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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격전지 인터뷰] 문병호① “나의 일관된 목표는 과감한 정치혁신” 국민의당도, 바른미래당도 본연의 역할은 야당이었다 공희준 편집위원 2020-03-12 19:53:34
총선이 한 달여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 우한(武漢)에서 최초로 생겨나 현재는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곳곳에서 창궐하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의 유세활동은 사실상“동작 그만!”인 상황이다. 이로 말미암아 국회의원 후보자 개개인에 관한 구체적 정보와 정확한 지식이 없이 유권자들이 투표장으로 향해야만 하는 전대미문의 ‘깜깜이 선거’마저 급기야 우려되는 실정이다.

후보들의 우열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흔히 공약을 잘 살펴보라는 이야기들을 한다. 문제는 공약을 잘 살펴보면 살펴볼수록 후보들 간의 차별성이 오히려 더 작아지고 만다는 데 있다. 국회의원 후보들이, 특히 지역구 국회의원 출마자들이 선거 때 들고 나오는 지역관련 공약이라는 것들의 내용이 알고 보면 다 거기서 거기인 탓이다.

국민들이 국회의원 후보자들에게 던져야만 할 진정으로 중요하고 본질적인 질문은 그들이 왜 출마했는지에 대한 의문이어야만 한다. 지역발전을 위해 예산 얼마 따오고, 언제 도로 닦을 것인지에 관한 궁금증은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에게 묻는 걸로 이미 충분하다.

그래서 필자는 올해 총선에 출사표를 던진 인물들 가운데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답변을 들려줄 수 있는 후보들을 소속 정당을 가리지 않고 만나 “왜 지금, 여기에서” 선거에 나왔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그에 대한 그들의 대답이야말로 참다운 출마의 변일 터이다.

지금은 정치인들 사이에서조차 의미 없는, 그리고 곧 잊히고 말 재치문답만이 난무하는 시대이다. 한 인물의 내공과 비전은 말장난 비슷한 단답형의 묻고 답하기를 통해서는 본연의 모습을 절대로 드러내지 않는다. 필자가 한 가지 질문을 물어보고 후보 혼자 대중을 상대로 연설한다는 느낌으로 긴 호흡의 답변을 하게끔 인터뷰 구도를 설정한 까닭이다.

이와 같은 ‘롱 테이크’ 인터뷰의 첫 번째 주인공은 미래통합당의 공천을 받아 서울 영등포갑 선거구에 출마한 문병호 후보이다. 문 후보와의 인터뷰는 2020년 3월 11일 수요일 오후, 영등포구 당산로에 자리한 문병호 후보의 선거사무소에서 진행되었다. 사진은 김한주 사진전문기자가, 동영상은 박진선 영상전문기자가 각각 맡아주었다.

공희준 : 문병호 후보께서 21대 총선에 출마한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두 가지 이유로 놀라고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두 차례나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던 인천 부평이 아닌 서울 영등포에서 출마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보수정당인 미래통합 후보로 출마한다는 것입니다. 문병호 후보께서는 호남 출신입니다. 민변 소속의 변호사로 오랫동안 활동했습니다. 안철수 전 의원과 함께 국민의당 창당을 주도했습니다. 더욱이 부인인 민유숙 판사는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대법관에 임명됐습니다. 그럼에도 정당과 지역구를 모두 옮기면서까지 이번 21대 총선에 출마하게 된 동기는 뭔가요? 문병호를 인천에서 서울로 불러들인, 중도정당에서 보수정당으로 끌어들인 시대정신과 역사적 소명이 있다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한국정치, 이대로는 안 된다


문병호 미래통합당 후보(영등포갑)는 정치혁신을 향한 소신은 여전함을 강조했다. (사진=김대희 기자)

문병호 : 오늘 이렇게 소중한 인터뷰 기회를 주신 데 대해 먼저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공희준 작가께서 해주신 질문을 저도 요즘 많은 분들로부터 받고 있습니다. “문병호가 어떻게 미래통합당으로 출마하느냐?”는 질문입니다. “왜 인천이 아닌 서울에서 나오느냐?”는 물음입니다. 저에게 이러한 물음표를 던지는 분들은 제가 변했다는 생각을 밑바탕에 깔고 계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제가 여전히 일관된 소신을 갖고서 정치를 하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저는 남달리 빼어난 스펙이나 든든한 연줄이 있어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건 아니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국회의원이 됐을 때는 중앙당에 저를 밀어주는 인물도, 세력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대통령에 당선되고 뒤이어 열린우리당이 창당되면서 국민경선 제도가 새롭고 혁신적인 공천 원칙으로 등장했습니다. 저는 인천 부평 지역에서 15년 동안 인권변호사로 활동했었습니다. 그 공로와 기여를 당원들로부터 인정받아 열린우리당 지역 경선에서 1등으로 올라서고, 결국에는 국회의원으로까지 선출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초선 의원으로 등원한 제17대 국회는 2004년 5월 31일에 공식 임기가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임기 시작 후 반년이 흐르는 동안 저는 국회에서 할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제가 특정한 계파에 속하지 않다 보니 불러주는 사람도 없고, 참석해야 할 모임도 없었습니다. 이듬해에 원내부대표가 되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활발한 의정활동에 나설 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통틀어 국회의원으로 8년을 일했습니다. 제가 8년간 국회에 몸담으면서 내린 결론은 명확합니다. “대한민국 정치,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만큼 정치인들이 국민을 위한다는 얘기를 자주 하는 나라도 없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국민의 대변자 역할을 제대로 하는 정치인은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 저는 말로만 국민을 위하지, 실제 행동으로는 국민을 위해 봉사하지 않는 우리 정치를 더 늦기 전에 확 바꿔야만 하겠다는 결심을 단단히 굳혔습니다.

