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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강섭②] '82년생 김지영'을 왜 읽어야 하는가 청년 정치인, 거수기 아니면 출세하기 어려워 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2018-12-05 21:42:55
정치인들은 또래의 일반인들과 비교해 훨씬 젊게 보인다. 한데 청년의 간판 아래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또래의 청년들과 비교해 팍 늙어 보인다. 이 오묘한 역설적 마법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정치인 고강섭은 그 이유를 직설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한 얘기의 행간을 통해 필자는 한국정치가 여전히 갈망하는 건 젊은이가 아닌 젊은 피임을 선명하고 충분하게 유추해낼 수가 있었다.

과거 몇몇 역사상의 악명 높은 폭군들은 청년들의 피를 마심으로써 자신의 무병장수를 꾀했다. 국리민복보다는 스스로의 무병장수만을 더욱더 간절히 좇는 대한민국 정치권을 무대로 정치인으로 대성하기를 꿈꾸는 청년들은 헌혈과 매혈의 경계선 위를 지금도 아슬아슬하게 걷고 있다.

페미니스트들은 문재인 정권을 좋아하지 않아


정치인 고강섭은 박원순 서울시장(오른쪽)이 의욕적으로 출범시킨 서울시 청년정책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서울특별시가 청년친화적 도시로 거듭나도록 노력했다. (사진제공 고강섭) 고강섭 (이하 고) : 문재인 정부가 페미니즘에 편향되지 않았음은 당장 워마드의 경우만 살펴봐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워마드는 문재인 정부가 대통령부터 남자이기 때문에 지지할 수 없다고 주장하거든요. 교조적 페미니즘의 극단적 사례겠지만요. 더욱이 여성학 전공자들이나 여성운동가들 역시 문재인 정부와 함께하겠다는 움직임은 보여주지 않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일각의 비판처럼 페미니즘에 경도되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요.


공 (이하 공희준) :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정봉주 전 의원은 미투 사태의 여파로 정치생명에 치명상을 입었습니다. 이런 사례들이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의 문재인 정부가 페미니즘과는 거리가 멀다는 결정적 확증이 될 수 있나요?


고 : 저는 일련의 미투 선언들이 페미니즘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른바 비정상의 정상화의 일환이라고 평가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권위주의적 가부장 문화의 색채가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옅은 정부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페미니즘의 직접적 영향권 아래 자리해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페미니즘에 우호적일 따름입니다. 페미니즘을 정책적 목표로 삼고서 그 가치를 실천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만약 문재인 정부가 진짜로 페미니스트 정부였다면 여성 관련 정책들의 기조와 방향성이 지금과는 판이했을 겁니다. 엄청나게 친여성적인 정책들을 대거 내놓았겠죠.


공 : 어떤 정책이 페미니스트들을 흡족하게 만들 정도로 급진적읹 친여성적 정책인가요?


고 : 사실 제가 그와 같은 구체적 정책 내용까지 깊게 고민해본 편은 아닙니다. 그래도 생각나는 대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여성들이 결혼과 육아로 인해 사회적‧직업적 경력이 단절되는 일들을 획기적으로 줄여나갈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를테면 대부분의 기업에서 출산휴가와 육아휴가는 언감생심일 뿐입니다. 여성 노동자들을 내보내는 구실로 악용되는 경우가 너무나 빈번하거든요.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는 ‘경단녀’들의 아픔과 좌절감을 달래줄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정책을 아직까지는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니 청년들 가운데서도 젊은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 그리고 육아에 반감과 공포감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공 : 자세히 관찰해보면 여성 공무원들이나 여교사들은 출산율이 상대적으로 매우 높습니다.


고 : 그분들을 위한 출산과 육아의 편의를 보장할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용자들 역시 공무원이다 보니 이와 관련된 법규들을 충실히 지켜야만 할 테고요.


공 : 그래서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분들은 가장 강력한 출산 장려책은 “전국민의 공무원화”라고 빈정대기도 합니다.


「82년생 김지영」의 메시지는 공감과 이해


고강섭은 여전히 미혼이다. 수입도, 지위도 불안정한 처지이기 마련인 청년 정치인에게 연애와 결혼의 목표는 넘기 힘든 장애물이다. (사진제공 고강섭)

공 : 1982년생이시죠?


