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민간의 여염집에서마저 완전히 퇴출된 ‘장님 3년,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의 전근대적인 봉건적 행동수칙이 우리나라 기성 정당에서 당직자 신분이나 당원 자격으로 활동중인 청년들에게는 여전히 안전한 처세의 비법으로 통용되고 있다. 문제는 시집살이 독하게 한 며느리가 나중에 모진 시어머니가 되듯이, 눈감고 귀 막고 입 닫은 덕분에 출세한 정치인들일수록 국민과 야당과 언론의 눈과 귀와 입을 악착같이 가리고 틀어막는 오만하고 독선적인 정치인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고강섭은 달랐다. 그는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고, 두 귀를 활짝 열여놓고 있었다. 단, 입만은 완전히 열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고강섭의 정치적 시각과 청각이 여전히 온전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대한민국 청년정치의 미래가 아직은 살아있다는 희망을 품기에 충분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이명박은 경희대의 반면교사
공희준 (이하 공) : 문재인 대통령께서 고강섭 팀장님의 대학교 선배 되시죠?
고강섭 (이하 고) : 예.
공 : 현직 대통령을 배출한 학교는 알게 모르게 다양한 혜택과 이익을 누리기 마련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졸업한 고려대학교가 대표적 사례였습니다. 오죽했으면 ‘고소영(고대-영남-소망교회) 라인’이라는 신조어마저 탄생했겠습니까? 경희대학교 동문들의 경우도 그와 같은 프리미엄을 향유하고 있나요?
고 : 제가 현재는 학교에 정기적으로 나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저의 모교에 어떠한 지원이 제공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총동문회 모임에 참석하거나, 동문회보 등을 읽어보면 특별한 지원은 없습니다.
공 : 제가 경희대가 여대 비슷한 분위기가 있다는 얘기는 직간접적으로 몇 번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각자 개인플레이에 열심이지, 단체로 모여 “으쌰으쌰!” 하는 현상은 없다고요.
나도 동문들과 특별히 끈끈한 관계를 맺고 사는 인간은 아닌 까닭에 같은 학교 출신들끼리 우르르 몰려다니며 밀어주고 끌어주는 광경을 보면 혐오스럽기에 앞서서 솔직히 신기하게 느껴지곤 한다.
공 : 문재인 대통령께서 대학 동문들을 유달리 챙겨주지는 않는 건 나라 전체를 생각하면 굉장히 잘하는 일이라고 볼 수가 있겠네요? 하지만 경희대 동문들 입장에서는 조금은 서운하지 않을까요?
고 : 전혀요. 정부에서 특혜 시비가 일 수도 있는 의심스러운 내역의 지원을 경희대에 오히려 일절 해주지 않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훨씬 더 바람직하기 때문입니다. MB가 고대를 밀어준 건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고려대학교가 여론의 싸늘한 시선을 받으며 학교의 이미지가 나빠지고 위상이 낮아진 사태는 어쩌면 오래갈지도 모릅니다. 대통령 한 명 믿고서 학교 발전을 추진한다면 그야말로 소탐대실일 뿐입니다. 문재인 대통령께서 다니셨다는 이유로 경희대에 과도한 정부 지원이 집중되거나, 경희대 출신들이 능력 이상으로 잘나간다면 이는 문 대통령이 갖고 계신 정의로운 정치철학과 정면으로 배치되기 마련입니다.
공 : 그렇지만 예전에 KBS 한국방송에서 아나운서로 근무했던 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은 대통령과 대학동문 사이 아닌가요?
고 : (금시초문이라는 듯) 그래요?
공 : 제가 문재인 정부에 우호적 성향은 아닙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는 찍지 않았으니까요. 2012년 대선에서는 문재인 후보에게 투표했었지만…. 그럼에도 저는 자신의 대학동문들을 아직까지는 중용하지 않아온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철학과 용인술만은 아주 높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왜나면 정권 말기마다 불거지곤 하는 이런저런 게이트들에 약방의 감초 격으로 항상 등장하는 인물들이 대통령의 학교 선후배나 동기동창생들이기 때문입니다.
고 : 그렇죠. 지연, 혈연, 그리고 학연이 문제의 소지가 되어 항상 말썽을 일으켜왔습니다.
공 : 학맥과 관련된 부분은 지금의 청와대에서 아주 잘 관리가 되고 있다는 거네요?
