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서울 강서구(을) 선거구 후보는 586 세대 정치인들의 대표주자는 아니다. 그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거쳐 청와대에서 대통령 비서관까지 역임하기는 했으나 인지도와 이름값에서 이인영 의원이나 우상호 의원, 그리고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같은 내로라하는 586 세대의 간판스타들에게 여전히 밀리는 것이 솔직한 현실일 것이다.
586 정치인들의 중심부가 아닌 주변부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이 어쩌면 그로 하여금 586을 위한 변명 아닌 변명에 대담하게 나서게끔 이끌었을지도 모른다. 거대한 변화의 기운은 중앙이 아니라 외곽의 변방에서 태동하는 경우가 잦았다. 결자해지라고 했다. 너무나 오랫동안 지체되어온 586들의 자기쇄신을 위해서는 당사자격인 586은 586이되, 586 세력의 중심권에 서본 경험이 거의 없었을 진성준 같은 인물들이 먼저 동을 뜨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필자에게는 잠시 스쳐지나가듯 들었다.
군부독재는 갔지만 갑을관계는 남아
진성준 : 저희가 1980년대에 외쳤던 민주주의는 군사독재를 종식시키고 선거민주주의를 복원하자는 것에 초점과 목적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저희의 요구와 바람대로 군부정권은 자취를 감췄습니다. 우리나라의 정치적 민주주의는 헌법정신을 유린하고 국정을 농단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정상적인 헌법적 절차를 거쳐서 탄핵이 될 정도로 그 수준이 높아졌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우리가 정치적 민주주의의 실현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머물지 말고 사회경제적 차원의 민주주의를 이루는 단계로 나아가야만 한다고 확신합니다.
현재 우리 국민들은 과도한 양극화와 점점 더 벌어지는 빈부격차로 말미암아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권력이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수많은 분야와 영역에서 수직적이고 불평등한 갑을 관계가 형성돼왔습니다. 우리가 지향해야만 할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본질과 핵심은 이 불평등하고 수직적인 갑을 관계를 공정하고 수평적인 관계로 바꾸는 데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형식과 내용, 절차와 실질의 측면 모두에서 균형 있게 발전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진성준 후보는 “연설 형태의 인터뷰“라는 매우 생경한 형식에 처음에는 조금 겸연쩍어하는 기색이었다. 인터뷰가 진행되면서 그는 자신의 생각을 그가 20대에 즐겨 구사했을 법한 묵직한 언어에 싣는 데 차츰차츰 적응해가는 모습이었다.
남북관계의 평화적 발전과 한반도의 화해와 통일은 한시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시대적 과제입니다. 저희는 이 일을 1980년대에는 ‘조국통일’이라는 구호와 명제로 압축시켰습니다.
우리나라는 외교 관계에서의 종속성을 타파해야 하는 숙제를 여전히 갖고 있습니다. 분단체제는 여태껏 극복되지 않고 있습니다. 장기간의 권위주의 독재체제가 남긴 유산과 후유증은 아직까지도 완벽하게 청산되고 치유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와 같은 이유들 때문에 586 세대 정치인들이 감당해야만 할 시대적 소명의 무게와 역사적 과제의 중차대함은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고 봅니다.
단계적이고 점진적으로, 평화적이고 합법적으로
저희 586 세대는 저희에게 부과된 공적인 임무들을 과거에는 급진적이고 약간은 과격한 방식으로 실천하려고 시도했었습니다. (잠깐 말문을 닫았다가) 그러나 이제는 저희도 사회적 역동성의 필요성만큼이나 안정성의 중요성을 책임감을 갖고서 진지하게 고려해야만 하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1987년에 6월 항쟁이 있었다면, 그 30년 뒤에는 촛불혁명이 있었습니다. 촛불혁명은 무도하게 권력을 행사한 박근혜 정권을 국민들의 힘으로 직접 탄핵한 위대하고 평화적인 시민혁명이었습니다.
