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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 울며 밥값을 내다 당돌함의 이준석이냐, 노회함의 김어준이냐 ⑪ 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2021-09-13 15:37:54

서프라이즈는 이름쟁이 최기수가 만들었다


김어준표, 즉 김어준과 홍준표는 돈 없어 고생한 시절에 대한 공포감을 공유하고 있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가 진행하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두 사람이 함께 기념촬영한 모습. (사진출처 교통방송 페이스북)

서프라이즈는 현재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인터넷 사이트이다. 그러나 2002년의 제16대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서프라이즈는 강력하면서도 강렬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의 극적인 당선에 결정적 도움을 제공한 귀중한 전략과 기발한 메시지의 공급처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다. 러시아의 혁명가이자 소련의 국부였던 블라디미르 레닌(1870~1924)이 그의 대표적 저작물인 「무엇을 할 것인가(What is to be done?)」에서 특별히 중요성과 효용성을 강조한 전국적 정치신문 구실을 서프라이즈는 사이버 공간에서 디지털 형태로 구현ㆍ실행했다.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성결대 교수는 익명으로, 드루킹 김동원 씨는 ‘뽀띠’라는 다른 필명으로 각각 활동했을 만큼 서프라이즈는 한때 대한민국 정치지능의 9할을 책임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미학자 진중권은 진보누리에서 서프라이즈로 원정을 왔고, 필자는 많은 사람들의 반발과 항의를 무릅쓰고 그의 글을 대문 화면에 올렸다. 필자가 어렵게 염화미소로 유치한 진중권은 내가 그곳을 떠나자마자 즉각적으로 사이트에서 차단당하고 말았다.

 

서프라이즈가 누리꾼들의 뇌리에서 차츰차츰 잊히면서 사이트의 탄생 과정에 대한 구체적 사실관계마저 덩달아 점점 더 흐릿해지고 있다. 필자는 좁게는 한국에서 처음 탄생한 정치전문 웹진이자, 넓게는 전 세계 최초의 정치 플랫폼이었던 서프라이즈의 정확한 역사를 이제는 제대로 기록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나무위키 같은 곳에서는 서영석 국민일보 전 정치부장이 서프라이즈를 만든 것으로 그릇되게 기재되어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한마디로 가짜 뉴스에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서프라이즈를 기획하고 제작한 진짜 주인공은 브랜드 창안 및 관리 사업에 종사한 최기수 전 이름쟁이 대표이다. 사람들은 그를 흔히 ‘이름쟁이’라고 호명했다.

 

이름쟁이는 서프라이즈 구축을 철야 작업을 강행하며 단 3일 만에 완료했다. 그가 사용한 프로그램은 테크노트에서 개발한 ‘무료 게시판’이었고, 호스팅 비용은 최기수의 지갑에서 지불되었다. 서영석 기자가 서프라이즈를 만든 걸로 오랫동안 오해되어온 이유는 최기수가 서영석 기자의 명의를 빌려 인터넷 주소를 개설한 데 있었다.


최기수가 사이트의 출범을 용이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서영석 이름으로 도메인을 등록한 편의적 조치는 그로부터 약 1년 8개월 후에 서영석 기자가 서프라이즈를 모태로 삼아 30억 원가량의 거액을 투자받았음에도 필자와 이름쟁이 두 사람에게 단돈 1원도 배분해주지 않은 원인이 된다. 그즈음 우리는 구태여 악착같이 내 돈 챙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할 지경으로 순수했다. 아니 순진했다. 솔직히 멍청했다.

 

노무현 캠프에서는 양주 한 병 들고 나타나

 

최기수는 역사서를 탐독했다. 그는 지역을 가리지 않았다. 한국사와 동양사와 서양사를 게걸스럽게 읽어나갔다. 시대 구분도 없었다. 고대사, 중세사, 현대사를 손에 잡히는 대로 공부했다. 분야도 종횡무진이었다. 경제사, 풍속사, 철학사, 각종 평전과 회고록 등 광대무변한 독서생활을 즐겼다.

 

최기수는 유달리 전쟁사를 좋아했는데 여러 논객을 단일 장소에 집결시킨 칼럼 전문 웹사이트를 만든다는, 지금 기준에서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때 시각으로는 엄청나게 획기적이고 혁신적이었던 그의 창의적이고 충격적인 아이디어는 종전에는 보병부대에 띄엄띄엄 배치되어 무한궤도 달린 경포 구실에 만족해온 전차들을 집단적으로 운용해 전격전의 신화를 창조한 2차 세계대전 초기 독일 육군의 프랑스 침공 작전에서 착안됐을 것으로 필자는 조심스럽게 추측하고 있다.

