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논리는 신념의 문제가 아니다. 밥줄의 문제다. 우리 편이 권력을 잡고 있어야 집에 풍족한 생활비를 가져다줄 수 있고, 자기가 편드는 세력으로부터 이권과 자리를 보장받아야만 처자식이 물질적으로 행복해지는 각박하고 분열된 사회구조야말로 평소에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조차 말도 안 되는 억지와 궤변을 늘어놓으며 특정인을 일방적으로 비난하거나 또는 맹목적으로 두둔하게끔 이끄는 결정적 동인이다.
김인성 교수는 현재 특정한 진영에 몸담고 있지 않다, 그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지지자이되 이재명 세력에 자신의 생명선을 걸고 있지는 않다. 김인성은 이석기 전 의원에 대해 매우 동정적이고 우호적 입장이기는 해도 이른바 이석기파의 일원은 아니다.
그의 본래 의도가 뭐였든 간에 결과적으로 우리 시대의 드문 경계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인성 교수와의 대담을 마무리하며 필자는 대한민국이 넓혀야만 할 건 경제영토가 아닌 경계인들의 영토일 것이라는 결론을 잠정적으로 내렸다.
공희준(이하 공) : 이재명 경기도 도지사는 입지전적 인생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러나 입지전적 인생을 살아온 인물이 막상 대통령이 되면 본인도, 국민들도 불행해지곤 했습니다. 교수님은 이재명은 다를 것이라고 단언하시는 듯한데, 저는 이재명 지사가 기존의 입지전적 정치인들과 비교해 정확히 뭐가 다른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이재명은 도대체 기존의 입지전적 정치인들과 어느 측면에서 다른가요?
이재명은 성과와 업적으로 말한다
김인성 (이하 김) : 저는 이재명 경기지사와 여러 유명한 입지전적 정치인들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공 : 그렇다면 이재명 지사도 여러 유명한 입지전적 정치인들처럼 결국에는 실패한 것이라는 뜻인가요? 왜냐면 김대중 대통령을 제외하면 다들 씁쓸한 결말을 맞이했던 탓입니다.
김 : 저는 이재명이 성공하리라고 섣불리 예단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재명 지사에게는 정치인으로서, 또한 행정가로서 쌓아온 실적이 있다는 사실에 특별히 주목할 따름입니다. 일본이 한국을 겨냥해 부당한 수출규제 조치를 취하자 다른 인사들은 다들 뜬구름 잡는 것 같은 거창한 이야기들만을 대책이라고 내놓았습니다. 반면에 이재명은 이제껏 일본으로부터 수입해온 소재와 부품과 장비를 국산화할 수 있도록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을 위한 구체적 자금지원 방안을 강구했습니다.
공 : 하지만 이재명 지사가 놀림감이 된 적도 있습니다. 반도체 개발과 제조에 요구되는 중요한 원천기술을 시민들로부터 공모하겠다는 ‘반도체 백일장’ 방안을 경기도청에서 발표했다가 대중의 조롱과 빈축을 샀기 때문입니다.
김 : (약간 불편한 기색으로) 사람이 다 잘할 수는 없지.
공 : 흐흐흐.
김 : 잘하는 부분에 무게중심을 두고 품평해줘야죠. 그렇게 야박한 잣대로만 재단하면 문재인 정부는 지금처럼 지지율이 높겠습니까?
김인성 교수는 이공계 출신이다. 그가 만약 인문사회 전공자였다면 이렇게 말문이 막힐 수도 있는 상황에서조차 노련하고 침착하게 표정관리를 해가며 순간적으로 기지를 발휘해 옹색한 입장에서 탈출했을지 모른다. 김인성 교수는 내가 만나본 일반적 문과생들과는 확실히 다르게 말장난으로 국면 전환을 시도하지는 않았다. 그는 이재명의 장점을 열거하는 나름의 정면돌파 전략을 채택했다.
김 : 이재명은 장밋빛 공약을 제시하고 화려한 수사를 늘어놓는 데서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남들은 생각으로만 그치는 일을 실제로 구현해 가시적 결과물을 창출해왔습니다. 저는 이재명 지사가 경기도지사에 취임하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경기도가 다양한 영역과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변화와 발전을 이룩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국민들의 원성을 오랫동안 사왔던 계곡의 불법영업 천막들까지 드디어 일제히 철거되고 있습니다.
