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가수 김흥국을 수십 년 동안 이름난 유명인으로 군림하도록 만들어준 요소들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ㆍ집약될 수 있다.
첫째는 「호랑나비」이다. 1989년도 최고 히트곡이기도 했던 이 노래는 MBC 문화방송이 매해 12월 31일 발표하는 ‘10대 가수’의 영광스러운 반열에 그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등극시켰다.
둘째는 축구이다.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의 공식 응원단으로 자리매김한 붉은악마가 결성되기 이전부터 김흥국은 월드컵을 비롯한 각종 국제대회가 개최되면 자비를 들여 해외로 출국해 경기장에서 한국팀을 열렬히 응원했다. 이 인연이 발판이 되어 그는 지금은 정계에서 은퇴한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최측근 인사로 오랫동안 활동하며 축구계 안팎에서 쏠쏠한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셋째는 해병대이다. 김흥국은 본인이 해병대 출신임을 수시로 자랑했고, 투철한 동지애와 단단한 결속력으로 명성이 자자한 해병전우회는 김흥국에게 음으로 양으로 적잖은 도움을 주었다. 그렇지만 김흥국이 홍수피해 구호에 나섰다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채 모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편드는 듯한 자세를 취함으로써 그가 선후배 해병대원들의 신뢰와 성원을 앞으로도 변함없이 받을지는 매우 불투명해진 상태다.
해병대와 축구와 호랑나비 버금가게 김흥국이 톱스타급 연예인으로 확 뜨는 계기가 있었다. 김흥국은 과거 큰 인기를 끌었던 문화방송 예능 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 고정 출연자 비슷한 역할로 매주 등장했었다. 때마침 그의 배우자가 출산을 앞두고 있던 무렵이었다.
프로그램 진행을 맡은 개그맨 주병진이 김흥국의 아이가 “아 응애에요~”라고 울면서 태어날 것이란 짓궂은 농담을 던졌는데 이게 흔한 말로 제대로 긁혀 녹화현장에 앉아있던 방청객들은 물론이고 텔레비전을 보던 시청자들까지 죄다 일시에 배꼽을 잡게 했다. 이 장면은 방송이 나간 지 30년이 넘게 흐른 현재도 유튜브 플랫폼에서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할 정도로 세월의 풍화를 견디고 살아남아 사람들의 폭소를 여전히 요란스레 자아내고 있다.
정치 칼럼을 표방한 글에 뜬금없이 우리나라 연예계의 전설 같은 후일담을 장황하게 소개한 까닭이 있다. 김흥국과 최근 서울 시내의 한 한정식집에서 만나 특유의 ‘전언 정치’를 이어나간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선대위원장의 정무감각이 주병진의 농담성 주장을 곧이곧대로 인용하자면 “아 응애에요~”라 외치면서 태어났을 김흥국의 첫아이를 연상시킬 지경으로 지극히 유아적 단계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한 전 위원장은 김흥국 씨가 22대 총선 국면에서 여당의 승리를 위해 선거유세를 뛰어준 데 대한 보답으로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고 한다. 선거가 끝난 후 집권당의 내로라하는 인물들 가운데 그 누구도 김흥국을 제대로 챙겨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동훈은 자신이 국민의힘 내의 다른 인사들과는 달리 의리가 있는 인간임을 과시하고 싶었을까?
문제는 날카롭고 지혜로운 정무감각을 구성하는 8할은 언제 누구를 만나느냐에 달렸다는 점이다. 지금은 용산 대통령실, 즉 윤석열 대통령이 채 상병 순직 사건에 대한 해병대 수사단의 정상적인 수사절차 진행을 방해하려는 목적에서 부당하고 불법적인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으로 말미암아 민심이 부글부글 끓는 상황이다. 이와 같은 분위기에서 권력을 두둔하는 모습을 보인 김흥국을 만난 사실이 외부에 공개된다면 한동훈이 올해 연초부터 애써 기울여온 윤석열과의 차별화 노력은 그야말로 말짱 황이 되고 말 게 뻔하다.
