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아파트는 국민대통합의 한마당
‘영남 패권주의’는 남한의 수구기득권 세력이 가장 성공적으로 진압해온 정치사회적 용어이다. 영남 패권주의는 “여당도 영남, 야당도 영남”인 정치체제를 가리킨다. 영남에서 나고 자란 정치인들끼리 적당히 편을 가른 다음, 집권세력의 수뇌부와 야권의 주도세력으로 자연스럽게 각각 역할을 분담함으로써 창출이건 재창출이건, 혹은 교체이건 탈환이건 국가권력이 오직 경상도 테두리 안에서만 독점적으로 머무는 구조가 바로 영남 패권주의이다.
언론인 출신의 작가이자 논객인 고종석은 영남 패권주의와 단호하고 견결하게 맞서 싸워온 한국사회의 몇 안 되는 용감하고 이단적인 지식인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와 견주어 영남 패권주의를 겨냥한 고종석의 비판과 공격의 강도는 한결 누그러졌다. 첫째로 그의 건강상태가 예전과 같은 활발하고 왕성한 집필활동을 허락하지 않는다. 둘째로 영남 패권주의의 위세가 시나브로 퇴조하고 말았다.
영남 패권주의는 어떻게 극복 아닌 극복이 됐을까? 단연 주요하고 핵심적인 원인은 호남 출신의 출세하고 성공한 파워 엘리트들이 대거 강남에 입성해 영남이 고향인 기존의 기득권자들과 이웃사촌 관계를 맺음으로써 영남 패권주의가 강남 패권주의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데 있다. ‘인 강남’이 21세기 한국인들의 보편적 로망인 현실을 염두에 둔다면 한국정치의 오랜 숙원사항이었던 ‘전국정당’의 꿈이 강남을 무대로 바야흐로 실현된 모양새이다.
홍준표와 장하성이 만나면
필자는 잠실의 아시아선수촌 아파트 근처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생활하는 중이다. 아시아선수촌 아파트는 비록 송파구에 위치했을지언정 강남구와 서초구의 내로라하는 유명 아파트들 못잖은 드높은 집값을 자랑해왔다. 나는 때로는 걸어서, 때로는 버스를 타고 아시아선수촌 아파트 앞을 지나갈 적마다 두 가지 감정을 느낀다. 첫 번째는 당연히 짙은 부러움이다. 두 번째는 짓궂은 호기심이다.
아시아선수촌 아파트에는 호남을 대표하는 출세한 지식계급 엘리트인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현 주중 한국대사)과 영남을 대표하는 성공한 정치권 엘리트로 평가될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각자의 분야에서 입신양명을 이뤄내 부와 권력과 명예를 전부 차지한 두 사람이 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서 마주칠 때 그들은 서로를 냉정히 외면할까, 아니면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을까?
홍준표 전 대표와 장하성 전 실장이 거칠게 멱살잡이를 하며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는 소식이 아직 전해지지 않은 점을 미루어 보건대 강남권의 고급 아파트 단지는 짱짱한 가격과 함께 강력한 국민통합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괴력을 지녔음에 틀림없다.
조국 사태는 강남 사태였다
고종석은 그와 나란히 대담을 진행한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 작가에게 “조국 사태는 문재인 사태였다”고 이른바 조국 전쟁의 본질을 명확히 정의 내렸다.
나는 고종석의 개념규정에 절반은 만족하고, 나머지 절반은 만족하지 못하겠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수호하는 일이 현 정권을 보위하는 행동으로 간주되게끔 정부여당의 지지자들을 유도한 최종 결정권자는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였다. 따라서 조국 사태가 문재인 사태인 것이 분명 맞긴 맞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무리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그와 같은 오도된 시국인식과 부정확한 정세분석을 불어넣었는지에 관해서는 고종석은 논의하지 않는다. 고종석과 지승호의 대담시간이 부족했거나, 또는 고종석이 굳이 자기 입으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독자들이 저간의 사정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고 여긴 듯하다.
나는 조국 사태가 문재인 사태로 비화하도록 문재인 대통령을 몰아붙인 주역은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가 그의 신작인 「강남좌파2」에서 언급한 강남에 집 가진 부유한 진보 엘리트들이라고 생각한다. 그 연유가 무엇이냐? 경력의 화려함에서도, 위선의 현란함에서도 조국 전 장관과 견주면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을 ‘내로남불’한 강남좌파들에게 조국의 참담한 몰락은 본인들의 집단적 파멸을 예고하고 견인하는 도화선으로 여겨졌을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현재의 강남에는 조국 전 장관 이상의 재력과 인맥을 수중에 확보한 진보좌파 성향 인사들이 득시글하다. 문제는 그들이 재력과 인맥뿐만 아니라, 거짓과 탐욕의 영역에서도 조국을 능가한다는 부분에 있다.
문재인 정권은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정권 수뇌부에 스카이, 곧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를 다닌 ‘학벌부자’들의 비중이 높다. 강남 지역에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아파트를 보유한 장관과 차관 등의 정부 고위직 인사들의 비율 역시 가히 기록적이다. 문재인 대통령 개인전 차원에서는 실향민의 아들이자 영남 태생일 터이나, 문재인 정권의 정책적 의사결정 과정을 실질적으로 좌지우지하는 고관대작들의 단체적 수준에서는 강남부자들 일색이다.
