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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은 윤석열과 왜 싸우는가 - 민생과 국익이 사라진 그들만의 역성혁명

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 기사등록 2024-07-21 12: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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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의 반란과 이에 대한 윤석열의 강경 대응은 옛것이 묻은 불완전한 새것이 순수한 새것보다도 옛것의 제거와 청산에 오히려 더 인정사정없이 나설 수밖에 없는 역설적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지는 올해 1월에 발발한 ’윤한 갈등‘ 소식을 보도한 동아일보 지면의 모습

여당 전당대회가 분당대회란 냉소와 혹평 아래 치러졌다. 필자가 현재시제가 아닌 굳이 과거시제를 사용해 집권 국민의힘의 창당 이래 네 번째 전당대회의 의미와 성격을 규정한 까닭은 어느 후보자가 차기 당대표를 선출하는 경선에서 승리하는지와 무관하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항은 이미 사실상 확정된 것과 진배없는 데 있다.


첫 번째는 윤석열 대통령 내외와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 사이는 서로를 철저히 불신하고 뼛속까지 증오하는 불구대천의 원수 관계로 바뀌었단 점이다.


두 번째는 보수 진영 내부적으로 종래의 영호남 균열에 버금갈 격심한 지역대결 구도가 새롭게 형성됐다는 점이다. 영남의 수구냉전 보수와 수도권의 기회주의 보수의 마찰과 대립이다.


세 번째는 기존 국민의힘의 총체적 리모델링 형태로 추진되건, 또는 그곳에서 아예 완전히 떨어져나와 딴살림을 차리는 형태로 진행되건 간에 한동훈이 주도하는 새로운 보수 신당의 출현이 필요성의 차원에서 필연성의 단계로 한 발짝 더 나갔다는 점이다.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충돌과 항쟁은 숙명적이고 불가피하다. 새것의 등장은 옛것의 퇴장을 전제하는 탓이다. 더욱이 옛것에 크게 빚지고 있는 새것일수록 옛것의 청산과 극복 작업에 더욱더 요란하고 광적으로 매달리기 마련이다. 낡은 것들과의 과감하고 확실한 단절에 소극적인 새로운 것들은 대중으로부터 이른바 신상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동훈은 새것은 새것이로되 옛것에 커다란 빚을 지고 있는 낡고 빛바랜 매우 불완전한 새것이다. 한동훈의 대표적 공직 경력 두 개일 법무장관과 집권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윤 대통령이 내려준 일종의 하사품이었다. 더군다나 영부인 김건희 여사와는 이제껏 수백 건의 문자 메시지를 교환했을 만큼 각별한 인연을 이어왔다. 왕조 시대의 흔한 비유를 잠시 빌린다면 한동훈 전 장관이 윤석열로부터 입은 승은은 태산보다 높으며, 바다보다 깊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이준석 현 개혁신당 의원이 그에게 묻어 있는 윤 대통령의 흔적을 물티슈로 한두 번 쓱쓱 문질러 지울 수가 있다면, 한동훈의 경우에는 자기 자신을 초강력 드럼세탁기에 넣고서 최소 네댓 차례는 풀코스로 돌려야만 그의 몸 곳곳에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어 있을 윤석열 정부의 각종 얼룩과 땟자국을 깨끗이 제거할 수 있다.


한동훈이 명실상부한 잠재적 미래 권력으로 자리 잡으려면 그는 배신자라는 여권 안팎의 비판과 질타를 지금 당장은 들을지라도 당권 경쟁자인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적한 ‘절윤’은 물론이고 필요하다면 ‘멸윤’의 깃발을 휘날리는 일마저 불사해야만 한다. 윤한 갈등이 이준석이 초기에 예상했던 사전에 잘 짜인 각본대로 움직이는 ‘약속 대련’ 수준에 머물기는커녕 상대방에게 타격만 줄 수 있다면 핵폭탄급의 위력을 지난 폭로와 뒷담화마저 서슴지 않는 살풍경한 전면전으로 비화ㆍ확전될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 배경이다.


초임 검사 시절부터 현 정권의 집권 전반기에 이르기까지 윤석열 대통령과 오랜 세월 한솥밥을 먹어온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왜 ‘멸윤흥한(滅尹興韓)의 기치를 내걸고 윤석열 타도 투쟁에 뛰어들게 됐는지를 한동훈의 내재적 관점에서 살펴봤다.


