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민 PD는 586 세대의 후배 세대들에게 지피지기의 전략적 자세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그는 586 세대를 극복하려면 그들이 왜 강하고 단단한지를 후배 세대들이 체계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음을 드러내지 않고 은근히 촉구하고 있었다.
공희준(이하 공) : 어른들 말 잘 듣는 온순하고 순종적인 청년들을 선호하는 경향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야당인 자유한국당이 피장파장입니다. 두 당 전부 당내에 청년 당원들도 많고, 젊은 당직자들도 적지 않을 텐데 자기들이 응당 가야 할 자리를 당 지도부가 내리꽂은 외부영입 인사가 사실상 가로채가도 반발과 저항이 전연 없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달랐습니다. 김대중 총재나 김영삼 총재가 공천을 주지 않으면 공천에서 탈락한 정치인들이 동교동이나 상도동으로 쳐들어가 시쳇말로 요란하게 깽판을 쳤습니다. 정말 난리도 이만저만한 난리가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난동은커녕 당대표실 문짝에 발길질했다는 소식조차 들리지 않습니다. 애들이 순해도 너무 순해요. 청년 당원들이란 사람들이, 젊은 당직자라는 친구들이 저렇게 얌전하고 순종적이니 제가 당 지도부였어도 마음 놓고 낙하산 인사 마구 투하했을 듯합니다.
586 세대의 양보와 자기 희생이 필요하다
김용민(이하 김) : 지금 외부에서 영입 형식으로 발탁되는 청년들을 살펴보면 정치인으로서의 자질과 역량과 리더십이 명징하게 검증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각자의 생활전선에서 열심히, 진정성 있게 살아왔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진 정도가 대부분입니다. 저는 이와 같은 현상이 정치에 대한 혐오와 불신이 극에 달한 우리나라의 현실을 반영한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직업 정치인으로서의 투철한 사명감과 소명의식을 갖고서 정치에 뛰어드는 젊은이들이 너무나 적다는 생각도 들고요.
김용민 PD에게는 개인적으로 최악의 흑역사일 2012년의 19대 총선에 출마했던 일에 대해 그는 이후로 후회스럽다는 이야기를 자주 해왔다. 그 자신이 강조하는 직업 정치인으로서의 투철한 사명감과 소명의식을 품고 선거에 나가기로 결심한 것은 아닌 탓이었다.
586 세대에는 정치를 천직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청년들이 586 세대에게 정치적으로 압도당하는 중요한 한 가지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는 586 세대가 다른 세대들과의 싸움에서 연전연승을 거두며 자신들의 지위와 기회와 가능성을 꾸준히 보장하고 확대재생산해온 결정적 원인이기도 합니다. 후배 세대가 586 세대에게 정치권에서 지속적으로 압도당해온 상황이 저는 매우 속상합니다.
공 : 제가 오늘 김용민 PD님께 드리는 질문은 전반적으로 지금 이 순간의 뜨거운 쟁점들을 다루지 않고 있습니다. 1차적 목적은 인터뷰 요청에 주저 없이 응해준 선수를 보호하는 데 있습니다. 두 번째 목적은 더 본질적인데, 지금 시점의 현안에 대한 견해를 들어보면 솔직히 의외로 재미가 없습니다. 매일 그 소리가 그 소리거든요. 더구나 어차피 검색하면 다 나오니까요. 이미 다른 매체들에서 했기 때문입니다.
김 : 저도 이러한 유형의 인터뷰가 좋습니다. 남들은 물어보지 않는 걸 질문하시니까요. (잠시 말을 쉬었다가) 제가 90년대 초반 학번에 해당하는 선배님들을 상당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형들이 아직도 보좌진으로, 중간 당직자로 머물고 있습니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도, 위로 올라가지도 못하고 있어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괜히 저까지 열불이 나더라고요.
공 : 여의도 의원회관에 가보면 심지어 저보다 연상인 보좌관들도 있습니다. 보좌관 다음 순서는 본인이 직접 출마하는 겁니다. 생활인으로서 안정된 일자리를 잃는다는 뜻입니다. 제가 그래서 저보다 나이 많은 분들에게 “형, 이제 후배들에게 자리 좀 내줘야 하지 않아요?”라는 말을 함부로 못합니다. 그러면 “큰애 이제 겨우 대학교 새내기이다”, 또는 “딸내미 올초에 어학연수 나갔다”는 식의 짠하고 서늘한 대답이 돌아올 테니…. 만약 그런 서글픈 응답을 듣고는 제가 뭐라고 하느냐? “형, 힘내세요!”라고 위로한 후에 슬그머니 자리를 뜹니다. 90년대 초반 학번들이 덩달아 벌써 십 몇 년째 교통정체에 직면한 말 못할 까닭입니다.
