뱅이무침에 사리 추가하듯이 선거인단을 추가한 엽기적 사태마저 있습니다. 2015년 2월에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가 치러졌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박지원 의원이 당대표 후보자로 출마했는데 중간에 한국노총 계열 인사들 수천 명이 경선인단에 갑자기 추가됐습니다. 대통령 선거에 빗대면 공식선거운동이 진행되는 도중에 특정 후보에게 유리한 성향의 유권자들이 느닷없이 대거 늘어난 격이었습니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행동을 불사하며 친문이 당권을 잡자 여기에 반발한 인물들이 집단으로 당을 뛰쳐나가 그다음 해에 국민의당을 창당해 호남 지역구를 거의 싹쓸이했습니다. 친문은 공당의 당대표 경선에서 경선인단을 골뱅이무침의 소면사리 추가하듯 추가하는 희대의 농간과 꼼수를 부린 세력입니다. 저는 이런 세력에 속하는 사람들이 이재명 대통령 진영을 ‘친명 패권주의’라고 비판했을 때 코웃음이 나왔습니다.
홍 : 국민의힘은 통일교 신자들을 단체로 입당시켰다는 의혹에 휩싸여 있습니다. 다들 아무런 죄의식이 없습니다.
공 : 민주당은 한국노총 사리, 국민의힘은 통일교 사리. 대한민국이 정치권 주도 아래 완전히 골뱅이무침이 됐습니다. 그나마 국힘은 경선 시작되기 전에 사리를 추가한 게 다행이라면 다행입니다.
홍 : 요즘은 자기에게 우호적인 당원을 더 많이 입당시키는 게 경선 승리의 필승 공식이 됐습니다. 그런데 당원 중심주의를 외치다가도 막상 입당한 당원 숫자가 애초의 목표치에 미달하면 경선에서 당원 투표가 점하는 비중을 줄이기도 합니다.
공 : 여론조사도 무슨 원칙으로 돌리는지 도통 알 도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왜 유독 한국과 미국에서만 강성 지지층이 극성을 부리는지 궁금합니다. 미국의 티파티는 한국의 대깨문이나 개딸, 그리고 윤어게인파 못잖게 극성스럽기로 악명이 높거든요. 한국과 미국 이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는 탓일까요?
장 : 유럽의 경우에도 한국과 미국에 뒤지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프랑스의 노란 조끼도 강성 팬덤의 일종인 연유에서입니다. 이탈리아의 오성 운동과 스페인의 포데모스도 강성 팬덤의 성격을 배제하기 힘듭니다.
공 : 우리나라는 유럽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선 웬만하면 긍정적 평가를 해왔습니다.
장 : 한국의 언론과 지식인 사회가 유럽에서 건너온 사조에 관련해서는 객관적 시각이 여전히 부족합니다. 예를 들면, 프랑스 정치가 한국 정치보다 선진적일 거라는 생각을 이제는 버려야 합니다.
공 : 한국의 언론매체들과 지식인들이 미국의 강성 팬덤은 강성 팬덤이라고 올바르게 부르면서, 유럽의 강성 팬덤은 진보적 대중운동으로 쓸데없이 미화해왔다는 말씀이네요.
장 : 개인숭배는 유럽이라고 하여 예외가 아닙니다. 특정 개인에 대한 맹목적 지지가 사회적 걱정거리로 떠오르기로는 유럽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87 체제 40년을 총화할 사회적 협약을 맺자
공 : 탄핵의 정치와 팬덤의 정치가 정치의 극단화를 쌍끌이로 부추기는 현실을 종식할 수 있는 모종의 특단의 대책이 있을까요? 극단이 더 큰 극단을 부르는 악순환으로 말미암아 이대로 가다간 나라가 진짜로 결딴날 것 같아서요.
장 : 저는 좀 더 거시적 맥락으로 문제를 바라보고자 합니다. 내후년인 2027년이면 87 체제가 성립한 지 만으로 정확히 40년이 됩니다. 87 체제 수립 40주년에 맞춰서 대한민국의 주요 정치 세력들이 정치의 전면적인 재구성을 지향하는 역사적 협약을 맺자는 게 저의 생각이자 바람입니다.
공 : 한국판 대헌장(Magna Carta)을 만들자는 제안으로 들립니다.