 

내가 서프라이즈의 출발에 구체적으로 기여한 사항이 있다면 거기에 동참시킬 인물들을 의도치 않게 미리 규합해놓았다는 점이다. 누구를 규합할지 정하는 건 별로 힘들지 않았다. 나는 시사저널이 자사의 특집기사에서 2002년 봄의 노풍의 주역으로 지목한 이들의 전화번호를 수소문해 차례로 연락만 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최기수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꺼리는 체질이었다. 나 역시 이름쟁이 이상으로 대인기피 경향이 짙었는데, 먹고살 방도를 궁리하느라 여기저기 들이대고 다니다 보니 그런 폐쇄적 기질이 시나브로 깨끗이 불식된 터였다.

 

필자가 결성을 주도해 조직된 친목 반, 토론 반의 논객 모임은 서영석 기자가 국민일보 공식 누리집에서 운영하던 방의 이름을 따서 「노변구락부」로 명명되었다. 참여자들을 가나다 순서로 열거하자면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 프리랜서 작가 변희재, 대자보 발행인 이창은, 연세대 사회학과 대학원생 장신기, 이름쟁이 대표 최기수, 딴지일보 편집장 최내현, 그리고 무직자 공희준이었다. 모임의 좌장에는 최연장자인 국민일보 논설위원 서영석이 추대되었다.

 

사내들이 모였으니 술자리를 가지는 게 마땅했다. 첫 번째 오프라인 모임은 서울시 영등포구 문래동에 소재한 딴지일보 사옥의 대회의실에서 개최되었다. 중국으로 답사 여행을 떠난 변희재를 제외한 구성원 전원이 참석했다.


내로라하는 기인들과 괴짜들이 한곳에 집합한다는 소리가 노무현 후보의 대선캠프에까지 어찌어찌 전해졌던 모양이다. 때는 김대중 정부의 정권재창출에 성공하려면 히딩크 감독을 내세워 한국축구의 월드컵 4강 기적을 이룩한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으로 너무 늦기 전에 갈아타야만 한다는 정치공학적 설왕설래가 새천년민주당과 진보적 시민사회단체 안팎에서 공공연히 오가기 시작하던 시점이었다. 노무현 후보 진영 입장에서는 지푸라기라도 잡고픈 심정이었을 테고, 노변구락부에 모인 사람들이 그런 지푸라기로 여겨졌던 듯싶다.

 

필자는 해당 모임이 기억날 때마다 세 가지 잔상이 마치 어제 벌어진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 첫째는 중국요리를 시켰다는 것이다.

 

둘째는 여의도의 노무현 캠프로부터 문래동의 딴지일보로 찾아온 정치인이 양주 한 병을 자기 집에서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는 노무현 후보의 최측근 중 한 명으로 통하던 인물이었다.

 

집에 보관돼 있던 양주를 가정 밖으로 반출하는 일은 비교적 흔한 경우임에도 불구하고 그게 좀처럼 망각되지 않는 까닭이 있다. 그가 정말 양주만 달랑 가져온 탓이다. 밥 잘 먹고, 대화 잘하고, 모인 사람들과 일일이 인사 나눈 다음 그냥 홀라당 가버리더라. 자신이 먹은 짜장면 한 그릇 값조차 내지 않고….

 

김영란법도, 오세훈법도 없던 때였다. 촌지로 불리는 짭짤한 액수의 현금을 드러내놓고 옆구리에 찔러주지 않는 한에는 아무런 시시비비도 일지 않는 낭만(?)적 시절이었다. 그런데 명색이 집권여당의 공식 대선주자 사무실에서 중책을 담당한 유수의 정치권 인사가 본인까지 포함해 채 10명도 안 되는 일행의 음식값을 내주지를 못하더라. 2002년 초여름, 노무현 캠프가 얼마나 궁핍하게 꾸려지고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시사해주는 슬프고도 씁쓸한 일화였다.

 

문제는 자금난에 시달리기는 딴지일보나 노무현 캠프나 피장파장이었다는 점이다. 허나 본진인 딴지일보로 사람들을 시끌벅적하게 초대한지라 김어준 총수가 밥값을 부담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필자는 김어준 총수보다는 상대적으로 형편이 나을 서영석 기자가 대신 결제했으면 하는 바람이었으나 전통적인 종이신문에 몸담은 서영석이 뉴미디어 딴지일보의 위태로운 재정난을 제대로 인지했을 턱이 없었다. 더욱이 총수와는 초면인 참석자들이 즐비한 분위기에서 서영석이 식대를 계산한다면 김어준에게 크게 모양새 빠지는 그림이 될 게 틀림없었다.

 

결국 밥값은 김어준 총수가 애꿎게 냈다. 그는 직원들 월급도 제때 챙겨주지 못하는 상태였다. 이 와중에 필자가 눈치 없이 불러 모은 객식구들 회식비까지 통째로 떠안아야 했으니 오죽 속이 문드러졌겠는가? 모임을 제안한 나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죄인의 심경이 되어 김어준의 눈치를 살짝 살폈다. 총수는 미소와 울상이 번갈아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그는 입이 아닌 얼굴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라고. (⑫에서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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