고 : 제가 아는 한에서는 그 누구든 경희대 나왔다고 해서 부당한 특혜를 누리거나, 이권을 챙긴 경우는 단언하건대 없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께서 그걸 용납하실 분도 아니시고요.
청년은 586의 소비자가 아니다
공 : 청년들의 시각과 경험에서 바라본 586 세대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고 : 저에게는 오늘 인터뷰에서 제일 심오한 질문입니다. 답변을 하기도 굉장히 난감한 주제이고요. (계면쩍게 웃으며) 제가 지금 모시고 있는 분이 586 세대에 해당되기도 하고요.
공 : 저도 586입니다. (웃음)
고 : 저는 지금의 청년들과 586 세대는 큰 관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 : 남남이라는 말씀인가요?
고 : 제가 청년 정치인으로 정치를 시작했을 무렵에는 568들을 매섭게 비판했었습니다. 586 세대가 바로 아래 후배들을 키워주지 않았고, 그 연쇄효과로 586 세대와 지금 청년들 중간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해줘야만 할 저희 바로 윗세대 선배들도 저희 세대를 거의 방치하다시피 했으니까요. 연결고리가 결여된지라 저희는 586 세대가 가진 철학도, 가치도, 방향성도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공 : “우리를 보살펴주지 않았다”는 건 개인적 섭섭함의 원인은 될 수 있어도, 집단적 적대감의 근원으로 작용하기에는 상당히 약합니다.
고 : 저희가 586들에게 가진 비판적 정서는 본질적으로 섭섭함이나 서운함 같은 감정적 차원에서 비롯된 것은 아닙니다. 청년 세대들은 586 세대가 너무 쉽게 권력의 중심으로 진했다고, 너무나 편안히 한국사회의 주류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586 세대의 권위와 정당성을 아예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강합니다. 저도 한때 마찬가지 의견이었어요. 586들이 비록 선배들이기는 해도 사사건건 개입하지도 말고, 오만하게 영향력을 행사하지도 말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공 : 586은 가장 쉽게 기득권을 얻은 세대인 동시에 가장 악착같이 기득권을 지키려 드는 세대이기도 합니다. 청년이 아닌 중년인 제가 봐도 정말 징글징글합니다.
고 : 586들은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손에 넣은 권력을 절대로 내어줄 수 없다는 투입니다. 제가 정치에 입문한 초기에 586 세대를 청산의 대상으로 간주하게 된 이유였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지금은 당시와는 생각의 지향을 조금은 달리하고 있습니다.
공 : 동기가 뭐죠? 전향하거나 투항한 건가요?
고 : 세대와 세대 사이의 연대와 협력 없이는 세상을 효과적으로 바꿔가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청년들이 연대하고 협력하기가 비교적 수월한 세대가 586 세대인 이유에서입니다. 하지만 청년 세대와 586 세대 사이의 굳건한 연대와 지속가능한 협력을 위해서는 기득권을 가진 586 세대의 성찰과 변화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공 : 구체적으로 어떤 성찰과 변화가 선행되어야 합니까?
고 : 청년들을 소비의 주역으로만 삼지 말아야 합니다. 청년들을 이를테면 586 세대의 책 팔아주고, 티켓 사주는 우매하고 수동적인 소비자들로만 계속 여긴다면 청년들과 586의 관계는 다시는 건널 수 없는 다리를 건넌 것처럼 완전히 단절될 수가 있습니다.
공 : 제가 586의 입장에 잠시 역지사지해보겠습니다. 586들도 알고 보면 자기 윗세대와 싸워서 권력이든 이권이든 기득권이든 쟁취한 겁니다. 누구한테서 앉아서 물려받은 건 아니에요. 따라서 아랫세대들도 586들을 들이받으며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얻어내야만 합니다. 강자를 물리치면서 나 또한 강자로 성장하는 법입니다. 586들과 싸우는 과정에서 개인으로서든 집단으로서든 새로운 스타가 탄생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랫세대는 윗세대와 싸우기는커녕 윗세대의 확성기 노릇 하기에만 바쁩니다. 제가 586들과 똑같은 소리를 내면서 자기가 진보라고 우겨대는 20~30대들을 엄청 한심한 존재로 생각하는 까닭입니다. 그게 청년입니까? 로봇이지! 그래서 묻겠습니다. 청년들은 586들과 왜 싸우지를 못하나요?
내 질문을 받은 정치인 고강섭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좀체 말문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고강섭이 대답을 망설이는 틈을 빌려 필자는 장광설을 이어갔다.
