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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과 김정은의 외교전 승자는 - 국제사회의 진짜 왕따는 서울인가, 평양인가

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 기사등록 2024-07-02 00:4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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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슨과 사보니스가 서울에 왔던 날


바이든에게 모두걸기한 윤석열 정부는 트럼프가 백악관에 복귀할 경우 심각한 외교적 고립 상태에 처하게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미지는 조 바이든 현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텔레비전 토론회 소식을 중요한 외신으로 전한 YTN 뉴스 화면

미국에서 민주당 정권이 등장하면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가 실현ㆍ정착되는 데 유리한 대외환경이 조성된다고 철석같이 믿던 시절이 과거에 한때 있었다. 미국의 민주당이 전통적으로 인권을 중시하는 외교 활동을 전개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믿음은 자주 배반당하곤 했다. 일례로 전두환의 신군부가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을 진압하려는 목적으로 대규모 군병력을 이동시켰을 때 미국에서는 민주당 소속의 카터 행정부가 집권하고 있었다.

 

6ㆍ25 전쟁 발발 초기인 1950년 7월, 이승만 정부는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미군이 주도하는 유엔군 사령관에게 양도한 바 있다. 따라서 광주 민중항쟁의 유혈 진압은 미국 측의 동의 내지 방조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인식이 1980년을 기점으로 다수의 한국인들 사이에 폭넓게 공유되기 시작했다. 미국이 광주의 비극에 커다란 책임이 있다는 생각은 제3세계 국가들 가운데서는 아주 이례적으로 오랫동안 반미감정의 무풍지대로 통해오던 남한 사회를 반미운동의 ‘핫플레이스’로 단숨에 일변시키는 강력한 기폭제로 작용했다.

 

이로 말미암아 한국은 라디오 방송에서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가 부르는 팝 음악이 요란하게 흘러나올 때 시위와 집회 현장의 확성기로부터는 “양키 고 홈!” 구호가 시끄럽게 울려 퍼지는 자아분열적 풍토의 나라가 되고 말았다.

 

제도권에서는 친미가 주류였지만, 민간에서는 반미가 대세였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미국과 소련의 국가대표 농구팀 간의 시합이 펼쳐졌을 당시 경기장을 찾은 한국인들의 대부분이 일방적으로 소련을 응원했던 기억은 필자의 뇌리에 여전히 선연하게 남아 있다. 여태껏 광장이었던 곳이 밀실이 되고, 밀실이었던 곳이 광장의 자리를 차지하는 ‘공간역전’의 순간이었다.

 

잠깐 주제 밖의 샛길로 벗어나 후일담을 약간 보태자면 해군사관학교 생도 데이비드 로빈슨이 이끄는 미국팀이 리투아니아 태생의 아비다스 사보니스가 중심이 된 소련 선수단에게 경기 내내 시종 고전 끝에 완패한 일은 농구장을 가득 메운 한국 관중들이 동맹국 미국이 아닌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을 응원한 사건과 더불어 해당 경기 장면을 텔레비전으로 시청한 수많은 미국인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로빈슨과 사보니스는 나중에 샌안토니오 스퍼스와 포틀랜드 트레일불레이저스에 각각 차례로 입단해 미국 프로농구협회(NBA) 리그를 호령하는 명센터로 맹활약했다.

 

그럼에도 대체로 한국의 민주당 계열 정당과 미국 민주당은 코드가 일치했고, 미국 공화당과 우리나라 보수 정당들은 궁합이 잘 맞았다. 전자의 대표적 사례가 김대중 정부와 빌 클린턴 정부였다면, 후자의 상징적 경우는 이명박 정부와 부시 2세 행정부이다.

 

김대중 정부는 클린턴 정부와의 긴밀한 공조 아래 사상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지향하였다. 이명박 정부와 부시 행정부는 한미동맹의 공고한 복원이 남북한 관계의 지속적 발전보다 중요하고 우선적이라는 냉전 시대의 원칙과 기조를 재확인하면서 다양한 심급과 차원의 대북강경책들을 쉬지 않고 밀어붙였다.

