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대구광역시장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연일 뜨겁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본인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선대위원장을 거의 매일 직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홍 시장의 한 전 위원장을 겨냥한 맹공은 아직은 소리만 요란할 뿐 실속은 없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홍준표를 편드는 보수층 유권자가 현재까지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 탓이다. 싸움은 홍준표가 한동훈을 정조준해 포탄 한 발을 야심 차게 발사하면 한동훈의 인터넷 팬클럽을 기지로 삼아 출격한 수많은 한 전 위원장 추종자들이 홍 시장 머리 위에 집단적으로 융단폭격을 가하는 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홍준표 입장에서는 되로 주고 말로 받는 형국이라 하겠다.
그럼에도 홍준표는 한동훈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수밖에 없다. 한동훈을 향한 무자비하고 전방위적인 파상공세야말로 정치인 홍준표가 자신의 존재감을 뚜렷하게 증명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인 까닭에서이다.
미국의 마피아나 한국 조폭을 소재로 제작된 느와르 장르의 범죄영화를 보면 ‘넘버 3’인 등장인물이 보스의 신뢰와 인정을 가장 확실하게 확보하는 길은 조직의 2인자를 인정사정없이 물어뜯는 것이다. 1인자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자신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잠재적 도전자일 2인자를 끊임없이 견제하고 괴롭히는 3인자는 무척이나 고맙고 충성스러운 부하로 여겨질 테다.
필자는 이른바 모래시계 검사의 명성에 힘입어 정계 진출에 수월히 성공한 홍준표 시장이 뒷골목 건달패들이나 선호할 법한 음습한 생존 논리에 기대어 움직일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그렇지만 홍준표 시장의 최근 행보가 한동훈을 밀어내고 윤석열 대통령의 후계자가 되려는 고도의 노회하고 정략적인 정치기동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인상은 좀처럼 지우기 어렵다. 홍준표가 한동훈의 한계이자 맹점으로 지목하는 요소와 부분, 이를테면 검찰 권력을 동원해 거대 보수 정당을 손쉽게 점령ㆍ장악한 사태는 어김없이 윤 대통령에게 더 크고, 더 짙게 해당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홍준표 시장의 스텝이 결정적이고 치명적으로 꼬여버렸다. 홍준표가 한동훈 전 위원장을 비판하는 핵심적 근거는 한동훈이 당을 사유화하려 시도한다는 데 있다. 한동훈이 공적인 의사결정 체계를 무시ㆍ생략한 채 정체불명의 일부 외부 인사들과 결탁해 당권을 접수하려 든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동훈의 정당 사유화에는 격노하는 홍준표가 윤석열 대통령이 국가를 사유화하고 있다는 언론과 야당의 지적에 대해서는 철저히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아니,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도 모자라 외려 두둔하기 바쁘다.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여러 불미스러운 의혹들의 진상 규명과 관련해 서울중앙지검은 금번 22대 국회의원 총선 직후에 수사에 박차를 가해왔다. 검찰 일각에서는 영부인을 검찰청 건물로 직접 소환해 조사해야 한다는 대담하고 도발적인 주장마저 공공연히 제기된 터였다.
이런 상황에서 용산 대통령실이 윤 대통령 취임 직후 폐지됐던 민정수석실을 전격적으로 부활시키기 무섭게 김건희 여사 수사팀에 대한 대대적 물갈이 인사가 기습적으로 단행됐다. 소관 부처인 법무부는 통상적 차원의 인사이동일 따름이라고 해명했으나 이원석 검찰총장이 기자들 앞에서 보여준 7초간의 무언의 시위가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웅변하듯이 영부인을 보호하려는 목적을 띤 무리한 방탄 인사의 흔적이 역력했다.
그러나 홍 시장은 “자기 여자 하나 보호 못 하는 사람이 5,000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라는, 본질을 흐리는 엉뚱한 논법을 제시하며 정부의 석연치 않은 서울지검 물갈이 인사를 감쌌다. 그런 홍준표가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 같은 사람들을 홍 시장의 표현을 그대로 빌린다면 “진드기처럼 윤석열 대통령에게 기생”하고 있다고 비난하니 국민들은 누가 누굴 욕하는지 어리둥절하다.
미드웨이 해전은 태평양 전쟁의 중대한 분기점을 이룬 전투로 그 전황과 결말이 이미 영화로 몇 차례 생생히 재연된 바 있다. 일본 연합함대기 미드웨이 해전에서 참패한 제반 사유들 가운데 일차적으로 꼽히는 패인은 명확한 목표가 부재했다는 것이다.
