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에는 강북이 없다
“강남스럽다!”
더불어민주당 20대 국회의원 서울지역 당선자 일동 명의로 작성된 2016년 4월 24일자 결의문을 찾아 읽고서 필자가 내놓은 한 줄 논평이다.
한반도의 문제는 분단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총선이 끝나고 새롭게 구성될 예정인 차기 국회의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공동명의로 결의문을 하나 발표했는데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 통일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고 가정해보자. 그 당선자들이 제대로 된 국회의원 역할을 감당해낼 수 있겠는가? 그들이 주축을 이룬 국회는 사상 최악의 국회라는 부끄러운 오명만 역사에 남길 게 뻔하다.
한반도의 문제가 남북한 분단의 문제이기도 하듯이 서울의 문제는 강남북 간의 불평등 문제이기도 하다. 지금부터는 가정법이 아닌 실화다. 2016년 4월에 치러진 제20대 총선에서 당시에는 제1야당이었고, 현재는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서울특별시에 할당된 총 49개 지역구 가운데 무려 35곳에서 당선자를 배출하는 대승을 거뒀다. 현재는 1석이 추가돼 36석이 서울 지역 더불어민주당 현역 지역구 국회의석 숫자다. 안철수 전 대표가 의원직을 중도사퇴한 노원병 지역구 보궐선거에서 김성환 전 노원구청장이 당선된 까닭에서이다.
무려 35명의 서울지역 20대 국회 예비 선량들이 집합해 만들어낸 결의문에는 강남이라는 단어가, 강북이라는 용어가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는다. 35명의 당선자들이 결의문의 검토를 측근 참모들에게도 맡겼을 테니 더불어민주당 사람들이 적어도 100명 가까이 해당 문건을 돌아가며 숙독했을 터이다.
대한민국 진보정치인은 문전옥답에만 뼈를 묻는다
더불어민주당은 한국 진보의 총본산을 자처해왔다. 더불어민주당의 핵심 구성원들은 1980년대에 억압과 수탈에 맞서겠다며 학생운동과 노동운동과 재야운동에 투신했던 인사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강남북 간의 지독한 사회경제적 격차와 불평등에 관해 터럭의 관심도 기울이지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범위를 좁히면 서울의, 정확히는 강북 지역의 더불어민주당 정치인들이 얼마나 깊고 심각하게 영혼의 중병을 앓고 있는지를 증거하는 씁쓸한 일화라고 하겠다.
더불어민주당 당적을 갖고서 서울에서 정치활동을 전개해온 인물들이 강남과 강북 사이의 지독한 사회경제적 격차와 불평등에 진짜 청맹과니로 무지할까? 나는 그들이 실제로 모른다고는 절대로 믿지 않는다. 그들이 그걸 정말 몰랐다면 어째서 강남 지역 출마를 폭탄 돌리기처럼 극구 마다해왔겠는가? 강남은 잘살고, 강북은 못산다는 걸 뚜렷이 인식하고 있기에 예컨대 이인영 의원은 지리적으로만 한강 이남일 뿐, 정치경제적으로는 강북권에 속하는 구로구에만 뼈를 묻을 각오로 정치를 해온 것으로 보인다.
구로구에만 뼈를 묻을 각오 아래 정치를 해온 건 며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화려하게 영전한 박영선 의원도 마찬가지다. 한 가지 우스운 부분은 박영선 의원은 구로에는 지역구 사무실의 뼈만 묻었지, 거주하는 집의 뼈는 강북에서는 부촌 대접을 받는 연희동에 묻었다는 점이다. 지역구가 회사인지, 회사가 지역구인지 대단히 아리송한 대목이다.
달은 페이크고 손가락이 팩트이다
21세기 남한사회는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하는 시대이다. 말을 해도 그냥 조용히 말하는 게 아니라 빼도 박도 못하게 돌직구로 말한다.
그렇다. 이제 진실은 달이 아닌 손가락이 있다. 우리는 여태껏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는 강남좌파의 호통과 협박에 너무나 주눅 든 나머지 달을 가리키고 있는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가 얼마나 호사스럽고 값비싼 물건인지 미처 확인하지 못해왔다.
당신이 연구하는 소재는 당신에 대해 전혀 말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진보 성향 법관들이 모여 만든 우리법연구회는 진보적 이념을 연구하는 곳이지, 진보적 이념을 실천하는 모임은 아니다. 만약에 당신이 연구하는 게 당신을 말한다면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주제로 삼은 책과 영상물을 왕년에 자주 파고든 필자는 진즉에 재벌이 되어 떵떵거리고 살아야만 마땅하리라.
강남이 강북을 질타하는 혼돈과 난맥
더불어어민주당은 서울 강북 지역구의 대다수 국회 의석을 확보했다는 데에서 강북정당이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정권의 내로라하는 고관대작들이 강남에 금싸라기 아파트를 가진 사실이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과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절차 등을 통해 드러나 힘없고 가난한 수많은 강북의 인민대중이 분노와 실망감에 들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야장천으로 꿀 먹은 벙어리라는 지점에서는 철두철미한 강남정당이기도 하다.
