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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진은 진짜로 좋은 정치인일까 - 김근태도 없고 안철수도 없는 정치고아 강북을 생각한다

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 기사등록 2019-05-17 17: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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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계동의 비극


“보수도 강남, 진보도 강남”인 강남패권주의 시대에 강북에서 사라진 지역구 의석은 강남에 거주하는 출세하고 성공한 엘리트들의 비례대표 금배지로 탈바꿈할 개연성이 짙다. (사진출처 : 박용진 의원 페이스북)

서초동에 거주하는 지인과 며칠 전에 잠실에 위치한 신천 먹자골목에서 저녁식사를 함께할 기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내가 2년간 살았던 월계동에 관한 얘기를 잠시 나누게 되었다.


나는 월계동의 어느 아파트에서 살았다. 2천 가구 정도가 거주하는 낡은 공동주택이었는데, 서울에서 집값과 전세가 가장 저렴한 아파트 단지에 속했다.


이 아파트 단지에서는 12월에 시작해 2월에 끝나는 중앙난방에서 개별난방으로의 전환공사가 진행됐다. 작업 도중에는 온수 공급이 장시간에 걸쳐 중단되기 마련인 난방전환 공사를 한겨울에 시행하는 것도 희한했지만, 더 엽기적인 일은 개별난방으로의 전환에 필수불가결한 가스보일러를 자력으로 구매할 능력이 없는 세대를 위한 아무런 대책과 조치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이는 노인과 장애인들 같은 상당수에 달하는 경제적‧신체적 약자들은 난방 끊긴 냉방에서 자면서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로 몸을 씻으라는 잔인한 소리와 진배없었다. 공사가 완료되는 즉시 온수공급을 일방적으로 중단한다는 것이 본래의 계획인 탓이었다.


우리 집은 집주인 되는 분이 50만 원 가량의 보일러를 구매해준 덕분에 온수 공급에 차질을 빚을 염려는 없었다. 단, 2월 초순에 공사를 실시해야만 했고 그날은 하필이면 서울 지역의 수은주가 영하 9도까지 내려간 날이었다. 거의 하루 종일 걸린 공사를 진행하는 동안 아내는 아직 돌도 채 안 된 아기를 데리고 그나마 따뜻한 중계동 롯데마트에 머물러야 했고, 나는 뒷마무리도 확실히 하지 않고 철수한 공사업체 관계자들을 대신해 베란다에 잔뜩 쌓인 모래와 먼지를 한겨울에 물청소로 쓸어내야만 했다.


내가 오피니언 리더였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허가해준 관할 관청이 노원구청이었다. 나는 지금은 국회의원으로 변신한 당시의 김성환 노원구청장에게 페이스북 메신저를 이용해 저간의 사정을 설명한 다음 강력하게 항의를 했다.


내 항의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여전히 겨울과 마찬가지인 3월 초로 예정된 일방적인 온수 공급 중단은 날씨가 풀리는 4월 하순으로 연기되었다. 그리고 그해 가을, 터무니없는 공사를 밀어붙인 아파트 단지의 입주자 대표회의의 대표와 시공사 사장에게 법원에서 적지 않은 액수의 벌금이 부과됐다는 소식을 안내하는 공고문이 승강기를 비롯한 아파트 건물 곳곳에 부착되었다.


내가 이와 같은 실화를 소개하자 유복한 중산층 거주 지역인 서초동에 살고 있는 지인은 좀처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디 저 멀리 시골 촌구석도 아니고, 명색이 서울특별시의 행정구역 안쪽에 들어가는 노원구 월계동에서 어떻게 그런 해괴한 일이 있을 수가 있겠느냐고 지인은 반문했다.


나는 “전부 팩트입니다”라고 대답한 후에 만약에 문제의 아파트 단지에 단 한 명의 판검사나, 단 한 명의 방송사 PD나, 단 한 명의 이른바 메이저 언론사 기자나 메이저 대학의 교수가 살고 있었다면 그런 황당한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노 섞인 통탄을 되풀이 토해냈다.


생각해보라. 만일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나 문재인 정부의 실세 중의 실세로 각광받는 청와대 민정수석 비서관이 살고 있는 방배동 삼익아파트 등지에서 중앙난방에서 개별난방으로의 난방전환 공사를 어느 누가 감히 한겨울에 강행할 수 있겠는가? 장담하건대 공사계획이 공개되자마자 공중파 텔레비전들의 정규 뉴스에서 대대적으로 비중 있게 보도되었을 테고, 공사를 추진한 관계자들 전원이 엄중한 법률적 사법처리에 더해 인터넷상에서의 혹독한 조리돌림, 즉 여론재판까지 당했을 게 틀림없다.


미아동과 삼양동은 월계동과 뭐가 다른가


필자가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에 살았던 강북구 수유리 골목길, 70년대 초중반과 변한 것이 거의 없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박용진 의원은 20대 국회에서 대표적으로 잘 나가는 정치인이다. 그는 사립유치원들을 대한민국에서 검찰과 기무사와 국정원에 버금가는 악의 축으로 몰아붙였다. 삼성 저격수로도 주가를 올렸다. 최근에는 자신의 지역구가 없어져도 괜찮다는 이른바 대인배 풍모를 유려하게 과시하며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앞장서고 있다.


내가 박용진 의원에게 묻고 싶은 건 그의 지역구인 강북을 선거구가 없어지는 사태에 대해 미아동과 삼양동 주민들이 폭넓게 흔쾌히 양해를 해주었느냐는 것이다. 미아동과 삼양동은 박용진을 국회의원으로 선출해준 바로 그 동네이다.


