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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과 노태우의 닮은 점은 조기 대통령 선거가 국민의힘에 외려 유리해 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2024-06-27 00:25:24

‘철수정치’의 원조는 노태우


노태우 전 대통령이 대선운동 과정에서 공약한 것처럼 중간평가를 국민에게 물었다면 그는 여소야대 구도를 인위적으로 허물고자 3당 합당을 결행했다가 YS로부터 되치기를 당하는 굴욕을 피했을지 모른다. 이미지는 노태우 민정당 후보가 중간평가를 공약했다는 소식을 보도한 옛 경향신문 지면최태원 SK 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세기의 이혼 소송은 노 관장의 부친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통치기를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새롭게 제공했다.

 

노 전 대통령이 전두환과 어울려 12ㆍ12 군사반란을 주도했다는 명확한 역사적 사실은 새삼스레 거론할 나위조차 없으리라. 이는 노태우의 씻을 수 없는 오점으로 영구보존될 테다.

 

대통령으로서의 노태우는 군인 출신이라는 이력이 무색하게 강단과 기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줄곧 받아왔다. 이를테면 노태우 정부 시절 보건복지부 전신인 보건사회부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을 차례로 역임한 김종인 전 의원은 자신의 회고록인 「영원한 권력은 없다」에서 노 전 대통령이 ‘물태우’란 별명으로 불린 것은 유약한 성격 탓이 컸다고 지적했다.

 

대통령 노태우의 우유부단한 면모는 그가 국론 분열 초래와 사회경제적 부작용 유발 등을 이유로 제시하며 중간평가를 실시하지 않겠다는 의중을 밝힌 데서 여실하게 입증된다.

 

집권 민주정의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노태우는 두 가지 간판 공약을 내걸고 대통령 직선제 선거에 나섰다. 하나는 주택 200만 호 건설 정책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대통령 임기 중에 그에 대한 재신임 여부를 묻는 투표 성격을 띠는 중간평가를 실시하겠다는 약속이었다.

 

건설자재 품귀 파동 같은 숱한 우여곡절 끝에 일산, 분당, 평촌, 산본, 중동 1기 신도시들이 차츰차츰 제모습을 드러내며 주택 200만 호 건설 사업은 계획대로 이행돼갔다.

 

문제는 중간평가였다. 1987년 12월 치러진 대선에서 36.6 퍼센트의 득표율밖에 거두지 못한 데다 이듬해 봄에 실시된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사상 초유의 여소야대 구도가 형성되면서 노태우를 위시한 여권 전체는 심각한 위기감과 불안감에 휩싸인다. 야권의 집요한 파상공세에 연일 시달리는 난국을 확실히 타개할 모종의 획기적인 특단의 대책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었다.

 

노태우와 함께 일한 경험이 있거나 그를 가까이에서 관찰할 기회를 가졌던 인사들은 이구동성으로 노 전 대통령을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는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인물로 묘사했다. 어쩌면 이는 그에 대한 예의와 배려가 듬뿍 담긴 인물평인지 모른다. 실제의 대통령 노태우는 눈앞에 돌다리가 멀쩡히 있어도 번듯한 철근 콘크리트 교량이 지어질 때까지는 개울을 건너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시의 집권세력 입장에서는 회심의 승부수로 주효할 수도 있었을 중간평가 공약을 1989년 6월 8일 청와대에서 진행된 장명수 기자와의 한국일보 창간기념 인터뷰를 통해 노 전 대통령 본인의 입으로 백지화한 사건은 일종의 예정된 귀결이었다.

 

김종인의 기억에 입각하면 노태우는 500개 항목에 달하는 대선 공약의 진척 현황을 일일이 점수로 매겨놓은 도표를 집무실 벽에 걸어놓을 정도로 꼼꼼하고 성실했으되, 과감함이나 대담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노 전 대통령에게 중간평가를 국면 전환을 도모할 승부수로 던지라는 정권 일각의 주문은 현재의 윤석열 대통령에게 시국 수습책의 일환으로 영부인 김건희 여사를 친정집으로 돌려보내라는 조언만큼이나 받아들이기 버거운 요구였으리라.

 

그럼에도 필자는 노태우가 국민투표 형식의 중간평가를 실행에 옮겼어야 옳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유권자들과의 약속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세 명의 노련한 야당 지도자들의 시시각각 조여오는 포위망으로부터 노태우가 탈출할 유일한 활로가 중간평가였던 까닭에서이다.

 

역사에서 가정법은 부질없는 노릇이란 이야기는 이미 진부하고 식상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하나마나한 얘기가 여전히 왕성한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일어나지 않은 사태들에 관한 상상의 나래를 펴는 과정에서 의미 있는 복기와 반추가 도출되는 덕분이다.