고 : 예 그렇습니다.


공 : ‘82년생 김지영’은 있어도 ‘82년생 고강섭’은 없습니다. 문단과 가요계가 똑같은 점이 있습니다. 무대 위의 공급자는 대부분 남자인데, 무대 아래 수요자의 주력은 여성이라는 사실입니다. 여성 독자가 없으면 문인들이 굶어죽는 구조에요. 하지만 그런 점을 아무리 감안해도 대략적으로 1980년생 이후에 출생한 사람들을 보면 여자들이 목소리가 굉장히 크고 도드라집니다. 반면에 남자들은 다들 어디에 짱 박혀 있는지 존재감이 미미합니다. 식상한 표현이긴 하지만 그야말로 ‘우먼 파워’가 제대로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성상위 세대에 속하는 고강섭 팀장님께 한번 적나라하게 묻고 싶습니다. 여자들이 잘나서 그런가요? 아니면 남자들이 또래 여자들에 비해 못나서 그런가요?


고 : (난감하다는 듯 계면쩍게 웃고는) 저는 이전 세대의 여성들도 지금 시대의 여성들처럼 남성들과 견주어 능력이 뒤떨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과거에는 남성 중심의 사회구조와 조직문화가 워낙 위세를 떨쳤던지라 여성들이 자신들의 역량을 발휘하고 포부를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어려웠습니니다. 그렇지만 세상이 변하고 사회가 바뀌면서 남성 중심의 구조와 문화가 크게 약화되었습니다. 여성들이 자신들의 재능과 역량에 상응하는 자리와 역할을 얻을 수 있는 기회와 환경이 비로소 마련된 것이죠.


공 : 그럼에도 ‘82년생 김지영 프레임’에 대한 반감과 거부감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기성세대만이 그런 게 아네요. 제가 어느 뉴스인가를 보니까 30대 여자를 제일 싫어하는 인구집단이 20대 남자라고 하거든요. 6~70대 노년 남성이 아니라요. 더욱이 젊은 동양철학자인 임건순 작가는 ‘82년생 김지영류들’ 때문에 국민들이 “떼쓰면 통한다”는 오도된 인식을 한층 더 깊고 넓게 가지게 됐다고 드러내놓고 분개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82년생 김지영들’의 눈높이에 맞춰 나라를 운영하면 나라가 머잖아 끝장날 것 같기 때문입니다. 다들 책임은 안 지고 권리만 외칠 테니까요. 그러니 ‘82년생 김지영들’에게 외교나 안보를 맡기면 나라꼴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82년생 김지영 프레임’은 전형적인 내수용 프레임입니다.


고 : 저는 분야와 영역에 따라서 요구되는 잣대와 눈높이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82년생 김지영」에 담긴 두 가지 핵심적 열쇳말은 공감과 이해입니다. 작가가 극적 효과를 높이려는 의도에서 극단적 사례와 묘사를 만들어냈을 수는 있겠지요. 그렇지만 여성들이 직면한 처지에 대한 공감과 현실에 관한 이해가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크게 부족해온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진실입니다. 「82년생 김지영」은 그와 같은 공감과 이해의 결핍이 여성이 겪어온 고통과 소외의 원인임을 정교하게 서술해놓은 작품입니다. 저 나름대로 페미니즘에 대한 공부를 약간은 해왔다고 그간 생각해왔는데 제가 남자이다 보니 여성들이 접해온 생생하고 뼈아픈 현실까지는 미처 몰랐다는 점을 이 책을 읽으며 깨달았습니다.


공 : 국민이 82년생 김지영적인 사고를 한다면 큰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지도자가 82년생 김지영식으로 생각한다면 큰일 아닐까요? 82년생 김지영은 요구하는 사람이지, 책임지는 사람은 아니지 않습니까? 팔로워는 요구하는 사람이지만, 리더는 책임지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고 : 저는 소설의 주인공인 82년생 김지영에게만 초점을 맞추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본질은 양성 간의 공감과 이해입니다.


공 : 공감과 이해야 물론 좋지요. 그렇다면 결단과 책임은 누구의 몫이어야 하나요?