박용진 의원이 차기 국회에서 배지를 달 수 있느냐 없느냐는 박용진 개인의 행복과 불행과만 직결된 문제이리라. 그러나 미아동과 삼양동 거주민들의 절박한 이해관계와 긴급한 요구사항을 현실 제도권 정치의 공간에서 책임감과 소명의식을 갖고서 지속적이고 효과적으로 대변하고 관철시켜줄 지역구 국회의원이 여의도에 진출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건 정치인 박용진 개인 차원의 진로와 거취보다도 최소한 천배는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주제이다.


지역구 의원은 힘 있고 부유한 동네에 필요한 사람이 아니다. 힘없고 가난한 동네일수록 더더욱 아쉽고 절실한 존재이다.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잠실만 해도 걸어서 10여 분 거리에 홍준표 자유한국당 전 대표와 주중한국 대사로 되레 영전한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같은 출세하고 성공한 고관대작들이 거주하고 있다. 최정호 전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도 이곳 잠실에 자기 명의로 된 고가의 주택을 소유하고 있더라.


자세히 조사해보면 홍준표, 장하성. 최정호 제씨들 이외에도 현역 판검사, 현직 고위 경제관료, 내로라하는 신문방송사들의 기자와 PD, 주요 대학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지식인이나 칼럼니스트로 명성을 날리는 쟁쟁한 교수들이 셀 수도 없이 많이 살고 있을 게다. 굳이 지역구 국회의원이 나서지 않아도 잠실동 주민들의 이해와 요구를 국가와 시민사회에서 다방면으로 대의해줄 인물들은 남한사회 요로에 차고도 넘친다.


반면에 삼양동과 미아동은 어떨까? 여러분은 삼양동과 미아동에서 생활하는 고위공직자 후보자를 청문회에서 구경해본 적이 있는가? 삼양동과 미아동에 사는 유력한 여론주도층과 유명 연예인을 알고 있는가? 한마디로, 삼양동과 미아동은 지역구 국회의원을 통하지 않으면 어디 가서 목소리도 변변히 못내는 수도 서울 속의 제3세계인 셈이다. 그게 “보수도 강남, 진보도 강남”인 강남패권주의가 만들어낸 21세기 남한사회의 씁쓸하고 전형적인 현주소이다.


박용진 의원이 아무리 열심히 사립유치원들의 비리를 파헤치고, 삼성그룹의 악독한 측면을 폭로해도 그를 국회에 보내준 삼양동과 미아동 주민들을 정치적 미아신세로 전락시킨다면 박용진을 좋은 정치인이라고, 훌륭한 선량이라고 평가해주기 어렵다. 삼양동과 미아동을 아우르는 서울 강북을 선거구가 역사의 뒤안길로 영원히 사라져도 비례대표 의원을 늘리는 방향으로 선거법만 개정되면 장땡이라는 박용진의 인식과 발상은 최대한 후하게 쳐줘봤자 자기의 체면과 ‘가오’를 위해 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한 중국 춘추전국시대 송나라 양공의 사고방식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더욱이 비례대표 국회의원들은 출세하고 성공한, 돈 많고 재산 많은 기성 엘리트 무리들 가운데에서 결국은 낙점되고 발탁될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문재인 정권이 활짝 열어젖힌 강남시대에서는 좌파 엘리트들도 우파 엘리트들도 거의 전부가 강남땅에서 이웃사촌 관계를 이루며 사이좋게 살고 있다. 박용진이 폼 나게 포기한 삼양동과 미아동의 국회의석은 궁극적으로 청담동과 대치동의 몫으로 스멀스멀 낙착되는 법이다. “줍고 줍는다’의 의미를 띤 ‘줍줍’의 원리는 암호화폐 분야와 아파트 청약 시장은 물론이고 국회의석에서까지도 예외 없이 위력을 발휘한다.


강북을 표 찍는 기계로만 취급하지 마라


유능한 정치인은 자신을 뽑아준 유권자들의 이해와 요구를 악착같이 대변하는 정치인이다. 똑똑한 유권자는 자신들의 권익을 악귀같이 증진시켜줄 정치인에게 표를 주는 유권자이다. 그런 측면에서 박용진도 유능한 정치인은 아니고, 미아동과 삼양동의 유권자도 똑똑한 유권자는 아니다.


나는 어린 시절 수유시장 근처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그때는 그 동네 출신들 중에서 나중에 출세하고 성공한 사람이 꽤 있었다. 미아동과 삼양동에서 나고 자라 출세하고 성공한 인물들의 대다수는 지금은 강남에 살고 있을 것이다. 버려지는 동네에는, 사람들이 떠나는 지역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들이 있다. 자신의 지역구가 없어져도 좋다는 박용진 의원은 그럴 만한 이유들 가운데 한 가지를 제공하는 것을 테고.


월계동과 삼양동‧미아동 사이에는 샛강조차 흐르지 않는다. 미아동‧삼양동과 잠실동 사이에는 한강이 흐른다. 박용진 의원은 이 냉엄한 사실을 다시 한번 더 진지하게 되새기며 본인이 과연 정치를 제대로 잘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냉철히 질문해보기 바란다. 서울 강북이 정치의 변방지역이자 사회경제적 낙후지대로 지금처럼 계속 남아 있는 것은 그곳에서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만 할 수많은 어린아이들에게 벗어날 길 없는 천형과 굴레를 지우는 짓이기 때문이다. 김근태도 없고 안철수도 없는 정치적 천애고아가 강북이다. 강북에서 표 받아 금배지 단 당신들은 거기 주민들이 정말 불쌍하지도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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