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현재 한국의 정치판을 쥐락펴락하는 학생운동권 출신의 정치인들도 맹자의 가르침을 신봉하기는 신봉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들이 생각하는 물은 너무나 작고 얕다는 점이다. 586 정치인들은 그들과 같은 세대인 586 유권자들만을 물로 생각하며 배를 움직이기 때문이다.
대어는 큰물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김대중과 김영삼 두 전직 대통령이 정치적 거인으로 기억되는 까닭은 두 사람 공히 국민 전체를 나침반으로 삼아 항해에 나선 데 있다. 그 결과 김대중과 김영삼은 태평양의 큰 고래로 자랐다. 반면에 국민의 일부만을 의식하고서 활동해온 586 정치인들은 환갑을 코앞에 둔 지금 나이에도 좁다란 가두리 양식장의 광어나 도다리 수준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586 정치인들과 586 세대 유권자들의 끈끈한 유착관계는 586 정치인들을 정계의 유력자들로 키우고, 586 세대를 한국사회의 대표적 기득권 세력으로 끌어올렸다. 허나 딱 거기까지였다. 586 정치인들과 586 유권자 집단은 더 이상의 성장과 변화를 포기 또는 거부한 채 후배세대의 앞길과 미래를 너무나 오랫동안 가로막고서 자신들의 과도하고 부당한 기득권을 악착같이 지켜나가는 중이다. 과연 무엇이 586 정치인들과 586 세대를 괴물로 만들었는지 채진원 교수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보았다.
586 세대는 미래비전도, 혁신의지도 없어
채진원 : 586 세대는 이미 오래전에 기성세대가 되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586 세대에게는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한 담대한 청사진이 없습니다. 낡은 제도와 문화와 관행을 과감하게 혁신하려는 의지도 없습니다.
586 정치인들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인 민주공화국의 가치를 지키고 따르는 정치를 해오지 않았습니다. 경쟁할 일은 경쟁하고 협력할 문제는 협력하는 공존의 정신과 태도가 그들에게는 결핍돼 있습니다. 경쟁과 협력의 선순환을 이루려면 대화와 타협이 필수입니다. 하지만 학생운동권 출신의 586 정치인들은 타도하고, 파괴하고, 궤멸시키는 게 할 줄 아는 일의 거의 전부입니다. 그들이 정상적이고 민주적인 정당정치를 부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자신은 천사이고 상대는 악마인데, 이 세상의 진리를 오직 자기들만이 독점하고 있는데 어떻게 경쟁의 개념이 머릿속에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586 정치인들이 공정한 경쟁을 극력 외면하는 건 스스로를 성역과 금기로 여겨온 데에서 기인합니다. 성역과 금기는 심판과 평가를 불허하는 존재입니다. 저는 586 세대 정치인들이 국민들의 평가와 민심의 심판을 한사코 거부해온 것 또한 이와 같은 특권의식과 선민주의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스스로를 성역과 금기로 생각하며 그 어떠한 심판과 평가에도 불응한다면 이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괴물에 다름 아닐 터이다. 필자는 586 정치인들이 진즉에 괴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의구심을 조국 법무부 장관 사태를 거치며 확고한 신념으로 굳히게 되었다.
586 정치인들의 오만과 독선은 그들이 수시로 저지르는 반칙과 뼛속 깊이 중독된 특권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특권과 반칙에 중독되면 국민들의 상식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게 됩니다. 원칙 있는 패배를 본능적으로 두려워하게 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특권과 반칙을 배격하는 정치를 추구했습니다. 상식이 승리하는 나라를, 원칙이 관철되는 사회를 꿈꾸고 실현하려 했습니다. 지금의 586 정치인들은 노 전 대통령의 이러한 정신과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실천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586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외세의 비극적 침략을 불러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기득권만큼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던 조선 중기 양반 사대부들의 모습들을 정확히 닮아가고 있습니다. 백성들을 전화의 구렁텅이에 빠뜨렸으면 처절한 자기 성찰과 반성을 해야만 합니다. 민중에게 확실히 책임을 져야만 합니다. 대부분의 양반 계급은 이러한 기본적 책임의식이 없었습니다. 되레, 자신이 도덕적으로 우월한 존재이자 진리의 유일한 담지자라고 강변하면서 일반 백성 위에 거만하게 군림하려 들었습니다.
