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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현진은 있는데 나경원은 없는 것은 - 정치공학적으로 차기 여당 당대표는 배현진

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 기사등록 2024-05-03 21:2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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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현진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 유권자들에게 우편으로 발송한 선거 공보물에서 한동훈 비대위원장과 함께 찍은 사진으로 거의 페이지 하나를 가득 채웠을 정도로 윤석열 대통령과의 거리 두기에 나섰다. 이미지는 필자가 직접 휴대전화 사진기로 촬영한 배현진의 8쪽짜리 선거 공보물 마지막 쪽 모습국민의힘 내부 사정에 비교적 정통한 어느 지인으로부터 필자의 귀가 번쩍 뜨일 만한 흥미로운 소식을 최근에 전해 들었다. 배현진 의원이 조만간 개최될 예정인 여당 전당대회에서 당대표 경선에 출마할 의향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지인은 배 의원이 집권당 당수에 선출될 가능성에 대해선 매우 회의적이었다. 내 의견은 달랐다. 필자는 약간의 비유를 뒤섞어 지인의 전망에 완곡하게 반론을 제기했다.

 

“안산의 이름 없는 평범한 가겟집 딸이 MBC 메인 뉴스 앵커로 입신양명할 확률이 더 높겠습니까? 아니면, 명실상부한 현역 재선 의원이 당대표에 등극할 공산이 더 크겠습니까? 세상일은 언제나 알 수 없는 노릇이고, 더구나 정치는 늘 살아 움직이는 생물 아니겠습니까?”

 

배현진 의원은 제22대 총선에서 경쟁자인 송기호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여유 있게 승리함으로써 재선 의원으로 발돋움했다.

 

우리나라 보수 정당은 양남 지방, 즉 영남 지역과 서울 강남권에서 유달리 강세를 보여왔다. 그런데 영남과는 달리 강남에서는 보통은 재선이 한계치이기 십상이었다. 두 번까지는 몰라도 웬만해서는 세 차례 이상은 당에서 공천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로 말미암아 재선인 서초 을 박성중 의원과 초선인 강남 갑 태영호 의원은 아무런 연고가 없는 부천과 서울로 울며 겨자 먹기로 지역구를 각각 옮겨야 했다. 타의에 의해 험지로 내몰린 박 의원과 태 의원 모두 투표일인 올해 4월 10일에 일찌감치 시원하게 미역국을 마셨음은 물론이다.

 

과감한 물갈이 대상이 돼버린 이 두 명의 불운한 남성 정치인과 확연히 다르게 유명 여성 정치인인 배현진 의원은 보수의 아성인 서울 송파구 을 선거구, 즉 잠실에서 보궐선거까지 포함해 3회 연속으로 소속 정당의 공천을 받는 데 성공했다. 특이하고 이색적인 구석이 있다면 배현진을 공천해준 당의 명칭과 당대표 얼굴이 매번 달랐다는 점이다.

 

첫 번째 공천장은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주었다. 두 번째 공천장은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가 수여했다. 세 번째 공천장에는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실제로는 당연히 윤석열 대통령-이 당대표 도장을 찍어줬다. 배현진에 관한 여론의 호불호가 어떻든 갈리든 간에 방송인에서 정치인으로 업종을 전환한 그가 그간 당내에서 얼마나 기민하고 영리하게 처신해왔는지를 생생히 웅변하는 대목이라 하겠다.

 

필자는 아쉽게도 배현진 의원과 허심탄회하게 속내를 나눌 기회가 아직은 없었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송두율 교수가 예전에 북한 국가체제의 구조와 내력을 고찰하며 동원한 내재적 접근법을 이용해 만약 배현진 의원이 국민의힘 당대표에 출사표를 던질 경우 어떠한 논리와 명분을 내세워 당권을 노릴지 예측ㆍ분석해보련다. 배현진 의원께서는 생면부지의 인간이 허락도 받지 않고 배 의원의 속마음을 함부로 예단ㆍ해부한 일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양해해주시길 바란다.

 

배현진은 자신이 집권여당의 사령탑으로 뽑혀야만 할 이유와 근거로 총 다섯 가지를 제시할 수가 있다.

 

첫째는, 서민 코드이다. 국민의힘은 영락없는 부자 정당이다. 단적으로, 윤석열 대통령부터가 부잣집 아들이고, 영부인 김건희 여사의 친정은 남부럽지 않을 재력가 집안이다. 한동훈 비대위원장 역시 본인과 부인 모두 내로라하는 자산가이다. 여당을 감싸고 있는 이러한 ‘돈기운’은 국민의힘 개별 구성원들에게는 행운 가득한 축복이었으나 당 전체적으로는 치명적인 저주였다. 흙수저 출신인 배현진은 이러한 지긋지긋한 저주를 풀어줄 수 있다. 또는 풀어줄 수 있다고 주장할 수가 있다.