촛불혁명의 의의와 위대함은 폭력과 완력으로 권력을 끌어내린 다른 나라들의 사례와는 달리 대한민국 헌법에 규정된 정당한 제도적 절차를 밟아서 현직 대통령을 권좌에서 물러나게 한 사실로부터 비롯됩니다. 우리 사회의 에너지와 역동성을 합헌적이고 합법적인 틀 안에서 민주주의 발전의 동력으로 모범적으로 승화시킨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총체적인 변화와 개혁을 필요로 하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면적 국가혁신은 어디까지나 합법적 수단에 기초해, 즉 민주적인 헌정체제의 질서 내에서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추진되어야 합니다. 저는 현재의 한국사회가 역동성과 지속성을 슬기롭게 조화시킬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성숙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586 세대 정치인들을 향해 왜 지금보다 더 과감하고 신속하게 개혁에 나서지 않느냐고 추궁하는 힐난의 목소리가 존재한다는 점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러한 비판과 질타가 상당한 타당성과 합리성을 띠고 있다는 사실 또한 뚜렷이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급진적이고 폭력적 방법으로는 진정으로 지속가능한 변화와 혁신을 담보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과거와는 다르게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방식을 통한 개혁을 선호하게 된 까닭입니다.
근본적 변화는 헌법과 법률의 토대 위에서 제도와 시스템으로 착실하게 수렴되고 정착돼가는 변화일 수밖에 없습니다. 저를 포함한 586 세대가 수행해야만 할 역할은 제도와 시스템의 개혁으로 이어지는 변화를 보장하는 데 있습니다. 제도정치의 힘과 길을 빌려 대한민국의 근본적 변화를 이뤄내는 일이야말로 제가, 아니 저희가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시대적 과제라고 하겠습니다.
586 세대의 열정과 의지는 아직도 굳건해
이 세상에 나와 똑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따라서 586 정치인들 사이에도 개인 간의 격차와 편차가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그래도 저는 586 세대의 대다수가 젊은 시절부터 세상을 위한 가치 있는 일들에 헌신해온 이들임을 국민들께서 아량 있게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젊음은 가능성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586 세대는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지닌 청춘의 날들을, 젊음의 시간을 개인의 안위와 영달을 좇는 일에 바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 하나뿐인 자신의 소중한 목숨을 어쩌면 억울하게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애써 억눌러가며 부패한 권력의 횡포에 맞서서 대한민국의 변화와 개혁을 위해, 국민들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서 서슴없이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그로부터 짧지 않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들의 열정과 순수성도 솔직히 많이 빛이 바랬습니다. 초심을 잃고서 훼절한 사람들도 부끄럽지만 저희들 세대에 여럿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개혁진영에 몸을 담고서 정치를 해온 저희 586 세대 정치인들은 단계적이고 점진적이며, 평화로운 변화와 개혁을 추구하게 되었을지언정 사회 변혁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한 믿음과 소명감은 전혀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제도권에서 일하는 정치인들입니다. 법률을 지키고, 헌법을 준수한다는 대전제 위에서 활동해야만 합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이 당면한 현실과 모순에 대한 절박한 문제의식은 일관성을 갖고서 늘 염두에 두어왔습니다.
저희 세대가 국민들의 기대와 바람에 미치지 못해왔다는 사실을 저희가 감히 어떻게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저희의 한계와 오류를 저희가 무슨 수로 감추고 숨길 수가 있겠습니까? 586 세대 정치인들이 본인들의 가치와 전략에서 드러난 부족함을 메우고 시행착오를 고치기 위해서라도 저는 국민 여러분께서 저희에게 주시는 비판과 채찍질을 더욱더 낮고 겸허한 자세로 최선을 다해 귀 기울여 경청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희 세대가 나라를 향해 품어온 사랑과 열정은 식지 않았음을, 변화와 개혁의 의지와 각오는 느슨해지지 않았음을 이 자리를 빌려 간곡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 열 마디의 혹독한 꾸지람과 나무람 뒤에 주시는 한 마디의 따뜻한 칭찬과 격려가 저희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젊은 시절에 가졌던 숭고한 이상을 꿈에서라도 잊지 않겠습니다.
공희준 : 곤혹스러울 수도 있는 질문에 가감 없는 답변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성준 : 솔직한 말씀 나눌 수 있는 인터뷰 기회 허락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덧붙이는 글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서울 강서구(을) 선거구 후보는 1967년 전주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비례대표로 제19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다음에는 청와대 정무기획비서관으로 일했다. 올해 21대 총선에 출마를 선언하기 전까지는 서울시청에서 정무부시장으로 근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