선거가 1년 앞으로 다가왔다. 정치인의 하루가 공천 걱정으로 시작해 공천 걱정으로 끝나는 시기가 바야흐로 본격적으로 막이 올랐다. 공천 불안에 시달리기는 더불어민주당의 강북 지역 현역 국회의원들도 예외가 아니다.
다시 추리의 영역으로 넘어가보자. 더불어민주당 강북 국회의원들이 "보수도 강남, 진보도 강남"인 불의하고 망국적인 강남패권주의에 대해 왜 그토록 모르쇠를 고집하는 것일까? 강남패권주의의 대표적 수혜자인 자유한국당이나 강남부자들이 모르는 척하는 거야 당연한 노릇이다. 그렇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지역구 의석을 싹쓸이한 도봉구나 노원구나 은평구의 주민들은 강남패권주의로 말미암아 통한의 고통과 희생을 당해오고 있다. 단적으로 은평구는 들어갈 수는 있어도 나올 수는 없는 버뮤다 삼각지대 같은 동네가 된 상태다.
따라서 필자는 더불어민주당 강북 지역 국회의원들의 생사여탈을 결정하는 공천권은 강북의 평범한 인민들에게 있지 않고, 강남의 출세하고 성공한 엘리트들에게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매우 현실적이고 상식적인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러한 경우가 아니면 강북 지역의 수십 명 더불어민주당 금배지들이 강남 앞에만 서면 구렁이 만난 개구리인 양 갑자기 그 자리에 곧바로 얼어붙을 수는 없는 탓이다.
여의도 정당판은 강남에 집 가진 교수와 학자와 전문가와 명망가와 활동가들이 강북에 터전을 잡은 정치인들을 상대로 도덕성과 개혁성을 추궁하는 혼돈과 난맥이 빚어지는 내로남불의 베이스캠프가 되고 말았다. 30억 아파트에 사는 인간이 3억짜리 아파트에 사는 인간에게 “진보색채를 강화하라”고 촉구하는 블랙 코미디의 전당이 당명에 ‘민주’ 두 글자가 삽입된 정당들의 초라하고 일그러진 현주소이다.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는 인사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공직 후보를 나름 최선을 다해 발탁했다고 항변하곤 했다. 이는 결코 거짓말이 아닐 게다. 문제는 청와대가 언급한 국민이 어떤 국민이냐는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문재인 정권이 염두에 둔 국민은 막대한 시세차익이 예상되는 방배동의 재건축 예정 아파트에 거주하는 국민들이다. 필자가 살았던, 그 어느 대형 건설사도 재건축 사업을 떠맡지 않으려 하는 월계동의 서민층 저가 아파트가 아닌 듯싶다. 돈 많은 게 큰 흠이 되지 않는 건 방배동의 여론은 될 수 있어도, 월계동의 민심은 단언하건대 아니기 때문이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력(Wealth)이야
강남 30억이 강북 3억의 개혁성을 검증하고, 진보성을 심판하는 엽기 코미디는 대한민국의 타칭 민주개혁진영 계열 정당에서는 더는 새삼스러운 사태도, 남우세스러운 사건도 아니다. 요즘 유행하는 영어식 표현을 빌리자면 루틴(Routine) 즉 일상사이다. 똑같이 30억짜리 강남 아파트에 거주하는 인간들끼리 서로 검증하고 검증당한다는 측면에서 타칭 보수애국세력 계통 정당은 그나마 최소한의 일관성이라도 갖춘 셈이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하는 시대에는 입과 글로 무엇을 얘기하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무엇을 연구하는지도 전연 중요하지 않다. 어디에 사는지가 그 인간과 세력의 본질을 대변한다. 문재인 정권의 정체성을 파악하려면 정권 실세들이 낮에 넥타이를 매고 머무는 사무실 위치가 아니라, 밤에 잠옷을 입고서 잠자리에 드는 거주지의 주소지를 주목해야만 하는 이유이다.
한국 국민들만 모르는 문재인 정권의 본질은 태평양 건너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조차 훤히 잘 아는 일이다. 트럼프는 대한민국 현 집권세력의 정체성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간파해낸 덕분에 문재인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진행할 때마다 노련한 장사꾼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해가며 대박을 터뜨려왔다. 이번에도 한국에 미제 무기 많이 팔았다고 자랑하더라. 회담 종료될까지만이라도 표정관리 좀 하지.
유능한 자는 본질을 허투루 놓치지 않는다. 트럼프는 힐러리 클린턴의 경제정책이 아니라 경제력을 물고 늘어짐으로써 톡톡히 재미를 봤다. 미국인들은 한 인물의 공식적 경제정책이 그 인물의 개인적 경제력으로 수렴되지, 그 역은 아니라는 사실을 경험과 본능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의 이와 같은 집단지성이야말로 천문학적 액수의 미국산 첨단무기에 앞서서 한국에 조기에 도입돼야만 할 것이다. 오랫동안 스스로를 진보라고 으스대온 사람들이 주식도 없고, 상가건물도 없고, 교사 아내도 없고, 변호사 남편도 없는 우리네 인민대중을 향해서 “돈 좀 많으면 어때서?”라고 도끼눈을 뜨고서 눈알을 부라리는 끔직하고 혐오스러운 광경과 더 이상 마주하지 않으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