 

둘째는, 경기도에 연고와 기반이 있다는 점이다. 그는 태어나기만 서울에서 태어났을 따름이지 실질적으로는 경기도가 고향이다. 경기도에서 초등학교와 고등학교와 고등학교를 차례로 다녔고, 처음 입학했던 대학의 캠퍼스 소재지도 경기도 관내에 위치해 있었다. 국민의힘이 세 번 계속 총선에서 죽을 쑨 원인은 등록된 유권자 숫자도, 국회의원 지역구 개수도 압도적으로 전국 최다인 경기도에서 맥을 못 춘 탓이 컸다. 배현진은 “경기도에서 표가 나오는 여당 당대표”를 자임하며 자기만의 경쟁력과 변별력을 호소할 수가 있다.

 

셋째는, 그가 여성이라는 사실이다. 한때 여성 유권자는 보수 정당의 든든하고 믿음직한 우군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물학적 후계자 박근혜를 대를 이어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원동력은 중장년층 여성들의 압도적 지지였다. 그러나 급속한 사회 변동과 몇 번의 중차대한 정치적 격변 사태를 거치며 현재는 여성이 보수 계열 정당의 가장 강력하고 집요한 비토층으로 자리 잡고 있다. 배현진은 민주당을 위한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고 만 여성 유권자의 표심을 국민의힘 쪽으로 일정 정도 돌려놓을지도 모른다.

 

넷째는,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불붙인 거센 세대교체 흐름에 배현진이 슬며시 숟가락을 얹을 수 있다는 점이다. 나경원 전 의원 겸 국회의원 당선인은 다음번 여당 대표로 제일 유력하게 거명되고 있다. 나경원의 두드러진 취약점은 세대교체와는 거리가 한참이나 동떨어진 전형적인 구시대 인물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배현진은 나경원보다 무려 20살이 젊다. 나경원은 1963년 토끼띠이고, 배현진은 1983년 돼지띠이다. 나경원이 갖지 못한 역동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세대교체의 상징성과 진취성을 배현진은 갖추고 있다.

 

다섯째는, 배현진이 작금의 여권에서 차기 대선주자로 거의 유일하게 살아 있는 카드일 한동훈과 상호보완 관계를 형성할 수가 있다는 부분이다. 이는 대권은 한동훈, 당권은 배현진 구도로 무리 없이 역할 분담을 이뤄낼 수 있다는 뜻이다. 당사자인 배현진 의원 또한 이를 진즉부터 충분하게 의식하고 있음인지 친한동훈 행보를 근래 들어 더욱더 가속화하는 중이다.

 

이상은 내가 정치공학적 관점에서 열거해본 ‘배현진 대망론’의 5대 요소이나. 허나 눈 밝은 독자라면 이미 파악했을 터이듯이 여기에는 너무도 중요한 본질이 누락ㆍ배제돼 있다. 배현진이 진정성 있게 대변하고 실천해온 올바른 시대정신이 과연 무엇이냐는 진지하고 근본적인 물음이 그것이다.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은 남한 사회에서 보수는 체계적 이념 역할이 아니라 폭주하는 욕망의 분출구 구실을 해왔을 따름이라고 날카롭게 통찰한 바 있다. 김규항의 통렬한 명제를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나는 배현진이 꾸준하게 담지하고 체현해온 건전하고 보편타당한 철학과 가치관이 도대체 뭔지를 여전히 모르겠다. 배현진 의원에게서 구태여 모종의 이데올로기적인 징후와 흔적을 힘겹게 발견해낸다면 그건 적나라한 기회주의(Opportunism)와 속물적 출세주의(Careerism) 두 개뿐인 까닭에서이다.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은 누구나 정치를 할 수는 있지만, 아무나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며 대한민국 제도정치권의 총체적 하향 평준화 현상을 절망적으로 개탄했다.

 

그렇다. 누구나 당대표를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아무나 유능하고 존경받는 성공한 당대표가 될 수는 없다. 누구나 거대 정당의 우두머리를 꿈꾸고 탐낼 수 있는 이 가슴이 웅장해지는 시대를 오늘날의 한국인들은 쌍수 들고 환영해야 할까, 혹은 도시락 싸가며 말려야만 할까? 내 짧은 안목과 부족한 식견으론 좀처럼 종잡기 어렵다. 우리 동네 국회의원 배현진 의원의 분발과 각성을 그저 멀리서 간절히 빌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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