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편집위원
공희준 : 대한민국이 전반적으로 노쇠화 추세에 있지만, 서울의 노쇠화 역시 심각한 수준에 다다랐습니다. 그로 인해 서울 강북 지역의 평범한 주택가에 가보면 낮에는 마치 여느 농촌마을과 같이 젊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고, 어르신들만 눈에 띄는 광경이 지금은 일상이 되었습니다. 미래의 주역은 청년입니다. 노인들만 가득한 도시에서 미래를 논한다는 건 모래뿐인 사하라 사막에 항구를 짓겠다는 말처럼 공허하게 들릴 수가 있습니다. 청년이 없으면 미래가 없습니다. 청년들이 살고 싶어 하는 서울, 청년들이 돌아오는 서울, 청년들이 결혼해 아이를 낳고 살 수 있는 서울을 만들기 위해 후보님과 미래당에서는 어떠한 청사진을 그리고 계신지요?
나는 낀 세대다
오태양 : 저는 편집위원님께서 방금 해주신 질문에 대한 대답 겸 반론을 결례를 무릅쓰고 곧바로 하도록 하겠습니다. 청년들이 꼭 서울에 살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서울 인구가 가뜩이나 많은 상태에서 청년들이 굳이 서울로 돌아와야만 할까요? 청년들에게 반드시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야 하는 의무가 있을까요? 저는 이런 물음표들을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거의 20년 동안 청년운동과 평화운동과 시민운동에 매진해왔습니다. 제가 연령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허리에 해당하는 중간세대가 되었습니다. 저희 선배세대는 민주화 세대로 지칭되는 586 세대입니다. 저의 후배세대는 MZ 세대로도 불리는 20~30 세대입니다. 제가 이렇게 낀 세대가 된 덕분에 양쪽 세대의 얘기들을 모두 들을 수 있는 위치에 자연스럽게 서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선배세대에 대해 느낀 점들이 있습니다.
첫째로, 그분들이 청년들이 직면한 어렵고 팍팍한 삶의 문제들을 기성세대가 앞장서서 해결해줘야만 한다고 말들을 하면서도 실제 행동으로는 나서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청년들이 나라의 주인이고, 미래의 주역이라는 소리를 입으로는 계속하면서도 청년들이 그러한 중요한 역할을 맡을 수 있도록 구체적 실천으로는 도와주지를 않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손에 쥐고 있는 예산과 권한을 청년들에게 주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둘째로, 자기네 세대가 과거에 경험한 일들을 절대시한다는 점입니다. ‘라떼’ 증상이 너무나 심해요. 당시의 조건과 오늘날의 환경이 동일할 수는 없습니다. 시대의 정신와 과제는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바뀌기 마련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분들은 현재의 청년들이 겪는 고충과 애환을 쉽사리 이해하지를 못합니다.
셋째로, 본인들이 기득권 세력이 됐다는 사실을 한사코 인정하려고 들지를 않는다는 점입니다. 기성세대가 보유한 막강한 정치경제적 권력과 폭넓고 촘촘한 인맥은 청년세대가 가진 초라한 사회적 자본과 빈약한 인적 네트워크와는 비교를 불허합니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부와 권력은 문재인 정권의 등장에 힘입어 586 세대의 수중에 완벽하게 장악ㆍ집중되었다. 그럼에도 586 세대는 약자 코스프레를 교묘하고 고집스럽게 이어가는 중이다. 산업화 세대가 단지 불의하기만 했다면, 민주화 세대는 불의한 데 더해 위선적 면모까지 서슴없이 드러내왔다
제가 인도에 있는 어느 오지 마을에서 2년간 봉사활동을 수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가 입은 옷은 한국에서 평상시에 입었던 옷들이었습니다. 절대로 값비싼 고급 의류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제 수수한 옷차림이 그곳 주민들에게는 동경과 선망의 대상으로 단박에 떠올랐습니다.
