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와 김수미의 공통점은
작년인 2023년도 1인당 국민총소득(GNI) 기준으로 일본을 추월한 한국은 세계적으로 자국민이 가장 활발하게 해외여행을 즐기는 나라다. 여름 휴가철이나 명절 연휴 기간 때면 외국으로 출국하는 우리나라 관광객들 때문에 인천국제공항은 북새통을 이루기 일쑤다.
그러나 나라 밖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한국인들의 식견과 안목은 흥선 대원군이 나라 안 곳곳에 척화비를 세우고 쇄국정책을 펼치던 조선왕조 말기와 견주어 크게 나아진 구석이 눈에 띄지 않는다. 저렇게 외국에 자주 나가면서도 저토록 국제정세에 무지할 수 없는 게 지금의 평균적 한국인의 자화상이라 하겠다.
일평생 고향인 쾨니히스베르크 100마일 바깥으론 외출해본 경험이 없음에도 전 세계의 영구적 평화를 실현할 방책을 담대하게 고민했던 독일의 계몽주의 철학자 칸트가 현대 한국사회의 이와 같은 모순적 광경과 마주했다면 분명 장탄식을 금하지 못했으리라.
외국어 공부는 열심히 하면서도 정작 언론에 실리는 외신 기사는 지독히 읽지 않는 한국인들이 해외로부터 전해진 소식에 오랜만에 시선을 집중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한국계 재미 정치학자인 김수미 박사가 미국 법무부에 신고하지 않고서 한국 정부를 위해 활동하다가 현지의 미국 연방검찰에 체포됐다는 뉴스였다. 그는 거액의 보석금을 납부하고서 일단은 석방된 상태다.
미국명으로 테리 수미인 김 박사는 미 중앙정보국 CIA에서 대북한 정보분석관으로 근무했으며, 현재는 미국의 대표적 외교 관련 연구기관인 미국외교협회(CFR)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한국이 미국에 은밀히 심어놓은 세작, 곧 스파이로 단정하기에는 너무나 유명한 직장에서 너무나 공개되기 쉬운 작업에 종사해왔다.
김수미 박사가 위반했다는 외국대리인등록법(FARA)의 정확한 내용이 뭔지를 필자는 모른다. 솔직히 알고 싶지도 않다.
관건은 우리나라 정보당국 즉 국가정보원의 일솜씨가 지나치게 미숙하고 서툴기를 탓하기 이전에 김수미 박사를 얽어맨 미국 사법당국의 업무처리 방식에서 자꾸만 괘씸죄 냄새가 짙게 난다는 데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과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의 전격적 불출마 선언에 이르는 격동의 대선 정국을 맞이해 미국 정부가 한국을 비롯한 주요 우방국들의 군기 잡기와 줄 세우기에 착수한 흔적이 역력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시작한 지구촌 차원의 기강 확립 캠페인의 최초의 희생양이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 미합중국 입장에서 한층 더 만만하게 여겨진 한국과, 미국 조야에서 한국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해온 재미 활동가 혹은 로비스트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김수미 박사는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와 공교롭게도 세 가지 우연한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첫째는 1972년에 서울에서 태어났다는 점이다. 둘째는 이른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했다는 점이다. 셋째는 값비싼 명품을 밝히다 발목이 잡혔다는 점이다. 물론 결정적 차이점도 존재한다. 김건희 파동은 전적으로 철저한 내수용 스캔들이라는 점이다. 김 여사의 거취가 어떻게 정리되든 간에 김건희의 행적에서 한국 외교가 얻어야 할 교훈과 시사점은 사실상 전무하다시피 하다.
반면, 12살에 어머니와 함께 신대륙으로 이민을 간 김수미 박사가 오랜 세월 그곳에서 쌓아온 화려한 경력과 탄탄한 인맥에도 불구하고 40년이 지나도록 미국 주류 사회에서 여전히 겉도는 현실은 한미 관계의 본질에 관해 우리가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노태우 정신으로 트럼프 리스크를 극복하자
한국과 미국 양국 관계는 김건희 여사가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에게 보낸 텔레그램 문자 메시지의 내용을 잠시 차용한다면 “생사를 가르는 여정을 겪어온 동지”적 혈맹 관계로 줄곧 칭송돼왔다. 대신에 혈맹은 혈맹이되 종속적이고 불평등한 혈맹이었다. 이는 미국에서 한국을 위해 일하는 이들의 파란만장한 운명을 관찰하면 뚜렷이 파악할 수 있다.
