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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엘리트들은 왜 무능하고 무책임한가 - 쇼와 육군의 포로가 돼버린 대한민국 보수와 진보

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 기사등록 2019-07-15 16: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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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지만 무서운 일본


독창적 의견과 유연한 발상을 금압하는 집단이 잔인한 광기에 휩싸이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이미지는 책의 표지)1907년의 「제국국방방침」 이래 (일본) 해군은 “소수로 다수를 제압한다”는 방침 아래 전함을 중심으로 한 함대결전 사상을 확립했다. 이를 위해 질이 같은 ‘주형(鑄型)’에 적합한 군인을 양성하는 것을 교육의 주안점으로 삼고, 독창적 의견이나 유연한 발상을 가능한 한 배제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 「쇼와 육군(호사카 마사야스 지음 / 정선태 옮김) 564쪽에서 인용


「쇼와 육군」은 엄청나게 두툼한 책이다. 이 무겁고 두꺼운 책을 필자는 지난달 초순경부터 매일 조금씩 읽어나가고 있다. 변호사로 일하는 아는 동생이 작년인 2018년 연초에 선물해준 책들 중 하나였는데, 내가 지하철에서도 휴대가 가능한 경량급 책들만 주로 선호하다 보니 독서 순서가 금년 초여름까지 밀리게 되었다. 본문만 1,100페이지가 넘는 중후장대한 책을 흔들리는 전동차에서 태연히 서서 읽을 수가 있다면 당신은 독서광이 아닌 차력사일 것이다.


참으로 기막힌 타이밍이었다. 1874년의 대만 출병에서 시작해, 1945년의 무조건 항복으로 막을 내린 일본의 해외침략 역사의 선봉에 섰던 일본 육군을 입체적이고 심층적으로 다룬 책을 읽는 도중에 일본 총리 아베 신조의 한국에 대한 부당한 경제보복이 자행됐으니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었다.


사람과 조직이 발전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면서 발전하는 일이다. 둘째는 남들의 잘못을 교훈 삼아 발전을 꾀하는 길이다.


우리에게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로 불려왔다. 나는 일본에 대한 개념 정의를 하나 더 추가하고 싶다. 우습고도 무서운 나라라고.


아베 신조와 같은 부류를 최장수 총리로 앉힐 기세인 일본은 정말 형편없는 나라다. 허나 자국 군대의 졸전과 과오에 대한 기록을 국가의 체계적 지원도 받지 않은 일개 프리랜서 작가가 1,200쪽에 가까운 방대한 분량의 책으로 정리해내는 일본은 실로 무시무시한 나라다. 단적으로 한국에 6‧25전쟁은 둘째 치더라도 1997년의 외환위기 사태에 관련된 진솔한 성찰과 정확한 교훈이 담긴 1천 페이지 길이의 책이 과연 몇 권이나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제국 일본의 뇌내 망상, 거함거포주의


일본 육군의 문제는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 ‘연합함대’라는 명칭으로 더 잘 알려진 일본 해군의 문제이기도 했다. 독창적 의견과 창의적 발상을 억눌러온 건 육군과 해군에 공통된 일본 군부 전체의 치명적 한계였다. 아니. 이는 군부의 범위를 벗어나 제국주의 시대 일본 사회 전체의 치명적 한계이기도 했다.


함대결전 사상은 거함거포주의 시대의 필연적 산물이었다. 더 큰 배에 더 큰 대포를 얹는 쪽이 이긴다는 일차원적이고 단순무식한 사고 아래에서는 독창적 의견도, 창의적 발상도 들어설 여지가 없다. 따라서 까라면 까고, 하라면 하고, 기라면 기는, 인간의 얼굴을 한 영혼 없는 로봇들만이 유능하고 바람직한 인재로 대우받기 마련이다.


