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진원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대통령이나 재벌회장 대신에 강남 부녀회와 싸우는 강남 사람에 비유될 수도 있는 인물이다. 왜냐? 현재 그가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대상은 여당도 야당도 아닌, 대한민국 정치학계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다수 정치학자들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에 적극적이고 전폭적으로 찬성하고 있다. 반대로 채진원 교수는 해당 선거제도를 누리꾼들이 즐겨 쓰는 표현으로 지속적으로 ‘극딜’해왔다. 채진원은 천동설에 맞서 홀로 지동설을 주장하는 한국 정치학계의 코페르니쿠스일까? 아니면 도도한 시대흐름에 무모하게 항거하는 수레바퀴 앞의 사마귀일까? 판단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두는 바이다.
높고 외롭고 쓸쓸한 가시밭길을 자청한 채진원 교수와의 인터뷰는 지독하고 지긋지긋한 중국 발 미세먼지가 봄비 덕분에 오랜만에 말끔하게 사라진 2019년 3월 21을 목요일 오후, 북한산 아래에 자리한 서울혁신파크 상상청에서 진행되었다.
공희준 :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을 둘러싸고 정치권이 또다시 파행국면에 접어들었습니다. 여당과 야당의 갈등에 더해 심지어 야당 안에서까지 대립이 빚어지는 형국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전문적인 정치학자로서는 몹시 드물게 연동형 비례대표 제도에 부정적 견해를 꾸준히 피력해오셨습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어떤 지점과 부분에서 결함과 하자를 발견해 반대하신 것인지 말씀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주장은 남북분단 망각한 얘기
채진원 : 저는 처음에는 독일식 정당명부제 선거제도를 지지했었습니다. 한국에도 민주노동당 같은 진보정당이 필요하다고 보았는데, 소수정당들이 원내에서 의석을 확보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소수정당들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데에는 이 길이 가장 유효한 대안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차츰차츰 생각이 변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정치는 소수정당들만 갖고는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구조입니다. 기성정당의 존재와 역할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분단이라는 역사적 상황 아래 오랫동안 놓여왔습니다. 더욱이 강대국들이 나라 주변을 에워싸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조건과 정세를 염두에 두고서 정치가 어떻게 국민을 대표해야 할지를, 정당들이 어떻게 유권자들을 대변해야만 하는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대한민국에 가장 큰 영향을 주어온 나라는 미국입니다. 미국에는 비례대표 제도가 아예 존재하지를 않습니다. 미국에 왜 비례대표가 없는지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제가 기존의 인식을 이론적으로도, 경험적으로도 모두 바꾸는 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단명했던 제2공화국 시대를 제외하고는 줄곧 대통령 중심제를 유지해왔습니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남북한으로 갈라진 분단체제를 먼저 고려해야만 했습니다. 게다가 2공화국 정권이 채택한 의원내각제는 국민들에게 좋은 기억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의원내각제 하에서 정치적 분열과 사회적 갈등이 오히려 더욱더 심각해졌습니다. 정부의 의사결정에도 문제가 많았습니다. 군부가 국가안보를 구실로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찬탈할 수 있는 빌미를 내각제는 제공했습니다. 대통령제로 복귀한 3공화국은 빠른 의사결정을 꾀한다며 그 반작용으로 양원제를 폐지하고 말았습니다.
냉전이 맹위를 떨치던 시절에는 안보 불안감 해소가 가장 절박만 급선무로 대두했습니다. 따라서 신속한 의사 결정이 요구되었습니다. 하지만 군소정파가 난립하는 가운데에서는 신속한 의사결정을 수행하고 국가의 단합을 이뤄내기가 어려웠습니다. 저는 1961년에 5‧16 군사 쿠데타가 발발했을 때 생각보다 큰 저항이 없었던 데에는 이와 같은 사정이 작용했다고 봅니다.
대통령 직선제를 흔들지 말라
대통령 중심제의 큰 틀은 1987년의 6월 시민항쟁에도 불구하고 바뀌지 않았습니다. 6월 항쟁은 대통령 직선제를 관철하기 위한 범국민적 민주화운동이었습니다.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겠다는 자연스러운 민심의 염원이 폭발적으로 분출했습니다. 6월 항쟁의 성과로 탄생한 대통령 5년 단임제가 그 후 30년 동안을 이어져온 까닭입니다.