우리나라 기성세대는 그들이 거머쥔 부와 권력이, 인맥과 지위가 청년세대에게 엄청 부럽고 대단하게 느껴진다는 사실에 여전히 무지하기만 합니다. 가운데 낀 세대인 저에게까지 그렇게 생각될 정도니 586 세대와 MZ 세대 사이를 갈라놓고 있는 간격과 괴리가 얼마나 크고 깊겠습니까?
서울은 외화내빈의 도시
저는 확실한 변화의 계기가 특별히 마련되지 않는다면 서울의 미래가 밝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서울은 외형적으로는 천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전 세계적인 거대 도시(Global Mega City)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화려한 겉면의 안쪽을 들여다보면 시민들이 생활하기 좋은 도시로 평가받기는 힘든 곳입니다.
서울은 지표상으로는 굉장히 풍요롭고 풍족한 도시입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운동장이 아주 심각하게 기울어진 도시이기도 합니다. 계층 간의 격차와 불평등이 이미 곪을 대로 곪아 있습니다.
서울은 편리한 도시이기도 합니다. 다양한 기반시설이 비교적 튼실하게 구축돼 있습니다. 그럼에도 서울에 실제로 살고 있는 서울시민들은 서울을 건강하고 안전한 도시로 여기지를 않습니다.
만성적 대기오염과 고질적 미세먼지, 그리고 끊이지 않는 크고 작은 사건사고들을 생각하면 오태양 예비후보가 내린 평가처럼 서울은 안전과 건강 분야에서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서울은 한강의 기적의 발원지였습니다. 88년 하계 올림픽의 개최지였습니다. 하지만 서울올림픽이 치러지던 해에 태어난 팔팔둥이들에게 서울은 IMF 사태의 무대이자, 글로벌 금융위기의 한 축이며, 벼락부자의 정반대 개념인 벼락거지들을 양산하는 절망적 공간일 뿐입니다. 그런 쓰라린 경험을 온몸으로 거듭해온 청년 세대에게 서울의 장밋빛 미래를 아무리 자주 보여준다고 한들 젊은이들이 과연 여기에 진심으로 맞장구를 치겠습니까?
번지르르한 공약과 지키지도 못할 약속으로는 청년들의 마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 지금은 진심을 넘어 ‘찐심’이 강조되는 시대입니다. 청년들의 목소리를 최선을 다해 경청하고 청년들의 처지를 진지하게 공감하는 정치가, 정치인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자면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요구됩니다. 나경원 전 의원께서 서울시장이 되면 서울에서 결혼해 출산하는 사람에게 1억 7천만 원씩을 지급하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런 종류의 달착지근한 속삭임이야말로 청년들의 냉소만 사기에 딱 좋은 선거공약일 수가 있습니다. 아이 낳으면 돈 주겠다는 식의 단선적이고 일차원적인 접근법은 청년들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몹시 후진적 사고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청년실업 문제에 대처하는 기성세대와 기존 정치권의 자세와 방식 역시 구태의연하기 짝이 없습니다. 돈 많이 주겠다고 꼬드기며 청년들을 위험한 일자리로 내몰려는 기색이 역력한 탓입니다. 일과 여가의 구분이 모호한 일자리들이 최근 들어 지속적으로 생겨나고 있습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이러한 경향에 더욱더 가속도가 붙었습니다.
청년들에게 도전과 모험에 착수하길 큰소리로 촉구하는 사람들일수록 정작 자기 자식은 안전하고 편안한 삶을 살도록 별의별 꼼수를 부리기 십상이었다. 586 세대로 대표되는 기성세대의 내로남불 증후군은 고용을 창출하고 실업 문제를 해결에는 일에서도 거추장스런 장애물로 강력하게 작용하는 셈이다.
교육과 진로에 관련된 해법에서도 딱히 진전된 모습이 눈에 띄지를 않습니다. 공부 잘해서 성공하는 시대는 이제 끝났습니다. 대학에서의 전공을 살려 먹고사는 사람들의 비율이 현재는 50퍼센트에조차 미치지 못하는 형편입니다. 이는 학교에서 배운 지식만으로는 안정된 생활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청년세대를 벼락거지의 대열로 강제로 합류시키는 부동산 대란 사태는 구태여 두말할 나위가 없을 테고요. (④회에서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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