거함거포주의 시대가 저물고 항공모함에 탑재된 항공기들의 질과 양이 승패를 좌우하는 새로운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되자 거푸집에서 찍어낸 듯한 획일적 사고의 인물들이 주도하는 집단사고의 폐해와 부작용이 여지없이 폭로되기 시작한다. 「쇼와 육군」의 저자는 독창적 의견이 무시되고, 창의적 발상이 배척받은 풍토야말로 수많은 병사들을 적의 총탄과 포탄이 아니라 허기와 말라리아에 희생시키고, 종국에는 일본을 패전에 이르게 한 근본적 원인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책은 일본군이 도처에서 연전연패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한국인들 입장에서는 “고것 참 쌤통이다”라는 즐거운 마음으로 신나게 읽을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패배한 당사자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인 내가 자꾸만 뒷골이 당기면서 이 한여름에 등골이 서늘해진다.


누가 대본영을 자신 있게 조롱하랴


실제 현장에서는 효과적이고 성공적으로 적용될지 여부가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교과서 속의 이론과 지식을 무조건 달달 외우는 필기시험에서 제일 우수한 성적을 기록한 자들이 안전하고 쾌적한 사무실에서 탁상공론의 지시와 명령을 내린 다음, 자기의 지시와 명령이 설사 실패해도 전혀 책임을 지지 않았던 태평양전쟁 당시의 일본군 대본영의 지휘체계가 현재 한국의 청와대와 국회와 관료조직이 갖고 있는 기본적 의사결정 구조를 너무나 빼닮은 탓이었다.


20세기 중반의 일본군에서는 밀림 한번 구경해보지 않은 자들이 적도에서 어떻게 싸울지를 결정했다. 21세기 초반의 한국에서는 실제로 자기 돈으로 직원들에게 월급 한번 줘보지 않은 자들이 기업과 자영업자들을 향해서 감 놔라 배 놔라 시시콜콜히 간섭한다.


남태평양 열대의 정글에 가본 적도 없고, 가보지도 않을 자들이 결정한 황당무계한 전쟁지도 방침에 복종했던 뉴기니 섬의 수많은 일본군 병사들은 적군 한 명 구경해보지 못한 채 밀림에서 굶어죽거나 병들어 죽었다. 자기 돈으로 남에게 월급 한번 줘보지 않은 자들이 밀어붙인 문재인 정부의 아니면 말고 식의 경제정책은 한국이 터키와 형제의 국가임을 축구가 아닌 경제성장률로 확인시키도록 했다. 국내성장률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가들 가운데 터키는 꼴찌에서 1등이고 한국은 꼴찌에서 2등이었다.


함대결전 사상은 일종의 희망사항이다. 적의 함대가 아군이 예상한 방향과 진용으로 움직이리라는 견해에 입각해 작전계획을 수립한다. 일본군은 함대결전에 대비해 야마토와 무사시 따위의 초거대 전함들을 거액을 쏟아 부어 건조했다. 일본의 낭패는 미국이 일본이 예상했던 바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롯되었다. 미국은 전함들을 2선으로 물리고, 그 대신 항공모함 주축의 기동부대와 월등한 공업능력에 힘입어 붕어빵 찍어내듯 대량으로 신속히 만들어낸 잠수함들로 일본의 군함과 상선들을 용왕님 곁으로 차례차례 보냈다.


갑툭튀하니까 적군이다


거함들은 기름 먹는 하마일 뿐이었다. 트럭 섬에서 여유롭게 쉬고 있는 야마토와 무사시의 모습

내 바람 섞인 예상처럼 행동하는 적은 더 이상 적이 아니다. 친구이다. 진주만 기습을 당해 일본에 깊은 원한이 맺힌 미국이 일본이 예상하는 대로 움직여줄 리 만무했다.


일본군은 적군을 상대할 때보다 자기들끼리 다툴 때 훨씬 더 기민하고 창의적이었다. 교조주의에 찌든 육군이 해군의 입김에서 벗어나고자 항공모함을 직접 만들어낼 정도의 기발함과 융통성을 발휘할지 어느 누가 알았겠는가?


