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 볼썽사나운 대국민 반바지 갑질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여름휴가를 반납하기로 결정한 일이 뜨거운 뉴스거리가 되고 있다. 반전의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 민생경제의 총체적 위기에 더하여 일본, 러시아, 중국, 마침내는 북한까지 차례로 한국을 동네북처럼 신나게 두들겨 대는 판국이니 대통령 입장에서는 잠시도 청와대를 비워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한 듯싶다.
문재인 대통령의 직업은 뭘까? 공무원이다. 공무원은 누구인가? 나라에서 받은 돈을 집으로 가져가는 사람이다. 만약에 공식적으로 일체의 월급과 수당이 법률적으로 폐지된 대통령이 등장한다면 그의 지위는 대통령은 대통령이되, 공무원 대통령이 아닌 자원봉사 대통령으로 규정되어야만 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래 다양한 구호와 목표를 현란하게 제시해왔다. 필자처럼 머리가 좋지 않은 인간은 아예 처음부터 외우기를 포기해야만 할 지경으로 수많은 국정과제가 거의 날마다 등장해왔다.
그래도 나 또한 명색이 호모 사피엔스인 터라 현 정부의 중점 시책을 하나쯤은 기억하고 있다. 일(Work)과 삶(Life)의 균형(Balance)을 꾀한다는 이른바 ‘워라밸’이 그것이다. 이 워라밸 정책의 최초‧최대 수혜자는 역시나 공무원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시청 남성 공무원들에게 반바지 착용을 허용한 발상도 워라밸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문제는 다리털 뒤숭숭한 남성들이 관공서가 아닌 일반 사기업체를 지키고 있었다면 필자와 같은 대다수 국민들은 불쾌하고 꺼림칙한 마음에 그곳을 절대 찾아가지 않았으리란 점이다. 그러나 민원인들 처지에서는 가기가 싫어도 가지 않을 수가 없다. 관공서에서 인허가 도장 찍어주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들이 남한사회에 어디 한두 개인가?
남성 공무원들이 시원하게 지내겠다고 채택한 반바지 착용 정책, 본질은 국민들을 발가락의 무좀균만도 못하게 여기는 관료들의 오만방자한 대국민 갑질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증권사 창구나 은행 지점에서 직원들이 자기들 나름대로 그런 편안한 복장으로 근무한다면 해당 창구나 지점은 몇 달 후에 실적 부진으로 문을 닫을 게 뻔하다.
“공무원만 하기 좋은 나라”의 말로는
대한민국은 자칭 보수세력이 정권을 잡으면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선포한다. 그러면 노조를 중심으로 거센 반발이 일어난다. 반대로 타칭 진보진영이 집권에 성공하면 “노동자 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 것을 다짐하면서 재계는 물론이고 자영업자들까지 강력한 저항에 나선다. 그 결과 한국은 기업 하기 좋은 나라도 아니고, 노동자 하기 좋은 나라도 아닌 어정쩡한 국가가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부분에서만은 한국은 화끈하다.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던 정권도, “노동자 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던 정권도 최종적으로 “공무원 하기 좋은 나라”, 아니 “공무원만 하기 좋은 나라”를 확실하게 만들어놓았다.
2019년 공무원 1인당 평균 소득은 월 530만 원이다. 연봉 기준으로는 6,360만 원이다. 더 경악스러운 사실은 이 수치가 시간 외 근무수당과 복지 포인트를 뺀 금액이란 사실이다.
실제로 현장에서 불을 끄는 소방관이나 범인들과 몸싸움을 벌어야만 하는 형사 등 일부 특수직종을 제외한 대부분의 대한민국 공무원들은 사무실 안에서 편하게 펜대만 굴리기 일쑤다. 이들에게는 절박하게 고객을 설득해야 할 부담도, 납기일 내에 제품을 책임지고 개발해야만 할 의무도 없다. 공무원이 남한사회 최고의 철밥통 웰빙 직업이 된 까닭이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워라밸은 기왕에도 배부르고 등 따신 철밥통 관료들만 결국에는 더더욱 살판나게 해줄 뿐이다. 청와대와 코드를 맞추겠답시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밀어붙인 반바지 허용 방침은 대한민국 공무원들의 가뜩이나 썩어빠진 정신상태에 잘 썩은 퇴비만 추가로 듬뿍 뿌려준 격이다.
대통령이나 총리의 장기간 휴가가 칭찬받고 권장되는 건 그 나라의 공무원들이 평소에 일반 국민과 비교해 엄청난 격무와 박봉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한국의 공무원들은 격무와는 거리가 멀뿐더러, 박봉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대통령의 격무는 국난 극복의 전제조건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년여의 임기 동안 너무 많은 휴식과 휴가를 즐겼다. 대한민국 전체 공무원들의 수장이자 대표자인 현직 대통령이 악착같이 월차를 쓰고 휴가를 챙기는데, 그 어떤 공무원이 투철한 사명감과 위기의식을 갖고서 공직을 수행하겠는가? 필자는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여성 가장들에게 후원금을 빌미로 개인적 만남을 집요하게 요구했다는 어느 젊은 남자 공무원이야말로 문재인 정권 집권 3년차인 2019년의 대한민국 공무원들의 전형적 자화상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링거를 맞아가며 일터로 출근하는 링거 투혼은 만성적인 고용불안에 시름하는 힘없고 가난한, 평범한 인민대중들만의 몫이어서는 안 된다. 철밥통 고액 연봉과 퇴직 후 풍성한 연금도 모자라, 워라밸 핑계로 열심히 휴가계획 짜고 있을 책상물림 사무직 공무원들도 이제는 링거 투혼의 대열에 동참해야 한다.
헌신과 봉사의 링거 투혼이 일상이 된 애국적인 공직사회를 시스템적으로 하루아침에 구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단은 대통령과 국무총리, 국회의장과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 같은 높으신 분들이 시범을 보여야만 한다. 덜 일하고 더 받는 무릉도원의 이상사회는 민간 분야들을 빠짐없이 전부 들른 다음 공직사회에는 가장 늦게 도착해야만 한다. 공무원들이 희생은 제일 먼저 하고, 혜택은 제일 늦게 보는 나라가 진정으로 사람 사는 세상인 것이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다. 남한이 직면한 경제위기와 외교위기는 복지부동에 찌들고 무사안일에 젖은 대한민국 공직사회의 철밥통을 깨고, 공무원들의 썩어 문드러진 정신상태를 발본적으로 뜯어고칠 절호의 기회다. 이 기회를 포착하고 활용하는 데에는 당연히 문재인 대통령이 선두에 서야만 한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남은 임기 내내 정말 힘들고 고통스럽더라도 휴일도, 휴가도 모두 반납한 채 격무에 시달려주기를 바란다. 대통령이 살인적 격무를 자청하는데 감히 어느 간 큰 공무원이 여성 민원인들을 상대로 한가하게 사적으로 전화질이나 해대고 있겠는가? 문재인 대통령을 위시한 대한민국 공직자들의 건투를 빈다. 필자도 미련 없이 휴가 포기하고서 사무실에 나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