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정몽준 단일화부터 여론조사가 정치 오염시켜
후단협의 지저분한 망동으로 시작해 여론조사 단일화로 허망하게 마무리된 2002년 대통령 선거 정국의 ‘후보 단일화 파동’은 이후 대한민국 제도권 정치를 허구가 실재를 압도하는 ‘사이버 훌리건들의 천국’으로 변질시키는 출발점이 되었다. 이미지는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대선 후보의 양자 텔레비전 토론회 모습
공희준(이하 공) : 노풍, 즉 노무현 돌풍이 사그라지면서 집권 여당이었던 새천년민주당 안에 후보단일화협의회가 결성됐습니다. ‘후단협’이라는 약칭으로 세간에 더 잘 알려진 이 모임은 실제로는 정몽준을 노골적으로 밀었습니다. 후단협은 정몽준으로의 단일화를 목적으로 자당의 대선 후보인 노무현을 온갖 치졸한 방법으로 흔드는 바람에 우리나라 정치에서 정치적 패륜 행위의 대명사로 두고두고 자리 잡고 말았습니다.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의 단일화가 우여곡절 끝에 이뤄지기는 했지만 제16대 대통령 선거 투표일 전날에 정 후보가 후보 단일화를 느닷없이 파기한 데서 드러나듯이 이는 상처뿐인 단일화가 돼버렸습니다. 후단협 소동과 노정 단일화의 파행을 정치학자의 관점에서 간략하게 결산해주세요.
장훈(이하 장) : 김대중과 김종필의 DJP 연합도, 노무현과 정몽준의 노정 단일화도 본질은 선거연합이었습니다. 그런데 DJP 연합은 노정 단일화와는 많은 측면에서 달랐습니다. 무엇보다도 성공적인 연대에 요구되는 충분한 준비과정을 사전에 거쳤습니다.
공 : 요즘 축구계에서 유행하는 용어를 잠깐 빌리자면 DJP 연대는 착실한 빌드업(Build up)이 있는 단일화였고, 노정 단일화는 무식한 뻥축구 같은 단일화였네요.
장 :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와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총재는 호남과 충청의 지역 연합이라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토대 위에서 단일화라는 이름의 탑을 차근차근 공들여 쌓아 올렸습니다. 호남은 그때까지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한 번도 정권을 잡아본 적이 없는 대표적인 소외 지역이었습니다. 충청은 주도적으로 집권해본 경험이 없다는 견지에서는 유사 소외 지역이었습니다. 둘 다 소수파로서의 동병상련을 겪어온 셈입니다.
소수파들 사이에서 꾸려지는 선거연합은 정당성을 확보하기가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유권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를 개발하고 명분을 고안하는 일이 그리 어렵지가 않습니다. DJ와 JP는 살아온 역정만큼이나 이념적으로도 차이가 컸습니다. 그렇지만 DJP 연대가 소수파가 다수파를 이기는 데 필요한 거의 유일한 전략이자 선택지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한 유권자 설득 작업이 DJ 연합의 경우에는 상당히 체계적으로 진행이 됐습니다.
반면에, 노무현과 정몽준의 단일화는 DJP 연대가 보여준 체계적 빌드업 과정을 생략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차별받고 소외된 지역들이 마침내 힘을 합쳤다는 DJP 연대 담론에 필적할 만한 뚜렷한 논리도 노정 단일화는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대통령 당선만 어떻게든 막자는 식의 ‘반이회창 연대’ 이외의 비전과 가치를 국민에게 보여주지를 않았습니다. 명분과 정당성의 공백을 정치공학적인 ‘여론조사의 정치’가 채웠을 따름이었습니다.
공 : 제가 기억을 더듬어보니 여론조사란 꼬리가 정치라는 몸통을 본격적으로 마구 흔들어대는 사태가 바로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국면 때부터 시작됐습니다.
장 : 단일화를 위한 여론조사 과정에서 별의별 추측과 소문이 난무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약체인 2위 후보와 3위 후보가 절대 강자인 1위 후보에 맞서고자 힘을 합친다는 긍정적 이미지가 실종됐습니다. 그 대신 두 사람이 짬짜미해 한 사람을 왕따하는 것 같은 부정적 인상만 계속 빚어냈습니다. 그 결과는 우리가 모두 아는 바대로입니다.
공 : 투표일 전날에 정몽준이 단일화 결렬 선언하고서 술 먹고 집에 벌러덩 드러눕는 희대의 막장극이었습니다.
장 : 동기와 과정과 결말 모두에서 DJP 연대와 노정 단일화를 동급으로 간주해선 안 됩니다.
