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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이 윤석열을 이기려면 - ‘관계자들’을 버려야만 민심을 얻는다

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 기사등록 2023-03-01 23: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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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축구 경기장에서 생긴 일


윤석열과 이재명의 싸움은 법정이 아닌 민심의 광장에서 승부가 결정될 것임을 먼저 아는 쪽이 무조건 승리한다. 사진은 애써 여유 있는 표정을 지으며 국회 회의장에 앉아 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모습 (김한주 기자)

축구 얘기로 서두를 떼겠다. 손흥민 선수가 뛰고 있는 영국 프리미어 리그나, 김민재 선수가 상대편 공격수들에게 통곡의 벽으로 군림하고 있는 이탈리아 세리에 A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프로축구 K 리그가 정착된 다음 축구팬들의 뇌리에서 거의 잊히다시피 한 우리나라 대학축구 이야기이다.

 

경기대학교와 연세대학교의 춘계 대학축구연맹전 경기가 열렸다. 연세대가 선취골을 득점한 이후 희한한 진풍경이 펼쳐졌다. 연대 선수들이 축구장 중앙선을 넘어올 생각은 아예 하지 않은 채 자기 진영에서 마치 패스 연습하듯이 느긋하게 공을 주고받은 것이다. 이 와중에 한 선수는 심지어 여유롭게 개인드리블 훈련마저 했단다.

 

경기대 선수들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선제득점을 허용했음에도 적극적으로 볼을 뺏으려고 하기는커녕 연세대 선수들이 축구공을 돌리는 모습을 우두커니 지켜만 보고 있었다. 스포츠맨십을 망각해도 단단히 망각한 볼썽사나운 광경이 무려 20분 넘게 이어지자 참다못한 경기 감독관이 개입해 두 팀 감독들에게 정상적 플레이로 시합에 임할 것을 독촉했고, 그제야 양쪽 선수들의 추태가 멈췄다는 소식이다.

 

특정 선수가 구단의 운영방침이나 감독의 작전지시 사항에 불만을 품고서 태업을 일삼는 경우는 적잖이 있었다. 승부조작을 목적으로 일부러 져주는 불미스런 사례도 왕왕 존재했다. 허나 연세대와 경기대의 축구 시합에는 사전 담합도, 태업성 농후한 행위도 없었다. 괜히 공격을 시도했다가 역습에 휘말려 실점할 바에야 안전하게 수비에 치중하는 게 낫다는 계산을 양팀 감독이 공통적으로 머릿속에서 부지런히 했던 일이 사단의 근본적 원인이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말도 안 되는 엽기적 상황이 어떻게 공식 경기에서 태연히 벌어질 수 있었을까? 대학축구가 축구팬들의 관심권에서 완전히 멀어진 그들만의 리그로 위상이 철저히 추락한 데 그 이유가 있다. 학교 관계자와 선수들의 학부모 외에는 경기를 관전하는 구경꾼이 없으니 감독과 선수가 팬들의 시선을 염두에 둘 필요가 없다. 팬들이 기대하는 화끈한 공격축구 대신에 지루하고 재미없는 시합일지언정 그냥 지지만 않으면 장땡인 생계형 축구가 돼버린 셈이다.

 

입장료를 기꺼이 지불하고서 경기장을 찾아온 팬들과 중계방송 화면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시청자들이 주인 역할을 하는 프로의 세계에서는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보여주는 수준 높고 감동적인 플레이가 중요하다. 반면, 학교 관계자와 학부형들만이 관중석에 썰렁하게 드문드문 앉아 있는 아마추어 무대에서는 경기 기록지에 남는 추상적인 숫자상의 결과만이 중시된다. 경기대와 연세대의 축구시합은 기록상으로는 아무런 하자가 없었다. 학교 관계자들도, 학부형들도 경기의 질적인 내용에는 별다른 문제의식을 품지 않았다.

 

경기대와 연세대의 이번 춘계연맹전 축구시합은 과정과 방법이야 어떻든 간에 결과만 좋으면 능사로 여기는 이들만이 운동장의 관중석을 차지할 때 어떠한 참사가 빚어지는지를 증명한 구체적 실례라 하겠다.

 

이재명, 리더의 길이냐 보스의 길이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장에서의 표결에서 가까스로 부결되었다. 압도적 부결을 장담하던 제1야당 지도부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찬성표가 반대표를 오히려 뛰어넘는 턱걸이 부결이었다. 이재명은 법원에 출석해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지 않는 법리적 실리를 챙기는 대가로 정치인에게는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대중적 이미지가 크게 구겨지는 정치적 중상을 입었다.

 

이재명 대표의 열성팬을 의미하는 이른바 개딸, 즉 개혁의 딸들은 체포동의안에 반대표를 던지지 않은 당내의 반란세력을 색출한다며 부산을 떨고 있다. 이재명은 반란자 처단에 열중인 개딸들의 움직임이 당의 단합과 결속을 저해한다며 다급하게 만류에 나섰다.

 

필자는 정치인의 운명은 정치에 의해 결정되어야 옳다는 소신을 시종일관 견지해왔다. 그러므로 윤석열 일행과 이재명 그룹 사이의 법률적 다툼에는 솔직히 별 관심도, 흥미도 돋지를 않는다.