고 : 결단과 책임이야 당연히 정치인들의 몫이고 역할이겠죠. 서로의 입장과 처지를 공감하고 이해하다 보면 그 과정에서 타협이 도출되고 절충의 공간이 넓어집니다.


공 : 나이 드신 분들이 문재인 정부를 실망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이유가 그분들이 꼭 보수 성향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문재인 정부가 매일 공감과 이해만 외치는 탓입니다. 정치 지도자들은 기본적으로 결단하고 책임지는 일이 주업입니다. 정부여당은 그게 없다는 게 그분들의 지적이에요. 저도 거기에 일정 정도 수긍하는 게 문재인 정부는 결단하는 것도 없고, 책임지는 것도 없습니다. 한마디로, 소는 누가 키우느냐는 겁니다. 문재인 정부는 소에게 풀은 뜯겨주지 않으면서 피리소리만 들려주고 있거든요. 송아지가 피리소리 먹고 크나요? 여물 먹고 자라지.


고 : 제가 공감과 이해라는 열쇳말을 계속 강조하는 까닭은 결정하고 책임져야 하는 위치에 있는 지도자는 공감과 이해에 기반해 조정과 중재를 담당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유능한 정치인은 물질적 조건을 비롯한 사회의 제반 현실과 다양한 요소들을 확실히 파악한 상태에서 안정적 균형과 확고부동한 무게중심을 잡아나가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상주의가 청년정치를 도태시킨다


중랑구가 고강섭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지는 오롯이 고강섭 자신의 몫일 것이다. (사진제공 고강섭)

공 : 청년당에서 본격적 정치활동을 시작하셨죠?


고 : 예.


공 : 그게 어느 때였나요?


고 : 2012년 초였습니다.


공 : 그때가 30대 초반이었나요


고 : 예, 그렇습니다.


공 : 청년당 활동을 참 오래하신 셈인데, 벌써 불혹이 가까워졌습니다.


고 : (태연한 척하며) 3년 더 있어야 마흔입니다.


공 : 30대 후반의 시간이 참 빨리 지나가더라고요. 제가 해봐서 압니다. (웃음) 저는 20대가 막을 내리는 30대가 저무는 게 훨씬 더 분하고 억울했거든요. 고 팀장님은 후회 같은 것 없나요?


고 : 청년당 활동을 한 것이요?


공 : 아니, “청년”, “청년” 외치다가 곧 청년시절과 작별하는 것이요.


고 : 후회는 없는데 아쉬움은 있습니다. 청년정치를 내걸고 활동하면서 정작 청년들을 위해 실제로 이뤄낸 성과가 없다는 자괴감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공 : 어떻게 후회가 없을 수 있죠?


고 : 지난 6~7년은 제가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우고 경험해온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니 후회가 없을 수밖에요.


공 : 그렇다면 후배들이 나도 ‘강섭이 형’ 또는 ‘강섭이 오빠’처럼 청년정치 운동에 뛰어들겠다고 선언한다면 그 후배들에게 어떤 교훈을 일러주고 싶습니까? 이런 건 절대 나처럼 하지 마라 혹은 닮지 마라는 반면교사의 입장에서요.


고 : 제가 청년의 기치 아래 정치를 시작하면서 가슴에 품었던 화두가 다름 아닌 ‘정의’였습니다. 정의로움을 실현하고자 현실 정치에 입문한 것이죠. 그런데 정의는 이상주의 경향으로 흐르기 쉬운 개념이자 목표입니다. 이상주의의 관념에 집착하다 보면 스스로 설정한 프레임에 함몰될 위험성이 높아집니다. 자칫하다가는 자승자박에 걸려 도태될 수가 있는 것이죠. 저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소통 속에서 평균적 의미가 아닌 중용의 맥락에서의 중간지점을 찾을 것을 후배들에게 권유하고 싶어요. 이상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자기의 이상에만 모두걸기하면 먼저 본인부터 지칩니다. 중간에 떨어져나가는 사람들도 많고요.


공 :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청년정치를 위해 한 일이 있습니까?


고 : 없습니다.


공 : 문재인 대통령은 있습니까?