포드 행정부와 카터 행정부는 워싱턴포스트지의 폭로기사를 구실로 재미 로비스트 박동선 씨를 의회 청문회장에 세워 톡톡히 망신을 주었다. 이 사태는 닉스의 하야를 초래한 워터게이트 도청 사건을 모방해 ‘코리아 게이트(Korea Gate)’로 명명되었다. 박동선 씨의 대미 로비는 박정희 정권의 인권탄압을 옹호했다는 격렬한 비난을 샀기에 우리나라에서도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미국 해군 정보국에서 컴퓨터 정보분석관으로 복무한 김채곤 씨가 주미 한국대사관 무관에게 군사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미국 연방법원에서 중형을 선고받은 이른바 로버트 김 간첩 파문이 터졌을 무렵은 한국이 미국 못잖은 제도적ㆍ절차적 민주화를 달성해낸 때였다. 한반도 남쪽에서 독재정권이 집권하든, 민주정부가 수립됐든 미국이 한국을 대하는 태도와 기조는 언제나 한결같았다. 이익이 일치할 때는 동맹국, 이해관계가 엇갈릴 적에는 적성국. 첨언하자면, 1935년생인 박동선 씨와 1940년생 김채곤 씨 모두 아직 생존해 있다. 그들의 건강과 안녕을 진심으로 기원하는 바이다.
한국과 달리 미국은 정부 수준에서 무슨 짓을 자행해도 과거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 모국을 방불하게 하는 면책특권을 만끽해왔다. 심지어 용산 대통령실을 미국 첩보조직이 도청하고 있음이 드러났음에도 윤석열 정부는 한여름 원두막 위에서 막걸리 한 잔 걸치고 잠자다 수박 서리에 나선 동네 악동을 우연히 발견하고는 일부러 모른 체해주던 옛날 인심 후덕하던 시절의 시골 촌로 같은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을 뿐이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인내심 시험은 올해 2024년 11월 실시될 예정인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만약 공화당이 승리해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 그 난도가 극한의 단계로 치달을 전망이다. 왜냐? 트럼프 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향한 애정과 믿음을 벌써부터 공공연히 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과 트럼프 두 난폭자(Strongman)의 브로맨스는 북한의 핵무력 증강과 미사일 기술 고도화와 정비례해 한층 더 끈끈하고 두터워진 양상이다. 남한을 겨냥해 서슴없이 오물풍선을 날려 보낸 북한이 트럼프를 대상으로는 최근에 어떠한 독설과 막말도 퍼붓지 않은 게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트럼프는 1기 집권기에 미처 완수하지 못한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를 확실하고 강력하게 밀어붙일 것으로 예측된다. 따라쟁이 일본 역시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게다. 기시다 후미오 현 총리가 수상직을 유지하든, 아니면 다른 인물로 정부 수반이 교체되든지에 상관없이 미국이 북한과 공식적으로 수교하기 무섭게 일본도 평양에 상주대사관을 개설할 터이다. “미국이 하면 일본도 한다”는 미일 동일체 원칙은 모택동과 닉슨의 미중 화해 당시에 이미 명징하게 관철ㆍ입증된 진리이다.
미국과 북한의 예정된 유착과 밀월에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해답은 ‘노태우 정신’을 계승ㆍ발전시키는 데 있다. 독자들의 착각과 오해를 예방하고자 반복해 서술하는 바이다. 노태우 정신의 계승이다. 이미 진부해질 대로 진부해지고, 남용될 대로 남용된 노무현 정신의 계승과 발전이 아니고.
직업군인으로서의 노태우는 최악의 정치장교였다. 허나 실리주의 외교를 추구했던 대통령 노태우는 외치에 관한 한 훌륭하고 모범적인 통치자였다.
김정은과 트럼프의 불경스러운 야합을 막을 수 없다면, 북한과 일본의 음습한 뒷거래를 차단하기 어렵다면 한국 외교관들이 부지런히 찾아가야 할 곳은 북경과 모스크바이며, 대한민국 대통령이 시급히 만나야만 할 대화 상대는 습근평이고 푸틴이다. 신(新) 북방외교 정책의 과감한 추진으로 트럼프와 김정은의 밀월을 견제하고, 북한과 일본의 한국 고립 책동을 무력화해야 한다. 남들은 전부 국익에 바탕한 실익을 좇는데, 한국 홀로 무용하고 한물간 이념 외교를 고집하는 행동은 자해적이다 못해 아예 자멸적이기까지 하다.
위대한 국가는 조국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한 이들을 절대 잊지도, 버리지도 않는다. 신생 미국이 건국 200년도 되지 않아 세계 최강대국으로 도약한 근본 비결이다. 정부여당은 김건희 여사를 보호하려는 노력의 10분의 1만이라도 김수미 박사의 금의환향과 영구 귀국을 성사시키는 데 기울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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