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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와 윤석열의 평행이론 - 2016 새누리당, 2024 국민의힘이 닮은 점은

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 기사등록 2024-05-11 00:3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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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여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앞세운 용산 대통령실과 친윤세력의 행태는 이정현 대표를 앞세운 2016년 박근혜 탄핵 정국 직전의 청와대와 친박세력의 행태와 여러모로 유사하다. 이미지는 황우여 비대위 체제를 둘러싼 논란과 진통을 보도한 JTBC 뉴스 화면

윤석열 대통령이 1년 9개월 만에 공식 기자회견을 가졌다. 2024년 5월 9일 목요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이뤄진 기자회견은 윤 대통령이 취임 2주년을 맞아 국민들에게 그간의 국정운영 성과를 보고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만약 여당이 올해 4월 10일 치러진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완패하지 않았다면 기자회견이 온전히 성사됐을지를 생각하면 국민은 기쁜 마음으로 보고를 받은 게 아니라 조금은 떨떠름한 심정으로 보고를 당한 격일지 모른다.

 

민심의 시선은 윤 대통령이 해병대 채 모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여부와 관련된 특검과, 영부인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다양하고 불미스러운 의혹들을 규명할 특검법안을 과연 여론의 대세를 따라서 순순히 수용할지에 집중됐다.

 

결론은 “혹시나 했는데 또다시 역시나”로 허망하게 마무리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런저런 구실과 핑계를 붙여가며 두 가지 특검 전부에 거부권을 행사할 의향임을 분명히 밝혔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가 총선 결과로 뚜렷이 표출된 민의에 아랑곳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고집스레 갈 것임이 명확해진 셈이다. 정권과 민심이 마주 보고 달리는 기관차처럼 정면으로 충돌하는 불행하고 파국적인 사태가 이제 초읽기 단계에 돌입했다고 하겠다.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에는 민심과 정권이 격심하게 맞부딪친 사례가 여럿 존재한다. 비교적 최근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1987년의 6월 시민항쟁과, 2016년 가을에 시작돼 이듬해인 2017년 초봄까지 계속된 촛불시위가 대표적이다. 6월 항쟁과 촛불운동의 결말은 집권세력이 각각의 위기상황에 대응하는 전략과 태도만큼이나 판이했다.

 

1987년 6월, 대통령 전두환은 위수령 발동을 진지하게 고려했다. 그러자 집권세력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는 군부에서 이에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1980년 5월의 광주에 뒤이어 무고한 시민들의 선혈을 또다시 가두에 뿌린다면 정권은 물론이려니와 자칫 체제 자체마저 뒤엎어질 수 있다는 심각한 위기의식이 범여권 내에서 작동한 연유에서였다.

 

집권당인 민주정의당 일각에서조차 군부의 이와 같은 온건론에 동조하자 전두환과 그의 후계자로 지목된 노태우 민정당 대선후보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 수용을 골자로 한 이른바 ‘6ㆍ29 선언’이라는 희대의 정치적 승부수를 띄워 불리한 국면을 일거에 극적으로 반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박근혜 정권은 전두환 정권과는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치달았다. “밀리면 끝장”이란 단순하고 일차원적 사고에만 매몰돼 민심과의 대결을 끝까지 고집했다. 국회 본회의 표결에서 압도적 다수표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ㆍ통과된 후에조차 박근혜와 그 주변 인사들은 탄핵 인용의 마지막 열쇠를 쥔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의 상당수가 박근혜 정권 아래서 임명된 인물들이라며 무익하고 무의미한 희망회로를 여전히 열심히 돌렸다.

 

당시 박근혜 곁에서 강경론을 주장하던 인사들 가운데 적잖은 사람들이 나중에 윤석열 정권으로 태연하게 갈아탄 일은 한국 현대사의 민망하고 부끄러운 오점으로 두고두고 남을 성싶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최서원, 즉 최순실 씨와 경제공동체로 묶어서 감옥에 보낸 당사자가 다름 아닌 박영수 특검의 윤석열 수사팀장이었던 탓이다.