대통령 직선제는 오랜 투쟁과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힘겹게 얻어낸 소중한 민주주의의 결실입니다. 정말 어렵게 일궈내고 정착시킨 제도입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일부 정치인들이 의원내각제니, 이원집정부제니 주장하며 국민들로부터 선택받고 검증된 5년 단임 대통령 중심제를 마구 흔들어대고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개헌만으로는 대통령 중심제 흔들기가 효과가 없다고 계산했는지 요즘은 선거제 개편까지 카드로 꺼내들었습니다.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연동형 비례대표제’라고 번안해 부르면서요.
문제는 이 제도가 분단된 나라의 대통령제와는 어울리지 않는 선거제도라는 데 있습니다. 독일식 정당명부제는 군소정당들의 원내 진입을 편리하게 해주는 제도입니다. 양당제보다는 다당제에 부합하는 제도입니다. 그러면 다음에 어떤 모습이 펼쳐질지는 분명합니다. 여소야대 구도가 출현하게 됩니다. 몇 개의 정당들이 권력을 나눠 갖는 분점정부가 등장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현실적 여건과 풍토를 감안하면 독일식 정당명부제 아래에서는 집권당이 아무리 많아도 전체 의석의 4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기가 어렵습니다. 국회의석의 4할만으로 대통령제를 무리 없이 원만하게 운영하는 일이 가능할까요?
일각에서는 현재의 선거제도에서는 정치적 다양성이 보장되지도, 증진되지도 않는다며 지금의 시스템을 맹비난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소야대로 말미암아 대통령제의 효율성이 저하된 사태를, 역대 대통령들마다 임기 말기에 레임덕 현상에 빠진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임기 초반 힘이 오를 대로 올랐던 모든 정권들이 이러한 구조적 숙명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누가 정권을 잡든 마찬가지 모순과 한계와 모순에 직면하고, 똑같은 굴레와 오명을 뒤집어쓰기 일쑤였습니다.
여소야대의 불안정성과 정치적 의사결정의 비효율성 때문에 종국에는 누가 손해를 보게 됩니까? 최종적으로는 항상 국민들에게 피해가 돌아갔습니다. 중요하고 화급한 민생 현안들이 소모적인 정쟁에 파묻히기 십상이었습니다. 정치권이야 차례로 돌아가면서 정권을 잡으니 기뻤겠죠. 하지만 정작 세금 내는 국민들은 엄청난 손실을 겪기 마련이었습니다. 나라 전체로 따지면 이런 소탐대실도 또 없었습니다.
선거제도를 만들거나 바꿀 때에는 분단국가의 대통령 중심제에 부합하는 국회의원 선거제도가 뭔지를 우선 고민해야 마땅합니다. 저는 국민의 사활적 이익을 희생시켜가면서까지 얻어낼 수 있는 여소여대와 다당제와 분점정부의 장점이 과연 얼마다 되는지 연동형 비례대표 옹호론자들께 정중하게 묻고 싶습니다.
귤만 보지 말고 회수도 보자
미국에 비례대표가 없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는 부분입니다. 저는 미국이 민주공화제의 원리를 대단히 충실하게 따르고 존중한 까닭에 비례대표 자체를 도입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입법부와 행정부와 사법부의 삼권분립에 입각한 견제와 균형은 민주공화제를 지탱시켜주는 제일의 기본원리입니다. 민주공화제가 성공적으로 꾸려지려면 아주 공정하고 정의로운 절차와 방법으로 시민들이 자신들의 대표자를 선출해야 합니다.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은 민주공화제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최대의 위협요소로 파벌(Faction)의 해악을 꼽았습니다. 국민들은 자신들의 대표자가 민의를 성실하게 대변해줄 것으로 믿곤 합니다. 그러나 건국의 아버지들은 유권자들과 대표자들의 관계를 긍정적이고 낙관적 시각으로만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국민이 선출한 대표자들이 자신들을 뽑아준 유권자들의 이익을 외면하고서, 자신들이 소속된 파당들에게 유리한 이해관계에만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파벌에 속한 대표자들이 민주공화국의 대의를 저버릴 것이라고 염려했습니다. 그러므로 건국의 아버지들로서는 파벌의 해악을 제어할 수 있는 모종의 대책을 강구해야만 했습니다. 왜냐면 파벌의 해악을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나라가 망할 수 있다고 그들은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파벌의 해악을 방지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로 정당들이 서로 경쟁하도록 이끄는 방안이 있었습니다. 담함과 결탁의 가능성을 봉쇄하자는 취지였습니다. 둘째로 가능한 한 큰 선거구 단위로 대표자를 선출하도록 유도하는 방도가 있었습니다. 