공 : 내일모레면 수십~수백만의 586들이 차례로 환갑잔치를 치르게 됩니다. 지금의 청년들은 586들 환갑잔치에서 재롱부릴 작정인가요? 586들이나 청년들이나 근본적으로는 똑같이 늙어가는 처지인데.
고 : 그게 저희들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정당 안의 청년들은 우리 시대 청년들의 우울한 자화상을 아주 전형적으로 그려낸 사례이겠고요. 청년 정치인들이 기성 정당들에서 활동하려면 지역위원장과의 관계도 불편하지 않게 관리해야 하고, 중앙당에도 기댈 수 있는 언덕을 확보해놔야 합니다. 라인정치, 즉 계보정치 또는 계파정치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 것이죠. 그렇게 정당구조 내로 편입되는 순간 기존 시스템에 대한 저항 같은 일은 더 이상 꿈도 꿀 수 없게 됩니다. 단적으로 이동학 전 혁신위원이 2015년 중반에 이인영 의원에게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는 용단을 내려줄 것을 호소했다가 엄청난 외압에 시달렸었습니다.
청년들이 586들에게 순종하는 까닭은
2015년 7월, 새정치민주연합의 이동학 혁신위원은 586 정치인의 간판격일 이인영 의원에게 험지 출마를 촉구했으나 “너나 잘해!”라는 식의 싸늘한 핀잔만 사고 말았다. 다음해 치러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대협 의장 출신의 현역 국회의원들 가운데 오영석 의원 단 한 명만이 유일하게 물갈이 대상이 되었을 정도로 586 세대는 집요하고 끈덕지게 생존에 성공했다. 그 오영식 전 의원조차 한국철도공사(KORAIL) 사장으로 화려하게 부활하게 된다. 586들의 정치적 생명연장 능력이 얼마나 탁월한지를 입증해준 씁쓸한 일화들이다.
고 : 그때 청년들이 끝까지 함께 싸웠어야 했는데….
공 : 586들이 강하다고는 하지만, 작용이 세면 반작용도 세듯이 586들에 대한 반감 역시 그만큼이나 강합니다. 그런 반감을 동력으로 활용하면 되잖아요. 예컨대 과거에 586들이 맞서 투쟁했던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이 무지 강했지만, 전두환 일당에 대한 반감 또한 무지하게 강했습니다. 그 반감이 87년 6월 항쟁의 불쏘시개이자 원동력이 됐습니다. 586들은 군부정권의 작용과 길항하는 반작용을 유효적절하게 이용했던 것이죠. 586들이 아무리 힘이 센들 전두환만큼 세지는 않잖아요. “586이 너무 세다”는 얘기는 핑계는 될 수 있을지언정 이유는 될 수가 없습니다.
고 : 586의 최대 강점은 시대정신을 공유하고 있다는 강력한 동질감에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청년들은 이런 동질성이 빈약합니다. 청년들을 모이게 만드는 구심력이 없습니다. 그 결과 다들 각자도생에만 열중하고 있습니다.
공 : 여의도 정치권의 586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물밑에 빙산의 몸통이 있는 것처럼 586들의 진짜 몸통은 학계, 언론계, 문화예술계 등 곳곳에 골고루 포진해 있습니다. 그람시가 설파한 국가가 시민사회 전부가 586들의 아성이자 놀이터가 돼버린 것이죠. 그런데 제가 정작 진짜로 짜증이 나는 건 기득권집단의 일원이 된 586들이 아닙니다. 한겨레신문이나 경향신문 같은 주류 진보매체들에 20~30 세대를 대표한답시고 나타나 586들의 논리와 주장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고스란히 앵무새처럼 흉내 내는 친구들입니다. 사회생활 기술만 영악하게 발달한 셈이랄까요. 젊은 친구들 중에서 왜 이렇게 586들 푸들 구실을 자청해 하는 친구들이 많은 겁니까? 출세하고 성공할 수 있는 길이 그것밖에 없는 탓에 그런가요? 청년이면 자기들 경험을 말해야지, 왜 남이 30년 전에 경험했던 걸 대신해 이야기하는지 해괴하기 짝이 없습니다.
