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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일기토에 나서다 우석훈 교수의 「다크 히어로의 탄생」을 읽다가 ② 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2021-07-09 18:18:08

정세균계는 유령회사

 

우석훈 성결대 교수는 필자가 기획해 이번 7월 중순 발간 예정인 「이준석이 나갑니다」에도 그의 진한 우정이 배어 있는 소중한 글을 흔쾌히 보내주었다.“정세균 대선캠프에 공식적으로 이름을 걸쳐놓은 더불어민주당 현역 국회의원들이 수십 명인데도 불구하고 정세균 전 총리가 기자들에게 아침마다 일일이 직접 전화를 걸어서 자신과 관계된 소식을 보도해달라고 부탁하는 지경이라고 합니다.”

 

필자가 여의도 소식에 정통한 어느 소식통으로부터 며칠 전에 전해들은 이야기이다. 진위 여부를 정확히 검증할 물증은 없으나 심증은 충분히 가고도 남는다.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숫자 많고 결속력 단단하기로 정평이 자자한 ‘정세균계’가 알고 보면 실제로는 빛 좋은 개살구, 한마디로 일종의 실체 없는 유령회사(Paper Company)에 불과함을 정세균 전 국무총리와 거의 2년 동안 매일 얼굴을 맞대고 만났던 우석훈 성결대 교수가 본인이 근래에 펴낸 책인 「다크 히어로의 탄생 : 어느 날 내 인생에 정세균이 들어왔다」에서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세균계는 민주당의 최대 조직이고, 가장 끈끈한 계파라고 나는 들었다. 전북의 맹주(盟主) 정세균, 그러나 내가 그를 보았던 시기에는 한때 정세균 사람들이었을지 모르지만, 모두가 당대표 문재인을 중심으로 자기 자리를 찾아가며 재구성되는 중이었다. 문재인의 최측근이 되고, 당의 살림을 맡은 사람들이 정세균으로부터 멀어져갔다.”

 

우석훈 교수가 집필한 「다크 히어로의 탄생」 78쪽에서 필자가 발췌ㆍ인용한 내용이다. 우석훈의 책에서 회고된 상황이 그로부터 몇 년 후 완연한 판박이로 재현되는 형국이다. 구태여 차이를 찾아보자면 그때의 정세균 사람들은 당대표 문재인에게 부지런히 줄을 섰었고, 지금의 정세균계 계보원들은 집권여당의 차기 대선후보로 선출될 게 유력시되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에게 속속 백기투항하고 있다는 것 정도이리라.

 

우석훈은 정세균은 정계은퇴를 선언해야 할 만큼의 심각한 정치적 위기를 세 차례 경험했다고 책에서 서술했다.


첫 번째는 문재인이 나중에 더불어민주당으로 당명을 개명하는 새정치민주연합의 당권을 접수했을 때였다. 그즈음 정세균은 내심 당대표 자리를 노리던 터였다. 두 번째는 친문세력의 독단적이고 비민주적인 당 운영에 반발한 안철수 전 의원과 그를 따르는 정동영, 천정배, 박지원 등의 호남 출신 중견 정치인들이 새정치민주연합을 집단적으로 탈당한 때였다. 정세균은 미운털이 크게 박힐 것을 각오하고서 당수인 문재인에게 비문들을 무조건 포용할 것을 건의하려고 했었다. 마지막 세 번째는 2016년 4월에 치러진 제20대 총선 당시 서울 종로 지역구에 출마했을 때였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정세균은 경쟁자인 새누리당 오세훈 후보에게 일방적으로 밀리던 참이었다.

 

다이 하드 정세균, 이번에도 살아남을까

 

「다크 히어로의 탄생」에는 우석훈 교수가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으로 활동하며 겪은 일들이 우석훈 특유의 감각적이면서도 통찰력 있는 필치로 담겨 있다.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기회주의적 염량세태의 태풍이 거세게 몰아칠 적마다 제일 먼저 격랑에 휩쓸려 위험천만하게 요동친 배는 정세균이 선장으로 있는 정세균계였다. 정세균계는 진심으로 정세균과 끝까지 의리 있게 동고동락하려는 정치인들이 모인 충성스러운 조직이 아니었다. 조직원들 입장에서 정세균계는 그들을 진짜 목적지로 태워다줄 교통편이 도착할 때까지 잠시잠깐 동안 편리하게 머무는 버스 정류장이나 지하철 환승역 같은 장소였다.

