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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일② “통일은 당위의 문제, 현실은 몸의 문제” - ‘김정은의 대모험’의 종착지는 베트남 모델일 확률이 높다

공희준 편집위원

  • 기사등록 2019-03-04 17:2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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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싱거웠던 정상회담이 남긴 파장과 후폭풍이 예상과는 달리 시나브로 쉽게 잦아들고 있다. 북한 측이 좀 더 충격을 받은 모양새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하여 북한이 급격한 노선전환에 나설 것 같지는 않다. 일희일비는 변함없이 남한만의 몫이다.

조경일 칼럼니스트는 30대 초반의 청년이다. 그럼에도 국내여론과 국제사회의 일희일비를 무척이나 경계하는 표정이었다. 일희일비가 성숙하지 못한 인격의 표지라면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성숙하지 못한 인격의 표지는 청년층이 아닌, 중년과 장년과 노년을 두루 아우르는 기성세대의 여전한 몫인 듯싶다.

조경일 칼럼니스트는 하노이 회담은 끝이 아닌 과정의 일부라면서 실패라고 단정해선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북한의 변화 방향은 베트남 방식이 유력


조경일 : 저는 북한이 베트남의 도이모이(쇄신) 정책을 가장 유용하게 따라할 모델로 상정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중국과 베트남을 기차를 타고서 차례로 통과했습니다. 중국과 베트남은 비슷한 경로를 밟아나가며 경제개혁을 추진해온 나라들입니다. 김정은에게 중국과 베트남 양국이 참고할 만한 모델들인 배경입니다.


북한이 베트남 모델을 지향할지, 아니면 중국 방식을 모방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이 가운데 굳이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저는 북한이 베트남을 따라할 가능성이 크다고 감히 전망하겠습니다. 그러나 베트남을 따라한다고 북한이 대외적으로 공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북한은 ‘우리식 사회주의’를 표방해온 나라입니다. 개혁개방도 ‘우리식 개혁개방’을 천명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개혁개방을 시작할 당시의 중국과 베트남은 현재의 북한과는 정치체제 측면에서 굉장히 달랐습니다. 특히나 중국은 북한에게 선례가 되기에는 뚜렷한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중국은 기본적으로 대국입니다. 규모 한 가지만 놓고 봐도 북한과는 국가적 진로와 노선이 차별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의 개방개혁 과정에 북한이 배울 만한 세부적 정책들과 기술적 요소들은 분명 있겠지만, 여러모로 베트남의 사례가 북한에게는 더 실효성과 현실성 있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목할 사실은 지금의 베트남은 친미국가라는 점입니다. 반면에 중국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G2 국가입니다. 그러므로 중국은 미국과 적대적 공생관계에 놓이기가 쉽습니다. 북한은 다릅니다. 미국과 경쟁관계를 형성하는 부담을 짊어질 필요가 없습니다. 북한이 원하는 건 자기들을 좀 내버려두라는 겁니다(Let It Be). 북한은 자기네를 그냥 내버려두기만 하면 혼자 잘 살아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베트남을 참고는 하되 결과적으로 자신들 고유의 독자적 방법과 방향으로 개혁개방을 모색할 듯합니다.


북한, 정치안정 속의 경제발전 원해


김정은 위원장은 경제발전을 간절히 열망하고 있습니다. 단, 여기에는 한 가지 단서조건이 달려 있습니다. 유훈통치와 세습정치에 기반한 기존의 사회주의 체제의 근간만은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게 그 조건입니다. 정치시스템의 골간은 유지하면서 경제발전을 꾀하는 길이 북한이 생각하는 체제안정의 핵심적 고리입니다. 중국과 베트남은 공산당 1당 독재체제이기는 하지만 특정한 가문이 권력을 대물림하는 정치체제는 아닙니다.


우리는 북미 정상회담 등 북한이 최근에 벌여온 일련의 활발한 대외활동에 깔린 중요한 흐름의 의미를 꿰뚫어봐야만 합니다. 그게 뭐냐? 작년과 올해 열린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두 번의 북미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북한을 바라보는 외부 세계의 시선이 크게 변화했다는 점입니다.


