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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진원②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은 내각제 개헌의 전주곡” - 정의당이 국민에게 맞춰야지, 국민이 정의당에 맞춰야 되겠는가

공희준 편집위원

  • 기사등록 2019-03-25 18: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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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진원 교수는 한때 견결한 사회주의자였다. 필자와 비교할 때 훨씬 더 왼쪽에 위치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현재 그의 이념적 노선은 필자의 오른편에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보수주의자가 되었기에 필자의 오른쪽에 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채진원 교수는 현재는 불요불굴의 공화주의자로 변신해 있다. 공화주의가 한국의 평범한 유권자 대중에게는 너무나 생소하고 난해한 개념으로 다가오는 지금, 채진원 교수의 말과 글은 그에게 많은 논적과 반대자를 안겨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필자가 만난 채진원 교수는 공화주의로부터 단 한 발도 뒤로 물러날 기세가 아니었다. 그가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관련해 유지해온 소수파 입장은 필자에게는 그와 같은 비타협적 공화주의의 산물로 짐작되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주장은 내각제 하자는 소리


채진원 : 대통령 중심제는 하나의 집권당(Ruling Party)과 하나의 반대당(Opposition Party)의 양당제로 진행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중도 수렴의 양당제가 대통령제와 부합하는 정치체제라는 분석이 오래전부터 제기되어온 배경입니다. 반대로 다당제는 대통령제와는 어울리지 않는 정치체제입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하자는 주장은 최종적으로 내각제를 하자는 이야기와 매한가지입니다. 다당제에 기초한 의원내각제 정치체제로 가겠다는 예고편과도 같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우리나라와 같은 분단국가에서 내각제는 별로 효과적 정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동족상잔의 비극적 전쟁을 경험했습니다. 독재정권에 맞서싸우는 치열한 민주화투쟁도 경험했습니다. 전쟁의 참상을 경험했던 세대에게, 대통령에서 체육관을 뽑는 야만적 독재체제를 경험했던 세대에게 어떻게 내각제를 받아들이자고 설득할 수가 있겠습니까? 더욱이 제도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에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대통령제에 역행하기 마련입니다.


다시금 강조하자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체제를 여러 개의 군소정당들로 파편화시킵니다. 우리 사회는 가면 갈수록 신속한 의사결정을 이루는 데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정당은 보통의 단순한 이익단체가 아닙니다. 사회가 복잡다단해지면서 이익단체들의 분화현상이 촉진돼왔습니다. 정당은 이익단체들의 엇갈리는 이해관계를 통합하고 조정할 의무가 있는 공적 조직입니다. 정당까지 이익단체처럼 돼버리면 누적된 사회적 갈등을 누가 해소하겠습니까?


작은 정당은 사회 통합에는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신에 정당 자체의 생존권적 요구에만 집착하기가 쉽습니다. 안철수 현상에는 극단적 양당제에서 소외되어온 다수의 중도 유권자층과 무당파층을 포괄해달라는 요구가 반영돼 있었습니다. 중도 유권자층과 무당파층을 안으려면 기존 양대 정당이 중도를 향해야 합니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으로 대표되는 기성 유력 정당들은 자기들 스스로가 극단화된 탓으로 중도 성향 유권자들이 배제되어온 사태를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내세워 무마하려 시도하고 있습니다.


정의당, 이래서 모순적이다


진원 교수는 전쟁과 민주화를 경험한 세대에게 내각제로의 전환을 설득할 수는 없다며 그가 “내각제로 가는 길”로 묘사한 연동제 비례대표제에 짙은 경계감과 회의심을 드러냈다.거대 양당 이외의 정당들에도 문제는 있습니다. 정의당의 사례를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정의당은 진보정당을 자임하는 한편에서 정당체계는 다당제를 주장해왔습니다. 이건 굉장한 모순입니다. 왜냐면 정의당은 보수와 진보로 나뉘는 진영논리에 편승하는 상태에서 다당제를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정치적 다양성을 추구하는 지름길은 진영논리로부터 탈피하는 데에 있습니다. 정의당처럼 오른손으로는 진영논리를 주장하면서 왼손으로는 다당체제를 요구하는 건 자신들은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을 테니 국민들이 정의당에 맞춰달라는 의미입니다. 옷인 정의당이 몸인 국민에게 맞춰야지, 어째서 몸인 국민이 옷인 정의당에 맞춰줘야만 합니까?


우리나라 국민들의 이념 분포를 자세히 관찰하면 가운데인 중도층이 제일 많습니다. 양대 정당이 중앙으로 진출해야 이치에 닿습니다. 양대 정당이 제일 많은 유권자층이 자리한 중도로 와서 경쟁을 해야 사회통합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민심을 올바르게 대변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거대 양당이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국민들도 거기로 따라오라고 강요하는 식입니다. 이건 그야말로 파벌적 논리에, 혹은 파당적 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대의민주주의의 취지에도 어긋나는 행동이고요. 아니, 어쩌면 대의민주주의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행위마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요소와 제반 측면들을 고려했을 때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대통령제와 친화적이지 않음이 확인됩니다. 분단국가의 현실과도 조응하지 않음이 입증됩니다. 


현행 선거제도의 보완과 수정만으로 충분해


물론 대안은 있습니다. 현행 선거제도를 수정하고 보완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연동형이나 석패율 제도를 도입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숫자를 조금 늘릴 수 있습니다. 저는 비례대표의 정원을 현재의 54석에서 75석으로 증가시키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유한국당은 비례대표제를 아예 없애자고 목청을 높이는데, 저는 그러한 견해에는 찬성할 수가 없습니다. 자유한국당 측 주장은 미국에는 혹시 이론상 적용 가능할지 몰라도, 우리나라에는 경험적으로 전연 맞지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비례대표 제도를 오랫동안 실시해왔습니다. 이런 경로의존성을 깡그리 무시하고서 비례대표를 통째로 들어낼 수는 없습니다.


