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니발이 불세출의 명장인 건 실수를 범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실수를 인정하고 이를 만회하는 속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무척이나 빨랐던 까닭이었다. 그는 속임수를 속임수로 되갚을 궁리에 이내 착수했다.
황소의 뿔에 불을 붙여 적진으로 돌격시키는 공격 방식은 말로는 쉬워도 실제로 실행하기는 결코 녹록한 작업이 아니다. 사전에 치밀한 기획과 철저한 준비가 요구된다. 한니발과 카르타고군 병사들은 적에게 목덜미가 잡힌 정신없는 와중에 신속히 이 일을 해냈다. 그들은 2천 마리의 황소들의 뿔에 횃불을 매달아 협곡의 입구를 향하게끔 천천히 몰았던 것이다.
소들은 처음에는 온순하게 느릿느릿 걸어갔다. 하지만 불길이 털과 피부에 옮겨 붙자 뜨거운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난폭하게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소들의 몸통만 탄 것이 아니었다. 불똥이 튄 수풀과 관목들도 덩달아 불타올랐다.
계곡 입구를 지키던 로마의 수비병들은 충격과 공포로 거의 기함할 지경이었다. 그들의 눈에는 거대한 불덩이가 자신들을 덮쳐오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혼비백산한 병사들은 적군을 막으라는 명령 따위는 모두 잊고 본진으로 줄행랑치기에 바빴다. 계곡 입구를 간단히 탈환한 한니발은 덤으로 적지 않은 분량의 전리품까지 쏠쏠하게 챙겼다.
파비우스는 병사들이 잡아온 몇 마리 소를 보고서야 사태의 전말을 직감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날이 밝기 전까지는 별다른 대응책을 강구할 수가 없었다. 조명탄도, 탐조등도, 적외선 감지기도 없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한니발의 기상천외한 ‘소몰이 전법’에 허를 찔린 파비우스가 당장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막사 안의 야전침대 위에 누워서 분한 마음에 이불킥을 하는 게 전부였다.
소떼에게 불을 붙여 적군을 공격하는 화우지계(火牛之計) 작전은 사실 한니발의 독창적 발명품은 아니었다. 중국 전국시대에 제나라 장수 전단이 연나라 군대를 상대로 이와 같은 기발한 책략을 사용해 단숨에 전세를 뒤집고 망국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한 적이 있었다.
파비우스의 기대 섞인 예상과 달리 로마군의 졸전은 동이 튼 다음에도 계속되었다. 한니발이 몸이 날쌔고 산악전에도 능한 이베리아 출신 경보병들을 내보내 기동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중장보병 위주로 편성된 로마군의 추격대를 가차 없이 난도질한 탓이었다.
한니발은 칼끝으로 파비우스를 괴롭혔지만, 동포인 로마인들은 혀끝으로 그를 곤경에 빠뜨렸다.
파비우스가 제일 먼저 규탄당한 이유는 로마군의 주특기인 위풍당당한 정면대결 대신에 어설프게 지모로써 한니발을 대적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이었다. 만약 이때 로마에서 근대적 형태의 신문이 발행되었다면 “꾀로 흥한 자 꾀로 망한다”는 선정적 제목 아래 파비우스를 맹렬히 성토하는 선정적 기사와 칼럼들이 봇물을 이뤘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