고 : 저는 개인을 탓하기 이전에 사회구조적 측면에 우선 주목했으면 합니다. 586 세대는 자신들 시대의 시대정신을 공유해본 경험이 있는 집단입니다. 현재는 사회 각 분야에서 가장 큰 권력을 잡고 있는 연령대에 도달했고요. 586들에게는 그들만의 리그가 있습니다. 그들만의 네트워크가 있습니다. 이것과는 정반대로 청년들은 지독하게 파편화돼 있습니다. 시대의 정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개인의 생존을 목적으로 투쟁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정치는 물론이고 학계, 언론계, 심지어 시민사회진영까지 라인정치를 하지 않으면, 곧 위로 통하는 줄을 잡지 못하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라인의 꼭짓점에는, 줄의 최고봉에는 586들이 있는 게 청년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냉혹한 현실입니다. 586들 눈 밖에 나면 생존할 수 있는 방도가 이내 사라집니다. 그러다 보니 청년들이 586들의 사고와 가치관에 자연스럽게 동화된 것이죠.
고강섭이 지적한 586 세대의 2030의 관계는 납치범과 납치범을 사랑하게 된 인질의 관계를 떠올리게 했다. 허나 이러한 도식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돈과 권력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시간이고, 시간은 늘 청년들의 편이기 마련이다. 586이 무섭다는 얘기를 노인들은 할 수 있어도, 청년들은 해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공 : 586들의 추태는 장소 불문, 장르 불문입니다. 제가 최근에 제일 꼴불견으로 생각하는 풍경이 있습니다. 젊은 아이돌 가수들이 80년대 노래를 재취입하고, 586 대중음악 평론가들이 이를 극찬하는 모습입니다. 아이돌이 비로소 음악에 눈떴다고요. 아니, 그러면 자기들부터 자기 윗세대들 좋아했던 뽕짝 불러야지 말이야! 음악적 성숙을 위해서. 고강섭 팀장님의 분석을 종합하자면, 현재로서는 하늘이 두 쪽 날지언정 청년들이 586들을 들이받는 사태는 절대로 없을 거라는 말씀이네요?
고 : (입맛을 한번 다시고) 안타깝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공 : 그러면 청년세대는 앞으로 영원히 ‘586 제국’의 식민지 노예로 살아가야겠네요?
고 : 그래서 청년세대를 위한 저항의 근거지가 더더욱 필요합니다. 기성 정당 내부에 설치된 다양한 청년조직들은 이 임무를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정당 외부에서 힘을 모으는 일이 필요하다고 확신하는 까닭입니다. 정당은 당내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인물들을 정작 중요한 선거에서는 전면에 내세우지 않습니다. 장하나 전 의원도, 김광진 전 의원도 본래는 당밖에 있던 인물들입니다. 신보라 의원과 김수민 의원도 정당에서 정치를 배운 인사들은 아닙니다. 정당 바깥에서의 활동 이력 덕분에 여의도 국회 입성에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인재영입이라는 고답적 틀 아래에서 인지도 있는 외부 인사들을 끌어들인 형태입니다. 586들의 위세에 눌린 일에 더해서 당내에서 사람을 키우지 않는 풍토까지 겹쳐지면서 정당 안에서는 청년정치의 꿈을 이뤄나가기가 원천적으로 힘든 구조가 되었습니다.
청년들, 한국판 트럼프에 열광 가능성 크다
공 : 문재인 정부의 핵심적 지지기반은 586 세대입니다. 만약 문재인 정부가 위기국면에 봉착했을 때 586들이 문 정부를 구하는 일에 함께 나서자며 청년들에게 손을 내밀면 지난번 촛불시위 당시와 같은 세대를 뛰어넘는 폭넓은 연합전선이 구축될 수가 있을까요?
고 : 그건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기성 정당 안에서 활동하는 청년들은 586들의 제안에 호응할 수도 있겠죠. 당 차원에서 나가니까요.
공 : 월급 받으면 나가야죠. (웃음)
고 : 그렇지만 일반 청년들은 쉽게 움직이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문재인 정부의 운명이 청년들의 운명과 직결되는 상황이 아니면 청년들은 문재인 정부의 위기를 강 건너 불구경쯤으로 생각할 확률이 높습니다.
공 : 청년들의 울분과 불만이 언젠가는 진짜 제대로 폭발할 수도 있습니다. 촛불시위처럼 얌전하고 순치된 방식이 아니고, 정말 화끈하고 야성적인 형태로요. 2020년의 21대 총선이나 2022년의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한국판 트럼프가 출현한다면 청년들에 여기에 열광할 가능성이 있습니까?
