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을 간 보러 간 날
시도도 좌절도 나름 진지했던 고건의 정치적 실패가 비극이라면, 분노 유발로 시작해 큰 웃음 주고 끝날 한덕수의 정치적 실패는 희극일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고건 전 국무총리(왼쪽)와 한덕수 현 국무총리의 모습
참여정부 말기의 기억이다. 한 선배로부터 휴대전화가 걸려왔다. 평소에 교류가 잦았던 선배는 아니었던지라 나는 아마도 경조사 때문에 갑자기 연락이 온 것으로 여겼다. 실제론 예상 밖의 용무였다. 고건 전 국무총리가 주최하는 어느 행사에 함께 구경을 가보자는 내용의 전화였다.
그즈음은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은 물론이고 집권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인기 또한 바닥을 기던 때였다. 이로 말미암아 여권 인사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정치적 활로와 대안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도처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필자의 선배 또한 고 전 총리 측이 기획해 진행하는 이벤트를 그와 같은 동향과 흐름의 연장선에서 참관하려 한 터였다.
간단한 국민의례를 마친 다음 참석한 내외빈 소개에 뒤이어 주요 참석자들이 돌아가며 축사를 했다. 정치를 개혁하고, 경제를 살리며, 국민의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는 취지의 얘기들이 대세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치인들 입에서 나오는 레퍼토리는 거의 변화가 없음을 일깨워주는 일화라 하겠다.
김영삼에게는 김동영과 최형우가 있었다. 김대중에게는 권노갑과 한화갑이 있었다. 노무현에게는 안희정과 이광재가 있었다. 행사가 종료될 무렵 나는 선배에게 고건 전 총리의 양팔 노릇을 하는 핵심 참모 두 사람의 중요한 경력이 뭐냐고 물었다.
“정통 내무 관료 출신이야.”
선배의 주저 없는 대답을 들은 나는 역시나 주저 없이 관전평을 개진했다.
“정통 내무 관료들 데리고서 무슨 동사무소 차릴 일 있나요? 여기 아무 비전 없으니 선배님께서도 그냥 철수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필자가 여의도 정치권에서 이름깨나 알려졌다는 내로라하는 인사들조차 본인의 진로와 거취를 결정하기 어려워하던 막막하고 암울한 시기에 고건에 대한 간을 워낙 잘 봐준 덕분인지는 몰라도 선배는 민주당 계열 정당의 울타리를 이후에도 변함없이 지키다가 나중에 지방자치단체장으로 선출돼 지금까지 고향 땅의 자치행정을 이끌며 더 원대한 도약을 꿈꾸고 있다는 소식이다.
한덕수, 간 안 봐도 뻔하다
한덕수 국무총리 겸 대통령 권한대행의 조기 대선 출마가 초읽기 단계에 들어간 분위기이다. 역사책에나 등장할 법한 시대착오적 친위 군사쿠데타를 일으켰다 실패해 언제 또 감옥에 갇힐지 모를 전직 대통령 윤석열 밑에서 3년 가까이 정권의 2인자 구실을 했던 인사가 대통령 선거에 나온다는 사실부터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이없고 해괴하기 그지없다.
더욱이 전직 대통령 윤석열의 부인 김건희 씨와 한덕수 총리의 아내 최아영 씨 간의 밀접하고 특수한 관계를 둘러싼 별로 아름답지 않은 각종 풍문이 시중에 파다한 상태다. 명분도 부족하고, 승산도 희박한 이번 21대 대통령 선거에 평생 구의원 선거 한 번 나가본 적이 없는 한 총리가 왜 기를 쓰고 출사표를 던지려 하는지 참으로 의아하기 짝이 없다고 하겠다.
정무감각 빵점의 꽉 막힌 중앙부처 공무원들을 좌우에 최측근으로 거느리고 살벌하고 변화무쌍한 대선판에 뛰어들려는 어리석은 판단을 했을지언정 고건 전 국무총리는 의외로 소신과 강단을 갖춘 인물이었다. 1980년 5월, 청와대 정무수석 비서관으로 최규하 대통령을 보좌하던 고건은 내란수괴 전두환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면서 본격적인 정권 찬탈 행동에 나서자 출근을 거부하고 자택에서 칩거하는 방식으로 신군부에 저항했다고 고 전 총리는 2017년 만추에 출간된 자신의 회고록에 술회해놓았다.