공 : 불법영업 천막들 진짜로 없애고 있나요?
김 : 예, 신속한 철거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공 : 8월 중순을 지났으니 지금이면 관청에서 굳이 단속에 나서지 않아도 저절로 없어질 시점이 되지 않았겠습니까?
김 : 경기도의 이름나고 경치 좋은 계곡들을 빽빽이 점령해온 불법영업 천막들은 아직도 성수기이기 때문에 단속을 실시하지 않으면 사라지지를 않습니다. 이재명 지사가 공유지에 불법천막을 설치한 업주들과 관련 공무원들 사이의 유착 여부를 조사하겠다고 엄포를 놓았기 때문에 관에서 움직이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 일이 분명하게 알려주는 것처럼 이재명 지사는 성과를 내겠다고 하면 내는 사람입니다. 말만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재명 지사의 실천가적 면모는 경기도에 위치한 고속도로의 휴게소들에 의사를 상주시키겠다고 발표한 결정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대형 화물차 운전자들은 시내에 들어갈 시간이 없습니다. 게다가 설령 들어간다고 해도 차를 주차시킬 공간이 마땅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병원 치료인들 제대로 받을 수 있겠습니까? 화물차량 기사들이 치질과 충치 같은 이런저런 질병들로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는 까닭입니다. 이재명 지사는 화물차 기사들이 사전에 예약만 하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검진과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환경을 조성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화물자동차 운전자들에게는 굉장한 희소식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이런 정책은 서민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에 어둡기 마련인 강남좌파들은 절대로 생각해내기 어려운 일들입니다. 이는 이재명 지사가 일반 국민이 어디가 아쉽고, 어느 부분이 가려운지를 정확히 포착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공 : 그런 감각을 보통 ‘서민적 감수성’이라고 일컬어왔습니다.
국토보유세는 21세기판 대동법
김 : 예전에는 분당 신도시 주민이 자신들은 분당 사람이지, 성남 사람이라고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이재명 지시가 성남시장을 역임한 다음에는 분당에 거주하는 분들이 스스로를 성남 시민의 일원으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역력합니다. 저는 이재명 지사가 경기도시자로 재임한 다음에는 경기도민들 또한 성남시민들처럼 지역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부쩍 높아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공 : 경기도는 서울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여전히 인식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인구학적 구조가 ‘이부망천’이라는 몹쓸 신조어가 등장한 사회경제적 배경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시민에서 도민이 되는 순간 좌절감 같은 착잡한 감정이 확 밀려오거든요.
김 : 성남시민이 품게 된 지역에 대한 애정과 자신감을 저는 경기도민 전체가 머잖아 충만하게 공유하리라 봅니다. 이재명 지사는 시장 시절에 청년수당 도입에 앞장섰습니다. 그는 현재는 국토보유세 신설을 선도함으로써 천문학적 액수의 부동산 불로소득을 낳아온 잘못된 경제구조에 대한 대수술을 시작하려 하고 있습니다. 국토보유세는 기본소득의 원천이 되기도 합니다. 투기도 잡으면서 복지도 강화시켜줄 일석이조의 제도적 방안입니다.
국토보유세는 조선왕조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양대 전란의 피해를 수습하는 데 견인차 구실을 해준 대동법만큼이나 획기적이고 혁명적 발상입니다. 이재명 지사는 이 중대한 정책을 구호로만 외치지 않고, 실제로 관철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은 이재명이 5년 동안 집권한다고 해서 성취될 수 있는 목표가 아닙니다. 완전히 뿌리를 내리려면 그 몇 배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리틀 이재명’을 키우자고 목소리를 높여왔습니다.
공 : 저는 우리나라를 위해 외국을 상대로 악착같이 수금활동을 벌여줄 한국의 트럼프들을 키우자는 심산인데…. (웃음)
김 : 리틀 이재명을 체계적으로 발굴하고 양성하려면 「이재명 스쿨」의 설립이 필수입니다. 전국 곳곳을 이재명들로 바글바글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공 : 이재명 시장이 종전의 입지전적 정치인들과 다른 이유에 대한 설명은 여기까지 듣도록 하겠습니다. 핵심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어떻게 다른가에 자리하기 때문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이재명과 유시민 두 사람이 어떤 지점에서 결정적 차별성을 보인다고 생각하십니까?
