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편집위원
공희준 : 의원님께서는 서울특별시를 「당신특별시」로 만들겠다는 굉장히 도발적인 표어를 내걸고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셨습니다. ‘당신’은 본래의 의미와 달리 지금은 자동차 몰고 가다가 접촉사고 나서 상대방 운전자와 싸울 때나 쓰는 단어로 그 뜻과 용법이 매우 부정적으로 변해 있습니다. 더욱이 의원님께서 대표로 계신 정당인 ‘시대전환’의 당명 또한 저 같은 일반인들이 듣기에는 입에 착 달라붙는 정당의 이름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의원님께서 「당신특별시」를 간판 구호로 선택해 선거에 출마하신 데에는 무엇인가 깊은 문제의식이 있어 보입니다. 중학생도 알아들을 수 있는 쉽고 간단한 화법을 쓰는 게 모범답안처럼 돼 있는 우리나라 정치 현실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선거구호를 들고 나오신 이유는 뭔가요? 그리고 의원님께서 꿈꾸는 ‘당신특별시’는 기성 정치인들이 만들겠다고 공약하는 이런저런 서울특별시들과 근본적으로 어떠한 차별성을 갖고 있는지 말씀해주세요.
월급 주는 사람도, 월급 받는 사람도 모두 위대하다
조정훈 : 선거에 출마한 모든 후보자들은 유권자들의 머릿속에 쉽사리 기억될 슬로건을 열심히 고민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출마자들이 뭔가를 해내겠다느니, 무엇을 단시간에 짓겠다느니 같은 익숙하고 통상적인 이야기들을 유권자들 앞에 선거공약으로 제시해왔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떻게 보면 검증되고, 또 어떻게 보면 식상한 구호들로는 유권자들의 마음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정치인의 말과 글은 당대의 시대정신을 명징하게 담아야만 한다고 믿습니다. 오는 4월 7일 치러질 예정인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다른 후보님들의 공약과 슬로건에는 우리나라 기성정치에서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양대 기조가 변함없이 흐르고 있습니다. 첫째는 공급자 중심의 시각입니다. 둘째는 집단주의적인 사고방식입니다.
「당신특별시」는 작가님께서 지적하신 것처럼 몹시 도발적 표현일 수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 도발적 표현을 감히 들고 나온 이유는 집단의 시대는 이제 불가역적으로 끝났기 때문입니다. 저는 저희 선배세대의 역사적 기여를 긍정하고 존경해왔습니다. 그래도 아쉬운 지점이 하나 있습니다. 선배세대가 숫자의 우세로, 힘의 우위로 민주주의를 진전시켜왔다는 대목입니다. 저는 현재의 21대 국회가 주로 수와 힘에만 의지해 운영되는 데에는 이와 같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사의 영향이 크다고 봅니다.
조정훈 예비후보는 세계은행(World Bank)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분쟁처럼 어렵고 복잡한 국제적 갈등을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하도록 중재하고 유도하는 협상 전문가로 일했었다. 따라서 대중동원과 물리적 투쟁을 양 날개로 삼아 전개되어온 한국의 민주주의에 관해 그가 기존의 주류적 관점과는 결이 다른 견해를 취하는 건 어쩌면 매우 자연스러운 상황일지도 모른다.
저는 90년대에 대학을 다녔습니다. 한마디로 서태지 세대에 속하는 사람입니다. 1990년대는 학생운동이 끝물에 다다른 시기였습니다. 저희 세대의 삶을 가장 결정적으로 규정한 사건은 김영삼 정부 말기에 터진 외환위기 사태였습니다. 한국이 IMF 관리체제에 들어가면서 저희 세대는 각자도생의 전략을 삶의 지배적 문법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상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너무 이른 나이에 깨닫고 말았습니다.
조정훈 예비후보가 지칭한 세상이 추상적 가치의 세계가 아닌, 구체적 삶의 세계를 가리키고 있음은 물론이다.
저희 세대와 선배세대의 가장 큰 본질적 차이점은 저희들은 남을 한 명이라도 고용해 그 사람에게 꼬박꼬박 월급 챙겨주는 일이 얼마나 위대하고 훌륭한 일인지를 비교적 일찌감치 알게 됐다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월급 주는 인간의 비위를 인내심 있게 맞춰가며 밥벌이를 하는 사람이야말로 월급 주는 인간 이상으로 위대하고 훌륭한 사람임을 머리와 이론이 아니라 몸과 경험으로 이해한 데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의 저변에는 근본적인 시대전환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생활인의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개인의 시대가 개막된 것입니다.
개인의 시대가 열리고, 생활인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우리나라 국민들이 구성원으로 살고 있는 다양한 층위의 공동체들이 더욱더 불편하게 느껴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자기가 몸담은 공동체가 편안하고 유쾌하게 여겨져야만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완전히 정반대입니다. (목소리를 높이며) 오죽하면 설날과 추석 등의 명절만 닥치면 사람들이 가족과 친척을 만나기가 너무나 두렵고 싫어서 명절 스트레스에 시달리겠습니까? 이는 공동체가 개인을 보듬고 감싸 안는 안온한 휴식처 구실을 하지 못한 채 개인을 베고 찌르는 살벌한 전쟁터가 돼버렸기 때문입니다.