고 : (주저하지 않고) 저는 열광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하는 편입니다. 지금의 청년들은 과거와 달리 추상적 이념에 휩쓸리지 않습니다. 생활정치와 관련된 문제들에 대단히 민감하고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그러므로 청년세대들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이들을 위한 탄탄한 사회안전망이 지금처럼 유명무실한 상태로 계속 남아있다면 청년들의 민심은 우리가 이제껏 봐오지 못했던 방향을 향해 크고 뚜렷이 바뀔 수 있습니다.
공 : 마지막 질문입니다. 민주노총은 현재의 청년들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한마디로 비호감인가요?
고 : 비호감이죠.
공 : 어떤 연유에서 민주노총이 청년들에게 비호감 조직이 된 건가요?
고 : 청년들은 민주노총이 고수해온 투쟁방식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60~70대 어르신들이 자기들 맘에 들지 않는 소리를 들을 때면 곧장 “너 빨갱이지?” 하는 식으로 나왔다가 청년들에게 비호감의 대상으로 낙인찍혔습니다. 자기를 변화된 시대에 맞춘 것이 아니라, 변화된 시대를 자기에 맞추려다가 시대착오적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민주노총의 경우도 청년들에게는 시대착오적 존재로 보입니다. 단체로 빨간 머리띠 묶고서 길부터 막는 노조의 행태가 청년들에게는 낡고 고루하게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공 : 청년들에게 민주노총은 나쁜 사람들이 아닌 낡은 사람들이네요?
고 : 지금의 청년들은 그들의 선배 세대와는 교육환경부터가 달랐습니다. 더욱이 합리적 면모를 중시하고 창의적 요소를 추구합니다. 민주노총의 행동방식이 청년들의 눈에는 비합리적이고 집단주의적 인상으로 비치고 있습니다. 호감이 가려야 갈 수가 없는 것이죠.
공 : 저도 민주노총이 주최하는 집회현장들을 지나갈 때마다 유심히 관찰해보면 집회의 참석자들이 다들 머리가 허옇습니다. 젊은 참석자들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날의 민주노총은 중장년 가장들의 모임이지, 청년들의 조직은 아닙니다.
고 : 민주노총뿐만 아니라 한국노총도 저지른 치명적 실수가 있습니다. 21세기 한국사회에서 대다수 평범한 노동자들은 청년세대에 속합니다. 이 대다수 노동자들을 기존 거대 노조들이 견인하지도, 포괄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공 : 노조와 노동자의 분리네요. 농협과 농민들이 괴리된 것처럼.
고 : 저는 민주노총이 자신들의 정치적 힘을 과시하는 데 지나치게 몰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노총은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을 규탄하는 것을 집회의 목표로 내걸었습니다. 그렇지만 민주노총에 가입하지 못한 영세사업장의 노동자들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민주노총의 구호와 요구가 공허하게 들릴 따름입니다. 민주노총이 집착하는 정치적 쟁점들의 대부분이 평범한 노동자들의 실제적 삶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문제들이기 때문입니다.
공 : 거대 제조업체에 취업하는 청년들이 이제는 많지 않죠?
고 : 그렇게 많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지금의 청년들은 경쟁이데올로기와 개인주의가 지배하는 풍조에서 파편화된 삶을 살아왔습니다. 특정 조직에 들어가 그곳에 소속감을 가져야 안도감을 느끼는 기성세대와는 확연히 다릅니다. 노조의 낮은 조직률이나 청년당원이 가뭄에 콩 나듯 하는 정당들의 현주소가 현 시기 청년들의 좌표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공 : 대학교 동아리들도 회복 불능의 멸종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들었습니다.
고 : 대학교의 학생회도 무너졌습니다. 지금은 학생회가 ‘학내복지 자판기’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청년들은 특정한 집단에 들어가는 걸 꺼려합니다. 단체에서 활동할 시간에 차라리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합니다.
공 : 단체전은 없고 개인전만 있는 세대네요.
고 : 그래서 청년 정치인들의 중심적 고민은 청년들 사이에 공동체성을 회복할 수 있는 분위기를 어떻게 만들어나갈까에 있습니다.
공 : 학교에서 어떤 학문 분야를 전공하셨죠?
고 : 대학원에서 청년사회학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박사 과정은 정치사회학과 교육사회학으로 밟고 있습니다.
공 : 좋은 성과 이뤄내시길 기원하겠습니다. 긴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고 : 고맙습니다.
고강섭은 재단법인 한국청년정치연구원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일했다. 서울특별시 청년정책위원회 위원을 거쳐,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의 청년 태스크포스 위원을 지냈다. 지금은 중랑구 청년정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