선거구가 커지면 커질수록 파벌이 발호할 여지가 줄어들 것이라고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전망했습니다. 그들은 파벌이 억제되면 억제됨과 비례해서 그 대신 국민들이 누리는 편익이 증대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 결과 미국은 오늘날인 21세기까지도 비례대표 제도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국의 헌법이 비교적 넓은 광역선거구를 기준으로 정당들끼리 치열하게 경쟁하며 공공선을 추구하도록 설계된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비례대표는 자신들을 의회에 보내준 파벌들의 이해관계를 더 열심히 대표할 가능성이 큽니다. 미국의 헌법의 아버지들이 처음부터 비례대표 제도를 안중에 두지 않은 연유입니다. 저는 미국의 사례가 보여주는 것처럼 삼권분립을 기초로 하는 민주공화국에서는 비례대표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원칙적으로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 중심제에서의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치 망치는 지름길
그렇지만 이건 어디까지는 원칙론일 뿐입니다. 미국에는 그 나름의 특수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수평적으로는 삼권분립의 형식으로, 수직적으로는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내치에서 대등하게 공존하는 합중국 형태로 권력이 분산되어 있습니다. 미국은 분권과 자치의 원리가 탄탄하고 합리적으로 작동하는 나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비례대표가 없어도 정치과정에 큰 탈은 없습니다.
한국은 미국과는 정치적 전통도, 국민들의 정치의식도 다릅니다. 더군다나 미국과 견주면 민주주의의 역사가 아직은 길지 않습니다. 그로 인해 미국의 체제와 제도를 공식 그대로 대입하면 부작용과 거부반응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주객을 완전히 전도시킬지도 모를 불합리하고 위태로운 제도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역구 254석, 비례대표 46석으로 각각 짜인 현행 의석분포를 존속시키는 것이 국민들의 눈높이와 일치하는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현행 국회의석은 주류인 지역구 의석은 다수대표제로 선출하면서, 소수자 보호를 목적으로 비례대표를 병립형으로 보완재로 가미하는 구조입니다. 이는 민심의 전반적 여망과 딱 맡는 제도입니다. 통합과 다양성의 상충되는 요구를 절묘하게 융합시켜주는 제도이기도 하고요.
반면에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주객을 완전히 전도시킬지도 모를 불합리하고 위태로운 제도일 수가 있습니다. 연동형 비례대표는 한국의 실정에 맞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와 문화와 관습이 전혀 다른 몇몇 서유럽 나라들에서 실시하는 제도를 아무런 여과와 조율 없이 한국으로 직수입하면 어떤 결말이 생겨날까요? 저는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 등의 남미 국가들에서 전개되는 사건들이 우리에게 강 건너 불로만 남아있지는 않으리라고 예상합니다. 독일로 웅변되는 서유럽 방식의 연동형 비례대표 제도가 다른 나라들에게는 순기능보다는 부작용이 훨씬 더 큰 제도임은 이미 여러 정치학자들의 연구로 증명되었습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군소정당의 난립을 초래합니다. 파벌정치를 강화합니다. 그 결과 정당체계가 극심하게 파편화됩니다. 대화와 소통이 원천적으로 안 되는 극도의 대결과 혼란상이 야기되는 법입니다. 원내에 대표자를 진출시킨 작은 정당들은 자기네 이념과 색깔을 선명하게 알리는 데에만 급급해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면 정치적 원심력이 극대화되면서 국민들의 실질적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타협과 절충의 협치의 정치가 지속적으로 무산됩니다. 국회가 양보와 협상이 실종된 막무가내의 싸움판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되는 탓입니다.
대통령제는 의회를 해산할 수 있는 제도가 아닙니다. 따라서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의회에 사사건건 발목이 잡힙니다. 정치는 파행과 파국으로 점철될 위험성이 높습니다. 이렇게 대통령제와 비례대표제가 맞지 않는 제도임은 ‘뒤베르제’의 법칙을 통해 벌써 오래전에 입증된 바가 있습니다. (②편에서 계속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