나구모 주이치(1887~1944) 중장의 지휘하에 네 척의 주력 항공모함을 중심으로 편성된 일본 해군의 최정예 기동부대는 미드웨이 점령이 먼저인지, 작전 수행 도중에 필연적으로 맞닥뜨릴 미 해군 태평양 함대 소속의 항공모함들 격파가 우선인지 구체적으로 정하지 못한 채 출항을 서둘렀다. 그 결과 섬의 비행장을 폭격하는 데 쓰일 폭탄과, 적군의 함선들을 침몰시키는 용도로 사용될 어뢰를 항공모함의 격납고 안과 비행갑판 위에서 이리저리 부산하게 바꿔 끼다가 미군 폭격기들에게 통한의 선제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홍준표 시장의 작금의 모양새가 딱 1942년 6월에 미드웨이 주변 해역으로 출동한 일본 해군 기동부대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마음도 얻고 싶고,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의 기세도 꺾고 싶은 게 홍준표의 속내로 짐작된다. 문제는 윤석열의 환심을 사는 일과 한동훈을 제압하는 일은 상호충돌하는 모순적 관계라는 데 있다.
왜냐? 홍준표가 한동훈의 콧대를 납작하게 누르려면 박근혜 탄핵 정국에서 한동훈이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은 사태를 환기시켜야만 한다. 한데 한동훈은 박영수 특검팀의 수사팀장이었던 윤석열의 지시와 통제 아래 활동했다. 상사인 윤석열의 거센 반대를 뿌리치고 실무자인 한동훈이 독단적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감옥으로 보내고,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한 게 아니었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홍준표 시장은 한동훈 전 위원장을 공격한 다음에는 속이 뜨끔해서라도 윤석열 대통령을 추켜 세워야 한다. 윤석열을 추켜 올리면 그 낙수효과로 한동훈도 띄운 셈이 되므로 그 다음 날에는 한동훈을 어떻게든 깎아내려야 한다. 한동훈을 폄하하는 행동은 결국은 윤석열을 모독한 격이 되기에 그 후에는 윤석열을 또 찬양해야만 하고…. 이와 같은 악순환의 연속이 얼마 전부터 홍준표가 빚어내고 있는 차마 웃지 못할 연쇄 희비극의 전말이다.
이 일련의 희비극은 홍준표 시장의 주기적인 이준석 칭찬에서 절정에 달하기 일쑤다. 허나 정작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의 열혈 지지자들은 홍준표의 이준석 극찬에 전연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이다. 그들은 홍준표가 이준석에게 보내는 달콤한 찬사에 기뻐하기 이전에, 홍 시장이 윤 대통령에게 바치는 낯간지러운 헌사에 분개하고 있다.
이쯤에서 정리하자. 나구모는 단지 폭탄과 어뢰의 두 가지 사이에서 갈팡질팡했지만, 비유하자면 홍준표는 한 술 더 떠 폭탄과 어뢰와 가미카제 자폭돌격의 세 종류의 선택지를 두고서 우왕좌왕하는 양상이다.
홍준표가 윤석열의 믿음을 얻고 싶다면 한동훈이 검사 시절 보수 정당을 박살 낸 사건을 언급해선 안 된다. 홍준표가 한동훈을 집권당에서 축출하고 싶다면 윤석열과 도매금으로 엮어 쫓아내야 효과적이다. 홍준표가 이준석을 동맹군으로 포섭하고 싶다면 이준석을 여당에서 몰아낸 윤석열의 소행을 공개적으로 격렬히 성토해야 마땅하다. 세 개를 모두 이루기 원하는 홍준표는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커피를 걸쭉한 쌍화차 맛이 나게끔 만들어 달라고 주문하는 어느 카페의 손님만큼이나 앞뒤가 맞지 않으면서 자기분열적이다.
나는 헤어나기 힘든 난맥상에 빠진 듯싶은 홍준표 시장의 착종되고 좌충우돌하는 심리 상태의 저변에는 다급하고 성마른 초조함이 깔려 있다고 평가하는 바이다. 홍준표 시장은 1953년생이다. 우리나라 나이로 올해 무려 일흔두 살이다. 한동훈과 견주어 스무 살이나 위이고, 이준석과 비교하여 무려 32세 연상이다.
아무리 급해도 바늘허리에 실을 꿸 수는 없기 마련이다. 필자는 홍준표 시장이 이제라도 연륜에 어울리는 원숙하고 도량 넓은 정치를 말과 행동 모두에서 진득하고 진중하게 실천해나갔으면 좋겠다. 일본 연합함대가 미드웨이 해전에서 대패한 근간에도 무조건 빨리 승부를 지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자리 잡고 있었음을 홍 시장께서는 부디 잊지 말고 기억해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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