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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봉②, “국민의힘의 부활은 예정돼 있었다” - 진보진영의 부패와 타락은 이념은 가고 이해관계만 남은 데서 비롯돼

공희준 편집위원

  • 기사등록 2021-03-17 17:3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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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전체 국회의원 의석의 3분의 2 가까운 의석수를 차지한 거대 여당이다.

그런데 ‘국회독재’로 비판받을 만큼의 무소불위의 입법권력을 지난 1년 가까이 막무가내로 휘둘러온 더불어민주당이 오는 4월 7일 실시될 예정인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자력으로 승리할 가능성은 사실상 전무한 듯하다. 이제 여당이 선거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는 야권의 후보 단일화가 불발돼 야당 후보들의 표가 분산되는 사태 정도만이 남았을 뿐이다.

기세등등하던 문재인 정권은 야권의 분열에 기대어서만 선거 승리를 힘겹게 노릴 수 있는 추레한 처지로 어째서 전락한 것일까? 이수봉 민생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서울시장 예비후보의 통시적 분석과 진단에 귀를 기울여보자.

한국 진보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 필요하다

 

이수봉 위원장은 자신이 목격했던 대한민국 진보진영의 모순과 맹점을 소개했다. (사진=최인호 기자)

공희준(이하 공) : 위원장님께서 구 기득권으로 규정한 국민의힘이 신 기득권으로 정의를 내린 문재인 정권 덕분에 서울시장 선거 국면에서 완벽하게 부활당했습니다. 국민의힘이 부활을 당한 주된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고 보십니까? 그리고 그 기세 좋던 더불어민주당이 서민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볼 때 국민의힘과 동급이 돼버린 주요한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이수봉(이하 이) : 국민의힘이 부활당했다는 그 말씀이 지금 사태의 정곡을 찌르고 있습니다. 국민의힘이 부활당한 원인은 굳이 두말할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 바로 우리나라 진보진영에 그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보수세력은 정상적이고 현대적인 정치세력이 아닙니다. 박물관으로 당장 보내야만 마땅할 시대착오적인 적폐덩어리일 따름입니다. 그런데 다 죽은 것으로 보였던 보수세력, 즉 구 기득권 집단이 무덤에서 땅 위로 다시 기어 나와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의 진보진영이 보수세력을 부활시켜주는 구세주 역할을 떠맡은 역설적 사태와 관련해서 조금은 깊이 있는 역사적 고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공 : 단순한 시사 차원의 쟁점이 아니란 의미인가요?

 

이 : 예, 그렇습니다. 저는 1981년에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학교에 입학한 이듬해인 1982년에 전두환 정권과 싸우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제가 대학교 2학년 1학기였을 때였습니다. 제가 외부의 지시나 조종을 받고서 5공 군부독재에 맞서 투쟁한 건 아닙니다. 전두환의 신군부가 광주에서 자행한 잔인무도하고 반인륜적인 민중학살에 너무나 분노한 까닭에 동기들과 후배들을 알음알음으로 모으고 엮어서 군부독재 타도 투쟁에 나섰습니다. 감방에서 1년가량 복역생활을 하고서 출소한 저는 문익한 목사님께서 의장으로 계시던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에 들어갔습니다.

 

공 : 민통련 말씀이시죠?

 

이 : 예. 민통령에 들어가서 홍보팀 막내로 활동하게 됐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김근태, 이부영, 장기표 같은 내로라하는 재야인사들을 실제로 만나게 됐습니다.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1세대로 불리는 인물들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분들의 투쟁방식이 조금은 낭만적이라 생각하고는 1984년에 인천검단공단으로 가서 노동운동에 투신했습니다. 정확한 위치는 인천 서구의 경서동이었습니다. 제가 한 일은 다양한 유형의 육체노동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힘들고 위험한 작업으로 손꼽히는 주물공장 일이었습니다. 거기에서는 뜨겁고 위험한 시뻘건 쇳물을 기계가 아닌 사람의 손으로 다루고 있었습니다. 저는 주물공장에서의 1년을 시작으로 통틀어 5년간을 공단지역을 무대로 낮에는 육체노동에 종사하고 밤에는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제 나름의 주경야독에 매진했습니다. 저는 당시 아무리 몸이 피곤한 상황에서도 거의 빠짐없이 매일 일기를 썼는데, 제가 일기에 적어놓은 기록과 정세분석은 저와 노동운동을 함께하던 선후배와 동료들에게 투쟁의 방향과 지침이 될 수 있는 유용한 문건 구실을 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공단 지역에서 평범한 노동자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는 생활을 이어가며 노동운동을 벌였습니다. 그러다가 1986년 무렵부터 새로운 유형의 활동가들이 공장지대로 무리를 지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주체사상과 마르크스레닌주의 가운데 한 가지로 무장해 있었습니다.