 

노태우가 중간평가 공약을 공식 철회한 시점은 서울에서 성공적으로 개최된 88년 하계올림픽의 여운과 감동이 국민들의 가슴속에 아직 짙게 남아 있는 때였다. 더욱이 분배의 정의는 미흡했으되 한국경제가 고도성장을 만끽하던 무렵이었다. 지금처럼 빈번하고 체계적인 여론조사가 수시로 이뤄지고 있었다면 노태우를 기꺼이 재신임하겠다는 응답자가 중간평가의 무대와 공간을 활용해 그를 악착같이 퇴진시키고야 말겠다는 답변자와 견주어 압도적으로 다수였을 터이다.

 

이는 노 전 대통령이 무난하게 중가평가 시험을 통과했으리라는 뜻이다. 민심의 동향에 민감했던 김대중 평화민주당 총재가 중간평가 무산에 크게 반발하지 않았던 점은 매우 의미심장한 대목이었다. DJ는 중간평가 성공에 힘입어 원기를 회복한 노태우 정권이 얼마나 강력한 권력으로 재탄생할 수 있는지 확연히 꿰차고 있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중간평가의 정공법 대신에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와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를 끌어들여 3답 합당을 성사시키는, 인기 개그맨 박명수를 연상시킬 만한 측면대결의 우회로를 선택했다. 그 결말은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다. 민정계는 민주계에 흡수돼 소멸했고, 노태우는 김영삼 정부가 추진한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의 직격탄을 맞아 감옥에 갔다.

 

노 전 대통령이 중간평가 공약을 유야무야하지 않고 원래 약속한 바대로 실천해 국민들로부터 재신임을 받았다면 노태우 다음의 대한민국 대통령은 박태준이나 박철언 양박 가운데 하나였을 수도 있다. 노태우가 소심하게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이리저리 돌고 돌아 김영삼과 김대중을 차례차례 대통령으로 만들었다고 하여도 지나친 허풍만은 아닐 듯싶다.

 

윤석열의 늪에 빠진 국민의힘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족보와 뿌리를 따지자면 민주화운동 투사들이 즐비했던 김영삼의 통일민주당보다는 수구보수적 공안검사들이 요소요소에 포진했던 노태우의 민주정의당에 훨씬 더 밀접하게 가닿는다. 노태우는 자기의 임기를 안전하게 보장받는 대가로 그가 당수로서 이끌던 정당을 희생시켰다. 윤석열 대통령은 5년 임기를 무사히 채우고자 여당이 정권을 재창출할 가능성을 현저하게 줄여놓고 있다는 견지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과 대단히 흡사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국민의힘 사람들은 더 늦기 전에 냉정하고 객관적인 태도로 정세분석에 임해야 마땅하다. 한국 현대 정치사에 미증유의 기괴한 존재일 ‘군소 야당’ 신세로 남은 3년을 허송세월하다가 야당에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정권을 내줄 것인가? 아니면, 육참골단의 결연한 심정으로 윤석열 대통령과 단호하게 절연하고 조기 대선을 자청해 민심의 재신임을 받을 것인가?

 

‘윤석열의 늪’과 ‘김건희의 늪’은 ‘탄핵의 강’이나 ‘조국의 강과’는 근본적으로 차원을 달리하는 위기이고 난관이다. 강물은 수질을 부지런히 정화하면 그럭저럭 물고기들이 서식할 수가 있다. 반면, 늪은 도무지 정화해 사용할 방법이 없다. 흙으로 메우는 것만이 답이다.

 

윤석열의 늪과 김건희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며 이대로 3년이 헛되이 흐르면 국민의힘은 완전히 회생 불능이다. 따라서 국민의힘 스스로가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단축을 주장하며 조기 대선을 선창해야 한다. 시간은 윤석열 대통령 부부와 억지 동행하는 국힘의힘 편이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여당에게 조기 대선의 최대 장점은 윤석열 명의가 아닌 국민의힘의 이름으로 선거전을 치를 수 있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 이재명’의 리턴 매치로 변질한 올해 22대 총선과는 판이하게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시쳇말로 ‘맞다이’로 붙을 수 있다. 정당 지지율만 놓고 보면 국민의힘이 더불어민주당에 그리 밀리지를 않는다. 오히려 앞서는 경우마저 흔하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여러모로 여건상 유리했던 중간평가를 유약하게 회피함으로써 정부여당이 기사회생할 기회를 결국은 놓쳤다. 임기 단축 형식으로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만 있다면 국민의힘은 집권 기간을 추가로 5년 더 연장할 수 있는 천우신조의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조기 대선에서 승리해 팔팔하게 기력을 되찾은 국민의힘 앞에서 175석 거대 민주당은 다윗이 던진 돌팔매를 얻어맞은 골리앗처럼 힘없이 쓰러지리라. 그러니 국민의힘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끝내 던지지 못하고 철수시킨 비장의 승부수를 사즉생의 각오로 분연히 띄우기 바란다. 똘똘 뭉치면 살고, 뿔뿔이 흩어지면 죽는 시대는 이제 지났다. 지금은 대담하면 흥하고, 소심하면 망하는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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