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교황을 능가한 김어준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Newsweek) 때문에 한국사회가 발칵 뒤집힌 사건이 있었다. 때는 노태우 정권이 바야흐로 임기 후반에 들어선 1991년 가을이었다. 뉴스위크는 남한이 급속한 경제성장의 부정적 부산물인 도덕적 해이로 신음하고 있다며 그 증상의 하나로 사회 전반에 만연한 과소비 풍조를 거론했다.
해당 잡지는 그와 같은 내용을 특집기사로 보도하면서 이화여대 정문의 주변 광경을 촬영한 사진을 표지에 실었는데, 사진에 등장한 몇몇 학생들의 모습 바로 밑에다 ‘돈의 노예(Slave to Money)’라는 몹쓸 설명을 큼지막한 글자로 달아놓았다.
문제는 사진 속 인물들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 등의 최소한의 초상권 보호조치조차 취하지 않은 채 그냥 태연히 내보냈다는 점이다. 이 난데없는 소동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 식으로, 학교 교문 앞을 지나가다가 졸지에 과소비의 주범으로 낙인찍힌 피해자들이 뉴스위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승소해 위자료를 지급받는 것으로 최종적으로 마무리되었다.
필자는 영문학 전공자가 아니다. 그래서 아직까지 한 가지 궁금증이 남아 있다. 뉴스위크가 돈의 노예를 어째서 ‘Slave of Money’가 아니라 ‘Slave to Money’로 표기했느냐는 것이다. To가 Of와 비교해 보다 능동적이고 주체적 의미를 띠고 있다고 해석한 탓일까? 관건은 취재를 담당한 뉴스위크 한국 주재 특파원이 1990년 초에 X 세대의 대두와 더불어 오렌지족과 야타족의 메카로 통했던 압구정동 대신에 신촌으로 가는 바람에 크게 헛발질을 했다는 것이다.
X세대와 오렌지족 또는 야타족의 관계는 물과 오폐수의 관계이다. 모든 X 세대가 오렌지족과 야타족은 아니었지만, 고급 외제차를 몰고서 강남 유흥가를 밤마다 휩쓸고 다녔던 거의 대부분의 오렌지족과 야타족들은 우리나라에서 1970년대 초반에 태어난 인구집단을 지칭하는 X 세대의 일원이었다.
X 세대는 유하의 시집 제목처럼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기를 즐겼던 세대였다. 소싯적에 압구정동을 배회하던 X 세대가 나이 들어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이처럼 컴퓨터 앞에 다소곳이 앉아 다운로드 받은 게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가 주도해 제작한 시사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였다. 나꼼수는 X 세대에게는 젊어서의 사치와 환락을, 방종과 무절제를 용서받는 일종의 면죄부로 작용했다. 베드로의 후예를 자처하는 바티칸의 교황들마저 실패한 면죄부 판매에 성공했다는 측면에서 김어준은 지금의 남조선 땅에서 중세의 로마 교황청조차 감히 누리지 못한 부와 권력과 명예를 만끽하고 있는 셈이다.
김어준, 강남 아파트 300채를 포기하다
현재의 김어준, 특히 문재인 정권이 출현한 이후의 김어준 총수의 일거수일투족을 분석ㆍ평가할 경우 절대 빠져선 안 될 고려요소가 바로 돈이다. 김어준이 모양새 즉 가오가 치명적으로 빠질 것이 명약관화함에도 불구하고 TBS 교통방송의 「뉴스공장」 진행자 지위를 악착같이 유지하려 드는 본질적 이유와 동기도 다름 아닌 돈에 있다.
관급수주의 최대의 장점이자 매력은 사업비이건 인건비이건, 보조금이건 지원금이건 결코 밀리지 않고 꼬박꼬박 나온다는 데 있다. 언제 줄지 불투명한 2천만 원보다는 예정된 날짜에 틀림없이 확실하게 통장에 입금되는 2백만 원이 알고 보면 더 탐나고 알짜배기인 까닭이다. 과거에는 어땠을지 몰라도 작금의 김어준 총수에게는 윤리적 판단 위에 정무적 판단이 있고, 정무적 판단 위에 재무적 판단이 있다.