 

저는 특별한 정치적 경향성이사 이데올로기적 기준을 염두에 두고서 노동운동에 뛰어들지 않았습니다. 저는 전두환 정권의 폭압과 폭력, 부패와 횡포에 자연스럽게 분노한 결과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차례로, 그것도 혈혈단신으로 참여하게 됐습니다.

 

안철수가 소멸시킨 안철수 현상


이수봉 위원장은 안철수 대표의 리더십 부재가 안철수 현상의 소멸을 낳았다고 말했다. (사진=최인호 기자)

공 : 후배 노동운동가들은 위원장님과 어떤 측면에서 결정적으로 달랐나요?

 

이 : 이념도 이념이지만, 철저히 조직을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부분이 그 친구들의 두드러진 특징이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특정 이념으로 의식화되고, 개인의 자발성과 창의성을 활용하는 대신에 조직의 규율과 명령에 복종해 활동했던 사람들을 민주화운동 2세대로 규정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 민주화운동의 2세대가 가졌던 한계와 맹점이 그때부터 30년이 넘게 흐른 지금까지도 본질적으로 전혀 극복되거나 개선되지를 않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사이에 소련을 비롯한 동구 사회주의 체제 국가들이 잇따라 붕괴하고, 북한이 고난의 행군으로 상징되는 고질적인 경제난에 시달리게 됐다는 점입니다. 사상의 구심점이 무너지고 정신의 길라잡이 역할을 해주던 이념이 퇴조하니 이제 무엇이 남겠습니까? 끈적끈적한 인간관계만이 잔존하게 됐습니다.

 

공 :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한 ‘마음의 빚’이 586 세대 여기저기서 쌓이게 된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근원이네요.

 

이 : 끈끈한 인간관계도 상당히 수위가 조절된 표현입니다. 본질적으로는 약삭빠른 이해관계입니다. 변혁운동, 즉 혁명적 활동은 고도의 지적인 훈련과 개인의 헌신성을 요구하는 과업입니다. 젊은 시절에 독자적 판단력 없이 활동했던 사람들이 나이 들어 이해관계 하나로 똘똘 뭉치게 되니 부패와 타락, 비리와 부정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판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습니다.

 

공 : 80년대의 대학교 총학생회들마다 이런저런 생활공동체를 지향한다고 요란하게 주장했었는데, 알고 보니 박근혜와 최순실의 경제공동체를 능가하는 진짜 생활공동체였네요. 뒷맛이 아주 씁쓸합니다.

 

이 : 현실 사회주의의 갑작스러운 몰락과 북한 세습체제의 격화되는 모순은 민주화 운동 2.5 세대가 등장하도록 이끄는 자극제가 됐습니다. 참여연대가 주도하는 시민운동이 민주화 2.5 세대의 주류를 차지하게 됩니다. 참여정부는 2.0 세대와 2.5 세대가 합작해 탄생시킨 정권이고요. 문재인 정부 역시 참여정부와 같은 뱃속에서 태어났다고 하겠습니다.

 

정권 초반에는 다들 잘해보려고 노력했겠죠. 그렇지만 참여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지닌 태생적 성격은 두 정권 모두 좌측 깜빡이를 켜고서 우측으로 운전대를 꺾는 양두구육의 정치를 하도록 만들고 말았습니다. 저는 ‘안철수 현상’이 나타나게 된 데에는 진보진영마저도 서민들의 삶의 고통과 애환을 외면하고 신자유주의로 치달았던 일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공 : 안철수 현상을 ‘민주화 운동 3.0’으로 명명할 수 있을까요?

 

이 : (단호하면서도 안타까운 어조로) 그렇게 되지 못한 걸 많은 사람들이 천추의 한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안철수 현상의 주인공인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정치공학적인 세력 확장에만 골몰하다가 점점 보수화되어가면서 안철수 현상 역시 서서히 침몰해갔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와 같은 이유로 말미암아 안철수 대표와 내부적으로 계속 격론을 펼쳐야만 했습니다.

 

진보진영과 문재인 정부기 촛불혁명에서 표출된 국민들의 간절한 바람과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정신을 확실하게 인식하고서 이를 제대로 된 정책과 제도로, 체계적인 법률과 시스템으로 착실하게 구현해나갔다면 국민의힘이 다시 스멀스멀 살아나는 황당하고 기막힌 사태는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게 분명합니다.

 

공 : 보수가 부활당하는 사건은 문재인 정권 출범 이전부터 이미 예정됐다는 말씀인가요.

 

이 : 그렇죠. 이는 어쩌면 일종의 필연적 귀결일 수도 있습니다. 장기간에 걸쳐 꾸준히 차곡차곡 누적되어온 진보의 오류와 부패, 위선과 내로남불에 대한 일반 대중의 염증과 환멸이 임기 말기를 맞이한 문재인 정권의 권력누수 현상과 겹쳐지고 맞물려 일시에 폭발한 격입니다. (③회에서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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