일각에서는 우선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전체 비례대표의 50프로 수준에서 실시하자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도 찬성할 수 없습니다. 다음 단계에서는 연동형 비례대표를 100프로 도입하자고 요구할 게 분명한 탓입니다. 그 다음에는 더 나아가 내각제로 개헌하자는 의견이 나오겠지요.


한국에서의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체제를 파편화시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통령제를 무너뜨릴 위험성을 배제하기 힘듭니다. 대한민국은 분단된 나라입니다. 미국-중국-러시아-일본이라는 4대 강국에게 에워싸여 있습니다. 국가의 발전전략으로 내각제가 타당하지 않은 중요한 이유입니다.


대통령제가 좋은지, 내각제가 우수한지를 양적 기준으로 판가름하기는 곤란한 일입니다. 관건은 정당이 잘 운영되면 대통령제건 내각제건 원활하게 돌아가기 마련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대통령제가 민중의 입장에서는, 시민들의 처지에서는 보다 우월한 체제라고 믿습니다. 여론조사를 실시해보면 우리나라 국민들이 제일 싫어하는 유형의 정치가 어떤 것인지 금세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국민들은 파당이 지배하는 정치를 싫어합니다. 특정 정파가 공천 과정을 좌지우지하는 정치도 싫어합니다. 정당이, 그리고 정치가 이념에 함몰되고 지역주의에 휩쓸리는 것을 우리 국민들은 무척이나 꺼린다는 증거입니다.


선거제 개혁은 국민들이 비판하는 정치권의 고질적 병폐와 해묵은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일에 무게중심을 두고서 추진되어야 옳습니다. 그러려면 국민들에 대한 정치의 책임성과 대표성을 제고하는 쪽으로 변화가 모색되어야 합니다. 다양성을 증진하는 숙제는 국민들의 진정한 바람과는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국민들이 정치적 다양성을 요구한다는 정치권 일각의 주장은 따라서 설득력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지속가능한 바람직한 선거제도는 국민들이 갈망하는 바대로 정치의 대표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설계돼야만 합니다. 그러자면 현존하는 병립형 비례대표제의 한계를 부분적으로 보완하는 게 현존 선거법의 합리적 개정 방안일 것입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보다 공천의 민주성이 먼저


정당의 이념적 파벌성과 지역적 파벌성을 해결하려면 가정 먼저 공천의 민주성이 반드시 확보되어야 합니다. 국민참여경선을 여야가 동시에 치르도록 하는 법제화가 필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러한 기초적인 법률적 정비작업은 생략한 채 비례대표 숫자만 무턱대고 늘린다? 공천이 엉망인데, 그 엉망인 공천을 받아서 국회에 진출한 의원들이 과연 정치를 제대로 잘 해나갈 수 있겠습니까?


국민들이 관심이 있는 건 국회의원이 어떻게 뽑히느냐가 아닙니다. 뽑힌 다음 무엇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국민들은 여의도 정치권이 대화와 타협에 입각한 참다운 민생정치를 펼쳐주기를 간절히 염원해왔습니다. 이게 국민들이 원하는 것의 거의 전부입니다. 그런데 정치권은 마치 국민들이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숫자가 많아지기를 희망하는 것처럼 자꾸만 민심을 오도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다양성은 국민들이 진짜로 크게 관심을 기울이는 문제가 아닌데도요.


우리 국민들의 이념곡선을 보면 중도에 가장 많은 유권자들이 위치해 있음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정당들은 국민들의 눈높이에 좀처럼 맞추지를 못해왔습니다. 극단적 이념만을 좇으며 파편화와 분절화만을 거듭해왔습니다. 정당들은 이제 극단적 이념을 좇는 일을 그만두고 중도로 수렴해야만 합니다. 정당들이 자신들의 지엽적 생존권을 추구하는 노력에만 지금처럼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거대 정당들 안에서도 확실하고 꾸준한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내부에서 여러 정파들이 공존하는 네트워크 정당 또는 포괄정당을 지향해야 합니다. 그러한 지향 안에서 정치적 다양성의 요구를 해결해나가야 마땅합니다. 군소정당들이 난립하는 정당체계를 만들어내 정치적 다양성을 대변하겠다는 기획과 발상은 우리나라가 발을 딛고 서 있는 급변하는 시대상황과 걸맞지 않습니다. 분단된 국가의 엄중한 정세와도 불화하고요.


정치개혁 1순위는 공천개혁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참여형 상향식 공천제가 확고히 제도화되어야만 합니다. 이와 동시에 기성 거대 정당들은 당내에서의 다양한 정치적 흐름들을 보장하고 활성화시키는 포괄적 정당(Comprehensive Party)으로 거듭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그러한 형태의 정당을 포용적 국민정당 또는 시민참여형 네트워크 정당이라고 명명하고 싶습니다.


정치권은 제가 방금 말씀드린 바대로 정당의 체질을 강화하고 혁신하는 데 주력해야 합니다. 정당 내부의 낡고 병든 구조에는 손대지도 않은 채로 국회의원 머릿수만 늘리겠다고 계속 고집하면 국민들의 지지와 사랑을 얻기는커녕 정치권에 대한 일반 대중의 불신과 혐오만 더더욱 증폭시키고 말 것입니다.


공희준 : 유익한 말씀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채진원 : 지루한 얘기 재미있게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덧붙이는 글

채진원 교수는 비교정치학 전공으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는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무엇이 우리 정치를 위협하는가(인물과사상사)」, 「노무현의 민주주의(공저 - 인간사랑」, 「정당정치의 변화, 왜 어디로(공저) - 형설출판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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