 

그때 마침 안철수 의원이 민주당과 힘을 합쳐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하고서 공동대표에 취임했습니다.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는 혁신의 견인차였습니다. 변화의 아이콘이었습니다. 개혁의 기대주였습니다. 저는 안철수 대표와 협력하면 국민들께서 오랫동안 꿈꾸고 희망해온 대담하고 근본적인 정치혁신이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렇지만 친문세력이 당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범국민적 염원인 정치혁신을 이뤄내기가 엄청나게 어려웠습니다. 저는 새로운 당을 창당해 정치혁신을 추진해야겠다는 결단 아래 안철수 대표를 따라서 새정치민주연합을 과감하게 뛰쳐나왔습니다. 제가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현역 국회의원 중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즉 민주당 탈당 2호 정치인으로 기록된 까닭입니다.

 

저는 민주당 당적을 버리며 국회의원 배지도 아울러 버렸습니다. 재선까지는 가능했지만 3선은 힘들다고 여겼습니다. 박빙의 선거전이 펼쳐지는 수도권에서 제1야당의 프리미엄을 자발적으로 포기한다는 것은 선거를 단념하는 일과 다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진보정권 아래서의 야당은 보수이기 마련


문병호 후보는 정권이 진보이면 야권의 중심은 보수가 되기 마련이라고 주장했다. (사진=김대희 기자)

2016년의 제20대 총선에서는 선거전 막판에 국민의당 바람이 태풍급으로 성장해 거세게 휘몰아쳤습니다. 그 덕분에 저도 예상 밖으로 이길 뻔했습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겨우 23표 차이로 낙선의 고배를 마시고 말았습니다. 저는 부평구 안에서 이뤄진 선거에서는 이겼지만, 해외투표에서 졌습니다.

 

솔직히 아쉬움이 컸습니다. 저는 그때 저 자신을 위한 선거운동 못잖게 다른 지역에 출마한 후보자들을 지원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과 열정을 바쳤습니다. 축사를 해달라는 요청이 오면 거리를 따지지 않고 무조건 달려갔습니다. 저는 그 무렵 당의 핵심 당직자도, 고위 관계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같은 당 동지들을 돕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막상 제가 출마한 지역에서의 선거운동에는 조금은 소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국민의당 수석 최고위원과 바른미래당의 최고위원을 차례로 역임했습니다. 중도개혁의 구심점 구실을 확실하게 해낼 수 있는 튼튼한 제3지대 정당을 만들려고 많은 시도와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여왔습니다. 그러나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다시 목소리에 힘을 주며) 저는 보수와의 일정한 연대가 있어야 올해 4월 15일 총선에서 바른미래당이 활로를 개척할 수 있다고 지금부터 1년 전인 작년 초부터 줄기차게 역설해왔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이념적으로 진보정권입니다. 국민의당도, 국민의당을 이어받은 바른미래당도 결국에 본연의 역할은 현재의 집권세력을 견제하고 심판하는 야당에 있었습니다. 진보가 정권을 잡으면 야당의 주력은 보수가 이루는 법입니다. 반대로, 보수가 집권하면 진보가 야권의 주축을 형성하기 마련입니다. 저는 본질적으로는 야당인 국민의당이, 그리고 국민의당을 계승한 바른미래당이 보수진영과 통 크게 제휴하지 않으면 수도권에서 성공적인 선거를 치르기 어렵다고 일찌감치 판단을 내렸습니다.

 

저는 저의 생각과 판단을 제3지대 안에 있으면서 더불어민주당에 우호적이거나 또는 진보 색채가 강한 인사들에게 되풀이해 설명했습니다. 현실적인 정치지형을 놓고 봤을 때 보수를 향해서 지나치게 높은 담을 쌓아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문병호 후보는 인터뷰 도중 ‘판단’이라는 단어를 유달리 자주 사용했다. 그의 선택을 긍정하는 이들에게는 ‘결단’으로, 비판하는 쪽에는 ‘계산’으로 읽힐 수 있는 상당히 미묘하고 아슬아슬한 용어 선택이었다. (②편에서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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