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선거전은 늘 뜨겁기 마련이다. 무엇보다도 권력은 나눌 수가 없으며, 더욱이 권력을 행사하는 자리의 숫자는 지극히 제한된 탓이다.
선출된 권력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통제할 수 있느냐는 진짜 민주주의와 가짜 민주주의를 구별시켜주는 가장 확실하면서도 뚜렷한 잣대이자 지표이다. 인민을 향한 애정을 골백번 외친들 북한 체제가 진정한 민주주의 시스템으로 분류ㆍ평가될 수 없는 이유는 최고 권력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휘두르는 권력의 근본적 성격이 선출될 권력이 아닌 세습된 권력인 데 있다.
그러한 견지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매우 특수한 범주인 혼종(Hybrid)적 권력에 속한다. 그는 선출된 권력의 꽃일 대통령 직책에 있으면서도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대명사인 검찰조직에 철저히 의지해 국정을 운영해왔다.
선출된 권력에 기반한 인물들은 권력의 공간적 한계와 시간적 유한성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반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체질화된 인사들은 그와 같은 한계와 유한성에 상대적으로 둔감한 법이다. 이로 말미암아 “내 것도 내 것이고, 남의 것도 내 것”이라고 믿는 도덕적 해이에 쉽게 빠지는 경향을 드러낸다.
더불어민주당이 내전에 가까운 심각한 공천 파동으로 한껏 몸살을 앓는 와중에 경기도 남부의 조용한 베드타운 정도로 서울에서는 인식되어온 용인시 처인구에서 느닷없는 표절 공방이 전개되고 있다. 용인 갑 선거구에 출사표를 던진 양향자 개혁신당 원내대표의 정책과 공약을 같은 지역구에서 갑작스럽게 출마를 선언한 이원모 용산 대통령실 전 인사비서관이 무단으로 베껴갔다면서 양측 사이에 시비가 불거진 탓이다.
지역구에서 선거를 치르다 보면 경쟁하는 후보들이 내건 공약들이 나중에는 엇비슷해지곤 한다. 지역의 현안 해결과 발전 방향에 관하여 출마자들 간에 큰 틀의 첨예한 의견 대립이 여간해서는 벌어지지 않는 까닭에서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대목은 하나 있다. 어떤 정책과 공약이건 원저자가 제일 솜씨 있고 야무지게 현실에서 구현ㆍ실천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어떤 명곡이든 처음 불렀던 가수의 노래가 단연 감동적이고 호소력 있게 들리는 일과 마찬가지 이치라 하겠다.
경기도 용인시는 21세기 대한민국 경제의 사활과 성패를 좌우할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조성될 곳이다. 따라서 선거에 나온 출마자들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반도체 전문가를 자임하는 형국이다.
검사 출신이라고 하여 반도체 전문가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그런데 잠시 역으로 생각해보자.
이를테면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에서 대부분의 사회생활을 보냈던 양향자가 형사소송법 서적 한두 권을 읽고 나서 본인이 수사 전문가라고 주장한다면 이원모처럼 검찰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 눈에 거칠게 표현하자면 얼마나 같잖게 보이겠는가? 양향자가 머리가 어떻게 된 모양이라고 뒤에서 쑥덕거릴지도 모른다.
지금 국민들 시선에는 검사복을 벗고서 총선에 도전장을 내민 내로라하는 검사 출신 인사들의 모습이 비유하자면 형법 책 한번 대충 읽고 수사 전문가를 자처하는 일반인처럼 위태롭고 아슬아슬하게 여겨지고 있다.
일반인이 수사 전문가를 자처한다면 검사 사칭죄로 엄벌에 처해지겠지만, 검찰과 경찰 등의 수사기관에 오랫동안 몸담아왔으면서도 다른 직종에 관련해 자기가 엄청나게 해박하다고 으스대는 전직 검사나 경찰관을 제재할 제도적 장치는 아직은 없으니 이걸 어찌하겠는가? 보통의 민중 입장에서는 그냥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만약 내세란 게 존재한다면 필자는 다음 생에서는 반드시 대한민국 검사로 태어나고 싶다. 귀에 붙이면 귀걸이, 코에 붙이면 코걸이 식으로 어느 분야에 대해서이건 전문가를 자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의 입시 비리 사건 수사를 지휘했다는 연유만으로 윤석열 대통령을 최고의 입시 전문가라고 추켜세웠겠는가?
그러니 세간에서는 검찰이 대한축구협회(KFA)에 대한 압수수색을 전격적으로 실시한다면 담당 검사가 우리나라 축구 국가대표팀 차기 감독직에 발탁될지도 모른다는 차마 대놓고 웃지 못할 자조적 농담이 퍼지는 것이다.
이원모가 양향자의 공약과 정책을 실제로 표절해갔는지는 영구미제로 남을 전망이다. 표절과 참고는 그야말로 한 끗 차이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한 가지만큼은 꼭 당부하고 싶다. 길 가다가 사법시험 합격증 우연히 주운 덕분에 판검사가 된 것은 아니듯이, 반도체 전문가이든 축구 전문가이든 시쳇말로 고스톱 쳐서 딴 전문성은 아니라는 점이다.
공자는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말라고 언명했다. 나는 공자님의 이 너무나 지당한 말씀을 약간 각색해 이원모 전 비서관을 비롯해 현재 경향 각지에서 22대 국회 입성을 목표로 신발끈을 단단히 조이고 있을 각종 수사 전문가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나의 전문성이 존중받길 바라면 남의 전문성도 존중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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