장 : 개헌 즉 헌법개정은 이러한 역사적 협약의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정치가 지금처럼 계속되어선 안 된다는 생각은 충분한 여론의 공감대를 이미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치의 근본적 변화와 혁신을 어떻게 이룰지에 대한 광범위한 합의가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의 경계를 초월해 도출돼야 합니다.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뚜렷한 청사진이 이러한 합의에 담겨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합의의 도출을 어렵게 하는 쪽으로, 협약의 성사를 힘들게 만드는 방향으로 정치인과 정당들이 움직이고 있어서 저는 매우 걱정이 큽니다.
유수의 내로라하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현재 ‘탈한국’의 흐름에 몸을 싣고 있습니다. 이와 동시에 기업들의 지배구조(Governance) 또한 빠른 속도로 바뀌는 중입니다. 경제와 관련된 특정한 법률이 국회를 마침내 통과했다고, 대통령이 외국 정상과 만나서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눴다고 안도하거나 만족할 때가 아닙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사례를 여기에서 잠깐 들어보겠습니다. DJ는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노동시장의 개혁에 착수했습니다. 그 때문에 신자유주의자라는 비판을 오랫동안 받아왔습니다. 그런 비판을 하는 인사들이 간과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노사정 사이의 대등하고 수평적인 사회적 대화를 진지하게 추구했다는 사실입니다. 김대중 정부가 구성해 운영했던 「노사정 위원회」가 상당히 바람직한 형태의 협치 모델이었던 까닭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노사정의 한 주체인 정(政)이 정부와 집권 여당만 대표하지 말고, 정치권 전체를 아우르는 폭넓은 스펙트럼으로 확장되기를 희망했습니다. 그래야 노사정 타협의 실효성과 지속가능성이 담보되기 때문이었습니다. 타협과 합의가 실종된 거번너스 구조는 대결과 갈등의 격화로 귀결되고 맙니다. 그러면 협치를 선호하는 중도층 유권자들은 정치로부터 점점 더 거리를 두게 됩니다. 정치와 행정 모두 양극단의 세력에 더 세게 휘둘릴 수밖에 없게 됩니다. 양극단에 휘둘리며 흔들리는 정치와 행정이 정상적이고 균형 잡힌 무게중심을 잡기 위해서라도 김대중 정부가 시도했던 노사정 위원회 형식의 실질적인 협치 기구의 부활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습니다.
홍 : 노사정 위원회 모델을 시대의 변화에 걸맞게 업그레이드한다면 참여 주체는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요? 지금은 같은 계층 안에서도 세대별로 이해와 요구가 엇갈리고는 합니다.
공 : 홍희경 작가님 말씀대로 50대 현대자동차 생산직 노동자와 20대 현대차 생산직 노동자는 계급 차체가 다른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장 :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양대 노총은 여전히 중요한 참여 주체가 돼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의 이중화는 지금 매우 심각한 상황입니다. 더욱이 자영업자와 불완전 고용 노동자(Precariat)는 목소리를 사실상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대중 정부에서 노사정 위원회가 처음 구성됐을 무렵에는 노동이 절대적으로 약자였습니다. 그들을 사회적 대화 기구에 끌어들이는 게 최우선적 과제인 이유였습니다. 지금은 당시에는 상정하지 않았던 집단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노태우부터 노무현까지가 한국 정치의 황금기
공 : 교수님께서 강조하시는 새로운 노사정 모델에 바탕을 둔 사회적 대타협을 도출하려면 정당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87년 체제의 산물로 등장한 4당 체제에서는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이라는 걸출한 인물들이 야당을 이끌었습니다, 여당 총재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도 군인 대통령이라고 믿기 어려운 원숙한 정치력을 발휘했고요. 하지만 지금 정치권의 면면을 보면 탄식과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여당의 수장은 정청래이고, 야당 지도자는 조국과 장동혁과 이준석입니다. 능력과 이름값, 권위와 무게감에서 1노 3김 근처에 아예 미치지 못하는 인사들 일색입니다. 이런 한숨만 나오는 허접한 진용으로 어떻게 폭넓은 사회적 대타협을 도출하고, 지속가능한 역사적 협약을 마련하겠습니까? 정치가 점점 왜소해지는 현상이 아무리 전 세계적 추세라 한들 우리나라에서 그 많던 위대한 정치인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요?
장 : 좋은 시절이 있으면 나쁜 시절도 있는 법입니다. 반대로, 어둠이 깊어져야만 아침이 밝아오기 마련입니다. 한국 정치의 미래에 우리 모두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공 : 국민에게 희망을 주기에는 정치의 질이 너무 저하됐습니다.