고 : 청년 일자리 창출에 관심을 기울이고는 계신데, 대선 후보 시절과 견주면 문 대통령이 청년정치를 위해서 하는 일이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공 : 지금은 자유한국당에 있는 강연재 변호사와도 청년당을 함께하지 않았나요?


고 : 예.


공 : 그분은 요즘 왜 그러세요?


고 : 그건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웃음)


공 : 선수보호 차원에서 저도 더 이상은 묻지 않겠습니다. (웃음)


여의도에서 나이가 깡패가 된 이유는


청년 정치인들은 종종 자신도 이후의 결과를 알 수 없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작년 봄의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처럼. (사진제공 고강섭)

인터뷰가 끝난 다음 사무실 근처의 식당에서 점심밥을 함께 먹으면서 지면으로는 옮길 수 없는 대화를 몇 가지 나눴다. 그러나 강연재 변호사에 대한 얘기는 아무도 꺼내지 않았다. 사내 둘이서 밥집에 앉아 여자 한 명을 주제로 수다를 떠는 것이 왠지 구질구질하면서도 꺼림칙했기 때문이다.


공 : 청년정치 또한 일종의 정체성(Identity)의 정치입니다. 그런데 정체성은 정치는 내가 뭘 했기 때문에 정당성을 획득하는 정치가 아닙니다. 내가 무엇이기 때문에 정당성을 주장하는 정치입니다. 북한의 백두혈통도, 삼성그룹의 3세 경영도 넓게 보면 다 정체성의 정치인 겁니다. 내가 누구의 아들이고, 누구의 손자이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는 것이 합리화되거든요. 우리나라의 기존 청년정치는 내가 청년이기 때문에 뭘 달라고 요구하는 식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도 지대추구 아닐까요? 무임승차일 수도 있고요.


고 : 여태껏 청년정치의 깃발 밑에서 활동한 인물들의 대다수는 생물학적 연령을 존재의 이유로 삼곤 했습니다.


공 : “나이가 깡패”라는 얘기가 그래서 나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고 : 자연적 나이를 정치의 근간으로 삼으면 활동할 수 있는 범위와 의제를 자기 스스로 한정하게 됩니다. 제 꾀에 제가 걸릴 수가 있는 거죠. 그러기 때문에 저는 청년당에 있으면서 생물학적 나이를 활동의 근거로 명분으로 채택하지는 않았습니다. 청년정치의 요체는 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과 문제를 푸는 참신한 해법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성세대의 시선과는 다른 혁신적 시각을 가지고 한국사회의 해묵은 문제들에 접근해야 청년정치의 꾸준한 역할과 지속가능성이 담보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청년 정치인들이 생물학적 나이를 무기로 내세우는 건 여전히 부인하기 힘든 사실입니다.


공 : 생물학적 나이가 유일한 무기가 된 연유가 뭐죠? 원천적 능력 부족 탓인가요? 아니면, 능력이 있어도 기회를 주지 않는 높은 기득권의 벽 때문인가요?


고 : 무엇보다도 기득권의 장벽이 너무나 높고 두껍습니다. 그 벽을 돌파할 수가 없으니 편법으로 틈새를 찾게 되는데, 그 틈새란 것이 본질과는 무관한 피상적 특색 또는 외형적 개성의 형태를 띠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단 외면적으로 튀어야 인정해주는 건 기성 정당들도 매한가지입니다.


공 : 그래야 TO가 나온다는 건가요?


고 : 예. TO를 따내는 데 생물학적 나이가 쏠쏠한 도움이 되기에 나이가 깡패 노릇을 하게 되는 겁니다.


공 : 그런데 생물학적 나이는 움직이는 거잖아요. 사랑은 움직이는 거라지만, 진짜 착오와 에누리 없이 무조건 움직이고 마는 건 사람의 나이거든요. 그 다음에, 나이 먹으면 어떻게 되나요? 그냥 맥없이 사라지나요?