 

윤석열 정부는 ‘검찰 정권’으로 호명될 정도로 권부 요로마다 검사 출신 인사들이 광범위하게 포진해 있다. 당장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부터가 특수부 검사로 오랫동안 근무하며 잔뼈가 굵었다. 이들은 어느 분야에 관해서든지 수사만 한번 들어갔다 하면 해당 영역의 일급 전문가로 도약할 수 있다는 과도한 자신감을 서슴없이 피력해온 터다.

 

이를테면 우리나라 현직 검사들은 암호화폐 사건을 수사하면 비트코인 창시자를 자처하는 나카모토 사토시가 즉시 되고, 연예기획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하면 하이브의 방시혁 의장이나 어도어의 민희진 사장이 단박에 될 수 있다는 투다. 그렇다면 간통죄가 살아 있었을 적에 남녀 사이의 불륜 사건 수사를 담당한 검사는 어떤 이성이건 단숨에 유혹할 수 있는 희대의 바람둥이가 될 수가 있다는 해괴한 논리도 이론적으로는 성립이 가능할 법하다.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현재는 정치인으로 대거 변신한 왕년의 특수부 검사들이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하면서 친박세력을 몰락으로 이끈 무모하고 자해적인 강경론까지 덤으로 학습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왜냐? 작금의 난국에 대처하는 용산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의 자세와 방식이 촛불을 들고서 길거리에 쏟아져 나온 도도한 민심에 맞서다 자멸하고 말았던 박근혜 정권의 옛 모습을 자꾸만 소환ㆍ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은 김태흠 의원(현 충남지사)를 위시한 강성 친박들이 김용태 혁신위원회를 좌초시키면서 당정일체 구도가 가일층 강화되었다. 과감하고 전면적인 혁신과 변화를 도모할 최후의 기회를 스스로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김용태 혁신위가 축출된 자리에 들어선 이정현 당대표 체제는 여당 당수가 단식농성을 불사하는 어이없는 블랙코미디를 연출하며 박근혜 정권의 붕괴에 톡톡히 일조했다. 이정현과 김태흠이 청와대 측과의 교감 없이 순전히 개인적 판단만으로 박근혜 사수에 맹목적으로 앞장섰다고 한다면 그야말로 삶은 소머리가 하늘을 우러러보며 웃을 노릇이리라.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은 1987년 6월의 전두환 정권과 민정당의 길을 가고 있을까? 아니면, 운명의 해였던 2016년에 박근혜의 청와대와 친박들에게 장악된 새누리당이 걸어갔던 전철을 답습하고 있을까?

 

필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국민의힘의 황우여 비대위원장과 추경호 신임 원내대표가 이미 명징하게 내놨다. 황우여는 여당이 보수결집을 등한시해 총선에서 졌다는, 객관적 현실과는 한참 동떨어진 인식을 드러냈다. 추경호는 108명의 국민의힘 국회의원 당선인들이 단일대오로 똘똘 뭉치면 두려울 게 없다고 억지스럽게 강변했다. 집권여당의 명목상의 1인자와 2인자가 윤석열 대통령의 “지금 이대로!” 기조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영합하는 형국이다.

 

박근혜 정권도 보수결집에는 성공했더랬다. 전광훈 목사로 상징되는 아스팔트 보수와, 강용석 전 의원과 이봉규 씨가 쌍끌이해온 극우 유튜브 방송이 바로 그 부산물이다. 친박들은 견결한 단일대오를 지켜냈다. 그들은 박근혜에서 윤석열로 일사불란하게 환승했다. 보수결집에 성공하고, 단일대오를 이뤄내는 대하 드라마의 희비극적 종착지는 한국사회의 주류 보수진영이 불가사의한 집단자살로 악명 높은 나그네쥐 무리, 곧 레밍쥐떼가 되는 것이었다.

 

허나 용산 대통령실도, 국민의힘도 너무나 평온하다. 인간이 극한의 궁지에 내몰려 자포자기 상태에 이르면 되레 마음이 편안해진다는데, 그러한 체념과 달관의 경지에 남한의 보수들이 드디어 당도한 것일까? 현실 세계에서 겪은 쓰라린 패배와 좌절의 고통으로부터 가장 신속하게 벗어나는 방법으로는 중국의 대문호 노신이 미련퉁이 아Q의 입을 빌려 말한 몽롱하고 무책임한 정신승리가 일단은 최고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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