장 : 노태우에서 시작해 노무현으로 마무리되는 시대는 정치의 질이 좋았던 시대였습니다. 경제 상황 역시 부침은 있었어도 전반적으로 양호했습니다. 저와 홍희경 작가님, 공희준 컨설턴트님 전부 좋았던 시절을 길거나 짧게 경험했기에 작금의 시대가 더욱더 고통스럽게 느껴질지 모릅니다.
공 : 빛의 발랄함을 알기에 어둠의 음침함도 아는 듯합니다.
장 : 어제보다는 오늘이 나은 삶을, 오늘보다는 내일이 긍정적일 인생을 살아본 세대는 인류사의 긴 호흡으로 보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시종일관 춥고 배고픈, 슬프고 아픈 시대를 살았던 세대가 훨씬 더 많았습니다.
공 : 저희 또래가 철들면서 처음 봤던 정치인이 김대중과 김영삼이었습니다.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이 저희에게는 표준이고 정상이 되다 보니 이후의 정치인들은 죄다 지질하고 너절하게 여겨지고 말았습니다. 불행한 일이었습니다. 저희가 머리 굵어지고 처음으로 대면한 정치인이 정청래이고, 장동혁이었으면 그들이 정치인의 준거가 되었을 테지요. 그러면 정치를 바라보는 눈높이도 한결 낮았을 테니 정치가 덜 불만족스럽게 생각됐을 듯합니다. 따라서 보는 저희도 괴롭지만, 양김에게 수시로 비교당하는 정청래와 장동혁도 괴롭기는 오십보백보이겠죠.
홍 : 처음 투표해본 대선 주자가 김대중이나 김영삼이었으면 그건 무조건 행운입니다.
공 : 나라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사회에서 가장 힘 있고 많이 가진 사람들의 자발적 헌신과 희생이 요구됩니다. 86 세대가 한국 사회에서 제일 힘세고 많이 가진 기득권 집단이 된 지가 벌써 20년이 넘었습니다. 특히 참여정부가 출범한 이후로는 86 세대 정치인들이 한국 제도권 정치의 명실상부한 주류로 군림해왔습니다. 그런데 86 세대가 사회를 주도하면서 대한민국에는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들이 더 많아졌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최근 유행하는 이를테면 ‘피크 코리아’란 용어는 86 세대의 무능과 실패를 적나라하게 상징합니다. 86들 탓에 대한민국의 국운이 쇠락하기 시작했다는 소리거든요. 이런 실패와 무능해도 불구하고 86 세대의 장기집권 체제는 아직껏 철옹성같이 공고합니다. 이쯤 되면 버티는 86보다는, 결함 가득한 86들을 몰아내지 못하는 다른 세대에게 더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요?
장 : 한국은 대통령이 모든 권력의 꼭짓점에 위치한 나라입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평가하자면 86 세대는 사실 자신들만의 세계관으로 정부를 운영해본 적이 없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86 정치인들은 분명 동지적 협력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참여정부 시기를 ‘86 세대의 시대’로 규정하기는 무리입니다. 문재인 정부 시기에는 86 세대가 권력의 중심부로 좀 더 가까이 진입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권력 상층부에 전면적으로 포진하지는 않았습니다.
게다가 이는 어디까지나 진보 진영에 해당하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보수 혹은 우파로 범주화되는 세력은 유신헌법 작성 작업에 관여했던 1939년생 김기춘 씨가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 비서실장에 취임했을 정도로 86 세대의 사실상 무풍지대였습니다. 구세대의 영향력이 그만큼 막강했다는 뜻입니다. 직전의 이명박 정부의 주요 권력자들 또한 MB를 위시한 산업화 시대의 인물들투성이였습니다. 여기에 전두환 시대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전문가들과 학자들이 보태져 정권 내에서 공존하는 구도였습니다.
현재 국회의 인적 구성 분포만 고려하면 86 세대의 전성기처럼 보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내용을 고찰하면 86 세대가 자기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국가 운영에서 총체적으로 관철시켜본 적은 여태껏 없습니다. 한국은 대통령의 개인적 성향이나 성장 이력이 특정 세대의 입김보다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더 크게 반영되고 작용하는 나라입니다. 그럼에도 86 세대의 지나친 획일성과 응집력은 물론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대학 시절에 학습한 해묵은 이념과 고루한 행동 방식으로부터 신기할 만큼 좀체 탈피하지 못한 것도 심각한 한계이겠고요.
공 : 86 세대는 1980년대에 자기들은 평생 각성할 것을 미리 다 각성해놨다고 확신하는 이들입니다. 이제 인생의 황혼기에 단체로 접어든 그분들이 삶의 두 번째 성찰의 계기를 맞이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을지 저는 몹시 궁금합니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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