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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과 김두관을 생각한다 여의도 대통령과 아테네의 등에는 상생할 수 있을까 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2024-09-06 20:21:29

여의도 대통령 부부의 수난 시대


문재인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총선 참전은 김두관에게는 어디 가서 대놓고 하소연도 하지 못할 선거전 막판의 최악의 돌발 악재로 작용했다. 이미지는 김두관과 김태호 두 전직 경상남도 도지사가 격돌한 경남 양산을 지역구의 선거 판세를 보도한 SBS 서울방송 뉴스 화면

여당 인사들과 보수 언론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여의도 대통령’으로 호칭하기 일쑤이다. 175석에 달하는 압도적 다수의 국회 의석을 수중에 쥐고서 윤석열 정부의 정책과 인사에 사사건건 제동을 걸어온 제1야당 당수를 향한 원망과 짜증이 진하게 묻어나는 절반쯤은 냉소적이고, 나머지 절반쯤은 악의적인 별명이다.

 

제2의 선동열과 원조 선동열 사이에는 쉽사리 넘을 수 없는 현격한 기량 차이가 엄존했듯이, 여의도 대통령은 아무리 날고뛰어도 진짜 대통령을 상대로 시쳇말로 맞다이를 들어가기가 불가능하다. 당장 어제는 여의도 대통령의 아내가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고, 오늘은 여의도 대통령 본인이 법원에 출석해 재판에 임했다. 대한민국의 권력 서열을 다시금 정리하자면 여의도 대통령은 진짜 대통령은 물론이고 진짜 대통령의 배우자에게조차 순위가 밀려도 한참 밀리는 처지다.

 

더욱이 이재명은 초대 여의도 대통령이 아니었다. 그의 앞에는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대선배 격으로 떡하니 버티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지 세 해째에 접어든 2000년 4월에 실시된 제16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한나라당은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통틀어 133석을 확보하는 대승을 일궈내며 우리나라 헌정사 최초로 야당으로서 원내 1당으로 올라서는 기염을 토했다. 입법, 행정, 사법의 3권분립 체제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국회 권력을 장악했다.

 

그렇지만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의 길을 쉼 없이 달려온 천하의 이회창마저 미처 깨닫지 못한 지점이 있었다. 여의도 대통령은 단지 여의도 대통령일 뿐이라는 냉혹하고 뼈저린 사실이었다.

 

이러한 무지와 눈치 없음에서 비롯된 오만과 허세와 방심이 이회창을 다음 해 치러진 16대 대통령 선거에서 어이없는 역전패로 이끌고 말았다. 그는 이른바 ‘이회창 대세론’에 도취해 과도한 자신감에 빠졌던 까닭에 충청권의 맹주 김종필을 싸늘하게 배척했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아들 정몽준이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와 단일화하는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치부했다.

 

87년 체제로 알려진 현행 대통령 중심제 헌법 아래에서 국회 입법권과 대통령 거부권의 관계는 작은 사마귀 한 마리와 거대한 수레바퀴의 관계와 본질상 똑같다. 진짜 대통령에 견주면 그야말로 당랑거철에 불과한 존재가 여의도 대통령임에도 여의도 대통령을 진짜 대통령을 능가하는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자로 여기는 세간의 착시현상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그 이유와 원인은 여의도 대통령의 권력이 한여름철의 국지성 호우처럼 특정 지역에서만 집중적으로 관철ㆍ발휘되는 데 있다.

 

국지성 호우가 내리는 지역을 벗어나면 햇볕이 쨍쨍하듯 야당 당사 출입구와 국회 정문만 나서면 있는지 없는지 구분이 안 되는 게 여의도 대통령이 행사하는 입법 권력의 실체이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미디어 종사자들, 특히 정치부 기자들의 시선과 세계관은 비좁은 여의도 울타리 안에 갇혀 있기 마련이다. 그 울타리 안에 지금은 각종 시사 프로그램 출연자들까지 가세해 가뜩이나 높은 인구밀도를 더더욱 높여왔다. 여의도 대통령이 과대포장이 된 상태로 대중에게 인식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배경이다.