김 :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카리스마적 정치 지도자가 당시의 청년 세대를 요소요소에 과감하게 심어준 덕택에 지금의 586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 누구도 그와 같은 권위와 통솔력을 행사하지를 못합니다. 노무현 대통령 등장 이후로 당청이, 즉 여당과 청와대가 분리되는 구조가 형성돼왔습니다. 강력한 보스가 정당과 청와대를 전일적으로 이끌던 시대와는 다르게 젊은 신세대 정치 지망생들의 집단을 특정인이 나서서 밀어주고 당겨주기가 더 이상은 불가능입니다.
공 : 요즘 청와대에서 친문 후보들을 대거 총선에 내보낸다고 해서 설왕설래가 무성한데, 제가 친문의 깃발 아래 선거에 출마하려는 인물들의 면면을 보고서 깜짝 놀랐습니다. 다른 데 놀란 건 아니고, 나이들이 너무들 많았습니다. 어떻게 된 게 거의 모두가 내일모레면 환갑인 분들이에요. 친노는 나름 신상이었는데, 친문의 주류들은 연식이 꽤 됐습니다.
김 : 쉽게 말해서 다들 같이 늙어온 셈입니다.
필자가 김용민 PD를 처음 만났을 무렵 그는 20대 후반의 혈기왕성한 청년이었다. 지금의 그는 이미 오래전에 불혹의 나이에 다다랐다. 비판의 주체도, 비판의 대상도 나란히 늙어가는 맥 빠진 우울한 회색빛 공간이 현재의 한국사회이다. 나는 우리 사회의 담론 투쟁이 나날이 저열해지고 험악해지는 데에는 논쟁의 주역들이 예전처럼 몸이 따라주지 않는 탓도 크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몸체가 힘들고 느려지면 그 반대급부로 입이 거칠어지면서 말이 많아지는 법이다.
김 : 저는 586 세대가 이쯤에서 자기들이 부와 권력과 명예를 지나치게 오랫동안 누려왔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며 후배 세대들에게 통 크게 양보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양보의 미덕과 희생의 결단 없이는 586 장기집권 체제가 깨지기 힘듭니다. 인위적 물갈이를 단행하는 건 몇 배는 더 힘들 테니까요.
여기에 세대교체의 딜레마가 있습니다. 인위적 물갈이가 힘든 건 분명 맞는데, 586 세대의 경험과 조직력과 네트워크를 후배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인 이유에서입니다. 586 세대의 최대 자산은 정치적 승리를 경험한 데 있습니다. 이 집단적 승리를 함께 체험하고 공유해본 기억이 1970년 이후에 태어난 세대에게는 없다시피 합니다.
공 : 그러고 보니 2002년의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특정한 세대가 거둔 정치적 승리의 기억으로 자리매김하기는 어렵겠습니다. 최근 일어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는 기성세대가 높은 비율을 점유하는 중간층의 민심이 박근혜 정권에 완전히 등을 돌린 일이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고요. 한데 이 시장에서도 김용민 PD님께서 막내급 아닌가요?
김 : 시장이라면 무슨 시장을 가리키시는지?
공 : 인터넷 방송에서 시작해 팟캐스트를 거쳐 유튜브로 이어지는, 뉴미디어에 기반한 시사평론의 영역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김용민 PD님이 20년 가까이 계속 막내입니다. 40대 중반의 차장이 사무실 막내라는 일반 기업체들의 상황과 별다른 차이가 없습니다.
김 : (강하게 손사래를 치며) 저희 쪽에는 저보다 어린 친구들도 많습니다. 게다가 제 위로 또 누가 있겠어요. 형님, 제 위로 없어. (웃음)
공 : 밑으로도 없잖아요. 한마디로 위아래가 없어. (웃음)
김 : 나이를 기준으로 밑으로는 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제가 현실 정치에도 잠깐 몸을 담았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이 특출 나게 능력이 뛰어난 덕분에 정치를 잠시나마 했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엄밀히 표현하면, 정치적으로 로또복권에 운 좋게 당첨됐었다고 말해야 정확합니다.