김 : 제가 「유시민, 이재명」에서 이미 뚜렷이 얘기해놨잖아요. 유시민은 말을 잘하고, 이재명은 일을 잘합니다.
공 : 유시민 전 장관은 한마디로 입만 살았다고 평가절하하셨네요?
김 : 표지에 유시민 전 장관을 비판하면 책이 잘 나가지 않을 것 같아서 그 부분은 본문 안으로 넣어놨습니다. (웃음)
공 : 역시나 영업전선 앞에서는 누구나 소심해지기 마련이라는. (웃음)
국가정보원은 컬러 사진도 일부러 흑백으로 인쇄해
공 : 순수한 IT 전문가에서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로 변신하게 된 계기가 검찰, 즉 국가권력의 부당한 행동에 분노한 데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한국사회에서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의 삶은 생명을 위협받을 만큼 위험한 삶이라고도 단정하셨습니다. 공권력이 디지털 포렌식을 악용한 사례가 있다면 소개해주십시오. 덧붙여 남한에서 디지털 포렌식은 왜 생명을 위협받을 만큼 고난의 길인지 그 이유도 설명해주십시오.
김 : 2013년 1월은 국가정보원에게는 최악의 시기였습니다. 박근혜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일단 한숨을 돌리긴 했지만 댓글공작의 실체가 드러나는 건 그럼에도 시간문제였습니다. 이때 국가정보원이 회심의 반격 카드로 기획한 음모가 유우성 씨를 간첩으로 몰아세우는 짓이었습니다. 국정원은 유우성 씨가 입북한 증거물로 그가 북한 땅에서 찍었다는 디지털 사진을 제시했습니다. 원본은 컬러인데, 국정원은 이걸 A4 용지에 흑백으로 인쇄에 법원에 증거로 제출했습니다.
국정원은 사건 초기부터 나중에 들통 날 일을 어설프게 꾸민 셈이다.
김 : 제가 증거물로 제출된 사진을 디지털 포렌식으로 복구해 위치정보로 촬영 장소를 확인해본 결과 북한 땅이 아닌 중국 땅 연변이었습니다. 완전 조작이었습니다. 국정원은 유우성 씨가 무죄선고를 받자 이번에는 통합진보당의 이석기 전 의원을 내란음모 사건으로 엮었습니다. 그런데 내란음모를 획책했다는 모임에서 오간 내용을 담은 녹취록을 제가 꼼꼼히 읽어보니 원래의 녹취록이 누군가에 의해 100군데 넘게 조작돼 있었습니다.
공 : 원래의 녹취록을 어떻게 윤색했나요?
김 : 한국일보가 특종 보도한 녹취록 원본에는 이를테면 “준비를 하자”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게 국정원이 증거물로 제시한 녹취록에서는 “무기를 들자”는 식으로 가공됐습니다.
공 : 국가정보원이 저처럼 ‘메시지 크리에이터(Message Creator)’ 노릇을 했네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기자와 공무원은 절대로 메시지를 창작해서는 안 됩니다. 철저히 사실에만 충실해야 합니다.
김 : 국정원은 허무맹랑하게 조작된 엉터리 증거로 내란음모 사건을 터트렸습니다. 홍강철 직파간첩 사건은 한층 더 가관이었습니다. 국가정보원은 북한의 보위부가 홍강철 씨를 남한에 간첩으로 직접 침투시켰다고 주장했습니다. 북한의 보위부는 남한의 경찰서에 해당하는 기관입니다. 경찰서에서 왜 스파이 밀파 업무를 담당합니까?
김인성 교수는 고문이 아니라 디지털 포렌식이 공안사건에서 증거를 생산해내는 핵심적 수단으로 떠올랐다는 의견을 인터뷰 내내 지속적으로 피력했다.
김 : 현대 사회의 모든 사건들은 곧 정보기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따라서 디지털 포렌식 기법은 어떠한 사건이건 수사의 초동단계에서부터 반드시 사용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지금은 어떤 문제만 생기면 검찰이건 경찰이건 먼저 무조건 휴대전화부터 압수해 확보해갑니다.