 

전형적인 여의도 사람이 아닌 터라 민주당 내부의 은밀한 속사정을 알 리가 없었을 우석훈은 이와 같은 충격적 진실을 발견하고는 정세균에게 측은지심이 발동했다. 그러한 측은지심을 우석훈은 ‘우정’으로 묘사했다. 필자가 지난번에 쓴 글을 읽은 우석훈 교수는 우정은 우파는 물론이고 좌파의 용어이기도 하다고 친절하게 정정해주었다. 그가 예전에 몸담았던 국제 녹색당의 강령이 ‘우정과 유머로 함께 가는 길’로 마무리된 연유에서였다.

 

다크 히어로(Dark Hero)는 영웅인지 악당인지 도통 헷갈리고 아리송한 기묘한 영웅을 가리킨다. 이를테면 미국 영화 「다이 하드」에서 브루스 윌리스가 연기하는 존 매클레인 형사가 그러한 인물형에 해당한다. 영어 ‘Diehard’에는 찰거머리처럼 질기게 달라붙는 징글징글한 인간을 가리키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

 

성룡은 추석 때만 한국의 극장가를 찾아왔다. 매클레인 형사는 성탄절만 되면 작년에 왔단 각설이처럼 나타나는 불의한 악당들을 일망타진한다. 그런데 매클레인이 악당들을 응징하고 정의를 구현하는 방식은 그리 아름답지도, 깔끔하지도 않다. 악당들이 이제는 죽었겠지 하고 안심하는 순간 번번이 살아 돌아와 적들의 뒤통수를 인정사정없이 후려치는 매클레인 형사는 속임수는 예사이고, 심지어 쓸데없는 불필요한 살상마저 서슴지 않는다. 그렇지만 반칙왕 매클레인의 손에 처단당하는 범죄자들이 한결같이 워낙 사악한 족속들인 까닭에 권선징악의 화신이자 스스로가 현직 경찰관이기도 한 매클레인은 종국에는 영웅의 반열에 꼬박꼬박 등극하게 된다.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다크 히어로는 치사한 반칙왕인 데 더하여 철저히 고독한 늑대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를테면 단체전이 아닌 개인적 형식의 싸움을 선호한다. 휘하에 이끌던 계파가 실질적으로 산산이 공중분해돼버린 작금의 정세균은 대중이 그에게 전혀 기대하지도, 예상하지도 않았을 면모를 갑작스레 과시하고 있다. 적장과의 소위 일기토에 나선 것이다.

 

정세균이 이재명을 상대로 유명 여배우 김부선과의 불미스러운 소문을 매섭게 추궁하자 이재명은 트로트의 황제 나훈아가 마치 그에게 빙의라도 한 듯이 바지를 벗겠다는 돌발적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필자에게 정작 의외로 다가온 사태는 바지를 벗으면 결백함을 믿어주겠느냐고 되물은 이재명의 대담한 행동이 아니었다. 조직의 귀재 정세균이 단기필마의 외로운 정면대결을 불사했다는 사실이었다.

 

필자는 정세균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에 대한 나의 정치적 판단과 평가가 크게 바뀔 가능성은 앞으로도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한 가지만은 확실한 자신감을 갖고서 분명히 단언할 수가 있을 듯싶다. 그건 정세균이 기업인으로부터 정치인으로 변신한 지 사반세기가 지나서야 권력투쟁의 궁극적 본령은 고립무원의 비장한 일기토에 있음을 비로소 깨닫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위대한 정치가(Statesman)는 일기토로 승부하지만, 비루한 정치꾼(Politician)은 추종자들을 일제히 꾸역꾸역 동원하는 양념치기로 승패를 가리려 든다. 과거의 정세균은 어땠을지 몰라도 현재의 정세균은 음습한 양념질이 아니라 정정당당한 일기토로 자웅을 겨루려 시도하고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우석훈이 정세균을 향한 뜨거운 우정을 묵직히 담아 쓴 「다크 히어로의 탄생 」의 다른 이름은 「정치인의 탄생」으로도 불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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