당의 공천을 받아 선거에 나간 일은 그야말로 얻어걸린 기회였습니다. 저는 명성 높은 학생운동권 리더가 아니었습니다. 화려한 스펙을 주렁주렁 빛나게 달고 있는 엄친아 모범생도 아니었습니다. 로또 맞을 확률의 행운이 우연히 하필이면 저를 찾아왔었습니다. (씁쓸한 어조로) 결국에는 실패했지만요.
대중을 상대할 때의 방송인 김용민은 허세가 과하다고 느껴질 만큼 거침이 없다. 반대로, 개인 단위에서 접하는 후배 김용민은 말이나 행동이 무척이나 신중하고 겸손하며 조심스럽다. 그는 자신이 남들보다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진심으로 믿는 기색이었다.
막말 파문의 후유증에 오랫동안 시달려
공 : 제 아내가 텔레비전을 시청하다가 저에게 문자메시지를 날리곤 합니다. “여보, 지금 김용민 PD 텔레비전에 나와”라고요. 나오기는 나오는데 맥락 없이 나오기 일쑤라고 합니다. 정치적으로 시끄러운 일만 터지면 자료화면으로 출연한다는, 아니 출연당한다는 것입니다.
독자들에게 살짝 귀띔하자면 김용민 PD는 우리 부부 결혼식의 사회자였다. 필자와 견주어 엄청난 유명인인 데 더해, 나와는 정치적 결을 크게 달리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는 커다란 부담과 불이익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던 내 결혼식의 사회자 역할을 그는 흔쾌히 맡아주었다.
김 :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웃음) 막말과 관련된 사건만 일어났다 하면 시도 때도 없이 저를 불러내더라고요.
공 : 김용민이 디시인사이드의 짤방도 아니고.
김 : 제가 방송출연은 사실상 금지된 상태였음에도 어디에서 막말 얘기만 뉴스로 나오면 제 얼굴이 화면에 거의 고정으로 나타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예 정식으로 출연료를 달라고 방송사 측에 요구할까 잠깐 진지하게 고민했던 적조차 있습니다.
공 : 정치인도 아니고 공무원도 아니고 일개 자연인에 불과한데, 남의 얼굴을 이용했으면 초상권 사용료를 당연히 지급해야 합니다.
김 : 제가 그 때문에 출연료를 달라고 할까 생각했던 겁니다. 제 이름 자기들 부르고 싶을 때 부르고, 제 얼굴 자기들 쓰고 싶을 때 썼으면 그에 상응하는 출연료를 줘야죠. (웃음)
공 :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와는 오래된 악연이시죠?
김용민 PD는 빙그레 웃는 걸로 답변을 대신했다. 김용민과 변희재 모두 나와는 오랫동안 개인적 친분을 이어오는 관계이다. 살다 보니까 어떻게 그렇게 됐다.
공 : 변희재 대표가 저쪽 동네에서는 막내입니다. 이쪽 진영에서는 김용민 PD가 막내이고요. 제가 활동하는 무리 안에서는 또 제가 막내에요. 이념과 정파, 노선과 업종을 막론해 우리가 벌써 20년째 막내입니다. 어떤 잣대로 재단해 막내냐? 다음번 회의나 모임에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잘릴 걱정이나 공포 없이 찬반 의견을 표시할 수 있는 사람들을 기준으로는 김용민이, 변희재가, 그리고 공희준이 막둥이입니다. 우리들보다 어린 친구들은 어떠한 안건과 문제에 관해 찬성인지, 반대인지 공개적으로 발설을 안 해요. 회의 내내, 모임 내내 돌부처처럼 않아서 가만히 듣기만 합니다.
김 : 아, 찬반을 표시하는 막내! 형님께서 무슨 취지로 말씀하시는지 이제야 선명하게 이해가 됐습니다.
공 : 어린 친구들이 주로 담당하는 역할이 뭐냐? 머리수 채우며 조용히 앉아 있다가 회의비 받은 다음 순식간에 사라지는 일입니다. 김용민이 자기 시장에서 왜 막내냐? 타의에 의해 거취에 변동이 생길 위험성을 개의치 않고 자기의 견해를 스스럼없이 밝힐 수 있는 사람 중에서는 제일 어리잖아요. 제 예상으로는 우리가 나이 70이 넘어도 여전히 각자가 속한 범위와 무리 안에서 막내일 것만 같습니다. 나도 이제 머리칼이 허연데. (④편에서 계속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