산업화 시대 다음에는 민주화 시대가 있었습니다. 민주화 시대 이후에는 개인주의 시대, 즉 생활인의 시대가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개인주의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이 부정적 고정관념을 효과적으로 깨뜨려야만 한다는 취지에서 ‘당신’이라는 단어를 과감히 내걸고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저의 소속정당인 시대전환을 대표해 나서게 됐습니다.
97 세대는 86 세대와 이래서 다르다
당신(當身)이라는 말에는 “네가 있음으로 해서 내가 있다”는 공생과 공존의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네가 곧 나의 존재의 전제이자 이유인 셈입니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인정하고 존중하자는 뜻이 다름 아닌 당신에 담겨 있다고 하겠습니다.
서울이 세계 10대 도시가 됐다고 떠들썩합니다. 대한민국의 수도가 지구촌에서 내로라하는 국제도시로 발돋움했다고 도처에서 왁자지껄합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평범한 서울시민들께서는 서울의 외형적 성공과 약진에는 더 이상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관건은 과연 내가 서울에서 오롯이 살아남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인간다운 삶을 지속가능하게 누릴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내가 서울에서 원하는 일을 하면서, 원하는 곳에서 살 수 있느냐는 게 이제는 대다수 서울시민들의 중심적이고 핵심적인 관심사항이 됐습니다.
시민들은 삶의 안전성과 안정감을 최우선적 요소로 중시하고 있습니다. 「당신특별시」는 평범한 시민들의 염원을 반영하고 지향점을 집약시킨 슬로건입니다. 제가 이 슬로건을 소개하자 반응이 두 가지로 크게 엇갈렸습니다. 20대에서 50대 초반에 이르는 젊은 유권자분들은 제가 들고 나온 슬로건이 대단히 신선하고 파격적이라는 인식을 보여주셨습니다.
하지만 그 위의 연령대에 해당하는 분들께서 해주신 말씀은 상당히 달랐습니다. 제가 방금 전에 국회 본회의장에서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길입니다. 저를 평소에 아끼고 걱정해주시는 선배 의원님들께서는 제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며 발표한 정책은 괜찮은데, 슬로건이 조금 이상하다는 평가를 내려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당신특별시」 대신에 「우리특별시」라고 홍보했으면 민심에 더 잘 먹혔을 것 같다고 저에게 애정 어린 조언을 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현재의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김대중 정부의 여당이었던 새천년민주당보다는, 참여정부 당시의 집권당이었던 열린우리당에 더욱 깊고 밀접하게 뿌리를 박고 있다. 그러므로 여당 의원들이 ‘우리’란 용어에 본능적 애착심을 보이는 건 일종의 인지상정일 수가 있다.
일단은 약간은 수긍이 가는 진단이기도 했습니다. 중장년 남성들끼리 일상적 대화를 나눌 때 ‘내 마누라’라고 부르지 않고, 보통은 ‘우리 마누라’로 말하곤 하니까요. (갑자기 한숨을 내쉬며) 우리나라 정치권의 주류를 형성하는 분들의 심리가 아직도 이러한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분들에게 집단은 존엄하고 고귀한 숭배의 대상입니다. 그러니 ‘우리’라고 해야 직성이 풀릴 테지요. 국회의원 같은 공인이 어떻게 ‘우리’를 앞세우지 않을 수 있느냐는 게 그분들의 전반적 정서였습니다. 사회를 선도해야만 마땅할 정치권이 오히려 왜 이처럼 뒤쳐진 인식과 사고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겠습니까? 시선이 과거에 고정돼 있는 탓입니다. 미래를 좀처럼 안중에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개인과 공동체가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생각에는 저 또한 백 퍼센트 동의하는 바입니다. 문제는 지금은 그 무게중심이 지나치게 집단으로만 편향돼 있다는 점입니다. 군부독재 정권이 물러간 지 이미 오래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의식과 다양한 분야들 곳곳에 군사문화의 권위주의적이고 퇴행적인 잔재와 흔적이 짙게 남아 있습니다.
저는 구시대의 낡은 유산을 제대로 확실하게 떨쳐낼 수 있는 방법은 바람직한 내용과 형식의 개인주의에 힘을 실어주는 길에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러자면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균형이 시대의 변화에 걸맞게끔 새롭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정립될 필요가 있습니다.
개인이 살지 못하면 공동체도 존속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이후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서울을 미래지향적이고 참다운 개인주의에 기반을 둔 「당신특별시」로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저의 신념을 계속 피력해왔습니다. 젊은 분들께서는 제 구상에 흔쾌히 찬성을 표시해주셨습니다. 나이 드신 어르신들의 경우에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분들이 물론 많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설명과 설득을 꾸준히 이어나갈 작정입니다.
저는 시대정신과 함께하는 젊은 서울시장이 되고 싶습니다. 과거의 산업화 시대에 집착하기보다는, 지나간 민주화 시대를 대변하기보다는 지금 이 시대의 여망을 구변하고 과제를 실천하는 역동적인 서울시장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이른바 97 세대의 한 명으로 분류되는 정치인입니다. 저희 97 세대는 자신들이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간에 개인주의를 실생활에서 체험하고 내면화한 역사상 최초의 세대입니다. 그 때문인지 국회에서 1970년대에 태어난 정치인들이 모이게 되면 어울리는 방식부터가 선배세대와는 두드러지게 다릅니다. (②회에서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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