한덕수가 고건의 자리에 있었다면 전두환 일당의 부당한 지시에 비록 소심하고 수동적인 형태로나마 항명할 수 있었을까? 작년 12월 3일 늦은 밤, 윤석열과 그 하수인들이 불법적이고 위헌적인 비상계엄을 선포했을 때를 전후한 한덕수의 정확한 행적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럼에는 나는 한덕수의 대통령 선거전 등판을 구태여 만류하고 싶지 않다. 피선거권을 포함한 그의 공민권은 아직 살아 있고, 더군다나 대한민국 사회의 상층부를 씨줄날줄로 꽁꽁 얽어매고 있는 저 유명한, 아니 악명 높은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고문직까지 역임한 한덕수에게 대통령 후보 등록에 요구되는 기탁금 3억 원을 마련하는 숙제는 평범한 서민층 가장이 지인들 만나 중국집이나 설렁탕집 같은 대중음식점에서 저녁 식사 한번 쏘는 것보다 더 부담이 안 되는 일일 게다.
그래서 살펴봤다. 한덕수의 사람들이 어떤 인물들인지를. 행정고시 출신도 있고, 사법시험 출신도 있고, 하나같이 국가지정 시험문제들의 답안지만 열심히 풀어서 이제껏 성공하고 출세한 인사들 일색이었다. 고건의 정통 내무 관료 출신들과 견주어 전혀 나을 바 없는 정통 고시 출신들이었다.
사람들이 흔히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 고건의 민선 서울시장 경력이다. 고건은 현역 시절 처세의 달인으로 불렸다. 처세에 능하려면 극소수의 윗사람들 심기만 잘 살펴 그들의 총애와 신임만 얻으면 장땡이다. 정치에서 성공하는 일은 처세에서 성공하는 일과는 근본적으로 차원을 달리한다. 위와 옆과 아래를 입체적으로 바라보며 불특정 다수의 국민들로부터 지지와 신뢰를 확보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정통 내무 관료 출신 인사들이 핵심 참모들로 버틴 고건 캠프의 가장 치명적 문제점은 고건 혼자만 불특정 다수의 국민들의 지지와 신뢰를 확보해본 경험을 쌓아봤다는 데 있었다. 각종 고시 출신들 천지인 한덕수 진영은 고건 캠프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은 양상이다. 한마디로 공시학원 차리면 딱 좋은 선수진(Squad)이다. 기존의 진용(Lineup)에 외무 고시 출신까지 추가로 한 명 가세하면 가히 3관왕(Triple Crown)의 위업 달성이리라.
고건은 라스트 댄스를 무도회장의 막이 오르기 직전 포기했다. 그가 무리하게 무도장에 나타났다면 아마 희대의 망신살이 뻗쳤으리라. 한덕수는 퍼스트 댄스가 곧 라스트 댄스일 무대에 기를 쓰고 서려고 한다. 곁에서 책사와 전략가 역할을 담당할 댄스 트레이너, 즉 춤선생들은 생전 제대로 된 무대 구경은 고사하고 평생 사무실에서 보고서 쓰고, 결재서류만 작성해온 영락없는 책상물림의 백면서생들뿐이다.
현재 민심의 주류는 한덕수의 무모하고 양심 없는 대권 도전에 격분하고 있다. 그러나 굳이 얼굴에 인상 써가며 힘들게 분노할 필요도, 이유도 없을 듯싶다. 분노 유발자로 데뷔한 한덕수는 역대급의 큰 웃음을 전국의 수많은 유권자들에게 선사하고서 무도계를 초고속으로 조기에 은퇴할 게 확실하기 때문이다. ‘코믹 댄싱 히어로’ 늦깎이 댄서 한덕수의 무운(舞運)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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