 

한반도의 게임 체인저 트럼프가 돌아온다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부동산 브랜드일 「트럼프 타워」의 시행자 겸 분양업자인 트럼프가 버락 오바마의 뒤를 이어 미합중국 제45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태평양을 중간에 두고서 수십 년간 유지돼온 “보수는 보수끼리, 진보는 진보끼리”의 초국가적인 이념적 구획선은 단박에 지워져 버렸다. 트럼프가 공화당 당적의 현직 대통령임에도 불구하고 역대 어느 행정부도 감히 시도해보지 않았던 과감하고 파격적인 북한과의 대화 노선과 협상 정책을 전향적으로 추구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보수세력은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된 북미 정상회담이 아무런 결실과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한 채 이른바 ‘노딜(No Deal)’ 회담으로 마무리된 사실에만 편집증적으로 주목하고 있다. 나는 이런 시각의 분석이 지극히 일차원적이고 평면적인 사고방식의 산물에 불과하다고 평가하고 싶다. 관건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소위 자본주의 자유진영의 정치지도자로서는 가히 획기적일 만큼 드물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무려 세 차례나 만난 사이라는 점이다. 김정은과 트럼프는 상대 국가를 향한 거칠고 날 선 비난은 수시로 퍼부어왔으나, 서로를 겨냥한 개인적 공격과 중상은 최대한 자제해온 터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1차 TV 토론에서 트럼프가 완승했다는 소식이다. 트럼프가 잘했다기보다는 바이든이 시쳇말로 죽을 쒔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게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이자 개척자의 나라이다. 미국이 스스로를 ‘신세계’로 자처해온 배경이자 연유이다. 유럽과 중국 같은 구세계는 국가의 수뇌급 인사들에게 지혜(Wisdom)와 덕성(Virtue)을 주로 요구해왔다. 이와 달리 미국은 힘(Energy)과 활력(Stamina)을 정지 지도자에게 가장 필수적인 선차적 자질이자 덕목으로 꼽아왔다.

 

젊고 건강한 인상을 주는 정치인에 대한 미국 민심의 선호와 호감은 현대 정치사의 중대한 기념비이자 분수령을 이룬 케네디와 닉슨의 텔레비전 실시간 생방송 토론회 이후로 더더욱 증폭ㆍ강화돼왔다. 케네디는 닉슨보다 훨씬 젊어 보였고, 레이건은 카터와 비교해 생기에 넘쳐 보였으며, 트럼프는 힐러리 클린턴에 견주어 억세고 강인하게 보였다. 위대한 나라는 강력한 리더십을 필요로 한다는 게 평균적인 미국 유권자가 변함없이 견지해온 원칙이며 철학이다.

 

트럼프가 바이든과의 첫 대결에서 아슬아슬하게 패배하자 문재인 정부에는 이러다가 정권을 야당에 허망하게 내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과 위기의식이 팽배해졌다. 사태는 실제로 그러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트럼프가 바이든과의 설욕전에 나선 현재, 윤석열 정부와 집권 국민의힘의 표정은 썩 밝지 못한 기색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트럼프에 기댔던 것 이상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바이든에게 의지해온 탓이다.

 

트럼프 귀환의 최대 수혜자는 북한 김정은이 될지도 모른다. 트럼프가 워싱턴의 백악관으로 복귀하면 평양의 김정은은 러시아의 푸틴과도 가깝고, 중국의 습근평과도 친분이 두터우며, 미국의 트럼프와도 우애가 돈독한 지구촌 최고의 외교 귀재로 순식간에 대두할 가능성조차 있다. 심지어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마저 나날이 떨어지는 여론조사 지지율을 반전시킬 특단의 대책으로 북일 정상회담을 물밑에서 교섭ㆍ추진하는 중이다.

 

반면 서울의 상황은 어떤가? 윤석열 대통령은 푸틴과는 불화하며, 습근평과는 견원지간이고, 트럼프와는 데면데면하다. 이 와중에 미국에서 정권이 교체되면 대한민국은 당장 외교적 고립부터 걱정해야 할 좌불안석의 처지이다. 한국이 북한을 국제사회의 왕따 신세라고 한가하고 마음 편하게 놀릴 계제가 아닌 셈이다.

 

외교는 물과 같다. 물의 본질적 특성은 쉬지 않고 유동한다는 점이다. 국제관계를 물이 아니라 한 자리에 고정불변하게 가로놓인 바위로 인지하면 국익에 치명적 손상을 끼칠 외교적 대참사의 발생은 단지 시간문제일 따름이다.

 

윤석열 대통령을 위시한 용산 대통령실 사람들과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을 비롯한 여당 정치인들은 지금 나라 밖 세상을 파도치는 물결을 대하듯이 기민하고 유연하게 대하는가? 아니면, 차가운 바윗돌에 올라앉은 심정처럼 경직되고 둔감하게 느끼는가? 딱딱한 돌머리로는 우리끼리 티격태격하는 안방에서 대장 노릇은 할 수 있을지언정, 쉴 새 없이 정세를 달리하며 무서운 속도로 급변하는 국제무대에서는 호구(Sucker) 취급받기 딱 좋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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