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한국인의 운명, 즉 팔자가 결정되는 나이는 1970년이나 2015년이나 만으로 18세 무렵인 데에는 전혀 변함이 없다. 우리나이로 스무 살을 즈음해 정해진 운명으로 나머지 삶을 지내야만 한다는 의미에서 평균 기대수명이 짧은 남성들이 여성들과 비교하면 오히려 덜 한 맺히고, 덜 불평등한 인생을 살지도 모를 노릇이다.
입시는 현대 한국인들에게는 어쩌면 결혼보다도 더욱더 중차대한 문제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성적이 남자의 경우에는 아내의 외모를, 여자의 경우에는 남편의 수입을 규정한다는 사실은 이제 유치원생조차 아는 남한사회의 부끄러운 치부이기 때문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과 관련된 일련의 일들은 남한사회의 이 민감하고 부끄러운 치부를 일순간 활짝 드러내고 말았다. 조국에 대한 분노가 문재인 정권의 집권 정당성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수 있는 메가톤급 폭발력을 발휘하는 배경이다.
문제를 넓게만 본다고 해서 정답이 찾아지는 것은 아니다. 일단은 급한 불부터 끄는 게 해결의 순리일 수도 있다. 필자는 현직 고등학교 교사로서 학생들의 입시 지도를 오랫동안 책임져온 전대원 선생님을 만나 조국 법무장관 후보의 딸 부럽지 않게 원성의 대상이 돼버린 현행 입시제도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전대원 선생님과는 올해 초에 이미 한 차례 인터뷰를 해본 적이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존속하는 이상 입시 문제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난제다. 따라서 필자는 전대원 선생님과의 만남이 앞으로도 주기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단지 정확히 예견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다음에는 누구의 자식 탓으로 만남이 이뤄질지에 대한 점뿐이다. 전대원 선생님과의 원 포인트 인터뷰는 가을의 입구에 들어산 2019년 9월 1일 일요일 오후, 서울 잠실 롯데월드 근처의 어느 카페에서 진행되었다. 사진 촬영은 김한주 사진전문 기자가 맡아주었다.
공희준 :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관련된 일들 때문에 벌써 몇 주째 나라 전체가 시끌시끌합니다. 무엇보다도 조국 후보자의 딸이 입시를 통과한 과정이 국민들의 분노의 감정선을 제대로 건드린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태를 거치며 개인적으로는 조국 후보자가 민심의 돌팔매를 맞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도적으로는 세간에서 ‘학종’으로 불려온 학교생활기록부 종합전형이 언론과 여론의 집중포화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전대원 선생님께서는 진보적 성향을 띠는 전교조 소속 현직 교사로서는 아주 드물게 학종에 대해 긍정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부여해오셨습니다. 학교생활기록부 종합전형이 부유층의 부와 학력의 대물림을 합법화시켜준 교육적폐 중의 적폐로 지탄받는 지금, 그럼에도 왜 학종이 반드시 필요한지에 대한 선생님의 견해를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학종 없애려면 임대아파트도 없애야
전대원 : 먼저 정확히 해둘 일이 있습니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이 대학에 들어간 건 지금으로부터 거의 10년 전 일입니다. 그때 대입전형을 치른 방법은 입학사정관 제도였습니다. 10년 전의 전형방법을 갖고서 현재의 전형과정인 학교생활기록부 종합전형(약칭 학종)의 타당성을 따지는 것은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저는 여기에 현재 오가는 논란의 맹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부 종합전형은 예전 제도들의 한계와 문제점들을 보완하고 수정한 진화의 결과물입니다. 입학사정관 전형을 도입한 주역은 이명박 정부였습니다. 이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한 시기는 박근혜 정부 시절이었습니다. 단적으로 현재 한창 문제가 되는 게 고등학생들이 인턴으로 참여해 작성한 논문입니다. 그런데 현재는 학교 밖에서 작성한 논문 실적을 대입전형에 아예 반영하지를 못합니다. 저는 학생부 종합전형을 비판하는 분들이 학종과 과거의 입학사정관제를 명확하고 섬세하게 구분하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나 답답하고 안타깝습니다.