그러므로 필자는 순전히 재무적 판단에 기초해 김어준 총수가 교통방송 진행자 자리를 사수하기로 마음먹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유추한 근거가 뭐냐고? 냄새가 난다, 냄새가!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는 오직 냄새만으로 타인의 행동거지를 서슴없이 시시비비해왔다. 고로 다른 사람들도 김어준의 행위를 오로지 후각에만 기대어 재단할 권리가 있다. 그게 공정이다. 김어준은 냄새만 갖고 타자에 대해 왈가왈부하는데, 남들은 구체적 물증과 자료가 전제돼야만 김어준에 관해 가타부타할 수 있다면 그건 너무 불공평하지 않은가? 한마디로, 영락없는 내로남불 되겠다.
그런데 김어준 총수가 딴지일보을 창간했던 초창기부터 돈을 지독히 밝히는 성격은 아니었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김어준은 대한민국에서 돈에 초연하기로 치자면 「무소유」의 저자인 법정 스님 부럽지 않은 인물이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야 호랑이 담배 피던 라떼 시절로 들리겠지만, 인터넷 도메인 한 개 선점해 홈페이지만 대충 뚝딱 만들어놓고 몇 쪽짜리 사업계획서 한글 워드프로세서로 얼기설기 작성해 준비하면 당시 돈으로 10~20억은 너끈히 투자받을 수 있는 전설 같은 황금시대가 한국경제사에도 존재했었다. 소형 평수 기준으로 강남 아파트 한 채 가격이 1억 원도 채 안 되던 무렵이었다.
당시 문화일보가 거금 800억 원을 제시하며 딴지일보를 매입하겠다는 얘기를 김어준 총수에게 했다는 소문이 시중에 파다하게 나돌았다. 실제로는 300억이었다는 후일담도 있다.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하자면 강남 아파트 300채와 딴지일보를 맞교환하자는 파격적 제안이었다. 김어준 총수와 문화일보 양측 전부 이와 관련해 여태껏 공식적 언급을 한 적이 없는지라 정확한 액수는 파악ㆍ확인할 수 없으나, 김어준을 단숨에 돈벼락에 앉게 해주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 아니 거부해서는 안 될 제안을 창업주인 정주영 전 명예회장이 여전히 생존해 있을 즈음의 현대그룹의 실질적 계열사인 문화일보가 김어준에게 해온 건 분명 사실이었으리라.
정주영은 1992년의 제14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을 적에 언론으로부터 무차별적으로 난타당한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정 전 명예회장과 그의 측근들은 전통 매체들(Legacy Media)들의 준동과 방해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것을 인터넷 기반의 뉴미디어를 효과적으로 장악ㆍ활용해 되찾겠다는 결의를 남몰래 조용히 다져왔을지 모른다.
필자 같은 일반인들에게 수백억 원은 상상 속에서나 만질 수 있는 천문학적 거액이다, 허나 한국 굴지의 재벌기업과 그 총수에게 300억이든, 800억이든 시쳇말로 껌값에 지나지 않는 법이다. 현대가의 전격적인 딴지일보 인수합병(M&A)이 꼭 손해나는 장사는 아니었을 수 있는 합리적 계산이 성립하는 배경이다.
딴지일보 경영권 인수는 정도령, 곧 현대가가 나라를 지배하는 정감록의 꿈을 현실에서 이루려는 큰 그림 속의 첫 번째 포석일 수가 있었다. 문화일보와 딴지일보 인수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맺은 인간적 인연의 여운이 작동했기 때문인지 2002년 대선 정국에서 김어준 총수는 강준만 전 전북대 교수와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와 같은 내로라하는 진보개혁 성향의 논객들과 견주면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를 향해 상대적으로 우호적 입장을 견지했더랬다.
결과적으로, 김어준은 문화일보의 통 크고 달콤한 제안을 고심 끝에 뿌리쳤다. 젊은 혈기가 낳은 무모한 객기였는지, 정론직필의 언론인의 길을 가라는 양심의 명령에 복종한 용단이었는지, 아니면 더 유리한 거래조건을 염두에 둔 고도의 간보기였는지 알 수 없으나 이때의 결정은 김어준의 운명은 물론, 그의 사람됨마저 통째로 바꿔놓는 시발점이 되었다. (⑥에서 계속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