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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과 김용민① : 진중권이 잃은 것과 얻은 것 공희준 편집위원 2020-02-10 16:12:19

진중권판 제8의 전성기


진중권은 논리의 예리함이 아닌 위치(스탠스)의 정확성으로 전성기를 다시 맞이하고 있다. (사진 박진선 기자)

인기는 상대적이다. 나의 인기는 너의 인기 없음을 뜻하고, 당신들의 전성기는 우리들의 암흑기를 의미한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이하 진중권)가 요즘 그야말로 대세다. 진중권의 삶에서 전성기 아닌 시기가 언제 있었겠느냐만 지금 그가 맞이한 전성기는 개그맨 박명수의 제8의 전성기 못잖은 새로운 성가와 평판을 진중권에게 안겨주고 있다. 현재 진중권의 페이스북 계정은 크고 작은 언론매체의 기자들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출입처로 자리매김했고, 일반 누리꾼들에게는 주기적으로 꼭 들러야만 하는 성지순례의 장소로 대접받고 있다.


진중권은 필자와 같은 이름 없는 전직 카피라이터는 감히 넘볼 수조차 없는 엄청난 명망가이다. 그는 “유명해서 유명한” 패리스 힐튼 부류의 괜한 유명인들과는 본질적으로 결이 다르다. 진중권은 거의 전적으로 스스로의 재능과 실력과 노력에 기반해 자신의 명성을 쌓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순전히 거품투성이에 지나지 않는 패리스 힐튼의 선천적인 유명함과 달리 진중권의 유명함은 근본 있고 실체 있는 지속가능한 유명함이라고 하겠다.


진중권은 우리나라에서 미학을 대중화시킨 ‘국민 미학자’이다. 팔방미인을 방불하게 만드는 진중권의 종횡무진하는 전방위적인 맹활약 덕분에 비로소 독립된 학문 분야로서의 미학은 한국사회의 대중에게 그 존재와 이름를 폭넓게 알리게 되었다. 그는 조갑제 전 월간조선 사장이 오랜 세월 공들여 구축한 박정희 신화의 허구성과 모순성을 풍자적으로 유머러스하게 폭로한 당대의 걸출한 논객이자 비평가인 동시에, 사이버 공간이 깊이 있는 담론의 생산지가 될 수 있음을 직접 증명해낸 뉴미디어 문화의 선구자 겸 개척자이기도 했다.


진중권의 영향력과 파괴력은 현실 정치에서도 이미 그 빛나는 진가를 발휘한 적이 있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오프라인에서 독자 상대의 책으로, 진중권은 온라인에서 다수의 네티즌들을 대상으로 삼은 챗(Chat)으로 노무현 돌풍의 진원지 구실을 톡톡히 했었다. 노풍이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을 강타한 그때는 강준만과 진중권이 힘을 합치면 정말 못할 일이 없을 것 같은 신나는 축제분위기였다.


변희재에게 의외의 일격을 맞다


진중권은 필력에 비교해 언변이 달리는 것으로 한동안 통했다. 진중권과 보수 이데올로그인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 사이에 2012년 가을에 펼쳐진 대면 형식의 일대일 토론은 이와 같은 대중의 인식을 결정적으로 고착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사망유희」라는 제목 아래 북방한계선(NLL)을 주제로 열린 이 토론회에서 진중권의 패인은 준비 부족에 있었다. 그러나 상대방인 변희재 역시 말발이 필력에 미치는 못하는 유형의 인물임을 감안하면 진중권은 토론의 달인과는 확실히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만만하게 여겼던 변희재에게 일격을 당했다는 뼈아픈 회한과 반성의 여파였을까? 진중권의 말발은 팟캐스트 「노유진의 정치카페」를 정기적으로 진행하면서 나날이 괄목상대로 일취월장했다. 이 방송에는 진중권 외에도 지금은 고인이 된 노회찬 의원과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동반출연했다.


노회찬과 유시민 전부 말발이라면 대한민국에서 둘째라면 서러울 사람들이었다. 두 달변가와 나란히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며 진중권은 드디어 말발로도 득음의 경지에 이르렀다. 청출어람이라고, 필력은 물론이고 말주변에서도 그는 유시민을 능가하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의 궁극적 목적이 검찰 장악인지, 아니면 검찰 개혁인지를 둘러싼 텔레비전 생방송 토론에서 진중권은 막무가내로 정권의 입장만을 두둔하는 유시민을 발군의 입심을 뽐내며 완벽하게 압도했던 것이다.


진중권, 전성기의 운동능력은 상실했지만



진중권이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건 생각 외로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PC통신 시절부터, 인터넷 토론방 초창기부터, 그가 조선일보 홈페이지 독자마당(세칭 조독마)에서 밤의 주필을 자처하면서부터, 진중권 불후의 역작인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가 출간될 무렵부터 그를 꾸준히 알아온 사람들은 실질적으로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글쟁이로서의 진중권의 재기와 날카로움은 그가 민주노동당 지지자들이 모여 만든 인터넷 토론장인 진보누리의 공개게시판에서 사이트의 좌장이자 흥행사 구실을 맡아할 즈음에 정점을 찍었다. 당시의 그는 개떡 같은 스탠스로도 주옥 같은 글발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어느 상황, 어느 각도에서도 환상적 득점포를 터뜨릴 수가 있었다.


정치와 문화 등의 상부구조가 경제적 토대의 산물이듯이, 온라인은 오프라인의 반영이다. 오프라인 세상의 제도권 정당들의 수명이 짧으니, 여기에 조응해 출현한 온라인 정치토론 사이트들의 수명 또한 하루살이이기 마련이었다. 인쇄물 형태로 보존된 글들을 제외한 최전성기 시절의 진중권의 글들이 현재는 많이 전해지지 않는 까닭이다. 이는 영상물로 본격적으로 기록되기 이전에 선수로서의 기량이 황금기를 구가했던 축구선수 이회택이나 농구선수 신동파의 모습을 우리가 볼 수 없는 일과 마찬가지이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열독하는 진중권의 글들은 전성기 시절의 그의 글들보다 재치와 예리함이 많이 사라지고 무뎌졌다. 진중권은 운동능력의 측면에서는 두드러지게 하락한 셈이다. 선수가 나이가 먹음으로 말미암아 운동능력이 저하되면 경험과 노련미로써 이를 상쇄하려 시도하는 법이다. 축구에서는 위치선정 솜씨가 탁월해지고, 야구에서는 선구안이 확연히 향상된다.


논객과 글쟁이의 세계에서는 무뎌진 순발력과 사라진 재기발랄함을 어떠한 방법으로 만회할까? 다름 아닌 선구안과 위치선정이다. 선구안은 세간의 허다한 문제들 중 자기가 남들과의 논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쟁점과 현안을 감별해내는 안목을 가리킨다. 위치선정은 보편적 상식과 교과서적 원칙에 부합하는 논리를 마음 놓고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는 배산임수의 명당자리를 선점하든 기술을 지칭한다. 


1963년생으로 올해 우리나이로 58세가 된 진중권은 재치 만점의 기지와 면도날 같은 예리함을 진즉에 잃어버렸지만 그 대신 연륜에서 묻어나는 원숙한 선구안과 탁월한 위치선정 역량을 터득했다. (②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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