저는 남북한이 체제공존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데에 우리 사회의 대체적 인식의 공감대가 마련되어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우리는 북한이라는 우리와는 매우 이질적인 체제와의 공존을 의심할 수 없는 사실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저는 미국 또한 북한과의 공존을 기성사실로 여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1972년의 7‧4 공동성명, 1991년의 남북기본합의서, 2000년의 6‧15 공동선언, 2007년의 10‧4 정상선언 등 남북한 사이에는 그동안 수차례의 굵직굵직한 합의들이 이뤄져왔습니다. 이러한 합의들은 전부 남북한 간 상호인정, 즉 공존을 전제한 내용들이었습니다. 이 연장선상에서 남북한 상호불가침 조약 체결도 논의되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이) 따로 살든, 같은 살든”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저는 정상적인 2개의 국가가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구조를 전제한 까닭에 문 대통령이 이러한 말씀을 하셨다고 봅니다. 


현재의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들과는 다르게 민족을 절대시하지 않습니다. 당장 여론조사만 살펴봐도 청년들의 통일에 대한 관심과 열기가 점점 더 낮아지고 있음이 확인됩니다. 청년들이 바라는 건 남북한의 평화적 공존입니다. 한반도의 급격한 정세변화가 아닌 현 상태의 유지를 선호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이게 어떤 의미일까요? 통일을 원하기는 하는데 현재의 통일이 자신의 삶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까지 허용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입니다.


통일은 당위의 문제입니다. 현실은 몸의 문제입니다. 저도 마음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휴전선이 무너져서 북녘 땅의 가족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일 뿐입니다.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시나리오입니다.


독일은 갑작스러운 통일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이건 독일의 이야기일 따름입니다. 한마디로 먼 나라 얘기이죠. 베트남이나 예멘 같이 무력으로 상대를 흡수해 성취하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통일 방식은 아예 고려의 대상조차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만에 하나 전쟁이 일어난다면 누가 죽고 다치겠습니까? 개전을 결정한 권력자들이 아닙니다. 힘없는 남한의 국민과 가난한 북한이 인민들만이 영문도 모른 채 희생자가 되어 무더기로 죽어나가기 마련입니다. 


남북한 체제공존은 우리 사회에서 완전히 합의에 도달한 견해는 여전히 아닙니다. 따라서 남북한 체제의 공존 문제가 이제 본격적인 범국민적 논의의 장에 들어와야 합니다. 우리는 북한을 무너뜨리고 쓰러뜨릴 현실적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공존 외에는 정답도, 대안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북한이 남한과는 물론이고 국제사회와도 공존이 불가능하다는 선입관이 아직도 우리 사회 도처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남북이 70년 동안 대치해온 터라 이는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반문하고 싶습니다. 북한 체제를 인정한다고 하여 우리의 삶의 질이 악화될까요? 우리나라의 국제사회에서의 국격이 실추될까요? 그 어느 것도 달라질 것이 없습니다. 다만 달라지는 게 있다면 북한과의 통일을 이루려는 방법론만이 달라집니다. 백낙청 교수, 최장집 교수, 홍석현 이사장 등의 여러 원로급 인사들께서 달라진 한반도 정세에 조응할 달라진 통일론을 이미 내놓은 바 있습니다.


조경일 칼럼니스트(가운데)는 팟캐스트를 비롯한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풍부한 신격과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주었다. 사진 속 왼쪽 인물은 최광웅 데이터정치경제연구원 원장, 오른쪽 인물은 필자이다.