21세기 한국은 반도체 제조에 요구되는 소재와 부품과 장비를 일본에 의존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인재를 선발하는 안목이, 조직을 운용하는 문화가,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방식과 습성이 제국주의 시대 일본 육군의 그것들에서 여전히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더 큰 문제다.


이를테면 자유한국당 내에서 북한에 대한 경직된 자세를 누그러뜨리자고 누군가 독창적 의견을 낸다면 당장에 빨갱이로 매도당한다. 문재인 정권 안에서 만약에 어떤 인물이 한국경제의 혁신역량을 제고하기 위해 공무원들의 숫자를 줄이자는 창의적 발상을 한다면 그 즉시 재벌 앞잡이로 마녀사냥당하기 십상이다. 전대협 간부 출신들만 수두룩한 더불어민주당의 고루한 인적 구성과, 왕년에 공안검사가 아니었으면 명함도 못 내밀 정도인 자유한국당의 시대착오적 분위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와 배경이 있는 셈이다.


독창적 의견과 유연한 발상 없이도 물론 만수무강을 도모할 수는 있다. 단, 나보다 센 놈과, 강한 놈과 절대 싸울 일이 없을 것이라는 전제가 유효한 한에서이다. 쇼와 육군도 강적 미군과 격돌하기 전까지는 무지무지 잘나갔더랬다. 유럽과 남미의 강호들이 아닌 동남아의 약팀들만과 경기할 경우에는 유연하지도, 독창적이지도 않은 뻥축구로도 한국 축구가 아시아의 맹주를 자처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지금은 세계화 시대다. 아니, 굳이 세계화라는 거창한 화두를 들이댈 필요도 없겠다. 당장 집 밖에만 나가봐라, 나보다 센 놈들이, 강한 놈들이 득실득실하다. 과장 좀 보태자면 세 걸음만 걸어도 효도르를 만나고, 열 걸음에 한 번씩 트럼프가 등장할 지경으로 센 놈들 천지고, 강한 놈들투성이이다.


진영논리, 한국의 패망을 불러올 거함거포


싫어도 유연한 발상을 장려해야 한다. 미덥지 않아도 독창적 의견을 존중해줘야만 한다. 한반도 주변을 둘러보면 다 강적들인 연유에서이다. 객관적 전략상 한국과 비교해 하나같이 우위이다.


그렇지만 실상은 어떤가? 자유한국당을 지지하지 않으면 모두 종북빨갱이란다. 문재인 정권을 편들어주지 않으면 전부 친일파의 후예들이란다. 이런 단무지 사회, 저런 중세봉건적 나라에서 유연한 발상과 독창적 의견이 백화제방을 이뤄주기를 기대하느니 차라리 꿀꿀이죽으로 사용될 예정인 음식물쓰레기를 발효시켜 반도체 제조용 불산을 개발하는 게 최소한 백배는 성공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일본제국은 유연한 발상을 범죄시하고 독창적 의견을 이단시하는 책상물림 군부 엘리트들의 원리주의적 거함거포주의 탓에 쫄딱 망했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순혈주의 고시 엘리트들과 끼리끼리 운동권 엘리트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퍼뜨리고 강화시킨 종말론적인 이분법적 진영논리가 사회 모든 분야와 층위들에서 유연한 발상과 독창적 의견을 잔인하고 집요하게 고사‧질식시키고 있다. 이 나라의 미래가 두렵고 어두운 까닭이다.


오랫동안 정글을 배회해온 쇼와 육군의 망령이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를 망라하는 대한민국에서 출세하고 성공했다는 엘리트들, 한국판 거함거포주의라고 일컬어도 될 지독한 진영논리를 맹신하는 바로 그 무능하고 무책임한 엘리트들의 머릿속에서 오늘도 신나고 힘차게 승리의 “반자이!”를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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