고 : 그건 조금 후에 물어보시기로 약속한 건데. (웃음)


공 : 저가 조기에 승부를 보는 성격이라(웃음). 지난 20대 국회만 봐도 청년 몫으로 원내에 입성한 국회의원이 셋이나 있었습니다. 현재는 헌법재판소 판결로 해산된 통합진보당의 김재연(1980년생) 의원, 민주통합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진출한 장하나(1977년생) 의원과 김광진(1981년생) 의원이 그들입니다. 원외인사로는 박근혜 키즈로 각광받았던 새누리당의 이준석(1985년생) 비대위원과 손수조(1985년생) 위원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중들의 인식에서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인물은 바른미래당의 이준석 최고위원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는 이준석 최고위원이 두 가지 요소 덕택에 버티고 있다고 계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스펙이고, 둘째는 개인기입니다. 청년 특유의 열정과 도전정신, 그리고 패기와 진취적 기상으로 버텨온 것이 아닙니다. 반면에 스펙과 개인기에서 상대적으로 달리는 손수조, 김광진, 장하나, 김재연은 존재감과 활약상이 미미합니다. 그렇다면 금배지 달고 있을 때는 빼어났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당의 부름을 맹목적으로 좇아 저격수와 폭로꾼, 그리고 막말꾼 노릇을 불사했습니다. 왜 자꾸맘ㄴ 이렇게 청년 정치인들이 일회용 소모품 역할에 그치는 건가요?


고 : 청년 정치인들이 돌격대나 총알받이 비슷하게 차출되고 동원돼온 현상은 우리니라 정치가 그만큼 건강하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하지만 청년 몫으로 공천을 받거나 주요 당직에 임명되는 경우는 극소수 사례에 불과하다는 점을 팍스뉴스의 독자들께서 알아주시기를 바립니다. 19대 국회의원에서 청년 국회의원은 세 명뿐이었습니다. 전체 의석의 1프로밖에 안 되는 낮은 비율입니다. 20~30대 청년이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퍼센트는 절대로 아니니까요. 요번 20대 국회의원은 그 비율이 외려 더 적어졌습니다. 딱 두 명뿐이니까요.


공 : 운 좋은 그 두 명이 누구누구입니까?


고 : 자유한국당 신보라(1983년생) 의원과 바른미래당 김수민(1986년생) 의원입니다. 저는 청년 정치인 개개인의 자질을 따지기 이전에 숫자 자체부터가 터무니없이 적은 것이 커다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정당들은 청년 정치인을 여전히 소비하기에 편리한 아이템쯤으로 간주합니다. 당이 그만큼 젊다는 걸 부각시키거나, 대중의 호기심을 순간적으로 자극하는 액세서리 정도로 청년 정치인을 여기는 거죠. 젊은 정치인 몇 명을 끼워 팔기 상품으로 내놓고 자신들이 청년들의 여망과 여론을 담지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정당들의 행태는 오만의 극치에 지나지 않습니다. 본질적인 구조적 문제를 감추고 가리는 짓이기도 하고요.


공 : 당의 지도부가 생각하기에 공천권으로 상징되는 정당 권력은 젊은 세대에게 나눠주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자산일 수 있으니까요.


고 : 당에 계신 분들은 젊은 사람들에게 라이벌 의식이나 질투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청년 정치인이 여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만끽하는 상태에서 자기가 있는 지역구로 오지 않을까 하는 본능적 경계심이 발동하는 겁니다.


공 : 정당 차원에서는 청년 정치인이 효용가치가 있지만 지역위원장 층위에서는 촉망받는 청년 정치인이 엄청 떨떠름한 존재인 셈이네요. 앞에서는 띄워줘도, 뒤에서는 날려버리고 싶은. 그리고 보니 김광진 전 의원과 장하나 전 의원 모두 지역구 경선에서 탈락했죠?


고 : 예. 김광진 전 의원의 경우에는 지역위원장 선거에서도 연거푸 고배를 마셨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선의의 경쟁자로 환영할지언정 잠재적 라이벌에 대한 견제와 경원이 엄청 심하다는 증좌일 수가 있습니다.


공 : 하지만 그걸 꼭 당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잖아요. 충분한 준비와 실력의 축적 없이 단지 나이 하니 믿고서 갑자기 불쑥 밀고 들어온 것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청년 정치인들을 보면 영락없이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입니다. 당에서 폭로수 시키면 폭로에 나서고, 막말꾼 노릇 부추기면 막말 공방에 앞장서고, 상대 진영의 누구 저격하려면 군말 없이 총알을 쏴대니까요. 아무리 조직이 맛이 쓰고, 당인으로서의 책임감이 무겁다지만 위에서 시키는 대로 응한다면 그건 우리가 알고 있는 청년정신과는 너무나 동떨어집니다. 청년정신의 고갱이가 반항과 저항이지, 순종과 복종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명실상부한 청년 정치인이라면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가 부당하면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거부해야 마땅합니다.