자유한국당은 왜 황당한 소리만 하는가


제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앞두고 자유한국당은 한국을 배제한 종선선언을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의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저는 자유한국당의 주장을 듣고 대단히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떠한 형식이건 종전선언은 환영할 일입니다. 남한이 선언에 참여했느냐, 참여하지 않았느냐는 본질이 아닙니다. 자유한국당이 냉전 프레임에 갇힌 모습이 저는 몹시 안타깝습니다. 냉전적 사고에 갇혀 있으니 자유한국당이 문재인 정부가 사회주의 정부라는, 그리고 현 정권이 나라를 김정은에게 갖다 바치려 한다는 황당한 논리를 펴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경험해본 한국사회는 냉전적 사고와 전쟁 이데올로기가 위세를 떨치는 곳입니다. 다행히도 잇따른 남북 정상회담과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냉전 담론이 자연스럽게 해체되는 광경이 곳곳에서 목격되는 중입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지금의 남북관계는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로 하여금 토대를 근본적으로 전환시키는 과정이다”라고 분석하며 철지난 보수의 시대와의 불화를 신랄히 질타했습니다.


저는 최장집 교수님의 의견에 찬성합니다. 왜냐면 보수의 정체성을 굳건히 지켜왔고, 보수에게 선명한 정당성을 부여해왔던 냉전 이데올로기 담론의 근거들이 하나하나 무너져가는 현상은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한반도 정세의 급변과 북한에 대한 인식전환은 한국의 보수가 분열한 주요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낡은 반공논리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면 국민들 사이에 보수로 통해온 세력이 한국사회에서 설 자리는 더 이상 없습니다. 시대착오적 반공논리를 탈피해야 지속가능한 진짜 보수로 바뀔 수 있습니다. 바른미래당은 그러한 흐름에 부합하려는 시도인 경우이겠죠.


북한과 공존하겠다는 의지가, 북한을 정상국가로 인정하겠다는 자세가 지금은 어느 때보다 요구됩니다. 우리는 북한을 붕괴시킬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북한을 마냥 방치해서도 안 됩니다. 북한을 붕괴시킬 수도 없고, 방치할 수도 없는 우리에게는 교류만이 유일하게 선택 가능한 영역입니다. 공존을 전제하기에 남북이 대화하는 것입니다. 북미가 협상하는 것입니다. 한국사회는 북한과의 공존을 전면적으로 공론화하는 데 아직은 익숙하지 않습니다. 자칫하면 종북으로 또다시 매도당힐 위험성도 전적으로 무시할 수만은 없습니다.


하노이 회담은 성공도 실패도 아닌 과정의 일부다


우리의 최종적 목표는 무엇이어야 할까요? 저는 개인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기반한 평화적 통일의 실현이라고 확신합니다. 이를 달성하려면 아주 긴 시간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무지에서 비롯된 공포에 버금가는 공포는 없습니다. 우리가 북한에 대한 공포를 오랫동안 안고 살아온 것은 북한의 정확한 실상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북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본다면 우리는 북한 역시 사람이 사는 땅임을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무지는 공포를 낳을 뿐만 아니라 공포에 신비감의 베일을 덧씌우기도 합니다. 북한은 더는 신비한 곳이 되어선 안 됩니다. 저는 우리 안의 강제된 무지야말로 통일의 노력을 가로막아온 걸림돌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우리은 소원은 통일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제목의 노래가 남북한에서 공통적으로 불려온 상황이 무엇을 말했겠습니까?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게 됐습니다. 대신에 그 자리를 통일에 대한 회의감이 차지했습니다. 저는 통일에 대한 회의감이 반드시 나쁘다고만은 판단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통일 이전에 평화가 확고하게 정착되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남북 정상의 만남도, 북미 정상의 회담도 평화의 확고부동한 정착을 염원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정서가 존재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눈에 보이는 가시적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채 회담을 끝냈다고 해서 평화를 향한 남북한의, 전 세계 인류의 보편적 염원이 사그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넓고 깊고 절절해졌습니다. 저는 그래서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실패했다는 진단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번 하노이 회담은 근본적으로 평화에 대한 염원에 토대를 둔 북미 사이의 길고 지루한 주고받기 협상 과정의 일부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공희준 : 좋은 말씀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조경일 : 감사합니다.



덧붙이는 글

조경일 칼럼니스트는 함경북도 경흥군(세칭 아오지)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유년기와 소년기를 보냈다. 남한에 와서는 학부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다음 정치 컨설턴트와 국회 보좌진으로 일했고, 현재는 석사 학위 논문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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