현재 존재하는 여러 사회복지 관련 제도들 가운데에는 무자격자나 무임승차자들이 혜택을 누리고 있는 장치가 상당히 많습니다. 임대아파트에 가보면 고급 외제 자동차들이 자주 눈에 띕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분류됐는데 알고 보니 가까운 가족이 부자인 사람들도 허다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임대주택을 모조리 없애야 옳을까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당장에 폐지해야만 마땅할까요?
현재의 학생부 종합전형이든, 과거의 입학사정관제이든 제도의 허점을 파고드는 사람들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제도를 없애는 게 능사라면 저는 지금 즉시 임대아파트 철폐 운동에 나서겠습니다. 제가 어떤 임대아파트에 가서 BMW가 입주자 차량으로 주차된 황당한 광경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이런 경우는 아주 극단적 사례에 속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극단적 사례를 일반적 경우로 침소봉대해 국민적 공분을 부추기며 임대아파트를 없애자고 목소리를 높인다면 그게 과연 합리적 대응이겠습니까?
학생부 종합전형은 사회경제적 약자를 위한 시스템
저는 부자 동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저는 최근에는 상대적으로 부유한 지역에 자리한 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상대적 의미로 부유하다는 뜻이지, 절대적으로 잘사는 동네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제가 직전에 근무했던 곳은 농어촌 전형이 실시되는 학교였습니다. ‘읍면’에 해당하는 지역이었습니다. 전의 전에 근무한 학교는 도시 지역에 자리해 있기는 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계층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었습니다. 국가에서 학비보조를 받아야만 하는 학생들의 숫자가 한 학급에서 절반에 육박했습니다.
그렇게 가난한 가정의 학생들이, 혹은 전혀 부자가 아닌 집안의 자제들이 세간에서 좋은 대학으로 일컬어지는 상급 학교에 진학하는 데에는 학생부 종합전형이 굉장히 유리하게 작용합니다. 그러니 교사인 제 입장에서는 학종을 지지하고 찬성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건 머리에서 나온 추상적 찬성이 아닙니다. 저의 구체적 경험에서 비롯된 지지입니다.
학종을 향해 퍼부어지는 비난에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모순점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입학사정관제와 학생부 종합전형의 제도상의 차별성을 구별하지 못하고 비난한다는 점입니다. 제도적 차이점의 역사를 모르고서 비판하는 까닭에 핵심을 벗어난 맥락 없는 감정적 비판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학생부 종합전형 제도 자체에 대한 무지에 찬 비난이라는 점입니다. 부잣집 아이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제도라는 오해와 선입관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휘둘리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현장의 경험을 무시한 비난이라는 점입니다. 제가 실제 학종으로 아이들의 입시를 치러보니까 이 제도는 특목고 학생들을 위한 기울어진 운동장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일반고 학생들에게 더 많은 기회와 가능성을 제공하는 제도였습니다. 이건 대학교육협의회의 통계와 몇몇 대학교들의 자체 조사를 통해 이미 확연히 증명된 사실입니다.
네 번째로 정확한 근거와 디테일한 사실이 뒷받침되지 않은 비난이라는 점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학교육협의회에서 수능에 의존하는 단순한 줄 세우기를 했을 때와, 학교생활기록부 종합전형과 같은 다양한 전형을 실시했을 때의 결과를 비교해보니 어느 쪽이 학력의 대물림이 더 심한 것으로 나타났겠습니까? 이를테면 소위 명문대학에 특목고 출신 또는 강남지역 학생들이 어떤 전형에서 더 많이 합격했겠습니까? 정시 수능 모집의 경우에서 더 많은 강남 학생들과 특목고 학생들이 이른바 일류대에 입학해왔습니다.
그 기준선을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의 SKY 대학으로 잡건, 아니면 상위 11개 대학으로 설정하건 결과적으로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상위 11개 대학은 상위 사립대학교 10개 대학의 범주에 서울대를 포함한 것을 가리킵니다. 서울에 소재했는지의 ‘인서울’은 또 다른 기준선이 될 수 있을 테고요.