고 : 그렇습니다.


청년 정치인뜨면 죽는다


서울은 청년 정치를 실천하기에 좋은 도시다. 이를 의식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청년층의 지지를 얻기 위해 그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사진제공 고강섭)

공 : 당에서 청년 정치인의 대표로 특정 인사를 발탁할 때 말 잘 들을 것 같은 사람을 우선적으로 낙점하나요?


고 : (목소리에 힘을 주며) 바른말 하는 사람, 쓴소리 잘하는 사람을 선택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게 아닙니다. 당 수뇌부는 거수기 역할을 잘해줄 사람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정부로 가든, 중앙당에 머물든, 시도당이나 지역위원회로 내려가든 당의 뜻에 순순히 복종해 거수기 역할을 해줄 청년들을 모으고 키워주는 것이 지금까지 우리나라 기성 정당들이 주력해온 청년정치의 표준적 형태였습니다.


공 : 그 구태의연한 짓을 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까지 기를 쓰고 되풀이하나요?


고 : 기득권을 공고히 다지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바른말, 옳은 말, 쓴소리 잘하는 사람들은 원내는 기본이고 당내에서조차 발붙일 수 있는 기반과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그냥 비토집단으로, 아웃사이더로 남게 되는 거죠.


공 : 춥고 서럽고 배고픈 비주류의 길을 자연스럽게 가게 되는 거네요.


고 : 저는 비주류의 길을 각오하고서 소신에 찬 발언과 행동을 하는 청년들이 당의 체질을 건강하게 만드는 데 정말 필요한 소중한 인재라고 믿습니다. 문제는 이 소신파들이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된다는 점입니다. 그들의 의견이 당무에, 당론에 반영되지가 않습니다.


공 : 그럴 경우 어떤 방식으로 활로를 모색하나요? 각자도생이 유일한 대안일 것 같은데요.


고 : 그 결과 이른바 ‘라인정치’, 즉 줄서기를 청년들이 일찍부터 터득하게 되는 겁니다. 다른 방식으로는 위로 올라갈 수 있는 방도가 마땅치 않으니까요.


공 : 그럼 고강섭 팀장님은 윗분들이 보시기에 말 잘 듣는 딸랑이입니까? 아니면 말 안 듣는 골칫덩어리입니까?


고 : 제가 당의 청년위원회에 있을 때는 대표적으로 말 안 듣는 사람이었습니다.


공 : 공천받기 어려운 인물이네요. (웃음)


고 : 날카롭게 보셨네요. (웃음)


공 : 청년비례 경선이 폐지된 데에도 말씀하신 것과 같은 기존 청년정치의 모순된 한계와 병폐가 중대한 영향을 미쳤나요?


고 : 청년비례 공천이 완전히 폐지된 것은 아닙니다. (씁쓸한 어조로) 하지만 당선권과는 먼 순번에 후보들을 공천을 했습니다. 2012년 봄보다는 2016년 봄에 당에 더 큰 위기감이 감돌았고, 따라서 유권자들이 이목을 잡아끌 당선권 안에 대중적 인지도가 보다 높은 인사들을 전면 배치해야 한다는 인식이 당내에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청년 후보들을 뒤로 밀어냈다고 저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추가로 덧붙이자면 당시의 지도부가 청년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은 탓도 있었고요.


공 : 김종인 위원장이 이끌던 비상대책위원회 말씀인가요?


고 : 예. 19대 총선 때에는 ‘락 파티(Rock Party)’라는 이름 아래 전 국민을 대상을 경선을 실시했습니다. 「슈퍼스타 K」의 심사방식을 차용해 평범한 국민들도 청년비례대표를 선출하게끔 한 제도였는데, 당원이 아닌 일반 청년들도 경선에 후보로 나설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작년에는 철저하게 권리당원 위주로 투표를 진행했습니다. 청년 정치의 신장과 발전에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이죠. (③편에서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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