 

마을 이장과 소크라테스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키프로스 섬 출신의 조각가 피그말리온은 자기가 만들어낸 아리따운 젊은 여성 형상의 조각상과 사랑에 빠져 나중에 결혼까지 하게 된다. 여의도 사람들은 스스로가 창조한 여의도 대통령과 사랑에 빠지는 대신에 그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정확한 직업이 무엇인지 여전히 아리송한 미국의 유명인 패리스 힐튼이 유명하니까 유명한 것처럼, 이재명을 무서워하다 보니 이재명이 무서워진 셈이다.

 

상대방이 공포의 대상으로 자리하게 되면 상대를 직시하지 못한다. 상대를 직시하지 못하면 상대와 제대로 된 정상적 싸움을 벌일 수가 없다.

 

현대 대의민주주의 정치에서의 정상적 싸움은 투표 또는 경선으로 승부를 가리는 일을 뜻한다. 그런데 여의도 사람들은 언젠가부터 이재명에게 투표 혹은 경선으로 이기기를 포기했다. 그들은 투표장이 아닌 재판정에서 이재명을 제압할 궁리에만 골몰해왔다. 따라서 이재명을 여의도 대통령으로 등극시킨 공로의 8할은 그를 투표가 아니라 판결로 이기려고 시도해온 인물들과 집단에게 돌아가야 마땅하다.

 

필지는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유학을 구실로 미국에 가지 않고 한국에 머물며 4전 5기의 불굴의 정신으로 이재명에게 계속 도전장을 내밀었다면 수십 년 후배인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에게 일방적인 정치적 파혼을 선언당하는 수모까지 겪으며 새로운미래를 무리하게 꾸려야 하는 지경으로는 내몰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바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용산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이 올해 총선에서 민심의 처절한 응징과 준열한 심판에 직면한 사건도 근본을 따지고 들어가면 현재의 집권세력이 더불어민주당에게 선거로 이길 생각은 일찌감치 단념한 채 검찰과 법원의 손을 빌려 야당 수장을 손쉽게 제거하길 꾀한 데서 출발했다.

 

김두관 전 마을 이장 겸 전 남해군수 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 겸 전 경남지사가 8ㆍ18 민주당 전당대회 당대표 경선에 출마하겠다고 발표하자 적잖은 사람들이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승산 희박한 선거에 왜 굳이 아까운 시간과 없는 돈 써가며 나오냐는 반응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되묻고 싶었다. 그럼 김두관도 남들처럼 이재명에 대한 고소고발장 작성해 검찰청이나 경찰서 민원실에 접수시켜야만 하냐고?


막스 베버는 열정과 균형감각과 책임윤리를 정치인이 반드시 체득해야 할 세 가지 자질로 제시했다. 한국에서는 여기에 한 가지 덕목이 추가돼야만 할 성싶다. 사법기관의 힘을 활용하는 측면대결을 하지 않고, 정적이나 경쟁자와 투표장에서 정면대결을 하려는 투명하고 당당한 마음가짐이라고.

 

김두관은 투표로 재미를 보기보다는 쓴맛을 훨씬 더 많이 봐왔다. 심지어 금번 총선에서는 가슴에 다 달았던 금배지가 문재인 전 대통령이 부산경남 지역 총선 유세에 돌연히 뛰어들면서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보수표가 결집하는 역풍이 부는 바람에 허망하게 날아갔다. 김두관 입장에서는 식음을 최소 일주일은 전폐하고 혼자 방 안에 들어박혀 연신 이불킥을 하여도 분이 풀리지 않을 정도의 억울하고 황당한 결말이었다.


그러나 김두관은 꾸역꾸역 다시 당내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정치인이 자신의 주장과 소신을 최종적으로 피력해야 할 공간은 유튜브 방송도 아니고, 법원 증인석도 아닌 선거 연단이기 때문이다.

 

김두관은 전당대회에서 예상대로 시원하게 미역국을 마셨다. 그럼에도 그는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건전한 공론 형성에 필요한 성가신 등에 역할을 자청했듯이 작게는 이재명의 오만과 허세와 방심을 막기 위한, 크게는 민주당의 건강한 내부 경쟁의 존속과 지속적 외연 확장을 위한 메기 역할을 자임해야만 옳다. 그는 진짜 대통령과 여의도 대통령이 하늘과 땅 차이임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베테랑 정치인들 가운데 한 명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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