 

법률 기술자들의 믿음이 무색하게 이를테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전두환이 발동한 계엄령 하의 군사재판에서 사형판결을 선고받고도 필생의 목표였던 집권에 성공했다. 국민의힘의 전신인 새누리당에서 당대표를 역임한 김무성 전 의원과 최근 더불어민주당에 복당한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정치인으로 오랫동안 생활하며 단 한 차례도 위태롭고 치명적인 사법리스크를 겪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당선의 꿈을 종내는 이루지 못했다.

 

현대 대의민주주의 국가체제에서 재판으로 말하는 사람은 판사와 검사여야만 한다. 더욱이 정치인이 본인의 중대한 입장을 긴요하게 피력해야 할 곳은 피고석과 증인석이 아닌 연단이어야 한다. 원내 과반수 의석을 점유해온 제1야당의 당수를 국회가 아닌 법정에서 말하도록 만들려는 윤석열 대통령의 통치방식은 정치의 역할 범위와 존립 공간을 극도로 위축시키고 있다. 무력에 기대는 아날로그 시대의 독재가 총칼로 밀어붙이는 경성 독재였다면, 경제력이 주도하는 디지털 시대의 독재는 법전으로 다그치는 연성 독재다. 내가 야당이 주장하는 ‘검찰독재’ 논리에 50퍼센트 정도는 동의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윤석열의 부덕함이 이재명의 불민함을 합리화해주지는 않는다. 놀부의 못된 심보가 가난한 살림살이에 아랑곳하지 않고서 자식들만 주렁주렁 내지른 흥부의 무책임함을 정당화하지 못하는 것과 똑같은 이치이다.

 

필자는 이재명이 멀게는 두 번째 대선 출마 선언 후에, 가까이는 민주당 당대표 취임 이래 걸어온 행보가 경기대와 연세대의 축구시합과 본질적으로 유사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왜냐? 이재명 대표는 팬들의 부쩍 고급스러워진 눈높이는 의식하지 않고 관계자들의 구미에만 맞는 정치를 해왔기 때문이다.

 

필자의 지적에 이재명만큼 팬덤만 유의하며 정치를 해온 인물이 어디에 있냐는 반론이 즉각 제기될 성싶다. 개딸들이 팬이 아니면 또 누가 팬이냐는 반박일 테다. 미안한 말씀이겠지만 개딸들은 팬이 아니다. 시야를 확장해 문파도 팬이 아니고, 박사모도 팬이 아니고, 노사모도 팬이 아니고, 대깨 시리즈의 최신 버전일 대깨윤도 당연히 팬이 아니다.

 

그럼 저들의 정체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졸전의 극치를 달린 경기대학교와 연세대학교의 축구 경기를 다시금 환기시키자면 해당 학교의 체육 업무를 담당하는 대학교 교직원이나 선수들의 학부형 같은 ‘관계자들’일 따름이다.

 

이토록 단도직입적으로 분류한 근거가 무엇이냐고? 팬은 경기 중의 플레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이, 관계자들은 경기 결과만 우선시한다는 사실이 그 근거이다.

 

관계자들은 응원하는 팀의 선수가 거친 백태클로 상대팀 선수에게 심각한 위해를 가해도 개의치 않는다. 심판 눈에 띄지 않게끔 교묘하게 손으로 골을 집어넣는 비신사적 핸들링 반칙을 범해도 이를 ‘신의 손’의 소산으로 찬미ㆍ두둔하며 되레 환호성을 질러댄다. 우리 편 플레이어는 무슨 짓을 저질러도 전부 이해하고 지지하고 용서하고 납득하는 원칙 제로, 공정성 빵점의 태도야말로 다름 아닌 관계자들의 전형적 특징이다.

 

현실 정치에서의 팬은 진영논리에 함몰되지 않고 시시비비를 엄정히 따지는 중도층 유권자를 뜻한다. 그들은 플레이를 먼저 보지, 선수의 소속팀부터 다짜고짜 캐묻지는 않는다.

 

현재는 윤석열도, 이재명도 관계자만 오매불망 바라보며 공을 차는 아마추어 축구선수에 비견될 수 있다. 관계자만 바라보며 공을 차니 팬들은 그들을 외면하고, 팬들이 차갑게 외면하니 더더욱 관계자들에게만 의지하고 매달리는 악순환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나는 윤석열과 이재명의 싸움의 궁극적 승자는 집토끼가 없으면 잠시도 생존이 불가능한 악순환의 고리를 과감하게 선도적으로 단절하는 측에서 등장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윤석열은 그를 검찰 시절부터 추종해온 검사들을 국민의힘 공천만 받으면 낙하산을 꽂아도 당선되는 지역구들에 전략공천을 구실로 대거 낙하산 공천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냄으로써 관계자들만 기쁘게 하는 편협하고 폐쇄적인 정치를 계속할 것임을 암담하게 예고하고 있다. 이재명이 답습해서는 곤란할 윤석열의 고질병인 축소 지향의, 뺄셈 일변도의 정치라고 하겠다.

 

이왕 말 나온 김에 이재명에게 한 가지 가르침을 더 추가해 전수해주는 걸로 본 칼럼의 결론을 갈음하련다.

 

보스는 나를 배신한 놈을 찾아 응징하는 데 힘을 쓰는 인간이다. 리더는 나를 끝까지 믿고 따를 자들을 찾는 데 힘쓰는 사람이다. 윤석열은 보스의 길을 가기로 확고히 결심한 터다. 이재명 대표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윤석열 대통령의 대항마, 곧 안티테제를 자임해왔다. 이재명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만 할지는 이미 답이 빤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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