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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민① “정동영의 유통기한은 끝나지 않았다” - 정동영 전 의원에게 찍힌 ‘배신자’ 낙인은 근거 없는 음해일 뿐

공희준 편집위원

  • 기사등록 2020-07-10 11:4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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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전 의원은 21세기 한국정치를 대표하는 풍운아이다. 그는 정권의 2인자부터 군소야당의 당대표까지, 제도권 정치인으로서 겪을 수 있는 모든 영욕과 부침을 맛본 인물이기도 하다.

정동영에게 영광의 시간은 짧았고, 굴욕의 시기는 길었다. 그는 올해 4월 치러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관록에서나 이름값에서나 정동영에게 한참 미치지 못하는 586 운동권 출신의 친문 정치인에게 완패하는 수모마저 당했다. “정동영은 정치생명은 끝났다”는 세간의 중론에 힘을 실어준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정동영의 시간은 계속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준민 시인은 그러한 소수의 일각을 이루는 사람이다. 손해면 손해지, 이익은 되지 않을 정동영을 위한 변명에 왜 나섰는지 그 이유와 동기를 이준민 시인으로부터 들어봤다. 인터뷰는 2020년 7월 9일 목요일 정오 무렵, 경기도 파주의 운정 신도시에 자리한 어느 학원에서 이뤄졌다. 인터뷰가 진행된 지 몇 시간 후 박원순 서울시장이 실종됐다는 뉴스 속보가 다급하게 전해졌다.

공희준 : 박지원 전 민생당 의원이 문재인 정부의 새로운 국가정보원장으로 지명되었습니다. 꽉 막힌 남북관계를 푸는 데에는 ‘올드 보이’로 불리는 원로 정치인의 경륜과 지혜가 유용할 것이라는 정권 수뇌부의 전략적이고 정무적인 판단의 결과물로 분석되는 인사였습니다.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 사이에 열린 1차 남북 정상회담의 산파였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에 진행된 2차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주역은 정동영 전 민생당 의원이었습니다. 그는 참여정부의 통일부 장관 자격으로 직접 김 위원장을 만나 남북한 정상의 만남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득했습니다.

 

그런데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와는 달리 정동영 전 의원에게는 지난 총선에서 낙선한 다음 별다른 정치적 역할이 주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정 전 의원 본인은 현실정치와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새로운 활동공간을 모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특별한 활로는 여전히 찾지 못한 상태입니다. 이준민 시인께서는 정동영 전 의원의 열렬한 지지자로서 “우리에게는 아직도 정동영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발신해오셨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동영의 정치적 유통기한이 이제는 다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준민 시인께서는 어떤 이유에서 자연인 정동영이 아닌 정치인 정동영에게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만약에 그에게 할 일이 남아 있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이 있을지 말씀해주십시오.

 

박지원은 실무형, 정동형은 리더형


이준민 시인은 정동영과 박지원은 정치하는 방식은 달라도 능력은 같다고 말했다. (사진 최인호 기자)

이준민 : 박지원 전 의원은 실무형 정치인입니다. 정동영 전 의원은 지도자형의 정치인입니다. 두 사람의 정치적 특성부터가 다릅니다.

 

실무형은 다른 말로 참모형이리라. 김대중 정부에서 청와대 비서실장을 역임한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와 남을 보좌해본 경험이 없는 정동영 전 의원을 동일한 유형의 정치인으로 분류한다면 이는 매우 억지스러운 노릇일 게다.

 

박지원 전 의원은 1기 민주정부인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대북정책의 중심인물이었습니다. 정동영 전 의원은 2기 민주정부로 불릴 수 있는 참여정부의 통일정책을 총괄하는 책임자로 복무했습니다. 저는 문재인 대통령이 두 사람 가운데 어느 인물과 함께 일하는 것이 통치권자 입장에서 더욱 편안할지 곰곰이 따져봤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박지원 전 의원 간에는 여러 가지 정치적 쟁점들을 둘러싸고 적잖은 옥신각신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박지원 쪽으로 문 대통령의 마음이 기운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박 전 의원이 실무자형 정치인이란 점입니다, 둘째는 그가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주역이라는 사실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으로서는 박지원 전 의원과 소통하고 공감하기가 보다 수월할 것이라는 판단이 섰을 수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저는 박지원은 문재인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정동영은 청와대의 연락을 받지 못했다는 식의 일차원적이고 단선적 시각으로 두 중진 정치인의 비교우위를 재단하는 것은 그리 합리적 시각이 아니라고 봅니다.