공 : DJP 단일화에는 이를 옹호하는 내로라하는 이론가들이 있었습니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정권교체가 최고의 개혁이다”라고 주장하면서 힘을 보탰습니다. 황태연 동국대 교수는 ’지역등권론‘을 도발적으로 내놓으며 김대중의 호남과 김종필의 충청이 손잡는 일을 일종의 정치적 정당방위 행동으로 합리화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노정 단일화와 관련해선 이름난 학자가 나서서 그 당위성을 변호한 경우가 제 기억으로는 없습니다. 굳이 있다면 그즈음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다 낙선한 김민석이 후보 단일화를 성사시키겠다면서 원맨쇼를 펼치다가 ‘김민새’로 전락하고 마는 쓰라린 굴욕을 당한 사건 정도입니다. 노정 단일화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할 철학과 이념이 워낙 빈곤하다 보니 여론조사로 밀어붙이는 게 단일화를 위한 마지막 승부수로 떠올랐습니다. 정치공학이 정치철학을 압도하기 시작하는 한국 정치의 데드 크로스(Dead Cross)가 노정 단일화를 계기로 일어났습니다.
장 : 저는 정치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마땅한 일을 여론조사에 떠넘기려는 움직임에 대해 이미 2002년 무렵부터 강력하게 비판했습니다. 특히나 선거에 관계는 문제는 실체적 사실에 바탕을 두어야 합니다. 우리 헌법에 규정된 보통 선거, 평등 선거, 직접 선거, 비밀 선거의 4대 원칙은 선거가 현실 공간에서 실지로 이뤄지는 행위라는 점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와 달리 여론조사는 근본적으로 추정(Estimation)에 기반을 두는 일입니다. 사실과 추정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큽니다. 사실에 기반하지 않으면 패자의 진정한 승복을 보장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론조사에 승복한다는 것 자체부터가 매우 이상한 개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점점 악화하고 있습니다. 정치의 영역이 여론조사로 포장된 추정과 추측에 더더욱 오염돼가고 있습니다.
공 : 윤석열과 김건희 부부를 장님 무사와 앉은뱅이 주술사에 각각 빗댔던 명태균은 허구가 실재를 지배하는 오늘날 한국 정치의 끝판왕으로 생각됩니다.
장 : 그런 유형의 인물이 어디 명태균 하나뿐이겠습니까? 여론조사 결과는 다양한 추측과 추정이 결합해 나타난 산물입니다. 표본 추출부터 응답률 계산과 오차 보정까지 단계마다 다양한 전제가 개입하고 여러 가지 추측이 작동합니다. 고신뢰 사회에서조차 추측 기반의 결과치에는 많은 사람이 의문을 제기하기 마련입니다. 하물며 우리나라 같은 저신뢰 사회에서는 그런 의구심이 더 강하게 고개를 들 수밖에 없습니다. 추정에 근거해 정치적 의사결정을 수행하려는 발상이 대단히 위험한 이유입니다.
공 : 교수님께서 방금 통렬하게 지적해주신 부분을 제가 예전에 생생한 사례로 목격했었습니다. 민주당에서 새로 당대표를 선출하는 전국당원대회를 개최했는데, 여론조사 응답자의 숫자를 무리하게 보정하려고 시도한 탓에 영남 당원 1명이 호남 당원 20명과 같은 몸값을 지니는 차마 웃지 못할 블랙코미디가 연출됐습니다. 민주주의는 본디 1인 1표 체제인데, 다른 당도 아닌 민주당에서 엽기적인 ‘1인 20표’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그때 제가 문득 생각난 게 조지 오웰의 풍자소설 「동물농장」의 한 문장이었습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런데 어떤 동물은 보다 평등하다”는 문장이요. 이 모두가 2002년 대선 정국에서 억지로 무리하게 추진했던 단일화가 낳은 후유증으로 보입니다.
장 : 노무현과 정몽준의 여론조사 단일화가 여론조사로 정치를 대체하려는 불건전한 행태의 시초가 됐습니다.
공 : 민주당에서 한 가닥 한다는 나이든 정치 건달들이 너나없이 자랑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여론조사 단일화를 받도록 정몽준을 꼬드긴 게 바로 자기라는 후일담입니다. 진실의 방에 집어넣지 않으면 사실 확인이 불가능한 과장과 허세 가득한 소리들입니다.
경선룰 싸움이 한국 정치를 망치고 있다
홍희경(이하 홍) : 제가 정치부에 근무할 때입니다. 정당으로 취재를 나가 관찰해보면 당내에서 가장 치열한 다툼이 경선 규칙 갖고서 싸우는 일이었습니다. 일반인들에게야 정당의 경선룰 싸움은 관심권 밖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정치인들이 경선룰 싸움에 목숨 걸고 나서는 이유가 있습니다. 대중의 지지세도 미약하고, 정책이나 콘텐츠도 태부족한 인사들이 선거 때마다 꼬박꼬박 살아남는 비결이 다름 아닌 경선룰 싸움에 있거든요.
공 : 여의도의 고인 물들은 거의 전부가 경선룰 싸움의 귀재입니다.
홍 : 경선 규칙 싸움에 도가 튼 정치인을 한 명 특정해 거명하자면 제 머릿속에서 딱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김재원 전 의원입니다. 이분이 일반 유권자들 사이의 인기와는 별도로 경선룰이 승패를 좌우하는 당내 선거에서는 거의 매번 강호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저는 민심의 호응이 없어도 오랫동안 살아남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한국 정치에서 권력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다시금 골똘하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김재원 전 의원은 2025년 8월에 실시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도 최고위원에 뽑혔다.
