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전철이 종횡무진으로 전 국토를 누비고 자율주행차가 전 세계의 도로망을 금방이라도 점령할 기세인 지금, 나는 흰 당나귀를 타고서 외롭고 높고 쓸쓸한 어디인가로 갑자기 떠나고 싶은 충동이 문득 일었다. 필자가 백승대 도서출판 매직하우스 대표를 찾아간 까닭이다.
백승대 대표는 얼마 전 ‘백시나’라는 필명으로 백석의 시선집인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엮어냈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 마가리(오두막)에 살기에는 너무나도 세속의 때를 짙게 탄 두 중년 사내의 만남은 2019년 어느 봄날에 이뤄졌다.
공희준 : 앞으로도 이런저런 울퉁불퉁함과 우여곡절이 예견됨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은 대결의 시대로부터 대화의 시대로 느리지만 착실하게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아래에서 백석 시인과 그가 남긴 여러 작품들은 한민족의 문학사에서 어떠한 가치와 의의를 가지고 있는지 말씀해주시길 바랍니다.
‘백석의 재발견’은 왜 늦어졌나
백승대 : 백석 시인이 활발하게 활동했던 시기는 1930년대와 1940년대에 걸쳐 있습니다. 지금 기준에서 바라보자면 백석은 꽤 오래전 인물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백석 시인에게도 선배 시인들은 여럿 있었습니다. 대표적 인물이 김소월 시인입니다.
김소월과 백석은 같은 지역 출신입니다. 고향이 같습니다. 더욱이 두 사람이 공부했던 고등학교도 똑같습니다. 김소월 시인은 1902년생입니다. 백석 시인은 1912년생입니다. 김소월과는 딱 10년 차이입니다.
백석 시인이 본격적으로 집필 활동에 나선 때는 김소월이 우리나이로 겨우 서른세 살에 요절한 다음이었습니다. 백석은 보통의 한국인들에게는 오랫동안 기억에서 사라진 인물이었습니다. 1987년 6월 시민항쟁의 성과물로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일정하게 보장되기 이전까지는 그의 작품들은 철저히 금서로 분류돼왔기 때문입니다. 북한 체제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작품이 금서로 분류된 문인은 비단 백석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시인으로는 정지용과 이용악처럼, 소설가로는 홍명희와 이태준 같은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냉전이 기승을 부리던 남한 땅에서는 사람도 작품도 모자이크 처리가 됐습니다.
오랫동안 금서로 묶여 있던 이런 쟁쟁한 작가들의 작품들이 1987년 이후에 대거 해금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사회의 대중들이 백석의 진가와 진면목을 비로소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창작과비평사에서 남한에서는 처음으로 백석 전집을 출판하게 됩니다. 그런데 창작과비평에서 나온 전집을 살펴보면 백석이 정지용이나 이용악의 작품들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시들을 써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첫인상만 감안하면 그럴지도 모릅니다. 순 우리말로 된 시어를 사용했으면서도, 제목에는 한자가 많다는 점들이 비슷하게 여겨졌거든요. 그래서 백석이 그 문학적 위상과 중요도에 비해서는 일반 문학애호가들에게 알려지는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았습니다.
나와 백석과 첫 베스트셀러
저는 백석에게는 남들과는 다른 그만의 매력이 분명히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출판사인 「시와사회」를 차린 이듬해인 1997년에 백석 시집을 펴냈습니다. 저는 백석의 시들을 컴퓨터로 글을 읽고 쓰는 신세대들이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주석을 덧붙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 제목의 시집을 세상에 내놨습니다. 며칠 전 출간된 동명 시집의 전신격인 책이었습니다. 20세기의 세기말에 어울리는 현대적 감각과 디지털 혁명의 분위기를 덧입힌 노력이 주효한 덕분인지 이 책은 남한에서 나온 백석 시인의 시집들 중에서는 최초로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려놓았습니다. 제가 출판인으로서 기록해낸 최초의 베스트셀러이기도 했고요.
김소월은 한국 현대시의 지평을 개척한 선구자적 시인입니다. 그전에도 주요한을 비롯한 여러 작가들이 현대적 형태의 시를 써내긴 했지만 문학성과 대중성을 전부 감안하면 백석 이전에는 김소월이 한국 현대시에서 백석의 사실상 유일한 선배라고 평가될 수가 있습니다.
백석은 오산고보를 졸업한 다음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곧장 대학에 진학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는 대학을 들어가는 대신에 1년 정도를 경성, 곧 지금의 서울에서 지내게 됩니다. 백석은 서울에서 무의미한 허송세월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는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해 당선됐습니다. 흥미로운 부분은 백석이 시가 아니라 단편소설로 뽑혔다는 점입니다. 이윽고 백석은 조선일보의 지원을 받아 일본 유학을 떠나게 됩니다.