윤 대통령의 눈 밖에 나버린 한 전 위원장이 이제 믿고 의지할 거라곤 오로지 일반 유권자들의 민심뿐이다. 여론의 반발과 대중의 거부감을 살 행동은 절대적으로 피해야 하는 게 한동훈의 입장인 셈이다. 한동훈이 누군가를 진심으로 보듬고 싶었다면 김흥국이 아니라 채 모 상병의 가족들을 위로해야만 옳았다. 김흥국에게 감사를 표시하는 일은 다음 기회로 미뤘어도 족했다.
채 모 상병 수사 외압 시비로 윤 대통령이 또다시 거부권을 행사한 마당이다. 여론은 야당이 원내에서 밀어붙인 특검법을 압도적으로 찬성하고 있다. 한 전 위원장이 두 사람의 회동을 철저히 보안에 부쳐달라고 신신당부하는 대신에 김흥국의 입을 빌려 평상시와 다름없이 ‘한동훈 목격담’을 계속해간 결정은 어느 모로 보나 완전하고 안이한 판단착오였다.
김흥국과의 성급하고 부적절한 만남이 한동훈의 전술적 수준의 정무감각 미숙을 노출했다면, 집권당 당수가 되겠단 생각을 고집하는 모양새는 한 전 위원장에게 전략적 차원의 정무감각이 결핍됐음을 심각하게 드러내는 중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자. 조국 대표의 조국혁신당이 발의하고, 이재명 대표의 더불어민주당이 찬성해 국회 법사위와 본회의를 차례로 통과될 게 분명한 이른바 ‘한동훈 특검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본인과 영부인 김건희 여사가 수사나 조사 대상으로 지목된 다른 특검법들과 마찬가지로 재의요구권을 발동하리라는 보장이 있는가? 이는 한동훈이 강경 여당과 거대 야당 사이에서 자칫하면 샌드위치 신세가 될 개연성이 현실적으로 대단히 높다는 의미이다.
조금만 더 진도를 나가보자. 한동훈 전 위원장이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당대표에 선출됨을 전제로 최악의 경우 한국은 현직 대통령도 특별검사의 수사 대상, 대통령 부인도 특별검사의 수사 대상, 집권여당 당대표도 특별검사의 수사 대상이 되는 부끄럽고 엽기적인 ‘삼특검’ 정국이 초래될 수가 있다.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대통령 부부와 집권당 대표 3인이 동시에 수사를 받는 사태가 외국 어디에서 있었다는 이야기는 여태껏 듣지 못했다. 대통령 부부와 여당 당수 셋이서 한꺼번에 특검의 수사선상에 오르는 게 ‘K-정치’라면 그런 후진적이고 기상천외한 정치는 동네 골목길로 산책을 나온 댕댕이들에게나 아낌없이 던져주고 싶다.
한동훈은 아직 젊다. 초보 정치인 한동훈이 쌍특검이 확대재생산된 ‘삼특검’의 희생양으로 내몰려 윤 대통령 부부와 도매금으로 엮이는 허망한 결말은 한 전 위원장 본인도 결단코 바라지 않을 칙칙하고 우울한 시나리오일 테다. 야당의 책사들이 내심 신나게 그리고 있을 일타 삼피의 올가미에 한동훈 스스로 제 발을 들이밀어서야 되겠는가?
108석이면 충분하다며 자화자찬하는 여당에서, 자기들이 총선에서 진 것인지 이긴 것인지 분간조차 못하고 한심하게 폭탄주나 돌려대는 집권당에서 특검 수사를 받을 한동훈이 즉시 할 수 있는 일은, 당장에 이뤄낼 수 있는 성과는 아무것도 없다. 게다가 소위 ‘검찰 정권’ 프레임이 설상가상으로 그를 강력하게 옥죄면서 가뜩이나 좁은 한동훈의 운신의 폭을 제약하고 있다.
은인자중! 이 네 글자를 당분간 가슴에 깊이 새기고 있으면 한 전 위원장이 윤 대통령 내외와 한 묶음으로 엮여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하게 사라질 위험성의 대부분은 자연스럽게 제거ㆍ해소될 터이다. 한동훈의 자중자애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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