국민들께서 꼭 주목해주셔야 할 흥미로운 현상이 있습니다. 학종의 존폐 여부를 둘러싼 논쟁만 벌어지면 관심사로 떠오르는 게 상위 11개 대학인 점입니다. 이유는 자명합니다. 상위 11개 대학을 노리는 수험생들일수록 학종에 대해 관심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학생들의 부모들이 한국사회의 스피커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이들의 여론과 목소리가 과대평가되고 과잉대표되고 있는 것입니다. 언론에서 중위권 대학이라고 부르는 학교들이 있습니다. 핵심은 이 학교들이 실제로는 절대 중위권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필자는 이 지점에서 상위 11개 대학의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교육계의 문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들었다. 문빠 역시도 한국사회에서 실질적 규모와 비중에 견주어 과잉대표되고 있기는 상위 11개 대학을 목표로 한다는 수험생들 및 그 학부모들과 피차일반일 터였기 때문이다. 전대원 선생님과 필자는 정치적 견해가 매우 다른 까닭에 필자는 이에 관한 논쟁을 진전시키지는 않았다. 오늘의 주체는 철저히 교육에 맞춰졌기 때문이다.
예컨대 중앙대학교나 경희대학교가 중위권 대학이라는 이야기는 저처럼 일선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의 입시를 직접 책임지고 있는 교사가 들으면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헛소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두 학교는 중위권 대학이 아닙니다. 초상위권 대학입니다. 경희대나 중앙대에 입학하려면 전국의 모든 수험생들 가운데 상위 5프로 안에 들어가야만 합니다.
상위 10프로의 여론은 진짜 여론이 아니다
제가 경기도의 한 큰 도시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 아이들이 여기에 소재한 대학교에 들어간다면 정말 진심으로 소원이 없겠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담임을 해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고 3을 겪지 않았거나 오래전에 겪었던 사람들만이 터무니없이 눈높이가 높아졌을 따름입니다. 저희 동네에 위치한 대학교에 가려면 상위 10프로 안에 진입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그분들은 좀체 이해를 못합니다. 언론에서 거론하는 중위권 대학이 실제로는 절대 중위권 대학이 아니고, 사람들이 떠드는 하위권 대학이 현실에서는 결코 하위권 대학이 아니란 사실을 전혀 모릅니다. 왜 이런 착오와 인식의 오류가 자꾸만 빚어지느냐? 내로라하는 언론사들에 몸담은 기자와 논설위원들이 흔히들 좋다는 대학교들을 다녔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조선일보가 고대 나온 기자를 논설위원에 임명한 일을 두고 언론계에서는 이를 파격 인사로 대서특필한 적이 있었다. 내가 만에 하나 조선일보에서 논설위원이라도 하게 된다면 이는 파격 인사를 넘어 아예 ‘파괴 인사’가 될 게 명확하다.
한국사회는 인식과 현실의 격차와 괴리가 매우 넓고 큰 사회입니다. 그러한 간극의 정점에 교육 분야가 우뚝 서 있습니다. 실재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 생각으로 현실을 재단해버립니다. 상위 11개 대학을 염두에 둔 계층이 자신을 흙수저로 여기는 것부터가 우리 사회의 객관적 현실에 부합하지를 않습니다. 상위 5프로가 평범합니까? 상위 10퍼센트가 보통 사람들입니까? 저는 머리털 난 이후로 상위 5프로가 평범하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앞으로는 인구절벽 현상의 여파로 말미암아 현행 대입정원이 조정되지 않으면 입시의 압력과 경쟁률이 조금은 완화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완화되면 완화될수록 그 충격과 직격탄은 지방에 있는 대학들이 맞을 가능성이 대단히 큽니다. 폐교 위기에 잇달아 직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연쇄 폐교의 단계에까지는 아직 이르지 않았습니다.
중위권으로 불리는 상위권 대학의, 상위권으로 알려진 초상위권 대학에 들어가는 일은 이제는 어느새 우리 사회 인텔리 계급만의 전유물이 되어가는 분위기입니다. 특목고 학부모, 강남 8학군 학부모, 유명하고 대표적인 사교육 업자들이 목소리 큰 스피커가 된 상황에서는 그들의 이해와 요구가 전체 학부모들이 이해와 요구로 시나브로 둔갑하기 마련입니다. 지방 학생들, 조손 가정의 힘든 처지의 학생들의 바람과 희망은 여론으로 수렴되지 않습니다. 이게 무슨 뜻이겠어요? 부유하고 출세한 586 세대의 담론이 대한민국의 평균적 일반 국민의 여론으로 포장되는 병폐는 교육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닙니다. (②편에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