조선 사대부들이 걸렸던 비뚤어진 권력 중독증에 우리나라 586 정치인들도 걸려 있습니다. 게다가 586 정치인들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이기기만 하면 능사라고 믿는다는 점에서 ‘승리 지상주의’에마저 감염돼 있습니다.
586 정치인의 허물은 586 유권자의 허물
결자해지라고 했습니다. 586 세대 정치인들의 한계와 문제점을 극복하고 뜯어고칠 일차적 책임 당사자는 당연히 기득권 586 세대 유권자들입니다. 그런데 대개의 586 유권자들은 586 정치인들의 무능과 무책임에 대해서 철저하게 눈감고 있습니다. 질타는커녕 도리어 두둔하기에만 바쁩니다.
저는 586 세대의 조국 법무부 장관에 대한 무비판적 옹호도 586 유권자들의 586 정치인들에 대한 맹목적 지지와 궤도를 같이하고 있다고 봅니다. 586 정치인들이 무너지면, 조국 장관의 허물과 위선을 인정하면 586 세대의 기득권까지 민심의 심판대 위에 서게 된다고 이들 586 유권자들은 믿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586 세대로서는 조국 장관의 허물과 위선을 통렬하게 꾸짖는 청년세대를 향해 왜 “너희들은 자유한국당을 지지하느냐?”는 식으로 역정을 내며 호통을 치게 되기 마련입니다. 586 세대 입장에서는 조국 장관 방어가 바로 자기 방어가 되기 때문입니다.
586 세대의 고집불통의 완고함은 이솝 우화에 등장하는 「여우와 신포도」를 떠올리게 합니다. 어리석은 여우는 자기가 모자라고 부족해 포도를 따먹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괜히 포도 탓을 했습니다. 이제는 기득권 세력으로 변신하고 편입된 586 세대들은 조국 장관의 내로남불로 말미암아 민심이 등을 돌렸음에도 불구하고 애꿎은 국민들을 쓸데없이 탓하고만 있습니다.
586 세대 유권자들이 조국 장관에 관해, 586 정치인들을 향해 느끼는 동질감와 유대의식은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네가 하면 불륜”이라는 망국적 진영논리를 쉬지 않고 강화하고 증폭시켜왔습니다. 그들은 아군의 허물과 위선을 감추려고 상대에 대한 증오와 혐오감을 쉴 새 없이 부추겨왔습니다.
586 정치인들과 586 세대가 과거에 적립한 역사적 기여는 분명히 긍정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과거는 과거입니다. 586 정치인들은, 그리고 586 세대는 지금은 공보다 과가 훨씬 큰 집단이 되었습니다. 청년세대는 기성세대인 586 세대가 만들어놓은 불의한 세태와 불공정한 사회경제 구조를 더는 참지 못하겠다며 뜨거운 분노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586 세대는 청년들의 정당한 분노를 ‘청년들의 보수화’로 그릇되게 왜곡하고 오독해서는 안 됩니다. 청년들의 분노가 586 세대를 정조준하고 있는 현실을 더 늦기 전에 겸손한 자세로 직시해야만 합니다.
훌륭한 정치인은 다음 세대의 행복을 생각합니다. 치졸한 정치꾼은 다음 선거의 승리만을 생각합니다. 저는 586 정치인들과 그들의 표밭인 586 세대 유권자들이 이제는 다음 세대를, 후배세대를, 미래세대를 생각하는 통 큰 안목과 열린 지혜를 갖춰주기를 바랍니다.
공희준 : 도발적이면서도 통찰력이 번득이는 말씀을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채진원 : 지루할 수도 있는 이야기 진지하게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