(백석이 문단에 등단할 무렵의 조선일보는 21세기 한국인들이 알고 있는 현재의 조선일보와는 달리 정치적인 이념과 노선에서 막장을 달리는 악명 높은 수구반동 매체가 아니었다. - 필자 주)
일본으로 유학을 간 백석은 영문학을 전공했습니다. 그가 조선으로 돌아와 영어교사로 근무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 유학 당시에 영문학을 전공한 배경 덕택이었습니다. 백석은 영문학을 전공하는 과정에서 진짜로 영문학을 공부했습니다. 단지 영어만 기능적으로 학습한 경우는 아니었습니다. 그가 현대시에 눈을 뜨게 된 계기가 다름 아닌 여기에 있습니다.
영문학을 공부하던 백석이 특히 사랑하는 외국 시인들이 있었습니다. 프랜시스 잠(Francis Jammes : 1868~1938)과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 1875~1926)였습니다. 이들의 시를 탐독하면서 백석은 우리나라 최초로 모더니즘을 받아들였습니다. 청년기에 찍은 백석의 사진들은 정말 모던한 인상을 풍깁니다. 전형적인 모던 보이(Modern Boy)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백석의 세련되고 도시적인 외양에만 집중하다 보면 그의 마음속 깊이 자리를 잡았던 진지한 문제의식을 그냥 지나칠 위험성이 큽니다.
백석이 일본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면서 치열하게 고민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가장 모던한 것이 뭔지가, 그리고 가장 조선적인 것들이 무엇인지가 나라 잃은 젊은 영문학도 백석의 내면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중차대하고 본질적인 화두였습니다. 그는 그와 같은 깊고 묵직한 고민을 거듭하면서 단연 현대적이면서도 제일 조선적인 시를 쓰겠다는 결심을 단단히 굳히고 조선으로 귀국하게 됩니다.
백석의 시에는 그의 문제의식과 목적의식이 확연히 두루 드러납니다. 현대적 색채와 전통적 요소들이 그의 작품들 안에서 아주 절묘하게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이유에서입니다. 백석이 쓴 시의 형식 자체는 모더니즘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에 담긴 내용과 서사들은 조금의 어긋남도 없이 매우 조선적인 정신과 의식을 반영합니다.
백석, 외롭고 고독했으되 높고 우뚝한 존재
일본 제국주의의 발톱은 일제강점기 말기로 가면 갈수록 가일층 사납고 표독해졌습니다. 더욱이 많은 유명 문인들이 타협과 굴종의 길을 선택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이광수와 최남선, 서정주와 모윤숙 같은 이름난 작가들이 일제가 자행한 잔악한 식민통치를 찬양하고 일본군부가 도발한 무모한 태평양전쟁을 미화하는 반민족적인 친일문학의 대열에 차례차례 발을 들여놓고 말았습니다. 백석은 달랐습니다. 그는 일본어로 된 단 한 편의 시도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친일문학의 부끄러운 탁류에 아예 발을 담그지 않았습니다.
백석은 가장 조선적인 문학이 어떤 것인지를, 가장 현대적인 시어가 어느 것인지를 끊임없이 사색하고 궁리한 시인이었습니다. 인터뷰 도중에 시를 낭송하는 일이 조금은 생뚱맞은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백석의 삶과 작품이 오늘 이야기의 핵심인 만큼 가장 백석적일 수 있는 시 한 편을 제가 잠깐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모닥불」이라는 제목의 시입니다.
모닥불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다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락잎도 머리카락도 헝겊 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깃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門長) 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이도 큰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상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1연에서는 모닥불 안에서 타는 사물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2연에서는 모닥불 주위에 모인 사람들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3연에서는 모닥불 안에서 타고 있는 사물들이 상징하는 의미와 모닥불 곁에 모인 사람들이 체현한 역사성을 곱씹고 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연에 시인이 독자들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강렬하게 응축돼 표현된 셈입니다.
1연은 조선이 왜 망했는지를, 어째서 근대화에 실패했는지를 그리는 내용입니다. 백석은 전근대적인 것들을 고집스럽게 부여잡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이 끝내 망국의 비운을 겪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조선이 진즉에 버렸어야만 할 것들을 너무나 뒤늦게 내버렸음을 그는 통탄하고 있지요. 그는 오래전에 태워 없애야만 할 낡은 것들과의 결별을 망설이고 주저한 조선의 소심함과 보수성을 슬픈 목소리로 나무랍니다.
2연은 낡은 것들을 부여잡았던 사람들에 관한 설명을 펼쳐놓고 있습니다. 낡은 것들을 미련스럽게 움켜쥐고 있었던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백석은 단호하게 캐묻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작가는 원망하고 질책하는 데에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3연을 찬찬히 음미해보세요. 낡은 것들을 태워 없앤 곳에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나가려는 진취적 기상이 조용하면서도 웅장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방금 소개해드린 「모닥불」은 단순한 서정시도 아닐뿐더러 아프고 고통스러운 가족사를 토로하는 개인적 한풀이의 하소연도 아닙니다. 우리들 조선민족이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더 큰 데에 기어이 닿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역사적 발전과 추동에의 의지를 선포하는 시라고 일컬어질 수가 있습니다. (②에서 계속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