그렇다면 윤석열 또는 윤석열 부부는 절대 기밀을 유지해야만 상식일 사적인 문자 메시지 대화 내용을 측근들의 손을 거쳐 까발리는 강공책을 동원하면서까지 어째서 한동훈을 겨냥한 강경 진압 작전에 착수한 것일까? 여당 비대위원장에게는 선거 전략상 부득이한 고육지책이었을 현직 대통령과의 조심스럽고 부분적인 차별화 시도에 대해 용산 대통령실이 과도하게 격앙되고 신경질적으로 반응한 사태가 한동훈으로 하여금 중국 진나라 말기의 진승과 오광처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의 이판사판의 심정으로 반란에 나서게끔 이끈 측면이 분명 짙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쿠데타로 집권한 권력자일수록 쿠데타를 더더욱 두려워하는 법이다. 쿠데타 음모의 예방과 분쇄의 임무를 책임진 국군 보안사령부와 이의 후신인 국군 기무사령부가 박정희와 전두환, 그리고 노태우 세 명의 정치군인 출신 대통령 치하에서 조직과 권한이 급속하게 비대해진 이유였다. 박정희는 1961년 5월의 5ㆍ16 군부 쿠데타로, 전두환과 노태우 일행은 1979년 12월의 12ㆍ12 군사 반란으로 각각 정권을 장악ㆍ찬탈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 권력을 어떻게 활용해야 정권을 잡을 수 있는지를 아는 인물이다. 문제는 한동훈 역시 검찰권을 어떻게 써야만 최고 권좌에 오를 수 있는지를 윤석열 못잖게 잘 알고 있는 걸로 보인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한동훈에게 윤석열은 더는 디딤돌이 아닌 걸림돌이 됐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이 한 전 장관에게 요긴하고 유용한 디딤돌에서 거추장스럽고 걸리적거리는 걸림돌로 변했음은 윤석열도 알고, 한동훈도 안다. 게다가 윤석열과 한동훈은 대충 절충하고 협상할 여지가 있을지 몰라도 이들을 따르는 추종자들은 상호 타협하거나 양보하기가 불가능하다. 알콩달콩 사이좋게 나눠 먹기에는 작금의 집권세력은 정권에 직간접으로 관여된 인간들의 숫자는 너무나 많되, 정권이 손에 쥔 떡고물의 크기는 너무도 작다.


일례로 윤 대통령 부부가 총애하는 장예찬 전 국민의힘 청년 최고위원은 부산의 어느 지역구에서 한동훈 계보의 출마자와 경합하다가 공천을 박탈당하고 말았다. 여당이 수도권에서 알거지 신세가 될 게 뻔한 터라 보수의 텃밭으로 불리며 그나마 먹을 것이 좀 있어 보이는 영남권에서 “너 죽고, 나 살자!”의 살벌한 밥그릇 싸움이 벌어졌던 것이다.


윤석열에게 한동훈은 은혜를 원수로 갚은 배은망덕한 역적이 되었다. 한동훈에게 윤석열은 전도유망한 후배의 앞길을 가로막으려 치사하게 사다리를 걷어찬 이기적인 구태 기득권자가 돼버렸다. 윤석열은 선임자를 매몰차게 몰아내지 않고도 미래 권력이 될 수 있는 인사가 후계자가 되기를 선호한다. 한동훈은 윤석열과 도매금으로 묶여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하게 사라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둘의 개인전은 요번 여당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현역 국회의원들 위주의 영남 보수와 총선에서 고배를 마신 전ㆍ현직 원외 당협위원장 중심의 수도권 보수가 시쳇말로 맞다이를 뜨는 단체전으로 급발진한 양상이다.


그런데 윤한 내전은 나날이 치열해짐과 정비례해 가일층 졸렬해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진로에 대한 고민과 서민대중의 처지에 대한 걱정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 은하계로 내던진 ’그들만의 역성혁명‘ 소동인 탓이다.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는 온갖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결국은 좁다란 한 이불을 덮고 자게 됐다는 행복하고 낭만적인 후일담이 전해져온다. 반면, 나 홀로 광대한 은하계를 독차지한 국민의힘은 내전의 최종적 승자가 누가 되든 슬프고 우울한 결말을 맞이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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