공 : 명태균과 김재원은 은근히 닮은 꼴입니다. 두 사람 모두 민심의 선택을 받지 않았는데도 막후에서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 왔거든요. 서울대 들어가 고시 붙은 명태균이 김재원이고, 지방에서 대학교 나와 휴대전화기 판매한 김재원이 명태균인 격입니다.
홍 : 제가 정치부 기자로 출입해본 우리나라 주요 정당들에서는 리더십과 카리스마도 필요 없고, 정책과 비전도 필요가 없었습니다. 오로지 경선 규칙만 자신에게 유리하게 잘 짜는 게 능사가 됐습니다. 한국 정치가 이상해도 참 이상하게 변질했습니다.
공 : 저는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커다란 기대와 애정을 갖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강훈식의 흑역사 하나를 이참에 공개해야겠습니다. 강 실장에게 오래도록 입에 쓴 약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입니다. 강훈식 실장이 2012년 대선이 치러질 무렵에는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의 최측근으로 활동했습니다. 이때 강훈식이 손학균 대선 캠프에서 완전히 역적이 돼버렸습니다. 문재인 대선 캠프가 집요하게 요구하는 모바일 경선을 덜컥 받아버린 까닭에서였습니다. 손학규 캠프는 물론 김두관 캠프까지 문재인 캠프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할 모바일 경선을 너무나 쉽게 수용하면서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은 그걸로 사실상 승패가 판가름 났습니다. 두 달가량 진행된 본격적인 경선전은 돈 낭비, 시간 낭비하는 단지 요식행위에 불과할 뿐이었습니다.
홍 : 경선 규칙 협상 잘못하는 바람에 정치권에서 아예 퇴출당한 사람들이 수두룩합니다.
공 : 강훈식 실장이 대선 경선룰 협상에서 삐끗한 것 때문에 그로부터 2~3년 동안 여기저기서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당했습니다. 그때의 수모와 구박을 인내심 있게 견디고 살아남은 덕택에 지금은 화려한 백조가 됐습니다.
홍 : 사람들이 착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순진하기 때문인지 손학규계 인물들이 전반적으로 경선룰 다툼에 서툴렀습니다. 경선 규칙 샅바 싸움은 제도권 정치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음에도, 우리나라 정치에서는 그게 마치 정치의 전부인 것처럼 오도돼왔습니다.
‘노무현 현상’은 기득권 질서에 대한 도전들의 응집체
공 : 교수님께 정치학적 주제가 아닌 사회학 차원의 문제에 관해 이쯤에서 한번 여쭙고 싶습니다. 2020년 6월에 한일 월드컵 축구대회가 열렸습니다. 이 대회에서 히딩크 감독이 지휘하는 한국 축구대표팀이 4강 신화를 달성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가대표 축구팀의 공식 응원단 명칭이 하필이면 붉은악마였습니다. 붉은악마가 주도하는 길거리 응원에 수백만 명의 국민이 붉은 옷을 차려입고 열렬히 동참하면서 우리나라가 지긋지긋한 레드 컴플렉스로부터 마침내 해방되는 계기가 마련됐습니다. 이때 시대착오적 레드 컴플렉스로터의 탈출에 버금가게 중요한 일이 있었습니다. 한민족에게 오랜 세월 덧씌워진 지독한 패배주의의 굴레로부터도 벗어난 것입니다. 2002년 월드컵을 통해 레드 컴플레스와 패배주의로부터 동시에 탈피한 세대가 지금은 나이든 중장년 세대가 되어 민주당 계열 정당의 확고한 고정 지지층으로 자리했다는 분석이 이제는 정치학계에서 정설처럼 굳어진 상태입니다. 2002년의 경험이 1950년의 경험처럼 특정한 세대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기억을 정신과 영혼에 낙인으로 남겼기 때문일까요?
장 : 방금 언급하신 일련의 사건들은 궁극적으로 ‘노무현 현상’으로 수렴해 설명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노무현 현상은 한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자리를 잡아 왔던 여러 형태의 기득권 질서(Establishment)에 대한 다양한 도전들을 응축·집약해놓았습니다. 노무현 현상이 타파하려고 시도한 기성 질서에는 김대중과 김영삼과 김종필의 3김이 유지해온 지역주의 정치 구도도 당연히 포함돼 있었습니다.
더 중요한 부분은 노무현 현상으로부터 거센 도전을 받은 구체제를 지탱해온 기둥들에는 미국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고루하고 전통적인 시각 또한 들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노 전 대통령의 파격적이고 진보적인 대미관(對美觀)은 미선이와 효순이 두 여중생이 미군 장갑차 때문에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사건과 맞물리며 한국사회의 태풍의 눈으로 단숨에 떠올랐습니다. (⑤회에서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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