자유한국당이 강남부자의 정당인 사실은 삼척동자조차 안다. 조국 사태는 더불어민주당 역시 강남 특권층의 이해와 요구를 충실하게 대변하는 철두철미한 귀족정당임을 남한의 수많은 힘없고 가난한 인민대중들에게 확실하고 명징하게 깨닫게 해줬다. “여당도 영남, 야당도 영남”인 영남 패권주의 시대가 박근혜 정권의 퇴진을 끝으로 저물고, “보수도 강남, 진보도 강남”인 강남 패권주의 시대가 문재인 정권 출범과 동시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다.
‘전략적 선택’이라는 이름의 패배주의
필자는 문재인 정권에 몹시 비판적 자세를 취해온 충청도 출신의 평범한 인민이다. 그럼에도 주로 교류하는 지인들은 더불어민주당에 상대적으로 우호적 입장인 호남 태생의 중산층 지식인들이다. 필자의 개인적인 접촉범위 안쪽에서 판단하자면 이들 대부분이 이낙연 현 국무총리가 차기 대통령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뚜렷이 피력하였다. 그런데 이낙연 총리가 집권여당의 대선후보로 실제로 선출될 것으로 예상하는 인물들은 거의 없었다.
왜일까?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을 거치며 호남 유권자들 사이에서 호남 출신 정치인은 민주당 계열 정당의 대권주자가, 이어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뿌리 깊은 비애와 좌절감이 폭넓게 만연된 탓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패배주의를 ‘전략적 선택’이라는 이름을 붙여 열심히 정당화하고 합리화해왔다. 허나 졌지만 잘 싸웠다는 의미의 ‘졌잘싸’도 결국은 지고 만 것이듯, 무슨 미사여구를 가져다 붙인다 한들 패배주의는 그저 패배주의일 뿐이다.
필자는 이 자리를 빌려 지인들에게 전략적 선택으로 포장된 패배주의를 더 이상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진심으로 충고해주고 싶다. 이유는 간단하다. 권력은 강남으로 넘어갔다. 남한의 정권은 더는 영남이 만들지 않는다. 강남에서 창출 및 재창출한다.
무소속 이언주 의원은 걸어 다니는 막말 제조기로 악명이 자자하다. 허나 말 많고 탈 많은, 게다가 몸담았던 정당들의 숫자까지 많은 이언주가 딱 한 차례 입바른 소리를 내뱉은 경우가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호남 총리가 아닌 강남 총리”란 일갈이 그것이었다.
요 대목에서만은 이언주가 옳다. 이낙연 국무총리의 근본적 정체성은 ‘호남 태생’이 아니라 ‘강남 거주’에 있기 때문이다. 그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의외로 장기간 동안 고공에서 공고하게 유지되어온 비결은 이낙연이 강남사람들에게 큰 거부감을 주지 않아온 덕분이다.
더구나 이낙연은 조국과는 달리 나중에 책임지지도, 실천하지도 못할 진보좌파스러운 발언들을 마구 남발하지도 않았다. 조국처럼 “타의에 의한 비자발적 내부고발자”가 되어 강남의 치부와 부도덕성을 폭로할 위험성이 이낙연에게는 없다. 이낙연은 한국정치사 초유의 “강남이 밀어주는 호남 후보”인 것이다. 이낙연 총리가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 같이 자기가 집 샀던 동네를 요란하게 침 뱉고 나오지 않는 한에는 강남권 유권자들의 이낙연에 대한 지지와 호감은 여간해서는 흔들리지도, 철회되지도 않을 성싶다.
고종석의 심드렁함에는 이유가 있다
지승호가 야심차게 던졌을 영남 패권주의 관련 질문에 고종석이 예상 밖으로 심드렁하게 답변한 데에는 영남이 아닌 강남이 정권을 만들어내는 시대가 강림한 현상에 대한 그의 본능적 직감이 강력히 작용했을 터이다.
이게 무슨 소리냐? 강남 패권주의 체제를 명실상부하게 완성시킨 문재인 정권 이후에는 ‘호남 출신 강남 거주 대선후보’가 ‘영남 태생 비강남 거주 대권주자’보다는 남한사회 기득권계급의 저항과 반발을 미미하게 사리라는 뜻이다. 만약에 필자가 강남에 아파트를 가진 국민이라면 영남 출신이어도 강남에 살아본 경험도, 살아볼 의지와 능력도 없을 부산의 김영춘이나 대구의 김부겸한테 표를 주기가 오히려 꺼림칙하지, 강남에 사는 게 뭐가 문제냐는 식의 최첨단(?) 세계관을 드러낸 이낙연에게는 별다른 망설임과 불안감 없이 표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낙연을 지지하고 싶은 호남 유권자들께서는 사표가 될지도 모른다는 쓸데없는 걱정 하지 마시고 예선에서도, 본선에서도 이낙연 총리를 지지하시라. “이낙연 찍어도, 이낙연 된다!” 2022년 대선의 게임의 법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