공 : 범죄자들이 죄 짓고 제일 처음 하는 일이 휴대전화를 강물에 내다버리는 풍토가 됐습니다.
김 : 이러한 현실에서 디지털 포렌식을 책임진 실무 작업자들이 증거를 조작하면 진실은 영원히 미궁에 빠지고 맙니다.
공 : 그분들이 자발적으로 증거 조작에 가담한 건 아닐 텐데요. 외부에서, 특히 윗선에서 견디기 어려운 엄청난 외압이 가해진 탓일 가능성이 객관적으로는 아주 큽니다.
김 : 그렇죠. 최열 환경재단 대표를 회계조작을 일삼는 파렴치범으로 음해한 게 대표적 사례입니다. 그때도 검찰이 디지털 보고서를 어디에서인가 왜곡해 법정에서 증거자료로 들이밀었습니다. (잠시 착잡한 얼굴을 한 다음) 우리나라에서 일반 형사사건이나 민사사건의 경우에는 디지털 포렌식 작업이 상대적으로 공정하게 이뤄져왔습니다. 그런데 국가권력이 개입된 사건만 시작되면 사람들이 이상해지기 일쑤입니다.
공 : 그런 사건들에서 윗분의 심기를 잘 헤아려야 높이 출세하고 쉽게 성공하니까요.
김 : 검찰과 국정원이 사건의 당사자로 등장하는 사건만 터졌다 하면 석연찮고 미심쩍은 일들이 자꾸 연달아 생깁니다.
한국의 디지털 포렌식은 ‘내부자들’이 망가뜨려
공 : 세월호 참사 당시에는 어떤 이상한 일이 발생했었나요?
김 : 희생자들의 휴대전화를 유족에게 돌려주면서 유심칩을 빼놓고 반환했습니다.
공 : 데스크톱 컴퓨터에 비견하면 하드웨어를 놔둔 채 껍데기만 돌려준 셈이네요. 저 같은 디지털 포렌식 문외한조차 유심(USIM)이 휴대전화에서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압니다.
김 : 그러자 사건 조사에 객관적인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하기에 제가 대한변호사협회의 의뢰를 받아 수사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 무렵은 변협이 세월호 유가족들의 법률 대리인 역할을 수행할 때였습니다. 저는 국가권력에 의해 증거가 훼손되거나 유실되지 않도록 증거를 보전하는 일을 담당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검찰 반대편에 서서 디지털 포렌식을 진행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공 : 박근혜 정권의 검찰 반대편에서요?
김 : 예, 그렇습니다. 검찰 자체의 디지털 포렌식 조직은 물론이고 여러 외부 전문업체들도 그 일을 선뜻 맡으려 하지를 않았습니다. 저처럼 디지털 포렌식으로 생계를 해결할 생각이 없는 사람이 결국은 나서게 된 연유였습니다.
공 :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한 분야에 밥줄이 매여 있으면 해당 분야에서 공정하고 중립적으로 일을 처리하기 힘듭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괜히 나섰다가 집단따돌림만 당하기 때문입니다.
김 : 제가 포렌식 업계 내부자였다면 지금처럼 행동하지 못했을 확률이 높습니다.
공 : 저도 네이버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는 것도 실은 제가 ‘인 네이버’에 별다른 관심과 흥미가 없는 이유에서입니다.
김 : 제 경우에는 IT로 돈을 벌겠다는 욕심이 없는 덕분에 우리나라 IT 산업의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책들을 거리낌 없이 펴낼 수 있었습니다.
공 : 오늘 날씨가 엄청 덥습니다. 이 무더운 날에 긴 시간에 걸쳐 여러 유익한 말씀 들려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김 : 감사합니다. (일동 박수)
덧붙이는 글
김인성 교수는 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하였다. 리눅스 시스템 엔지니어로 활동하며 한국 토종 검색 포털인 엠파스(Empas)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현재는 디지털 포렌식 분석가 겸 IT 전문 칼럼니스트로 맹활약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창작자의 나라」, 「김인성의 완벽한 데이터 관리」, 「유시민, 이재명(신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