 

정동영과 박지원은, 박지원과 정동영은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코드가 썩 잘 맞는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두 분이 정치 스타일에서나 이념적 성향에서나 완벽한 합일을 형성해온 관계는 아닙니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가 둘을 동시에 기용하기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았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1기 민주정부에서 각료를 맡았기 때문에 선임자 격인 박지원 전 의원이 문재인 정부에 먼저 합류하는 게 아무래도 순서상 자연스럽다고 하겠습니다.

 

여기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갈 대목이 있습니다. 박지원 전 의원과 정동영 전 의원 전부 문재인 정부에 들어가지 못해 조바심을 내거나 초조해할 사람들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논의의 핵심은 두 사람이 전문성을 발휘할 분야가 어디에 있느냐는 데 있습니다. 남북관계는, 민족문제는 정파를 초월하는 일입니다. 노선의 차이를 뛰어넘는 초당적 협력이 요구되는 분야입니다. 힘을 보탤 일이 있으면 기꺼이 힘을 보태고, 협력해야 할 과제가 있으면 통 크게 협력해야만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박지원 전 의원에게 국정원장 자리를 제안하고, 박 전 의원이 이 제안을 흔쾌히 수용한 일은 그와 같은 대승적 차원에서 이뤄졌다고 평가될 수 있습니다. 저는 능력의 차이나 문재인 대통령과의 친소 여부로 말미암아 누가 먼저 들어가고, 누가 나중에 들어가는 건 아니라고 한 번 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한 연유로 저는 문재인 정부가 ‘박지원 카드’를 내심 염두에 두어온 것처럼, ‘정동영 카드’ 역시 언젠가는 뽑아들 수가 있다고 조심스럽게 예상하고 있습니다.


정동영은 지인이 아니라 국민을 챙기는 정치인


이준민 시인은 정동영 전 의원은 공적 가치와 판단 위에서 움직여온 인물임을 강조했다. (사진 최인호)

많은 사람들이 정동영 전 의원이 정치인으로서의 유통기한이 끝난다는 진단을 서슴없이 섣부르게 내리고 있습니다. 정동영을 집요하고 끈질기게 괴롭혀온 한 가지 정치적 프레임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배신자 프레임’입니다. 이 배신자 프레임은 친노진영과 친문세력이 차례로 형성하고 확산시켜온 구도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단호히 반문하렵니다. 정동영 전 의원이 과연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과 관련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배신했냐는 것입니까? 제가 이렇게 대놓고 물으면 자세한 근거를 제시하며 설득력 있는 답변을 내놓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렇게 앞에서는 우물대다가 나중에 뒤통수에다 대고서 “그래도 정동영은 배신자다”라고 쑥덕거리기 일쑤입니다.

 

정치는 사적 영역의 일이 아닙니다. 공적 사안을 다루는 일입니다. 이러한 진리에 비추면 우리나라의 정치판은 너무나 저열합니다. (목소리를 높이며) 당장 여의도 국회의사당 안팎만 둘러보세요. 인간의 얼굴을 한 수많은 날파리들이 정신없이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이 날파리 같은 사람들은 오직 자기 자신의 물질적 이해관계를 기준으로 정치적 시시비비를 가리려고 듭니다. 이게 이제까지의 우리나라의 기본적인 정치문화였습니다.

 

본인의 이해관계가 유일한 잣대인 인사들의 관점에서 생각하기에 정동영은 냉랭한 사람입니다. 반면에 전북 지역의 라이벌로 통해온 또 다른 유력 정치인은 주변을 잘 챙겨주는 걸로 유명합니다. 비유하자면, 9급에 앉혀야 적당할 인물을 5급에 내리꽂아주는 형태로 자기 사람을 관리해왔습니다.

 

이준민 시인이 지칭한 전북의 라이벌 정치인은 정세균 현 국무총리를 가리킨다.

 

정동영은 어떠냐? 자리를 챙겨주는 건 고사하고 점심 한 끼 사주지 않는다는 악평 아닌 악평이 자자합니다. 하지만 이 차가운 성격의 정동영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편에 굳건히 섰습니다. 핍박받는 노동자들과 의리 있게 연대했습니다. 살고 있는 집이 강제철거당할 위기에 몰린 도시빈민들과 주저 없이 어깨동무를 했습니다. 거대한 권력이 저지른 불의한 악행을 끝가지 물고 늘어져 국민의 권익을 찾아준 정치인이 바로 정동영이었습니다.

 

주변 지인들 취직 잘 시켜주는 인물이 좋은 정치인입니까? 아니면 나라 전체에 도움을 주려고, 대다수 국민에게 이익이 돌아가게 하려고 공적인 문제를 풀어나가는 인물이 훌륭한 정치인입니까? 답은 이미 자명하게 나와 있지 않습니까? (②편에서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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